|
|
|
발행구분
[2007년 02월호] 대륙분류 : [아시아] 국가분류 : [일본] 도시분류 : [후쿠오카]
기사제목
[ESSAY] 무모한 여대생의 규슈 급(急) 정복기 KyuShu
후쿠오카타워는 나만의 펜트하우스
오호리 공원은 중국의 시후호를 모방해 만들었다고 한다. 너른 호수의 중앙을 가르는 다리사이로 저물어 가는 태양이 언젠가 중국에서 보았던 그 모습과 비슷하다. 호수 주위를 조깅하는 사람,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 연인과 벤치에 앉아 데이트 하는 사람들. 그들의 모습에선 여유가 느껴진다. 차분해진 마음으로 후쿠오카의 야경을 만끽할 수 있는 후쿠오카타워로 향한다. 외벽이 거울로 만들어졌다는 이 타워의 높이는 234미터로 일본에서 가장 높단다. 고속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후쿠오카의 야경을 바라본다. 펜트하우스의 야경이 이럴까? 후쿠오카타워 근처의 모모치 해변공원은 유럽풍의 이국적인 거리가 밤을 아름답게 불태운다. |
|
|
| |
| 거봉 할머니와의 기막힌 만남 |
| 세계적 온천 휴양지 벳부로 향한다. 기차의 낭만은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있다. 한참 전원풍경을 바라보며 온천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부풀어 있는데 유후인 역에서 사람들이 다 내린다. 규슈레일패스를 가지고 7시 40분 발 기차의 자유석에 올랐던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둘러보니 기차 안에는 나와 무섭게 생긴 할머니, 단 둘 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멋쩍은 미소로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고, 사전을 꺼내 '도착' 이라는 단어를 찾아 벳부에 가는 기차가 맞는지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기차 가운데로 난 통로를 따라 밖으로 나가셨다. 얼떨결에 따라 나가 보니, 역무원을 발견한 할머니가 반갑게 달려가 "난지까라데스까?"라고 물어보신다. 난지? 몇시에 도착하는지를 묻는 걸까? 웃으며 손가락 두 개로 11자를 들어 보이시는 할머니. 11시에 도착한다는 말인 듯 하다. 할머니와 나 사이에 작은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다. 자리에 돌아와 앉는데 할머니가 거봉 한 봉지를 건네주신다. 고마워라. 늦잠을 잔 탓에 아침을 걸렀던 참인데 인심이 좋은 분을 만나 호강하고 있다. 오이타 현에서 내리시는 할머니는 일본어로 인사를 하신다. 무슨 말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만국 공통어인 미소로 답했다. 나중에야 알 게 되었지만 '하카타-벳부' 구간은 신칸센 열차로 2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3시간이나 걸려 벳부에 도착하긴 했지만 이런 작은 실수가 아니었다면 거봉할머니와의 훈훈한 만남도 없었을 것이다. |
| |
| I lost my bag... but |
| 벳부역에서 9개의 관광온천이 있는 지옥온천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간다. 내려야 하는 정류장을 놓칠까봐 잔뜩 긴장했는데, 기사아저씨의 도움으로 목적지에 정확히 내렸다. 그런데 뭔가 허전했다. 메고 있던 보조가방이 없어진 것. 순간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러나 이미 떠난 버스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한 일! 내려가서 찾을 요량으로 일단 지옥온천에 입장했다. 가뜩이나 태양이 뜨거운 날 부글부글 끓는 온천 옆에 있으니 푹 익어 버릴 것 같다. 바다지옥의 푸르른 색이 높은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린다. 바다지옥이 에메랄드 빛을 띠는 이유는 황산이 녹아 있어서라고 한다. 돌아 나오니 '발의 온천' 이라고 쓰인 곳이 있다. 족탕이라는 의미인 듯하다. 한국 관광객이 많은 이곳에는 곳곳에 한글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다. 찝찝한 감정을 뒤로하고 지옥온천을 다 돌았다. 그러나 황토 온천욕까지 할 수는 없어, 벳부역행 버스에 오른다. 제발 가방이 있기를. 역내 관광 안내소에는 영어와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이 있었는데 출발 직전 그녀에게서 좋은 설명을 많이 들었었다. 몇 시간 뒤에 내가 또 찾아가자 그녀는 무슨 일이냐며 두 눈이 휘둥그래져서 쳐다본다. "I have a bed news. I lost my bag in the bus"라고 하자, 깜짝 놀라며 버스회사로 전화를 건다. 심각한 얼굴이 밝게 변한다. 가방이 있는 모양이다. 4시 40분에 도착하는 버스에 가방이있는데 버스가 이곳에 서지 않으니 기다리다 버스를 잡아야 한단다.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뒤섞인 채 발길을 돌려 4시 52분발 하카타행 열차를 예약하고 버스를 기다린다. 가방을 찾느라 동분서주했던 그녀는 가방을 찾자 활짝 웃으며 나보다 더 뛸 듯이 기뻐한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하며 기차 시간을 가리키자 "뛰어야 한다"며 손을 흔들어준다. 이 작지만 인정 많은 도시에서가 아니었다면 가방을 다시 찾을 수 있었을까? 벳부는 온천이 많아서인지 정말 따뜻한 도시다. |
|
|
| 하카타역와 도꼬데스까 |
| 극장, 레스토랑, 쇼핑몰, 호텔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 캐널시티 하카타는 하카타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하카타와 덴진은 도심의 쇼핑거리로, 멋지게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백화점이 수두룩한 이곳을 둘러보며 후쿠오카의 밤을 즐긴 후, 하카타역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네 개의 길이 뒤섞인 로터리가 나왔다. '이거 한번 잘못 들어갔다간 오늘 노숙하겠다!' 는 생각에 두 젊은이에게 길을 물었다. |
| "하카타역와 도꼬데스까(하카타역은 어디입니까)" 내가 구사할 수 있는 3가지 문장 중의 하나인데 이것 하나면 어디든 찾아갔던 터라 또 무턱대고 물어보니, "고 스트레이트!"라며 손짓을 하다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옆 친구에게 말을 건넨다. 다시 "캔 유 스피크 잉글리시?"라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자, "렛츠 고 투게더"라며 앞으로 난 길을 손으로 가리킨다. 영어할 줄 아냐는 말에 오케이라고 하긴 했지만 ,그것이 어떻게 진정 말할 줄 안다는 뜻이겠는가? 그저 듣고 읽을 줄 아는 정도의 영어 실력인 것을. 하지만 상황은 이 친구들도 마찬가지! 어순은 일본과 한국 어순이되 단어는 영어로! 유쾌하고 즐거운 재팽글리쉬와 콩글리쉬가 오간다. 학생이냐고 묻자 수줍고 점잖은 코우는 그렇다고 하고 즐겁고 명랑한 츠바시는 바이트, 바이트, 하더니 내가 '아~아르바이트!'라고 하자 웃으며 '엔터테이너' 라고 이야기 한다. 한국에 가본 적이 있는 츠바사는 허공에 일 본과 한국의 지도를 그리더니, 후쿠오카와 내가 사는 부산의 위치를 가리키며 '프렌드 시티'란다.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니 어느덧 하카타역에 도착했다.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며 "바이바이~"하고 인사하는데 어찌나 돌아보고 싶던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린다. |
| |
|
|
| |
| 흐린 날의 아소는 또 다른 신비함을 남기고 |
| 여행길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칭찬한 곳, 아소산으로 떠나는 아침. 새벽에 비가 내린 모양이다. 땅이 축축하게 젖어있다. 규슈 중앙부의 구마모토 현과 오이타 현에 걸친 아소산은 세계 최대의 칼데라를 가진 복식화산이다. 아소산은 천리에 걸쳐 넓게 펼쳐진 초원인 쿠사센리와 세계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활화산의 분화구를 직접 구경할 수 있는 나카다케 분화구로 유명하다. 버스를 타고 올라가다 보니 밥그릇 모양의 고메즈카 분화구가 눈에 띈다. 틈 없이 푸른 초원 위에 방사된 말과 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
| 이제 막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우려했던 일이 생겼다. 비가 와서 짙게 가라앉은 유독가스 때문에 분화구까지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실망스러웠지만 쿠사센리를 거니는 것에 만족하고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바람을 맞는다. 드넓은 초원, 바닥에 바짝 누워 그 푸름을 지키는 잡초들, 멀리서 날아와 쌓인 유황, 뿌연 안개. 몽환적 신세 계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소산은 그 날씨 때문에 다섯 번 올라도 정상을 보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이제 겨우 첫 번째일 뿐이니, 언젠간 꼭 오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해본다. |
| |
| 그곳에도 사람이 사는구나! |
|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에 대해 흔히 하는 말이다.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정신적으로는 멀다'는 뜻. 어쩌면 그 말이 정답일런지도 모른다. 가토 슈이치가 쓴 '일본인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있다. 일본의 대표 지성인 중 한 명인 이 사람도 '일본이 무엇인가는 설명하기 난해하며 뭐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다양함과 전통이 묻어난다'고 했다. 그런 그들에게서 동질성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짧은 여행 속에서 친절함에 감동하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함을 느꼈다. (박현진 부산 사상구 오라면)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