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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구분
[2007년 09월호] 대륙분류 : [유럽] 국가분류 : [이탈리아] 도시분류 : [베니스]
기사제목
[ESSAY] 유럽의 낭만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도시, 베네치아 venice
| 유럽에서 보냈던 한 달여 간의 기억은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여전히 마음을 흔든다. 초보 유럽 여행자들이 그렇듯, 나의 여행도 영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점점 여행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비슷한 건축물과 박물관(물론 각각의 도시마다 모두 특색이 다르지만)에 지쳐갈 무렵, 야간열차를 타고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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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인의 포옹처럼 포근한 베네치아 |
| 3월의 베네치아는 여전히 쌀쌀했지만, 신선한 아침 공기와 따스한 햇살은 플랫폼에 방금 내린 나를 연인의 포옹처럼 포근하게 맞아주었다. 역을 벗어나자마자 눈 앞에 펼쳐졌던 베네치아의 '물' 은 물 구경을 오랫동안 모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멋스러운 건지, 보면 볼수록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진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청록빛의 물은 아주 오래돼 보이는 바닥과 다리, 그리고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미적 고상함마저 풍기고 있었다. 배가 서있는 선착장에 박힌 나무들과 떠다니는 배들, 그리고 곤돌라를 보고 있자니,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설치해 놓은 예술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속도를 내는 수상버스를 타고 리알토 다리에 내렸다. 다리 주변에는 이미 수많은 관광객들이 앞 다투어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베네치아의 매력은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아쉬운 수많은 골목길들에 있다. 좁고 복잡한 길들은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한다. 수많은 골목 중에서 멋진 공예 조각을 파는 곳도 있고, 그 유명한 '베네치아 가면'을 만들어 파는 곳도 있다. |
| 골목길을 이리저리 헤쳐 나가다가 비둘기들이 먼저 내려 앉아 기다리고 있는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했다. 3명이 똑같아 보이는 이 광장은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든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곳의 노천카페에서 진한 커피를 음미하고 있는 사람들의 여유를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들을 보고 있으니 나 또한 그들에게서 여유로움을 얻은 것만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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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도섬에서 영화의 주인공을 만나다 |
| 수상버스를 타고 매년 베니스 영화제가 열린다는 리도섬으로 향했다. 리도섬은 잘 가꿔진 깔끔한 섬이었다. 반듯하게 정리된 꽃밭과 분수를 보면서 해변으로 발길을 돌렸다. 바다를 보니 그저 그 길을 따라 걷고 싶어졌다. 다행히 사람들이 많지 않아 천천히 걸으며 바다 그 자체를 느꼈다. 잠시 쉬려고 약간 높은 곳으로 올라가 음악을 들으며 사람들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봤다. 공 하나를 가지고 뛰어 노는 세상에서 가장 신난 아이들, 벽에 기대어 따뜻한 햇살을 쐬며 신문을 반으로 지그시 접어 천천히 읽고 있는 백발이 할아버지, 그리고 수줍은 듯한 미소를 띠로 대화를 하며 행복하게 걷고 있는 연인들. 낯선 이방인의 눈에 비친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영화의 주인공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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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없는 다리와 곤돌라, 그리고 곤돌리에 |
| 시간이 흐르고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다시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목적지 없이 골목을 거니는 동안 처음에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어느 성가대의 합창도 들려왔다. 그들은 옷을 맞춰 입지도 않았고 노래 또한 어딘지 모르게 부족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다른 거리연주자들과는 달리 돈을 벌거나, 실력을 뽐내기 위한 것도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의 합창은 정말 맑고 깨끗했다. 함께 모여 서로가 좋아하고 기뻐하는 일을 한다는 행위 자체가 참 멋지고 당당해 보였다. 요란하거나 개성있거나 독특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이 노래를 들었다면 신도 아마 흐뭇해하셨을 것 같다. |
| 다시 거리를 걷다가 작은 다리를 만났다. '탄식의 다리' 처럼 유명한 다리는 아닌 듯했다. 그 다리밑에서는 한 곤돌리에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복잡한 골목의 건물들 틈으로 좁다랗게 하늘이 보이는 다리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곤돌라와 곤돌리에. 순수한 교통수단이라기엔 상업적 요소가 너무 짙긴 하지만 시커먼 매연만 토해내는 자동차 틈새에서 살다 온 여행자에게는 그마저도 신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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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마르코 광장의 비틀스 |
| 전화를 하기 위해 전화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태양이 부드럽게 비춰들던 전화 부스의 유리창에는 수백개의 지문들이 묻어있었다. 이곳이 얼마나 멋진지, 또 이곳에서 그들이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알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었을까? |
| 저물어 가는 해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도시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건물의 아래부터 반 정도는 그림자가 생겨 어두웠고, 그 위로 반은 노란 빛을 받고 있다. 갈라지고 벗겨진 벽들 위로 축 늘어진 빨랫줄에 걸린, 색 빨래들도 이젠 걷을 때가 다 된 것만 같다. 오후의 끝. 해가 저무는 속도만큼, 아쉬움도 커져만 간다. |
|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베네치아는 새로운 곳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물의 표면에 여러 모양으로 비춰진 가로등의 불빛이 운치를 더한다. 산 마르코 광장의 밤은 어떨까 싶어 빠른 걸음으로 산 마르코 광장을 다시 찾았다. 예상과 달리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낮과 비교해 그다지 특별한 점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려온 것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익숙한 곡이었다. 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느 카페에서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현악으로 연주하고 있었다. 평소 비틀즈를 좋아하기에 그 당시 내 MP3에도 그 노래가 들어있긴 했지만 같은 노래인데도 느낌은 무척 달랐다. 인자한 미소를 띠고 현을 연주하던 그들의 예스터데이는 구슬픔, 애련함, 향수, 이 모든 것을 합한 것 이상의 느낌을 만들어 냈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이 연주는 여행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해 주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걷고, 타고, 사진을 찍었으니 지칠 법도 했지만 그날 밤 나는 전혀 힘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큰 힘을 얻었다. |
| 나는 여행 전 유럽의 낭만과 여유를 꿈꿨다. 처음의 기대를 채워준 곳을 한 곳만 말해보라면 자신있게 '베네치아' 라고 대답할 수 있다. 늘 꿈꾸던 낭만과 여유를 이곳에서 가장 많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베네치아는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 유럽이었다. (박재현 대구 중구 남산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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