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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구분
[2007년 12월호] 대륙분류 : [유럽] 국가분류 : [크로아티아] 도시분류 : [두브로브니크]
기사제목
[ESSAY] 두브로브니크에서 보낸 하루
| 잘 나가던 외국계 담배 회사를 덜컹 그만두고 대학교 때나 떠난다는 30일 싱글 배낭여행을 떠났다. 대학 3학년 때 3명의 단짝 친구들과 함께 떠났던 괌으로의 첫 해외여행 이후 11년간 18개국, 53개 도시를 여행했지만 이번 배낭여행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에서 머물렀던 2007년 8월 30일, 그 하루의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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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그네스를 만나다 |
|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들겼다. "저는 아그네스라고 해요. 제시카라고 불러도 되고요. 혹시 설탕 있어요?"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내 방으로 들어왔다. "어쩌죠? 없는데……." "살 수 없죠. 주인 아주머니한테 여쭤 봐야겠네요. 그럼." 그녀는 나와 같은 2층 집에 머무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일행은 모두 셋. 그들은 폴란드 인이고 휴가차 이곳에 와싸고 했다. "테라스에서 커피나 차 같이 드실래요?" 그녀의 친절한 권유에 이끌려 난 먹던 아침(아침이라 해봤자 어제 산 4쿠나 짜리 빵 한 조각과 할슈타트에서 가져온 딸기잼 그리고 커피 한잔에 바나나가 전부였다)을 잠시 제쳐두고 테라스로 나갔다. 테라스는 포도 넝쿨이 만든 그림자로 꽤 시원했다. |
| "저는 아까 얘기했듯이 아그네스고요. 이쪽이 제 남편 데릭. 이쪽은 어머니 리디아 그리고 이쪽은 아버님 앤드류예요. 남편은 회계사인데, 한국 회사 회계도 봐주고 있어요. 앤드류는 LG에 다니고요." 우연찮게도 데릭과 앤드류는 한국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왠지 그 사실이 필연처럼 느껴졌다. "저는 일본회사에 다녔는데, 지금은 그만뒀어요. 데릭!영어 좀 해 봐요? 꼭 저런다니까 연습을 해야느는데, 다 알아 들으면서도 말은 안 해요. 참나." 그녀는 결혼한지 2개월 됐고, 임신 5개월째라고 했다. |
| "데릭을 이곳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났어요." 그녀는 그녀의 영화 같은 로맨스를 얘기 해 주기 시작했다. 영화 '비포 선 라이즈(Before Sunrise)'의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라디아가 이곳 근교 출신이에요. 체친이라고. 그래서 크로아티아에는 여러 번 왔어요." 앤드류가 부엌에서 커피를 준비하고 있다. 내가 그를 빤히 쳐다보자 "폴란드에선 다 그래요. 남자들이 부엌일을 하죠, 뭐랄까. 남자들이 좀 더 미(味)적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녀는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조금 후에 올드타운에 갈 거예요. 아침시장이 열리는데, 가서 과일이나 좀 사려고요. 같이 가요." 그렇게 시원한 포도 넝쿨 아래서 모닝커피를 들이켜고 우리 다섯은 올드타운으로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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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기 넘치는 군드리바 아침 시장 |
| 군드리바 광장의 아침시장은 벌써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시장이라고 해 봤자, 작은 광장 한 쪽에 과일이며 야채를 놓고 파는 것이 전부였지만 벌들이 꼬이는 것을 보니 당도가 높은 게 분명해 보였다. 청포도는 1킬로그램에 30쿠나. "청포도 한 송이랑 천도복숭아 2개만 주세요." 나는 싱싱해 보이는 포도 한 송이와 복숭아를 골랐다. "30쿠나 되겠소." 과일가게 주인 할아버지가 말했다. "아그네스. 자 여기 복숭아요. 이거 아기 거예요." 난 빨간 복숭아 하나를 그녀에게 건넸다. "어머……. 고마워요." 그녀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
| "선미. 이거 먹어 본 적 있어요?" 그녀는 연둣빛이 도는 작은 과일 하나를 집어 들고 나에게 물었다. "폴란드 어로는 '피갸'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뭔지 모르겠네." 피갸는 사과처름 푸른 연두색이거나 포도처럼 진한 보라색인 것, 두 가지 종류가 있는 듯 했다. "원래는 껍질 채 먹는 건데, 안 씻었으니까 안쪽 것만 먹어봐요." 그녀가 건넨 피갸를 받아 들고 손톱으로 반을 가리니, 딸이 씨만큼 작은 씨들과 섬유질이 촘촘히 차 있었다. 과연 이 과일은 무엇이었을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피갸는 말리지 않은 무화과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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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드리안 해에 몸을 담그다 |
| "여기엔 해변이 몇 곳 있거든요. 오늘은 위쪽 해변에 가 보려고요." 우리가 도착한 해변은 절벽 밑 모난 바위들과 거센 파도들이 성난 듯 거칠 게 오고 가는, 보기에도 수심이 꽤 깊어 보이는 곳이었다. "아그네스? 여기서 수영 할 수 있겠어요?" "아니요. 파도가 너무 세요." 결국 리디아와 데릭이 먼저 물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얼마 후 물에서 나온 리디아는 수심이 2미터는 족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되겠어. 좀더 안전한 해변으로 가죠." |
| 그렇게 가게 된 2번째 해변은 숙소 바로 앞의 조약돌 해변이었다. 둘레는 20미터 남짓. 절벽 사이여서 그런지 파도는 거세게 밀려왔지만 앉아서 햇볕을 즐기기에 딱 좋을 듯 했다. 아그네스와 나는 해변에 앉아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담갔다. 어찌나 파도가 강하던지 그대로 밀려 나갈 것만 같았지만, 바닷물은 아주 시원했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소리도 좋았다. "우리 더 잔잔한 해변으로 가볼래요. 괜찮죠? 올드타운 안 플로체 문을 지나면 해변이 또 하나 있거든요." 다들 짐 챙기며 움직일 준비를 했지만, 나는 성벽 투어를 할 요량이었기에 아그네스에게 그만 돌아가야겠다고 말했다. "왜요? 같이 가요." 아그네스는 아쉬운 듯 말했다. "성벽투어를 하면 2~3시간 정도 걸리니까 지금 가야 할 것 같아요." "그래요? 그럼 아쉽지만 그렇게 해요. 이따 집에서 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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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킬로미터의 성벽 위를 걷다 |
| "저 국제 학생증은 없는데, 한국 학생증 있거든요. 괜찮나요?" 성 앞에서 나는 망설임 없이 한국 학생증을 내밀었다. "20쿠나입니다." 그는 학생증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학생요금을 내라고 했다. 사실 이곳도 그렇고 프라하도 그렇고 학생증 검사를 그다지 철저히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동양인들이 어려 보여서 인지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건지, 대충 눈 감아 주는 듯 했다. 30쿠나를 절약한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성벽으로 이어져 있는 계단을 올랐다. 햇볕이 강하기 때문에 오전 일찍 성벽에 오르는 것이 좋다고 충고를 들었지만, 오전을 시장과 해변에서 보냈으니 어쩔 수 없이 오후에 투어를 해야 했다. 성벽에 오른 시간은 오후 5시쯤. 햇살은 약해지고 시원한 바닷 바람이 불어드는 게, 성벽 위를 걷기에 가장 좋은 시간인 듯 했다. 성벽 아래 드넓은 아드리안 해와 그너머로 펼쳐진 폭격의 잔해들을 보느라 2시간 여를 걷는 동안 전혀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성 아구스틴 교회 뒤 절벽에서 다이빙을 한다고 했는데," 잠시 후, 우렁찬 박수 소리와 함께 환호성이 들려왔다. "첨벙." 한 여자가 바다로 몸을 던졌다. 절벽은 위에서 봐도 족히 2~30미터는 되는 듯 했고, 바다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어 보였다. "세상에 진짜 저걸 하는 사람이 있다니." 성벽을 걷던 사람들은 모두 멈춰 서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절벽에서 뛰어 내렸던 그 여성이 올라오자 절벽 옆, 최상의 뷰를 자랑한다던 그 바 안의 사람들은 격려의 박수를 쉼 없이 보내 주었다. 성벽 둘레를 한 바퀴 돌고나니 벌써 2시간이 지나 있었다. 성벽을 내려 온 시간은 7시. 상점들은 벌써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두브로브니크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벌써부터 내일이 기다려진다. (김선미 서울 강동구 천호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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