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새로운 발견 - 뚜르드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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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9월호] 대륙분류 : [아시아] 국가분류 : [대한민국] 도시분류 :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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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IELD] 밥상위에 펼쳐지는 전통의 맛

아무리 배가 고파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 음식이 있다. 반대로 단추가 터져나갈 정도로 배불리 먹었어도 젓가락을 놓기가 아쉬운 음식도 있다. 밥 한 그릇을 싹싹 긁고도 바쁜 손놀림을 멈출 수 없는 전통 한정식은 특히 그렇다. 수십 가지의 반찬으로 가득 채워진 상차림을 보고 있으면 푸짐한 우리네 인심을 대변하는 것 같아 마음까지 뿌듯해진다.

주의! 상다리가 휘어질 수도 있음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놓았을 뿐." 이라는 시상식 소감도 유행했던 것처럼 잘 먹고 잘 사는 일에 관심이 많다. 잘 먹는 것으로 말하자면 역시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잘 차려진 밥상이다.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수십 가지의 요리와 반찬이 올려진 압도적인 상차림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끝내는 밥 한 공기를 깨끗이 비우고도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기가 너무나 아쉬워 젓가락을 놓지 못하는 것이 한정식의 매력이기도 하다.

경주에 가면 수많은 한정식 집을 만날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곳이 고즈넉한 한옥에서 즐기는 궁중식 한정식을 맛볼 수 있는 요석궁이다. 문만 활짝 열어 두어도 자연 바람이 시원하게 밀려드는 한옥에 30여 가지의 요리가 푸짐하게 차려진 밥상이 올라온다. 그리고 신선로, 전복조림, 수삼 떡갈비, 구절판 같은 궁중식 요리들이 차례대로 올려진다. 원래는 걸어두고 쳐다보기만 하는 자린고비의 굴비도 상 위로 내려왔다.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으니 "우리 집의 진짜 비결은 장에 있습니다." 라며 경주 사람 특유의 애교 섞인 말투가 들려온다.

쇠고기를 잘 게 갈아 고추장에 볶은 육장, 다시마와 부추 등 여러 가지 해조류와 채소, 고기를 메주가루 등과 함께 솥에서 16시간 이상 달인 집장, 멸치를 8시간 이상 달여 만드는 멸장 등 상차림에 장류만 몇가지가 나온다. 그 맛이 짜지 않으면서도 깊어 자꾸만 장에 손이 간다. "장만 있어도 밥 한 그릇 다 먹겠다." 며 감탄을 하던 중에도 젓가락은 장을 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맛있는 장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니 음식이 맛없을 턱이 없다. 경상도 상차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젓갈 역시 짜지 않으면서고 정갈하다. 직접 만든 육포와 삼색 보푸라기, 밥 식혜 등도 빠뜨릴 수 없는 밑반찬이다. 여기에 개운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사인지는 최 부잣집에서만 담가 먹던 전통음식이다. 사인지는 배추 백김치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소금과 새우젓을 쓰는 대신, 직접 담근 멸치액젓과 생조기를 넣고 배추를 절인 뒤 새우 끓인 물로 담근다. 분홍빛이 선명해질 때쯤 실고추로 태깔과 맛을 조절한다. 대부분의 요석궁 음식이 그렇듯 맛이 완성되기까지 10여 차례 체크를 해야 한다.

요석궁의 손맛은 조선 숙종 때 궁중에서 음식을 관장하던 관직에 있던 최국선이라는 사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맛과 손맛이 경주 최씨의 딸과 며느리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맛의 기본이 되는 장류와 사인지 등 최 부잣집 전통의 밑반찬은 안채에서 만들어져 나오고 있다.

며느리도 모르는 최 부자네 비법

400년 12대에 걸쳐 명망이 이어져 내려오는 경주 최 부잣집은 경주 교동 일대에 자리한 한옥 마을에 있다. 요석공주가 살던 궁터에 조선시대 말엽 경주 최씨 일가가 터를 잡은 곳으로 최부잣집을 찾았던 손님들에 의해 이 집 전통 가정식이 알려지게 되었고, 오늘날 요석궁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미 관광객들에게도 '최씨 고택' 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200년이 넘은 고택은 일제시대에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다. 의병대장 신돌석 장군이 은둔했다던 사랑채는 수많은 우국지사의 사랑이었다. 의친왕 이강과 영친왕 이은 등이 들러 음식과 바둑을 즐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둘째, 재산은 만석 이상 지니지 마라.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넷째,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

다섯째, 며느리들은 시집 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째,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는 길목, 이곳에 가면 후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선비들이 가득했다고 한다. 최씨네 가훈은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다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얼마나 철저하게 실천했는지 알 수 있다. 지금까지도 경주 최 부자네가 존경 받는 이유를 짐작할만하다.

200년이 넘은 한옥을 벽면, 천장, 바닥까지 전통 방식 그대로의 7겹 한지로 도배해 전통 한옥의 고풍과 단아함을 살렸다. 고즈넉한 한옥 마루에 앉아 있다 보니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 소리가 바람과 함께 귀를 간지럽힌다.

고대문화와 현대 미술의 만남

경주는 분명 역사와 문화의 도시다. 시내 곳곳에 산재한 문화재들만 보면 천 년 전쯤에 시간이 멈춘 것 같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의 기억이 머릿속 깊은 곳에 각인된 탓인지 경주는 역사 유적이 있는 오래된 도시일 것만 같다. 옛 추억을 되살리고 싶은 마음에 옛 모습만 생각하고 경주를 찾았다면 역사와 문화 유산에 더해진 현대 문화에 눈이 휘둥 그레질지도 모르겠다.

보문단지 내에 있는 아트선재미술관은 경주에서 고대와 현대 문화를 조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국내외 중견 작가와 신인작가들의 회화, 조각, 설치 등의 작품을 폭넓게 소장하고 전시하는 이곳은 현대 미술을 감상하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미술관 내부로 들어서기 전에 호숫가의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알렉산더 리버만, 안토니 카로, 장 피에르 레이노와 같은 세계적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조각공원에서 마음의 여유를 되찾았다면 이제 아트선재의 미술을 만나러 갈 차례다. 현대미술 흐름을 개괄하는 회화, 사진, 조각, 비디오 작품들로 전시가 되어 있으며, 상설 전시와 함께 기획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데이빗 살르, 안젤름 키퍼, 요르그 임멘도르프, 니키드 생팔, 페르난도 보테로, 백남준 같은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서세옥, 이우환, 남관, 이세득 등의 한국을 대표하는 모더니즘 작가들의 작품도 있다. 이외에도 권여현, 최만린, 조덕현 등 국내외 무대에 활발하게 소개되고 있는 중견 작가들의 실험성 짙은 최신작까지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경주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학창시절 수학여행으로 한 번쯤은 가본곳이다. 그림에도 경주를 많이 찾는다는 것은 다시 한번 가고 싶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고대 유적과 현대 문화가 함께하는 경주의 또 다른 매력을 찾아 떠나보자.

Info 요석궁

전화_054-772-3347 www.yosukgung.com

주소_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59

영업시간_오전 11시~오후 9시(사전예약필수)

가격_요석정식 10만원, 포석정식 7만원, 안압정식 5만원, 계림정식 3만원

찾아가는길_경부고속도로에서 경주IC로 나와 직진 후 꽃마을 한방병원 방향으로 좌회전, 문천교 앞에서 우회전직진 후 교촌교를 건너 우회전하면 요석궁 간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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