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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구분
[2008년 01월호] 대륙분류 : [유럽] 국가분류 : [포르투갈] 도시분류 : [리스본]
| 2007년. 그때까지 해오던 영화 일을 그만두고, 드디어 리스본에 첫 발을 디뎠다. 스페인에서 리스본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마드리드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잠이 들었다가 뜨거운 태양에 몸을 일으켜 리스본에서의 첫 아침을 맞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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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
|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리스본 스토리'를 본 이후, 나는 내내 리스본에 대한 열망을 품고 살았다. '리스본 스토리'는 잘 알려진 항구도시이자 독특한 문화와 유적을 자랑하는 도시 리스본의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나는 어딘가 다른 장소로 여행을 떠나 전혀 새로운 풍경이나 지평선을 발견하고 싶은 욕망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말했던 빔벤더스 감독. 그의 마음을 뒤흔든 리스본에서 나 또한 그 가슴 벅찬 순간들을 느끼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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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투갈의 소박한 일상이 숨쉬는 곳, 알파마 |
| 리스본은 생기 넘치는 자유로움과 일상의 낭만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그 중에서도 번영했던 시절의 구시가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리스본 동부지역의 알파마(Alfama) 지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
| 먼저 트램 1일 티켓(3.85유로)을 구입해 '리스본 스토리' 에서처럼 로드무비의 주인공이 되어 보기로 했다. 언덕이 많기 때문에 트램을 타고 가다가, 마음에 드는 동네가 보이면 내려서 걸었다. 지도는 딱히 필요 없었다. 처음에는 미로 같은 골목에서 길을 잃었지만, 그 속에서 스스로 랜드 마크를 찾아냈으니까. 바다가 보이는 골목길을 찾으면 되었다.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알파마는 어디나 대서 양과 맞닿아 있었다. |
| "밝은 대낮엔 소리까지도 반짝인다." 라는 '리스본 스토리'의 극 중 대사처럼, 종을 울리는 트램은 도시에 정겨운 활기를 가득 안겨준다. 덜컹거리는 트램을 타고 미로 같은 17세기 골목길 곳곳에 숨어있던 다양한 삶의 풍경들과 마주했다. 트램이 좁은 동네 안으로 서서히 진입할 땐 여행객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머리 위로 태양이 쏟아져 내렸다. 그 밝음이 잘 게 부서져 도시는 사금파리를 뿌린 듯 구석구석 반짝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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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파마에서는 길을 잃어도 좋다. 길을 잃으면 더 좋다 |
| 동네 아낙네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빨래를 널고 있는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도 느낄 수 있었다. 골목 한복판에 오래된 야자수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신기한 풍경도 볼 수 있었고, 한가하게 신문을 보는 할아버지와 낮잠을 자고 있는 개가 만들어낸 평온한 공기가 스쳐가기도 했다. 골목 곳곳에 리스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정겹고 훈훈한 공간들이 있었다. 언덕을 올라가면서 어지럽게 얽힌 좁은 중세의 골목, 그리고 수많은 갈림길들과 부딪혔다.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어디로 이어질지 전혀 알 수 없는 길위를 걷다 보니 골목을 '탐험'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휘고, 꺾이고, 갈라지는 골목 틈으로 보이는 풍경들. 그 좁은 골목을 누비며 리스본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
| 알파마에서는 유난히 파스텔 색조의 주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빛바랜 파스텔톤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 음식을 만드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여행 동안 쌓였던 피로와 외로움이 어느새 말끔히 사라졌다. 리스본의 국민가요인 파두(Fado:운명)의 선율을 들을 수 있는 가게들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한 번은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라이브 파두 연주를 듣는 행운도 맛보았다. 파두에 매료되어 파두 박물관에 갔을 때는 3시간 가량을 머물렀다. 박물관 안에 있는 레코드 숍에 수백 종의 파두 음반을 들어볼 수 있는 레코딩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가사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삶의 기쁨과 슬픔이 함께 어우러진 선율은 자꾸만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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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르투갈 사람들의 인정을 맛보다 |
|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매주 화요일 열린다는 '페이라다 란드라(Feira da landra)' 벼룩시장을 찾아갔다. 28번 트램을 타고 운전기사 아저씨께 벼룩시장이 열리는 곳이 어딘지 여쭤보니, "장이 서는 날은 동네잔치일이나 다름없다." 며 들뜬 목소리로 내릴 곳을 알려주셨다. 벼룩시장은 알파마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정 많고 소박한 그들은 주로 집에서 쓰던 물건들을 가져와 팔고 있었는데, 사실 물건을 파는 것보다는 물건을 사이에 두고 담소를 나누길 더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나와서 물건을 사고팔거나 구경하는 모습은 일상 속의 작은 축제 같았다. |
| 그곳에서 나는 1유로짜리 인형과 도장 보관함을 샀다. 타일에 그림을 그린 '아줄레주'가 눈에 띄었는데, 한 눈에 봐도 오랜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3시간 동안 벼룩시장을 구경했더니 배가 고파져 그릴에 구운 송어인 '링구아두 그렐랴듀(Linguado Grelhado)'를 사먹었다. '오늘의 정식'이라는 '프라투 두 디아(Prato do Dia)'는 송어, 샐러드, 커피, 아이스티까지 나오는 준코스요리였는데, 가격은 6유로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유럽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저렴하면서도 푸짐한 식사와 넉넉한 인심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허기를 잊게 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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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파마, 그 곳에서 잊고 있었던 향기로운 추억들과 마주치다 |
| 비탈길을 오르다 보니, 어느 새 알파마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고성인 성 조르제 성(Castelo Sao Jorge, 로마시대 5세기경에 만들어진 성)에 다다랐다. 성에서 내려다보는 대서양의 리스본 시내의 모습은 시간이 멈추어진 듯 고요하고 평온했다. 시가지와 테주 강을 바라보니 외로움도, 그리움도, 사사로운 욕심도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
| 포르투갈의 리스본, 그 중에서도 알파마 지구는 유럽의 다른 도시들에서 두드러지는 세련미와 우아함, 웅장함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현지인들과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곳이었다. |
| 리스본의 알파마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단순한 여행이 아닌, '일상의 탐험' 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이미지에 압도되지도, 이미지를 압도하지도 않는 영화 '리스본 스토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영상을 마음으로 필름에 담아!"라며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충고했던 주인공의 이야기가 나에게도 전해져 왔다. 바쁘게 사느라 잊고 있던 이야기와 추억이 파란 하늘의 뭉게구름처럼 떠올랐다. 리스본의 일상은 특별했다. 그리고 미지의 세계를 갈망했던 포르투칼 사람들처럼, 대서양이 시작되는 이곳에서 나는 다시 꺠어났다. (허나영 서울 마포구 상수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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