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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구분
[2007년 10월호] 대륙분류 : [남태평양] 국가분류 : [괌] 도시분류 : [괌]
기사제목
[ESSAY] 휴양지의 여유를 알려준 두 번째 사랑, 괌
| 괌에 처음 갔을 때는 뭔가 허전했다. 휴양지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온 동네에서 햇살이 나부끼고 온 바다에서 바람이 출렁일 줄 알았다. 하지만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너무 뒤늦게 깨달았을 때에야 비로소 괌의 매력이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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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괌이라는 곳이 나와 인연이 있을 줄은 몰랐다. 물을 좋아하지만 바다에는 들어가지 않았던 나에게는 해양 스포츠도 별로 매력이 없었고, 동남아에 비해 비싸기만 해서 굳이 갈 이유가 없었다. 평생 한번이라도 가보게 될까 싶었는데 어느덧 구면이 되었다. 당시의 나는 여행의 행복이란 고생 고생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여유로 점철된 휴양지에서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두 번째로 그 땅을 밟기 전까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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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렁크의 여유를 |
| 휴양객들 사이에서 배낭은 어색한 트렁크를 들었다. 그 전까지 나는 뚱뚱한 배낭을 메고 운동화를 신고 선크림도 없이 온 태양을 맞으며 무작정 시내 곳곳을 누리는 배낭여행족이었다. 괌에 가니 모두가 가볍기만 하더라. 그래, 왠지 사서 고생하는 듯한 모습은 버리기로 하자. 처음으로 옷차림도 가방도 가볍게 했다. 호텔마다 훌륭한 수영장이 딸려 있고, 그 앞에는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으니, 사실 호텔을 벗어날 이유도 없었다. |
| 쉬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한 휴식을 제공하는 곳. 온종일 앉아서 책을 읽고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곳. 이곳의 여유에 물들어선지 괜히 치사해지기 싫어 한 푼이라도 아끼려 애쓰지 않았다. 얇은 옷과 가벼운 신발, 작은 가방을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쇼핑버스 프리 티켓과 DFS 갤러리아 버스만 있다면 여기 저기 다니는 건 일도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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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만 있다면 살 것 천지 |
| 괌에는 정말 쇼핑몰이 많다. 레스토랑도 많지 않고, 술집도 별로 없는데 쇼핑할 곳은 천지다. 오죽하면 쇼핑 버스가 교대로 각 쇼핑몰을 연결해 주겠는가. 버스 그득그득 일본인들이다. 일본에서 관광버스를 타도 이 정도는 아닐 것 같다. 버스기사도 일어로 농담을 한다. 이 소외감은 뭐지. 여긴 일본과 멀기만 한 남태평양이 아닌가. |
| 아무튼, 괌은 정말 쇼핑하기 좋은 도시다. 홍콩이 지갑을 넣을 틈이 없는 나라라고 생각 했는데, 괌도 그 못지 않았다. 버스가 쇼핑몰 바로 앞까지 '모셔다' 주는 것도, 늦게까지 활짝 문을 열어놓고 관광객들을 대환영하는 것도, 거의 모든 물품이 언제나 세일 중인 것도 그렇다. 게다가 홍콩처럼 북적이지 않아 훨씬 여유롭다(그만큼 싸게 살 수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미국제 생필품들을 면세가로 살 수 있다는 것. 나는 온종일 M&M 초콜릿과 나쵸를 먹으며 돌아다녔다. 면세까지 해 준다는데 겨우 그런 물건이나 사다니.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아쉽긴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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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인 전용 휴양지 |
| 쇼핑을 하면서도 느꼈지만 괌에는 일본인이 정말 많다. 한국인이 바글바글한 것보다 낫지만(우리 국민이 싫어서가 아니다. 단지 여행 온 기분이 나지 않아서일 뿐) 일본인이 너무 많은 곳에 가면, 왠지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괌 사람들도 일어를 쓰고, 메뉴를 달래도 일문 메뉴를 준다. 라멘집도 많고, 구두도 보면 죄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엄청난 높이의 웨지힐이다. 일본이 괌을 통째로 샀구나. DFS도 거의 일본인 관광객들에 의해 운영된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괌 여행 상품을(한국 여행사들이 방콕 상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처럼) 초특가로 판매한단다. 그래서 '아웃리거' 같은 좋은 호텔은 일본인들이 거의 장악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 어떠랴, 괌이 좋으면 그만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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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노클링이란 이런 것 |
| 여러 휴양지를 가보았지만 스노클링 하기에는 정말 괌이 좋다. 해변에 있는 호텔에 묵는다면 바로 바다에 나가 스노클링을 하면 된다. 배를 타고 나갈 필요도 없고, 옵션 투어를 신청할 필요도 없다. 호텔에 잘만 얘기하면 장비도 무료로 대여해준다. 그냥 뛰어들어 바로 고기들과 안녕, 인사하며 신나게 놀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행복한지, 오로지 이 기쁨을 위해서라도 기꺼이 괌으로 세 번째 여행을 갈 수 있을 것 같다. |
| 고기들이 살갗을 스치는 게 처음엔 무섭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채로운 고기들을 만나기 위해 나도 모르게 핀을 찬다. 깊은 바다에 자란 산호 주위에서 몰려 다니는 앙증맞은 고기들을 잡아보려 구명 조끼를 벗고 용감하게 잠수도 해 본다. 색색의 열대어에 정신이 팔려 한참을 놓다 고개를 들면, 어느덧 내가 떠나온 해안은 저 멀리 얇은 선이 되어 있다. 허어억. 무서워 돌아가야 해 어서 어서. 영차 영차. 중천에 뜬 해가 조금씩 기울 때면 바람도 육지에서 바다로 불어온다. 역행을 불사하며 나아가지만 아무리 핀을 차도 제자리. 영영 떠내려갈 것만 같은 공포심이 가득해 지는 순간이다. 망망대해 주위에 아무도 없어 이대로 꼬르륵 바다에 잠겨도 누구 하나 도와줄 리 없다. 잠시 멍하니 둥둥 떠 있다가 하늘 한번 보고 다시 다리에 힘을 준다. 한류와 난류를 몇 번인가 스치고, 다리가 마비될 거 같은 순간이 오면 어느 순간 귓가에서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아. 드디어 떠나온 곳으로, 안전한 곳으로 무사히 안착. 멀리 가면 안 되겠구나. 다시금 낮은 곳에서 얌전히 입수한다. 이 모든 스릴과 자유가 스노클링의 매력이다. 물론, 여전히 조심은 해야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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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면에게 주는 선물 |
| 괌에서의 휴가가 끝날 무렵, 스콜을 몇 번 마주치고 나니 이 땅이 더 정겨워진다. 태풍이 심해 건물이 쓰러져도 다시 일으키지 않는다고 하는데(가이드 말이라 다 믿진 못하겠지만), 처음엔 다소 당황스럽지만 이내 익숙해진다. 급작스레 내리치는 소나기나, 무섭게 돌아치는 센 바람도 그저 괌의 특산물처럼 느껴진다. 그런 것들에 익숙해질수록 더 괌을 떠나고 싶지 않다. 이곳 이민자들이 부러워질 정도로. 하지만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다. 짐을 정리하고 내가 가든 말든 여전히 푸르른 바다를 내려다보며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한다. 티켓을 챙기고 레스토랑으로 내려가 조식을 먹고 있는데 창밖이 환하다. 통유리 밖으로 무지개가 떴다. 두 번째로 자신을 찾은 사람에게 주는 작은 선물일까. 조만간 세 번째 만남이 이루어질 것 같은 좋은 기대감을 안고 무지개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김재경 서울 용산구 한남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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