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celona
다시 찾고 싶은 도시, 바르셀로나

낯선 곳으로 떠나는 과정은 늘 우리를 설레게 한다. 자기가 살고 있는 익숙한 곳을 떠나 말과 문화가 다른 곳에서 새로운 자연을 접하고 나와는 삶의 방식이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다보면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다. 운이 좋으면 인생을 바꾸는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기에, 여행은 늘 흥미진진하다.

떠나기 전에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실제로 여행을 가보면 이런 우려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 낯선 여행객을 도와주는 친절한 현지인들과의 만남, 또 전혀 다른 이유로 여행을 떠나온 다른 여행자와의 동행 등 수많은 기적이 도처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많은 이들이 여행을 취미로 삼고 있다. 시간과 경비가 넉넉하지 못하다 보니 늘 마음대로 떠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행을 꿈꾸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새해를 두 번 맞다
유럽은 최소 10시간 이상의 비행시간 때문에 쉽게 떠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오래 전 모친 회갑기념으로 5박 6일간 프랑스와 스위스를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종종 유럽 대륙을 밟았지만, 시간은 늘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지난 해 말, 나는 유럽행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었다.
12월 31일 낮 이륙한 비행기에서 점심과 저녁을 먹고 나니 기장이 “해피 뉴 이어(Happy New Year)!”라며 새해 인사를 전했다. 한국시간으로 계산해, 2008년이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비행기에 탑승한지 12시간 55분 만에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현지시각은 저녁 6시 52분. 한국보다 8시간이 늦어 한국과 스페인에서 각각 한 번씩 두 번의 연말과 신년을 맞이하게 됐다.
아침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는데, 창밖으로 2008년 첫 해가 떠올랐다. 해외에서 맞는 새해 첫 일출은 더욱 감동적이었다. 어쩐지 이번 여행은 좀 더 흥미진진할 거란 예감이 든다. “오-이(안녕하세요?)”, “봉-디아(아침 인사)” 포르투갈인 기사에게 지난 해 남미여행 중 브라질에서 배운 포르투갈어 인사말을 건네니 아주 좋아한다. 그 후로도 종종 점심인사, 저녁인사, 감사인사 등 중요한 몇 마디 생활회화를 여행수첩에 적어 놓고 활용했다. 효과는 두말 할 것 없이 “따봉(Good)!”이다.

바르셀로나와의 만남
낭만과 정열, 투우, 돈키호테, 플라멩코, 알 함브라 궁전, 콜럼버스, 피카소, 프라도미술관. 스페인에서 꼭 봐야할 볼거리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지만, 한 가지만 골라야 한다면 바르셀로나를 꼽아야 할 것 같다.
그중에서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더불어 천재 건축가로 손꼽히는 가우디의 걸작, 성가족 성당은 절대 빼놓을 수 없다. 가우디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건축에 대한 재능과 정열을 아낌없이 불태운 끝에 오늘날 바르셀로나를 최고의 관광지로 만든 장본인으로, 31세 때 처음 성가족 성당을 설계했다. 그는 1883년부터 기계 없이 수작업으로 건물을 쌓아올리기 시작했는데, 1936년 스페인 내전으로 잠시 중단되긴 했지만 1957년부터 건축이 재개됐고, 74세 때 그가 전철 사고로 운명한 이후에도 계속됐다. 건축비는 입장료와 기금 및 모금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앞으로 약 30년 후면 완공될 예정이란다. 그때 다시 올 수 있으려나? 상황이 어떨 진 모르지만, 그래도 희망을 걸어 본다.
가우디는 건축에서 채광이나 환풍 등 생물체가 살 수 있는 조건을 중요시하고, 곡선을 강조했다고 한다. 미술엔 문외한이지만 다채로운 색을 사용해 무척 신선한 느낌이 든다. 기회가 된다면 미술과 건축에 대한 상식이 풍부한 친구와 함께, 이곳을 다시 방문해 보고 싶다. 성당 벽에는 마리아의 예수 잉태, 동방박사들, 십자가를 진 예수 등 성경의 주요 장면들이 조각되어 있어서 성당 앞은 이 멋진 건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성당을 나와 이번에는 구엘공원으로 향했다. 곡선을 한껏 살린 공원에는 가우디 건축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 있었다.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그 유려한 선과 색에 감탄을 거듭했다. 이어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은 몬주익 언덕에 올랐다. 경기도와 자매결연했다는 표시로 세워진 한글 비석과 함께,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황영조 선수의 부조가 남아있어 반갑다.

쉬는 여행
바르셀로나는 여기저기 바쁘게 달리기 보다는 거리공연과 행위예술을 감상하며 천천히 돌아보는 게 좋다. ‘하몽’ 이라는 돼지 뒷다리를 말린 특산물도 맛보고, 시장구경도 하면서 말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보려고 하는 욕심 때문에 여유를 가지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하루 한두 곳 정도만 정해 놓고 구경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하니 풍경이 사뭇 다르게 보인다. 광장 벤치에 앉아 사람구경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현지에서의 느낌과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바뀔 수가 있다는 점이 자유여행의 진정한 멋과 맛이리라.

드디어 소원성취!
이번 바르셀로나 여행에서 나는 거의 이십년 넘게 품어왔던 소원을 드디어 성취하게 됐다. 바로 현지에서 프로축구 관람하기! 평소 축구를 좋아해 국내 리그도 자주 구경하러 가는데, 해외여행을 하면서 현지의 프로축구 경기를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오다가, 이번 여행에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FC바르셀로나와 무르시아의 프로축구경기를 현장에서 보게 되었다. 그것도 12만 명을 수용하는 대규모 구장에서! 작년, 국내의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에 몇 차례 출연하기도 했던 앙리선수가 맹활약을 해 4 : 0의 대승을 거뒀다. 응원의 열기는 한국 못지않게 뜨거웠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과 다른 면이 많다. 풍습도 언어도 모두 달라, 바르셀로나에 유학 오는 외국 학생들은 스페인어와 현지 언어 2가지를 배워야 하는 부담이 있단다. ‘까탈루냐’라는, 바르셀로나를 포함한 스페인 남부 지역을 총칭하는 고유명칭이 있을 정도. 특히 수도인 마드리드와는 앙숙관계로 두 도시간의 축구경기가 벌어지는 날에는 표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와 같고, 열기도 엄청나다고 한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곳에서 마주친 축구 마니아들처럼, 영국 리그와 이탈리아 리그도 실제로 보고싶다.

박진감 넘치는 스페인 광장의 분수쇼
해외여행을 가면 나는 꼭 현지 대학캠퍼스에 들른다. 기회가 되면 그곳 학생들과 만나 학교생활과 꿈 등 여러 가지에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구촌 이웃들의 생각과 삶을 잠시나마 살펴본다.
분수쇼가 열리는 스페인 광장은 대학캠퍼스 못지않게 생동감이 느껴지는 곳이다. 장중한 음악과 함께 오색찬란한 분수가 거의 2~3백 미터 가량 힘차게 물을 뿜어 올리면, 데이트를 나온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은 분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즐겨운 시간을 갖는다.
근처 공원의 노인전용 놀이공간에서 십여 명이 모여, ‘캄비아’라는, 볼링과 구슬 던지기를 합친 듯한 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잘 마련된 조명시설 아래 배구장의 반쯤 되는 공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바르셀로나 시내에는 이런 놀이장이 8곳이나 된다고 했다. 한국 노인들은 공원 같은 곳에서 모여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도 이런 공간을 마련해 노인들이 운동도 하고 즐겁게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면 좋겠다.

여행은 만남이다
새로운 풍광을 접하고 유적지를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행자에게 더 중요한 것은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다. 뜻하지 않은 만남을 통해 우리는 종종 새로운 삶의 활력을 얻게 된다. 이번 여행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다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인만큼 여행길에서 언젠가 한번쯤은 꼭 다시 만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스페인 여행에서 만난 가우디의 뛰어난 예술성, 곳곳에서 만난 오렌지 나무들, 응원의 열기로 뜨거웠던 프로축구 경기장 등 많은 것이 새롭게 마음에 와 닿는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가게 된다면 이번여행에서 아껴둔 다른 곳들을 천천히 둘러보리라. 기분 좋은 약속을 마음 한쪽에 고이 접어 놓고, 이제 다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련다. (배한성 인천 남동구 만수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