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the
Sweet Time
자연과 휴식, 그리고 추억

남도의 봄을 만끽하기에 제격인 때가 왔다. 아직 서울에는 찬바람이 불지만 지금쯤 남도에는 동백꽃과 매화가 앞다투어 꽃망울을 터뜨리며 겨우내 움츠렸던 기운을 벗어던지고 따스한 봄날이 왔음을 보여주고 있으리라. 순천만의 아름다운 풍광과 포근한 옛 정취를 간직한 볼거리가 있는 순천으로 따스한 봄을 찾아 떠나보자.

언젠가 TV에서 살아 있는 갯벌과 갈대가 드넓게 펼쳐진 순천만의 풍경을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저런 곳이 있었나 싶을 만큼 아름다운 모습에 언젠가 꼭 한번 가보겠노라고 점찍어 두었었다. 잠시 잊고 있던 순천을 떠올리게 한 건 며칠 전 뉴스를 통해 전해져 온 남도의 봄 소식이었다. 흐드러지게 핀 남도의 꽃을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주위의 만류가 있었지만, 사실 꽃이 피었든 그렇지 않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봄을 찾아 남도로 떠나는 여행길 자체가, 그리고 물과 숲이 어우러진 자연 속에 정겨움을 지닌 풍광이 녹아 있는 순천의 다양한 볼거리가 그 어느 때보다 알찬 1박 2일의 여정을 채워줄 테니 말이다.

아침부터 서둘렀음에도 오후 3시가 다 되어서야 순천 I.C의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순천으로 기자를 이끈 것이 순천만 생태공원이니만큼, 가장 먼저 그곳으로 향했다.남해안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있는 순천만은 빽빽한 갈대밭과 광활한 갯벌로 이루어진 세계 5대 연안습지로, 흑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고니 등 국제 희귀종을 포함한 총 220여 종의 조류를 비롯해 농게, 짱뚱어 등 갯벌 생물이 공존하는 땅이다.
입구의 자연생태관을 지나 뒤쪽으로 가면 쉼터 옆에 갈대밭으로 가는 자그마한 다리가 있는데, 다리 중간에 올라서면 눈앞에 광활하게 펼쳐진 갈대 군락의 모습이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햇살에 반짝이는 겨울철 은빛 갈대의 모습, 여기에 한번씩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사각대는 갈대 부딪히는 소리는 마음속 깊은 울림을 느끼게 한다. 갈대숲에 조성된 1.2킬로미터 길이의 탐방로를 따라 거닐며 갈대밭의 정취를 한껏 만끽하고 나면 순천만이 내려다보이는 용산에 위치한 전망대에 올라보자.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전망대에 가려면 산을 반 바퀴 이상 돌아야 해 가는 길이 만만치 않은데, 그래도 그 정도 수고로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잠시 후에 펼쳐질, 갈대군락지와 갯벌 사이를 ‘S’자 형태로 굽이치며 흐르는 순천만의 아름다운 비경에 비하면 말이다. 여유가 있다면 수로 위에서 순천만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탐조선이나 갈대 사이 둑길을 따라 운행하는 갈대 열차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어느덧 시곗바늘이 5시를 넘어가자 전망대로 오르는 이들이 점차 많아진다. 갈대밭과 갯벌을 붉게 물들이는 순천만의 낙조는 눈부신 아름다움을 자랑하는데, 용산 전망대가 그 절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이기 때문. 그리고 또 한곳, 순천만 동쪽 끝 해룡면 상내리에 자리한 와온해변 역시 물이 빠진 바다 위에서 펄배를 타고 조개와 꼬막을 줍는 어민들의 모습 위로 노을이 펼쳐지며 일몰의 환상적인 풍광을 선보인다.

생명의 땅, 순천만

정겨운 고향의 정취가 느껴지는 곳
순천만의 아름다운 풍광을 품고 순천에서의 편안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날 아침 낙안면의 낙안(樂安)읍성 민속마을로 향했다. 낙안읍성은 조선 태조 때인 1397년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처음 쌓은 토성으로, 인조 때인 1626년 낙안군수로 부임한 임경업 장군이 지금의 석성으로 중수했다고 하는데, 성곽 안에는 우리나라 읍성 민속마을 중 가장 보전이 잘 되어 있다는 낙안읍성 민속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낙안읍성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는 동문, 서문, 남문 총 세 곳으로, 어느 곳으로 들어가든, 야트만한 초가지붕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모습이 전하는 친근한 정취를 만나게 된다. 초가집은 나지막한 돌담을 사이에 두고 이웃집과 이어지며, 문을 활짝 열어젖힌 방 안에서는 할아버지가 새끼 꼬기에 한창이다. 마당 한편의 장독대와 그 옆에서 여물을 되새김질하기 바쁜 송아지의 모습도 어린 시절 뛰놀던 푸근한 고향을 연상케 한다. 이곳이 특히 매력적인 건 이 모든 풍경이 단순히 전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하는 주민들의 모습이기 때문. 이곳에는 약 90세대, 23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주민들의 거주지 외에도 낙풍루(동문), 쌍청루(남문) 등의 출입문과 조선시대 지방 관아 건물인 동헌, 사신의 숙소로 사용했던 객사, 임경업 장군 비각과 중요 민속가옥인 김대자 가옥 등 중요한 민속자료가 남아 있어 옛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하며 짚물공예방, 목공예장, 길쌈, 서당 등 다양한 체험장도 운영하고 있어 구경의 재미를 더한다. 초가집 사이로 굽이굽이 돌면서 마을을 둘러보고 나면 400년 전에 축성된 4미터 높이의 성벽에 올라보자. 이곳에서는 마을의 모습이 한눈에 펼쳐지는데, 소담스레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오밀조밀 모여 있는 100여 채의 초가가 선사하는 풍경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즐겁고 편안하다는 뜻의 낙안마을이라던가?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평화로움은 보는 이마저 행복감에 젖어들게 한다.

TV 속으로, 추억 속으로
낙안읍성 민속마을이 오랜 과거로 떠나는 여행지라면 순천시 조례동에 위치한 순천드라마촬영장은 유년 시절의 추억으로 떠나는 여행지다. 약 4만 제곱미터 넓이의 부지에 3개 마을, 200여 채의 건물로 지어진 촬영장에는 1960년대 순천 읍내 거리부터 70년 서울 봉천동 달동네, 80년대 서울 변두리 번화가까지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어 1960~1980년대 우리네 삶을 만날 수 있다. 이미 드라마 ‘사랑과 야망’, 영화 ‘그해 여름’, ‘마파도 2’, ‘님은 먼 곳에’ 등 시대극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최근 부쩍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건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에덴의 동쪽’에서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 살았던 황지마을의 이야기가 이곳에서 촬영되었기 때문.
세트장에 들어서자 극 중 이기철(이종원 役)의 일터였던 황지 탄광촌의 모습과 그 옆으로 읍내의 풍경이 이어진다. 극 중에서 왁자지껄하던 황지 읍내 시장은 몇몇 여행객들의 기념 사진 찍는 소리만 들릴 뿐이지만, 가만히 이곳을 보고 있으면 시장 골목에 마주 보고 서서 ‘사랑한다’라는 뜻의 몸동작을 주고받던 동철(송승헌 役)과 동욱(연정훈 役) 형제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 이곳 세트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언덕 위에 재현된 서울 달동네 모습. 비탈길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판자촌의 모습은 가난하고 고단했지만 더불어 사는 정이 있었던 70년대 서민들의 생활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그때를 살았던 어른들에게는 아련한 향수를, 아이들에게는 어려웠던 시절 우리 부모님들의 삶을 느끼게 한다.

Travel Info
순천시티투어버스 매일 오전 9시 50분 순천역 관광안내소 앞 승강장에서 출발한다. 코스는 총 4개로, 드라마촬영장, 선암사, 송광사, 낙안읍성, 순천만을 요일별, 계절별로 탄력적으로 운행한다. 순천시청 홈페이지(www.suncheon .go.kr) 또는 전화(061-749-3107)로 사전 예약.
먹을 곳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낙안을 방문하였을 때 주민들이 준비했다는 팔진미는 순천의 풍부한 산물로 이루어진 순천의 대표음식. 낙안읍성 바로 앞에 있는 ‘성문 앞 그 집(061-754-2550)’이 특히 유명하며 가격은 1인분에 1만 원.
잠잘 곳 송광면의 서필재 기념관을 넘어서 고인돌 공원 사이에 있는 ‘풍경’은 한옥에 마련된 팬션으로 마치 시골집 같은 포근함과 정겨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소박하게 꾸며진 정원을 지나면 묵향, 미리네, 다선원이라 부르는 총 3채의 가옥이 자리하는데 객실마다 취사시설과 TV, 에어컨 등이 갖춰져 있으며 다실이 함께 있어 창밖으로 보이는 작은 연못의 풍광과 함께 고즈넉한 한옥의 정취를 느끼기에 안성맞춤이다. 미리네는 2인 기준 10만 원, 묵향은 4인 기준 10만 원, 다선원은 8인 기준 25만 원이다.
주소 순천시 송광면 우산리
문의 061-755-7980,
www.pungku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