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n Place Asan for Family Trip
아산에 봄이 드니 미친 흥이 절로 난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5월, 가족의 달을 맞아 아산을 찾았다. 아산은 무엇보다 온천으로 유명한 고장이지만, 온천 외에도 아름다운 풍경 예술, 역사까지 즐길 수 있는 똑똑한 가족 여행지이기도 하다.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깜빡 졸다 눈을 뜨니, 어느덧 아산에 도착해 있다. 따끔한 봄볕에 부신 눈을 꿈뻑이며 주변을 둘러본다. 들판 이곳저곳 돋아난 파릇파릇한 새순을 흔드는 바람의 끝자락에 달짝지근한 꽃내음이 묻어난다. ‘강호에 봄이 드니 미친 흥이 절로 난다’는 맹사성의 시조가 떠오른다. 시험을 보기 위해 고교시절, 교과서의 시조를 달달 외우던 때에는 몰랐다. 아산의 봄이 이토록 아름다운 줄.

그들이 머문 흔적을 찾아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사적 109호로 지정된 맹사성고택이다. 고택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맹사성의 21대 손이 현재 살고 있는 생가의 대문을 지난다. 700여 년 된 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다. 현존하는 한옥 중 가장 오래된 이 집은 1330년 최영 장군의 부친이 지은 것으로, 이 집이 ‘최영고택’이 아닌 ‘맹사성고택’으로 남은 것은 맹사성이 최영 장군의 손녀사위로 집까지 물려받았기 때문. 이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얽혀 있다. 맹사성이 여섯 살 때, 이웃에 있던 최영 장군 집 배나무에서 놀다가 최영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기가 눌렸을 것을, 맹사성은 태연하게 “어찌 장군께서 이만한 일로 화를 내십니까?”라고 답했다. 어린 맹사성의 배포가 마음에 든 최영은 그를 손서(孫壻)로 삼았다. 최영에게 사람 보는 눈이 있었던 모양인지, 그 후 맹사성은 열아홉에 과거에 장원급제해 고작 스물에 경기도 파주의 군수가 되었고, 이후 재상의 자리에 올랐으며 죽은 후까지 청백리라는 칭송을 들었다.
집에 들어서자 맹사성이 직접 심은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맞아준다. 낙향한 맹사성은 이 나무 아래에서 후학에게 글을 가르치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학문을 토의했다. 은행나무 옆에는 대대로 쌓아온 미덕을 기리는 사당이라는 의미의 세덕사(世德祠)가 있는데, 맹유와 맹희도, 맹사성 세 사람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한 나라의 정승까지 했던 사람의 위패가 있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만큼 소박하고 단정한 건물이다. 오죽하면 맹사성의 집을 찾았던 병조판서가 집에 돌아가 “정승의 집이 그리 소박한데 내게 바깥 행랑채가 필요할까”라며 행랑채를 헐어버렸을까. 세덕사 옆, 맹사성이 기거하던 집 역시 90평방미터 정도의 아담한 규모다. 앞뒤 창문을 다 열면 바람이 거칠 것 없이 통과할 수 있는 구조로, 문을 연 채 방에 누우면 따끈한 봄 햇살과 풍경을 즐길 수 있을 것만 같다.
고택 옆문으로 나선 후 3분 남짓 설아산을 오르면 설화산을 뒤에, 앞에는 배방산을 둔 아늑한 정자 구괴정을 만날 수 있다. 구괴정이라는 이름은 황희와 맹사성, 권진 세 정승이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느티나무 세 그루씩 아홉 그루를 심어서 생긴 이름이다. 이 느티나무는 대부분 죽고, 현재 두 그루만이 쇠받침대 위에 곤한 몸을 뉘이고 있다.
맹사성 고택을 나온 후 현충사를 향한다. 송곡 사거리에서 현충사 진입로까지 약 1.2킬로미터의 은행나무 터널을 지나는데, 양쪽 10미터 높이로 자란 40여년 된 은행나무 수백 그루가 연초록 잎을 틔웠다. 봄에도 아름답지만 가을에 은행잎이 지면 샛노랗게 물들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고 한다.
사적 155호 현충사는 이순신이 전사한지 100년이 지난 뒤, 유생들이 국가에 건의해서 지어졌으며, 현충사라는 이름도 숙종 임금이 직접 지은 것이다. 현충사에는 어린 이순신이 유년기를 보낸 고택과 영정을 모신 사당, 무과를 준비하던 이순신이 활을 쏘며 무예를 익힌 활터 뿐 아니라 난중일기와 사용하던 검까지 만날 수 있다. 이순신의 흔적을 만나는 것도 기꺼운 일이지만, 꽃나무와 연못 사이를 산책하기도 좋다. 안타까운 것은 현충사 경내 이순신의 고택과 임야 등이 현재 경매에 나와 있는 매물이라는 사실이다. 지금은 경매에서 유찰된 상태인데, 다행히도 최근 문화재청이 ‘협의를 통해 매입을 시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자연이 예술이 되는 곳  현충사를 나와 공주 방향으로 향하다 보면, 충청남도 1호 미술관인 당림미술관이 나온다. 1997년 개관한 이곳은 한국미술협회의 이사장과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운영위원장을 역임한 고 이종무 화백이 낙향 후 지은 곳이다. 현재는 화백의 아들인 이경렬 관장이 관리하고 있으며, 동양화와 서양화, 판화와 조각 등 천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 초입에서 한 떼의 오리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오리가 뛰노는 2천 5백여 평방미터의 야외 조각공원 곳곳에 다양한 조각이 눈에 띄는데, 세련된 조각 사이로 서투른 솜씨의 조형물이 눈에 띈다.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당림 어린이 문화학교 아이들의 작품이다. 이외에도 미술관 건물 사잇길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아기자기한 그림과, 곳곳에 전시한 서투른 솜씨의 조형물도 눈에 띈다. 좁은 교실에서 아그리파를 그리는 것도 미술 교육이겠지만 아름다운 전원에서 보고 느끼는 것을 자유롭게 그리는 것이 정말 예술성을 키워준다는 이경렬 관장의 설명을 듣고 나니, 서툰 작품들이 정말 ‘작품’처럼 느껴진다. 만약 어릴 때 이런 교육을 접했다면 나 역시 기자가 아니라 화가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언덕 위의 전시관에서는 이종무 화백의 작품과 소장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니, 청년 시절 화백의 그림이 반가이 맞아준다. 2층에는 죽기 직전까지 화백이 사용하던 작업실을 고스란히 보전해 두었는데, 미완성의 그림과 아직 온기가 남은 것 같은 물건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림을 닦는 걸레 하나까지 치우지 않고 남겨둔 것으로, 이것이 화백을 이해하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이유에서다.
전시관 2층에서 고요한 미술관의 전경을 내려다보며, 언젠가 이곳에서 미술을 배운 아이들 중 하나가 이종무 화백같은 훌륭한 화가로 성장해, 이곳에서 자신의 작품전을 여는 상상을 해본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2006년 7월, 10여년의 준비 끝에 아산만 방조제 인근 7만여 평방미터의 부지 위에 개장한 피나클랜드다. 바람과 물, 빛을 소재로 만들어진 곳으로 ‘피나클’은 산의 최고봉 혹은 최정상이라는 의미다. 이름에 걸맞게 원래 채석장이었던 산이 바람과 물, 빛을 소재로 한 훌륭한 공원이 되었다. 피나클랜드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아기자기한 동상들이 보인다. 피나클랜드의 주인 내외가 세계 각지에서 모은 것으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동화 속 주인공과 동물들까지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많다. 그래서일까, 곳곳에서 조각상과 함께 사진을 찍는 가족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이외에도 피나클랜드에는 염소와 닭, 강아지 등의 짐승에게 직접 먹이를 줄 수 있는 체험장과 자작나무 원목으로 도어 벨과 풍경, 네임판과 거울 등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자작나무 수공예 체험장도 마련되어 있어,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좋을 것 같다.
정상 근처에 바람이 부는 방향을 햇빛 반사광의 움직임으로 느낄 수 있는 높이 8.6미터, 무게 3.6톤의 작품이 있다. 일본의 조형미술가 스스무 신구의 작품으로, ‘태양의 인사(Greetings of the Sun)’라고 한다. 거대한 크기임에도 잠시도 같은 모양으로 남아 있지 않고, 바람이 불 때마다 움직이는 것이 신기하다. 숨이 차지만 조금 더 힘을 내 전망대까지 올라가면,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날씨가 좋을 때는 저 멀리 서해대교까지 볼 수 있다.

---

Information
맹사성 고택
주소 충남 아산시 배방면 중리
문의 맹건식 041-546-3027

당림미술관
주소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산 2-1
개장시간 AM 11:00~PM 6:00(매주 월요일 휴관)
문의 041-543-6969(방문 전 전화 필수)

현충사
주소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 1길 67
개장시간 하절기(3~10월) AM 9:00~PM 6:00
              동절기(11월~2월) AM 9:00~PM 5:00
              (매주 화요일 휴관)
요금 대인 5백 원, 소인(7세 이상 18세 이하) 3백 원
문의 041-539-4600

피나클랜드
주소 충남 아산시 영인면 월산리 45-2
개장시간 AM 10:00~PM 9:00
요금 일반 5천 원, 청소년&군경 4천 원
        어린이(만 36개월 이상) 3천 원
문의 041-534-2580 www.pinnacleland.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