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냄새가 그리울 때 그곳으로 나서라 Good News Greet My Ears

옛길을 따라 느리게 걷고, 그러다 지치면 쉬어 가고, 차분히 물레 앞에 앉아 도자기를 빚어 보고 또 그러다 지루해지면 철로 위를 따라 자전거 페달을 밝으며 시원한 강바람도 느껴 보는, 도시 이름에 담긴 의미 그대로 늘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곳이 있다. 시원한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이 눈 부신 시월의 어느 날, 아직 추수가 채 끝나지 않아 황금색 들판이 출렁이는 경상북도 문경으로 떠났다.

몇 해 전 친구들과 문경으로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문경새재에 놀러 갔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문경새재에 올라갔다가 문경 곳곳을 보려던 계획은 문경새재를 올라가는 첫 번째 매점에서 맛본 좁쌀 동동주와 감자전 덕분에 문경새재 제2관문에도 겨우 도착해 그곳 평상에서 쿨쿨 낮잠을 자고 내려오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으니 말이다. 특별히 구경한 건 없었지만(그래서 문경으로 여행을 가려는 사람이 어디가 좋으냐고 물으면 문경새재의 좁쌀 동동주를 추천하곤 했지만) 그저 그것만으로도 참 좋았던 여행의 기억이었다. 그때 친구들과 나란히 앉아 수다를 떨던 널찍한 바위, 주인아저씨의 대금 소리에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마셨던 동동주, 졸졸 흐르는 계곡물 옆에서 곯아떨어졌던 꿀맛 같은 단잠. 그날의 추억을 찾아, 그리고 그때 동동주에 빠져 미처 보지 못했던 문경의 또 다른 볼거리를 찾아 하늘이 그야말로 하늘색으로 푸르던 날 그곳으로 떠났다.

선비들이 오르던 옛길을 따라
서울에서 출발해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 문경새재 IC를 빠져나간다. 서울에서 출발한 지 꼭 2시간 만이다. 과거 낙동강과 한강을 잇는 가장 짧은 고갯길이었던 이곳은 서울과 부산의 딱 중간쯤에 있어 주말이면 전국 휴양객의 발걸음을 이끈다. 예로부터 ‘새도 넘기 어려운 고개’라는 뜻의 ‘조령(鳥嶺)’이라 불렸던 문경새재는 조선 태종 때부터 한양과 영남을 잇는 사회∙문화∙경제의 교류지이자 군사상 요충지였던 곳. 영남의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을 넘나들던 고개로도 유명한데, 선비들이 굳이 험하다는 문경새재를 넘어간 데는 재미있는 까닭이 전해진다. 경상도 남쪽지방에서 한양까지 과거를 보러 올 때 반드시 추풍령과 죽령, 문경새재 이 세개 중 한 개의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고 죽령을 넘으면 대나무 미끄러듯이 과거에 미끄러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던 것.
평일인데도 주차장에 차가 가득하다. 대형 버스가 늘어선 걸 보니 아마 곳곳에서 단체관광을 왔나 보다. 벌써 꼭대기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시각, 부디 이번에는 동동주에 취해 여행이 중간에서 멈추지 않기를 바라며 입구에 들어섰다. 입구에 서 있는 선비의 상을 지나면 제1관문이 눈에 들어온다. 문경새재에는 제1관문(주흘관), 제2관문(조곡관), 제3관문(조령관)의 세 개의 관문이 있는데 제1관문부터 제3관문까지는 총 2시간 코스로, 약 6.5킬로미터의 이 길에는 황톳길로 잘 꾸며진 산책로가 평탄하게 나 있어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가볍게 산책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제1관문을 지나 옆으로 졸졸 흐르는 새재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조금 걸으면 KBS촬영장이 나타난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촬영장으로 촬영이 없는 날은 고려민속촌을 겸한 사극촬영 중심의 테마관광지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다시 길을 따라가면 문경새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조령원터, 긴 타원형으로 된 돌로 지금은 쉼터지만 과거에는 도적들이 숨어 있다가 행인을 덮쳤다는 마당바위, 험준한 새재 길을 오르다 술 한잔 마시며 쉬어가던 옛 주막 등이 차례로 지나친다. 한쪽에는 빼곡히 들어선 나무숲이, 다른 한쪽에는 계곡물이 유유히 흐르는 길에서 만나는 소소한 볼거리는 이렇듯 상쾌한 발걸음을 잠시 잡아끌며 휴식으로 안내한다.
길은 계속 신구 관찰사가 관인을 인수하던 교귀정, 조선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청 되는 화강암 자연석에 음각된 ‘산불됴심(‘됴심’은 ‘조심’의 옛말이다)’ 표석, 시원스레 떨어지는 조곡폭포로 이어진다. 그리고 조곡폭포를 지나면 우람하게 서 있는 제2관문에 다다른다. 이곳에는 물맛이 좋아 길손의 갈증과 피로를 풀어 준다는 영약수로 알려진 조곡약수가 흐르는데 잠시 평상에 앉아 약수 한 사발 마시고 한숨 돌리기에 좋다. 너무 청명한 날씨에 제3관문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다음 일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제2관문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동동주에 취한 것이 아니라 일정상 어쩔 수 없어서였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음을 기약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되돌아 내려온다.

소박한 멋이 담긴 문경의 도자기
문경새재에서 5분 거리에 문경 도자기전시관이 자리한다. 이천이나 여주 등의 도시와는 달리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문경은 양질의 사토와 물, 땔감, 그리고 지리적 위치로 인한 판로 등 도자기 생산에 있어서 천혜의 자연환경과 사회적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으로 고려청자부터 조선 백자에 이르기까지 9백 년간 도자기를 만들어 온 마을이다. 국내 유일의 중요무형문화재와 국내에서 7명뿐인 도예명장 중 3명이 문경 출신으로, 오늘날도 이곳에서 전통 방식 그대로 도자기를 빚고 있다. 문경의 도자기는 중세 서민층이 사용하던 그릇을 재현한 것으로 소박한 멋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런 우리 민족의 순박한 심성이 그대로 배어 있는 문경 도자기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문경 도자기전시관이다. 전통도예의 맥을 전승하고 문경 도자기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2002년 개관한 도자기전시관은 문경 도자기의 역사와 제작 과정에 대한 소개, 문경 지역에서 출토된 자기류와 지역 도예인들의 혼이 담긴 다양한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매년 4월경 문경에서 열리는 문경전통찻사발축제에서 입상한 실용적이면서 개성 있는 찻사발도 만나볼 수 있으며 문경에서 탄생한 수석을 전시해 놓은 수석전시실, 다도체험을 할 수 있는 전통다례 시연실,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실 등 도자기 감상뿐 아니라 도자기 구매와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되고 있어 다채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전시관 건물 뒤에는 문경의 전통가마인 망댕이 가마가 설치되어 있다.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형태의 가마로, 망댕이란 20~25센티미터 길이의 사람 장딴지와 형태의 진흙 덩어리를 일컫는 말. 망댕이 가마는 이 망댕이를 돌려 쌓아 만든 전통 칸가마로 3~5개의 가마가 15도가량의 비탈에 나란히 연결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단열효과가 뛰어날 뿐 아니라 불꽃의 변화무쌍한 움직임과 온도에 따라 독특한 도자기의 색깔과 문양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도자기전시관 바로 옆에는 유교전시관이 자리한다. 1층에는 남성의 선비문화와 여성의 규방문화를, 2층에는 문경의 풍류문화와 유교문화에 관한 자료를 전시해 두고 있어 우리나라의 유교문화를 살펴보기에 좋다. 이곳 탁본 체험실에서는 간단한 탁본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시원한 강바람 가르며 철로를 달린다
문경새재 옛길도 걸었고 도자기도 감상했다면 천혜의 자연 속에서 가벼운 액티비티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문경은 철로자전거를 비롯해 클레이 사격장, 활공장 등을 갖추고 있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짜릿한 시간을 맛볼 수 있는데 특히 새재 옛길에서 상주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이르게 되는 진남교반 일대는 빼어난 자연경관과 역사 유적지, 체험 명소가 한데 어우러진 곳이다. 유유히 흐르는 강을 따라 한쪽에는 기암절벽이, 다른 한쪽에는 울창한 수림이 펼쳐져 있고 그 위로 철교와 함께 3개의 다리가 가로 놓인 진남교반은 자연물과 인공물의 조화가 묘한 매력을 주는 곳. 이런 진남교반의 모습을 한눈에 굽어보고 싶다면 고모산성이 제격이다. 고모산성은 삼국시대 초기에 축성된 1.6킬로미터 정도의 산성으로,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겁을 먹고 진군을 멈춘 뒤 꼬박 하루를 정찰하다 까마귀가 나는 것을 보고야 빈 성인 줄 알고 통과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역사 속에서 난공불락의 요새로 맹위를 떨친 곳이다. 진남휴게소 뒤편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가면 고모산성의 성루인 진남루와 만나게 된다. 진남루에서 고모산성 정상까지는 가파른 계단으로 되어있는데, 까마득해 보이지만 몇 계단만 올라서면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풍광에 자꾸 욕심이 생겨 끝까지 가지 않고는 돌아서기 쉽지 않을 터. 정상에 서면 시원한 가을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씻어주고 발아래로 S자로 굽어 흐르는 물길과 진남교반이 어우러진 멋스러운 풍경이 펼쳐진다.
한껏 발아래 드리워진 정취를 누린 후 산성 아래로 내려와 진남역으로 향했다. 문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인 철로자전거를 타기 위해서다. 문경시에서는 지금은 폐선이 된 석탄운반용 철로를 활용하여 2~4인용 철로자전거를 운영하고 있는데 주말과 휴일에는 조금만 늦어도 몇 시간씩 기다리거나 아예 타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만큼 인기다. 진남역과 가은역 두 곳에서 운행하는데 진남역에는 불정역 방면의 강변코스와 가은역 방면의 터널코스, 두 가지 코스가 있다. 강변코스는 자동차와 나란히 달리는 즐거움과 강바람의 시원함을, 터널코스는 중간 중간 통과하는 터널의 짜릿함을 만끽하게 해준다. 거리는 두 코스 모두 왕복 4킬로미터며 시간은 약 40분 정도 소요된다. 30분에 한 번씩 두 코스가 번갈아 가며 출발하므로 어느 코스를 선택하든 선택은 자유. 신이 나서 아빠, 엄마의 손을 잡아끄는 꼬마들, 다정하게 철길을 거니는 연인들, 다리만 아플 거라며 투덜거리는 친구에게 그래도 재미있지 않겠냐며 달래는 고등학교 여학생들 등 철로자전거에 오르는 이들은 저마다 다른 기대를 하고 있지만 처음 경험하는 색다른 체험에 설레는 표정만은 모두 한결같다. 드디어 철로자전거가 출발했다. 철로자전거는 두 사람이 페달을 밟는 힘으로 움직이는데 처음에는 조금 힘이 들지만 천천히 움직이던 자전거에 어느새 속도가 붙으면 철로변의 꽃내음과 주변의 평화로운 풍경이 영강의 시원한 강바람을 타고 귀가에 전해져 온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철로 주위에 떨어진 낙엽과 투덜대던 여학생들의 신이 난 듯 떠드는 재잘거림과 꼬마의 까르르 웃음소리, 그리고 서로 얼굴을 맞대고 다정하게 ‘셀카’를 찍는 연인들의 모습이 문경으로 떠난 가을 나들이의 낭만을 더한다.

TRAVEL INFO
먹을 곳 문경의 특별한 먹을거리는 바로 약돌돼지. 거정석이라는 문경에서만 나오는 돌을 갈아 사료에 넣어 돼지에서 먹여 키운 것으로 ‘문경약돌 샤브샤브’(054-556-7192)에서는 약돌돼지를 이용한 샤브샤브 요리와 인삼 등 각종 한약재와 호두 마늘 은행 솔잎 등을 넣고 쪄낸 약돌 건강 한방찜을 맛볼 수 있다. 문경새재 입구에 있는 ‘소문난 식당’(054-572-2255)의 묵조밥도 놓치지 말 것.

잠잘 곳 가은읍에 위치한 팬션 산 중턱에 자리 잡아 이름 그대로 산속에서 상쾌한 아침을 맞을 수 있는 곳이다. 뒤에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아래로는 논밭이 펼쳐져 있어 산 속의 고요함을 느낄 수 있는 이곳은 오픈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깔끔할 뿐 아니라 마음 좋은 주인아저씨의 넉넉함도 느낄 수 있다. 객실은 커플실 4개와 가족실 3개, 총 7개로 모든 객실에는 취사시설과 냉장고, 식탁, 에어컨, 드라이기, TV, 가습기 등이 비치되어 있으며 각종 향긋한 차와 아로마테라피는 주인아저씨의 세심함을 돋보이게 한다. 각 객실에 마련된 테라스나 야외 바비큐장에서 바비큐를 구울 수 있으며 팬션 한가운데 자리한 ‘사랑의 정원’에서는 정원에 핀 꽃과 나무를 구경하며 잠시 거닐기에 좋다. 등산을 즐긴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 팬션 뒤로 난 등산길을 따라 올라가 보는 것도 좋을 듯. 진돗개 백구 장군이와 삽살개 미미가 먼저 반기는 이곳은 자연과 하나 되는 삼림욕도 누리고 저녁이면 일몰을 보며 와인 한잔 마시며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그야말로 산속에 자리한 작고 평화로운 휴식처. 팬션이 다소 찾기 어려우므로 전화로 문의하는 것이 좋다. 가격은 2인실부터 8인실까지 크기에 따라 비수기에는 6만 원부터 15만 원, 성수기와 주말에는 8만 원부터 17만 원까지다.

가은읍에 있는 팬션 ‘산속에 아침’은 산 중턱에 자리 잡아 이름 그대로 산속에서 상쾌한 아침을 맞을 수 있는 곳이다. 아침이면 팬션 뒤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산책을 즐기고, 저녁에는 일몰을 바라보며 와인 한잔 즐길 수 있는 이곳은 산속의 고요함을 느낄 수 있는 편안한 휴식처로, 오픈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깔끔하고 쾌적할 뿐 아니라 마음 좋은 주인아저씨의 넉넉함도 느낄 수 있다. 객실은 커플실 4개와 가족실 3개 등 총 7개로 모든 객실에는 취사시설과 냉장고, 식탁, 에어컨, TV 등이 비치되어 있으며, 테이블 위에 마련된 각종 향긋한 차와 아로마테라피는 주인아저씨의 세심함을 돋보이게 한다. 팬션 한가운데 자리한 ‘사랑의 정원’을 향한 각 객실의 테라스에서 바비큐 파티도 열 수 있다. 아침저녁으로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진돗개 장군이와 삽살개 미미도 빼놓을 수 없는 이곳의 즐거움. 길 찾기가 다소 어려우므로 가는 길에 전화로 문의하는 것이 좋다. 가격은 2인실부터 8인실까지 크기에 따라 비수기에는 6만 원부터 15만 원, 성수기와 주말에는 8만 원부터 17만 원까지다.

주소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갈전리 산 157번지
문의 011-695-0427, www.산속에아침.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