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푸른 언덕을 노래하다 Singing in the Cheongsong

말 그대로 굽이굽이다. 산비탈을 굽이 돌아 오르는 길 옆으로 푸른 솔가지가 높이 뻗어 있다. 산등성이 사이로는 저 멀리에 또 다른 산 능선이 농염의 차이만 있을 뿐 첩첩이 겹쳐 있다. 소나무 푸른 청송에도 어느덧 가을은 오고 있었다.

청송은 정말 멀다. 고속도로가 잘 정비된 우리나라에서도 여행하기 어려운 지역이 있기 마련인데 청송도 그 중 꽤나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그나마 안동까지 고속도로가 놓인 후부터는 거리가 가까워진 편이라 청송으로 가는 시간 동안은 왠지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가벼워진 마음만큼이나 한달음에 자연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청송의 푸른 자연을 생각하면 약간은 험한 길이 좋은 환경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한다. 청송에 내리자마자 서울과는 사뭇 다른 맑은 공기에 가슴이 탁 트임을 느꼈으니 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첩첩이 둘러싸인 산 속에 자리잡은 청송은 그만의 매력을 꼭꼭 숨겨두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선 길이 좋지 않았기에 외부와의 왕래가 적었던 것이다. 청송 제일의 매력이라고 한다면 역시 꾸미지 않은 순수의 자연이다. 맑은 공기가 머릿속까지 맑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사방 어느 곳을 봐도 푸른 소나무와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나무가 보인다.
단풍 명소로도 잘 알려진 주왕산이 바로 청송의 상징이다. 택리지(擇里志)에 주왕산을 일러 ‘모두 돌로써 골짜기 동네를 이루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는 산’이라고 했다는데, 첫눈에 산봉우리인 깃발바위(旗岩)가 띈다. 용암이 서서히 흘러 넘쳐 거대한 바윗돌이 되어버린 거대한 기암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주왕산은 기품 있으면서도 따듯한 느낌이 든다. 올해는 단풍이 조금 늦은 탓에 이곳을 찾았을 때 제대로 붉힌 단풍을 찾아보기는 힘들었지만 거대한 바위들이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었다. 산길을 따라 오르는 동안에는 사철 푸른 소나무가 내뿜는 산소와 스트레스 해소 및 살균 작용을 한다는 피톤치드가 몸과 마음을 맑게 정화시켜주어 삼림욕의 효과를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속살 깊은 곳까지 내비치는 계곡물은 굳이 발을 담가보지 않아도 얼음장처럼 차갑게 느껴진다. 지나치게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더니 간간이 버들치 정도만 눈에 보일 뿐이다. 물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경쾌한 폭포 소리를 만나게 되는데 그곳이 제 1폭포다. 폭포주위에는 암벽이 둘러싸고 있어 고요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힘찬 물줄기가 기운을 북돋운다.
주왕산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주산지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더욱 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이끌고 있는 주산지는 약 300년 정도 된 저수지다. 주산지에 대한 환상이 가득할 줄 알지만 실제 영화나 각종 사진에서 본 주산지의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우선 영화 세트는 물이 빠져나간 뒤에 기울어져 붕괴 위험 때문에 철거했다. 이곳이 농업용 수리 시설인 것을 감안하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변수였음에도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까지도 저수지 물을 농업 용수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6월부터 9월까지는 수량이 매우 적다. 그나마 약 300년의 세월 동안 단 한번도 물이 마른 적이 없었던 것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과 저수지 아래서 솟는 약간의 물이 수량의 ‘마지노선’을 지켜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상과는 다른 모습으로 접했던 주산지는 환상 대신 투명한 자연을 선물했다. 희귀 동식물에게 최고의 안식처인 이곳에는 생명력이 강한 왕버들이 물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  하늘을 바라보고 뻗은 가지 덕에 기상이 높은 나무로 소문난 왕버들은 강인한 생명력과 높은 기상으로 버드나무에 ‘왕(王)’자를 얻었다. 본래 가지가 연하지만 죽으면 단단해지는 성질이 있어 죽은 나무 기둥이 단단하게 버팀목 역할을 하고 수많은 잔뿌리가 물 속에 내려 영양분을 빨아올린다. 그 아래는 30여 종의 토종 물고기와 거북이 등이 노닐고, 희귀 새들은 가지 위에 둥지를 튼다. 환경 지킴이 해설사 입에서는 날다람쥐, 뜸부기, 원앙부터 까막 딱따구리, 물총새, 솔부엉이까지 동물도감에나 나올법한 희귀새들의 이름이 줄줄 흘러 나온다. 왕버들이 주산지 최고의 아파트인 셈이다. 가을 단풍이 들면 용이 승천한다는 주왕산 별바위가 왼편에서 내려다보고, 파란 하늘과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어 자연이 만들어낸 한 폭의 수채화를 완성시킨다.

잠시 쉬었다 가세요
낙동강 상류 절벽 위에 놓인 방호정은 아름다운 산수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이준(李埈)·조형도(趙亨道)·권익(權翊)·신집(申輯) 등의 학자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했다고 전하는데, 강론을 핑계로 산수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시를 짓고 놀던 건 아닌가 추측해본다. 경치가 아름다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방호정에서 나오는 길에는 흰 바위 사이로 계곡물이 내려오는 백석탄(白石灘)을 만날 수 있는데 햇빛을 받으면 더욱 하얗게 빛나는 돌이 마치 설산 같기도 하고 석림 같기도 하다. 왜 이곳에는 백석이 모여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반짝반짝 눈부시게 빛난다. 혹자는 푸른 산 위로 보이는 맑은 하늘 아래 기암이 둘러싸고 있고, 설산처럼 빛나는 백석 사이로 계곡이 흘러내리니 마치 알프스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청송 사람들은 백석탄이 주왕산 가까운 곳에 있었더라면, 주왕산이 금강산 다음가는 명승지가 되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한다고 하니 그 경치를 짐작할만하다.

화선지 위에 내려 앉은 청송, 야송 미술관 
청송에 뛰어난 자연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평생을 산수화에 바친 야송(野松) 이원좌(李元佐) 화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청송 야송 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야송 선생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화 및 도예작품 등 350점을 비롯해 국내외 유명 화가와 조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작가들의 작품 50여 점, 미술관련 서적 1만여 점을 기증받아 구 신촌초등학교를 현대식 미술관으로 단장한 곳이다.
야송 선생은 산과 물이 어우러진 자연의 실제 경치를 화폭에 옮겨 담는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의 대가다. 덕분에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 앞에 서면 마치 산 속에 둘러싸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다. 조금은 멀리서, 조금씩 움직여 가면서 감상해야 제 맛을 알 수 있는 그의 작품 중에는 가로 48미터 세로 6.7미터의 대작인 ‘청량대운도’가 있는 공간이 부족해 전시를 하지 못할 정도다. 약 12미터 길이의 ‘주왕운수도’와 ‘무릉하운도’는 전시실에서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이외에도 고지도, 의궤 모사품 등 기획 전시를 진행하고 있어 자연뿐 아니라 문화의 양식도 채우고 돌아갈 수 있다.

사람 냄새 나는 한옥에서의 하루
청송군 파천면으로 가면 한옥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송소고택이 있다. 안채부터 사랑채, 별당까지 숙소로 이용할 수 있는 이곳은 조선시대 상류층의 전통 가옥 체험이 가능하다. 툇마루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서늘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안개가 피어 오르는 새벽녘에는 더욱 운치 있다.
“이리 오너라~!” 크게 외치고 조선 시대에 만석 부호인 청송 심씨의 99칸 저택인 송소고택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크고 화려한 건물이 보인다. 이곳은 주인이 거처하는 큰 사랑채고 우측에 작은 사랑이 자리잡고 있다. 그 뒤로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 안채가 있는데, 대청마루에 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세살문을 달고, 그 위에 들어 올릴 수 있는 빗살무늬의 교창을 달았다. 건물에는 독립된 마당이 있고 공간이 구분되어 있는 등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맑고 푸른 소나무로 가득한 청송에서 지낸 짧은 시간 동안 어느새 맑은 자연의 기운이 몸과 마음 가득한 것 같다. 푸른 자연 속에 꼭꼭 숨겨둔 청송의 아름다움을 직접 느끼고 나니 멀게만 느껴졌던 길을 떠나기가 아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