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건축물과 푸른 숲의 조화, 툴루즈에 가다 Toulouse

2008년 7월 8일, ‘2008 영국 판보로 에어쇼(2008 Farnborough International Airshow)'를 보기위해 거금을 들여 유럽까지 날아갔던 나는 파리에서의 일정을 마친 뒤 툴루즈(Toulouse)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가 툴루즈를 찾은 이유는 단 한 가지, 유럽최대의 항공우주회사인 에어버스 사(Airbus Industry)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툴루즈는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유럽 전체의 항공우주산업을 이끌고 있는 걸까?

툴루즈라는 도시

툴루즈는 어떤 도시일까? 한국에서는 툴루즈에 대한 자료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몇 권의 책과 인터넷 자료를 찾아본 결과 툴루즈가 인구 40만이 넘는, 프랑스에서 파리, 마르세유, 리옹에 이은 네 번째로 큰 도시라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BC106년 로마군이 이곳에 들어와 톨로사(Tolosa)라고 명명하고 요새화 했다는 사실도. 툴루즈라는 지명은 이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지중해와, 스페인, 대서양 문화권에 속한 툴루즈는 과거 꽤 부흥했던 도시였다. 6세기경에는 서고트 족의 수도였으며, 이후 클로비스가 점령해 아키텐 왕국의 수도로서 에스파냐의 이슬람 군에 대항하기도 했다. 852년에는 레몽 1세가 툴루즈의 백작이 되었고, 이후 400년 동안 백작령이 유지되었다. 하지만 13세기 무렵, 종교 재판소 설립과 함께 도미니크수도회가 자리를 잡고 이단과의 투쟁을 벌이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점차 상실하게 된다. 결국 백작령은 알비즈와 십자군의 토벌로 쇠퇴하고, 1271년 카페 왕조에 병합되면서 완전히 프랑스 왕령아래 놓이게 된다
 한동안 농업이 주를 이루었지만, 피레네산맥 계곡의 수력발전과 인근의 천연가스를 발판으로 삼아 제1차 세계대전 인근의 천연가슬ㄹ 발판으로 삼아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공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프랑스가 남부로 항공시설을 이동시킨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7년부터로, 툴루즈가 본격적인 항공 도시로서 도약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후반부터다. 70년대 들어 파리 인근의 민간항공교육원, 국립 우주 연구소(CNES)등이 이곳으로 이전했고, 80년대에는 에어 엥테르(Air Inter, 프랑스 항공회사) 본사, 국립 기상청도 이곳으로 이주했다. 뿐만 아니라 아에로스빠시알(Aerospatial), 에어버스사(Airbus In dustry), CNES-Espace(아리안 로켓, 우주정거장 분야)등이 툴루즈에 들어서면서 툴 루즈는 유럽 최대 항공우주산업의 메카로 변모했다. 더불어 탈레스사, 알카텔 에스파스사, 마트라 에스파스사, ATE-GIAT 등 항공, 군사, 전자업체들이 대거 입구하면서 툴루즈는 첨단 산업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된다. 또한 3개의 종합 대학이 있어 다음으로 많은 대학생과 연구원을 양성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렇게 첨단 산업을 이끄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그 중심에는 붉은색 벽돌을 사용한 오래된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반면 석재 건축물은 거의 볼 수 없는데, 이는 툴루즈 인근에 채석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툴루주는 여타 도시와는 전혀 다른 화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흔히 붉은색과 녹색은 보색으로 알고있지만, 이곳의 붉은빛 건축물들은 짙푸른 숲과 조화를 이루며 툴루주만의 독특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어디로 갈까?

사실 툴루즈에서는 에어버스 사의 본사, 또는 공장을 견학하려했지만 아쉽게도 그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에어버스 본사가 승인한 일정수준 이상의 단체 관람객, 또는 언론 매체 관계자들만이 견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된 것이다! 안타깝지만 에어버스사 견학의 꿈을 접고 툴루즈 시내관광을 나섰다.
 툴루즈는 대서양쪽으로 흘러드는 가론(Gronne)강을 끼고 발전했다. 가론강은 툴루즈 중심지를 통과하며 도시를 동과 서로 양분한다. 서쪽에는 주로 주택이 자리한 반면, 동쪽에는 성당이나 박물관, 기차역, 숙박시설이 밀집해 있어 관광은 주로 동쪽에서 이뤄진다.
 툴루즈는 파리나 로마처럼 볼거리가 많은 지역은 아니다. 오히려 전원의 한적함을 체험하기에 더 적합하다. 때문에 툴루즈에 간다면 먼저 가론강 유역을 따라 산책해볼 것을 추천한다. 붉은 벽돌담을 따라 걷다보면 퐁 네프 다리가 나오는데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을 하면 상당히 분위기 있는 사진이 나온다. 석양이 질때 쯤엔 붉게 물든 석양과 붉은 벽돌이 조화를 이루어 장관을 연출한다.
 퐁 네프 다리에서 에스키롤 광장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꺾어 생 롬 가를 따라 계속 걷다보면 카피톨광장이 나온다. 여기서 카피톨은 시청을 의미하는데, 툴루즈 시청사 앞에는 커다란 광장이 들어서 있어 인근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휴식처로 애용되고 있다. 18세기 공공건물 건축의 모델이 된 청사는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장식된 건물로, 전면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건물 이름인 카피톨은 로마의 일곱 언덕 중 하나인 카피톨리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카피톨 광장 주변에는 노천카페가 다수 들어서 있는데, 이곳에서 와인 한 잔 함께 여유를 만끽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곳에는 툴루즈 최고의 호텔인 오페라 호텔(Grand Hotel de 1' Opera)이 있다. 주머니 사정이 좋은 여행객이라면 이 호텔에 머물러보는 것도 괜찮고, 이곳의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식사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카피톨 광장 시청사의 야경 또한 가론강의 야경 못지 않은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곳이다. 가론강의 야경을 본 뒤에는 밤하늘 아래 수많은 조명에 노출된 카피톨 광장 시청사의 멋진 모습을 구경해 볼 것을 권한다.
 툴루즈에도 수많은 박물관과 성당이 있지만, 내가 추천하는 곳은 오귀스탱 박물관(Musee des Augustins)과 자코뱅 수도회 성당(Les Jacobine)이다. 옛 수도원 자리에 들어선 오귀스탱 박물관 내에는 로마네스크 성당을 장식했던 장식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툴루즈의 건축물들과 달리 이곳은 피레네 산맥에서 나온 회색 대리석으로 제작되었다. 자코뱅은 도미니크 수도회의 설교사 모임을 지칭하는데, 1215년 성 도미니크에 의해 세워져 이단 카타리 파를 몰아내는데 공헌했다. 자코뱅 수도회 성당은 남프랑스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건물로, 이 성당의 제단 아래에는 신학 대전을 써서 창조론에 기인한 인간의 자유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접목시킨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물들이 남아있다.
 아침에 가벼운 운동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툴루즈 운하 근처에서 조깅을 해보는 것도 괜찮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자들이라면 툴루즈 지하철을 타고 시내 외곽외 우주도시(La Cite de 1' Espace)로 가보자. 어린이들에게 인간이 어떻게 우주에서 살아가는지 보여줄뿐 아니라 실제 크기의 아리안 로켓 모형이 전시되어있어 어른들에게도 좋은 볼거리가 될 것이다.

녹색과 적색이 어우러진 도시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누군가가 나에게 ‘어느 도시가 가장 아름답고 깊은 인상을 남겼느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프랑스 툴루즈라고 대답할 것이다. 툴루즈는 대도시를 선호하는 사람보다는 건축, 항공우주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 북적대는 도시를 여행하다가 한번쯤은 휴식을 취하며 주변 경관이 잘 어우러진 도시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픈 관광객들, 여행 책자에 소개되지 않은 이색적인 여행지를 찾는 이들에게 권할만한 도시다. 시원한 녹색과 타오르는 붉은색이 조화를 이루는 툴루즈. 이 낯선 도시로의 여행은 나에게 깊은 추억과 그리움을 남겼다. (이영재 서울 송파구 오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