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occo
혼돈과 정돈이 공존하는 모로코

한 권의 론리플래닛과 가방 하나를 달랑 메고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특히 현대와 과거, 혼돈과 정돈이 공존하는 모로코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프리카의 보석 같은 나라 모로코에서 나는 더욱 단단해졌다.
스페인에서 하늘을 날아 카사블랑카에 도착, 드디어 아프리카 땅을 밟았다. 그런데 지금껏 나의 상상 속 아프리카와는 전혀 다른 아프리카 펼쳐진다. 그래서 모로코 여행은 더욱 특별하다.

혼돈이 매력적인 카사블랑카

모로코 여행의 시작은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는 무하마드 공항에서부터 시작된다.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현대적인 시설과 규모를 자랑하는 모로코의 자랑인 이곳에서 지금까지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깨끗이 깨뜨려주었으니 말이다. 공항에서 카사블랑카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본격적인 모로코 여행에 나섰다. 흔히 카사블랑카를 모로코의 수도로 알고 있지만 모로코의 수도는 라바트라는 조용한 도시다. 그에 비하면 제 2의 도시인 카사블랑카는 굉장히 상업적인 도시다.
카사블랑카는 ‘독특’이라는 표현으로 그 도시를 표현할만하다. 높은 빌딩과 고급 호텔이 즐비한 시가지 사이로 모로코의 전통 시장을 비롯한 전통 문화가 뒤섞여 있다. 모로코에는 오래된 시장이라는 의미의 올드 메디나라는 전통 시장이 존재하는데 이곳은 관광객에게도 매우 즐거운 볼거리다. 문제는 관광객을 상대로 큰 이윤을 남기려는 현지인들의 놀라운 상술이다. 관광객의 뒷주머니를 노리는 것이 한눈에 보이는 소매치기들도 함께 말이다. 게다가 관광객이 흘리고 간 음식 부스러기를 차지하기 위해 야옹 거리는 고양이까지 뒤섞여 있으니 한마디로 혼돈의 실체를 보여준다. 한순간 정신을 놓으면 눈뜨고 코 베어 간다는 서울보다 더한 광경을 목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혼돈은 이 도시에 활기를 더한다.
청결과는 거리가 먼 카사블랑카 유스호스텔에서 잠을 청한 뒤 다음날 아침 일찍 핫산 모스크로 향했다. 피곤하기도 하고 더 자고 싶은 욕구도 있었지만 아침 햇살에 반사되는 핫산 모스크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말에 졸린 눈을 비비고 나갔다. 거대한 크기의 핫산 모스크는 아프리카와 중동의 이슬람 국가에 있는 모스크 중 세 번째로 크다고 한다. 과연 그 명성대로 하얀 대리석에 반짝이는 모습이 눈이 부실 정도였다.

 붉은 도시 마라케시

카사블랑카에서 버스로 약 3시간 정도 가면 볼 수 있는 마라케시에 도착했을 때 ‘아라비안 나이트’ 책 속에 쏙 빨려 들어간 듯한 느낌이었다. 온통 붉은 흙빛의 이 도시는 더욱 따뜻한 느낌이다. 도시는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뉘는데 개인적으로 토속적인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구시가지가 더 마음에 든다.
야시장이 더욱 유명한 마라케시의 올드 메디나는 숙소와 거리가 너무 멀어 구경을 포기하고  한 낮에 문을 여는 올드 메디나를 찾아갔다. 그런데 의외로 한낮의 올드 메디나도 매력적이다. 내가 입고 있던 옷을 마음에 들어 하는 상인이 있어 머플러와 옷을 바꾸었다. 모로코의 여인과 같은 복장을 해보고 싶어서 바가지를 씌우려는 모로코 상인에게서 물건 값을 깎고 또 깎아 모로코 전통 의상도 장만했다. 전통 의상을 갖춰 입고, 티셔츠와 바꾼 스카프, 그리고 모로칸 아줌마들의 애용품인 꽃분홍색 장바구니도 들고 모로칸인 척 했지만 신기하게도 그들은 내게 ‘곤니치와’라고 인사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이방인임을 한눈에 알 수 있나 보다. 대낮에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의 더위를 느끼며 왜 야시장이 발달했는지 짐작했다.

  까칠한 사하라 사막

모로코에서의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사하라 사막을 꼽을 것이다. 나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던 사하라 사막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지만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을 겪었기에 여행을 마친 후에는 자랑스런 무용담이 되었다.
마라케시에서도 사막투어가 가능하지만 진정한 사막투어를 위해 모래 산이 큰 곳을 찾아갔다. 마라케시에서 12시간 정도를 달려 마하주가라는 곳에 도착했는데, 그곳은 TV에서 본 사하라 사막이 시작되는 곳이다. 한낮의 사막은 너무 뜨겁기 때문에 저녁 6시가 되어야 본격적인 사막투어가 시작됐다. 가이드 한 명과 일행 3명은 낙타를 타고 사막여행길에 올랐다. 가는 길에는 오아시스도 있었고 황혼이 지는 붉은 사막은 억만금을 주고도 볼 수 없는 장관을 연출했다. 간간이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고 한밤의 별을 바라보며 즐거운 상상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선선하던 바람이 갑자기 돌풍으로 변하더니 주위가 컴컴해지면서 모래 폭풍이 불었다. 말로만 듣던 모래 폭풍은 정말 무서웠다. 일제히 일어난 모래가 일행을 덮치자, 눈을 뜨지도 숨을 쉴 수도 없었다. 가이드는 일행을 낙타에서 내리게 하더니 낙타를 몰고 가버렸다.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겨진 것이다. 필사적으로 모래 산 2개를 넘고 나니 베르베르족의 텐트가 보였다. 텐트 안으로 전력질주 해 들어서니 가이드가 그곳에서 불을 피우고 있었다. 천만 다행이었다.
가이드는 사막에서 크게 한번 놀란 일행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래도 불러주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밤새도록 들려오던 천둥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빗소리에 부실한 텐트가 날아갈까 오돌오돌 떨어야만 했다. 하지만 해가 뜨고 난 사하라 사막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언제 두려움에 떨었냐는 듯 샌드보드까지 탔다.

미로의 도시와 파란 스머프의 도시 

세계 문화유산으로 정해진 미로 같은 올드 시티가 있는 페즈는 세계 최대의 수공업 가죽 염색공장이 있는 곳이다. 페즈에 머무는 내내 여행은 유난히 힘들었다. 그들 삶의 고통이 그대로 마음에 전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죽 염색 공장은 페즈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하지만 동물 썩는 냄새와 강한 화학약품들, 그리고 배수가 잘 되지 않는 환경 때문에 코를 막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미라처럼 바짝 말랐다. 힘든 노동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임금을 받으며 고된 일을 하고, 강한 화학 약품에 오랜 시간 노출돼 평균 수명도 짧다고 한다.
그리고 미로 같은 도시 곳곳에는 일에 지쳐 마약의 일종인 하쉬쉬를 하는 사람들과 자신들이 일하는 가게로 관광객들을 데려가 커미션을 받는 아이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그 모든 것들이 그들이 사는 삶의 방식이기에 비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아픈 삶을 사진으로 찍는 것이 미안할 뿐이었다.
아픔이 가득한 페즈와는 정반대로 론리플래닛이 사랑한 도시라는 명칭에 걸맞는 아름다운 도시 쉐프샤우엔도 있다. 페즈에서 7시간 정도 떨어진 산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쉐프샤우엔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 역시 때묻지 않고 순수했다. 이 도시의 특징은 도시가 온통 파란색이라는 것. 해충을 쫓기 위해 파란색을 칠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이곳에서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동화 같은 분위기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곳 메디나에서 만났던 무뚝뚝한 땅콩 파는 할아버지는 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추억이 되었다. 리어카에 땅콩과 과자 등을 싣고 다니며 파는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무뚝뚝했지만 사흘 연속 땅콩을 사는 내게 점점 마음을 열었다. 나중엔 멀리서 지나 가기만 해도 불러서 화덕에서 갓 나온 땅콩을 한 주먹씩 손에 쥐어 주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따듯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따듯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 아가딜

카사블랑카에서 남쪽으로 10시간 정도 떨어진 아가딜은 휴양 도시다. 카사블랑카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한숨 자고나니 어느새 아가딜에 도착해 있었다. 1960년대에 지진을 겪었다는데 그런 고통에는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지금의 아름다운 항구도시를 만들었다. 시내에서 조금 걸어가면 대서양이 보인다. 역시 바다는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청량제이다. 유러피언들의 휴양지라는 별명에 걸맞게 외국인들도 많고 건물도 세련되었으며 해변가에는 고급 빌라들도 늘어서 있다.
석양이 질 때쯤이면 가정적인 모로코 사람들은 온 가족이 바닷가에 나와 담소를 즐긴다. 모로코 사람들은 외국인인 나를 흔쾌히 자기 집에 초대해 주기도 했는데, 비록 초대에 응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마음에 감사했다. 이곳에서는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 같았던 영악한 고양이들, “헬로”와 “곤니치와”를 연발하던 모로칸들과 일류 주방장 못지 않은 맛으로 감탄케 했던 거리 음식들. 붉은 도시 마라케시와 나의 출입을 허락지 않았던 사하라 사막. 그리고 사람들의 고단함이 그대로 느껴졌던 페즈와 파란 스머프의 도시 쉐프샤우엔, 흔쾌히 사랑해주었던 아가딜까지. 모두 고맙습니다. (김소현 충북 충주시 문화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