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EAN Eco Marathon
그 여름, 청포대

여전히 시커먼 기름때가 떠올랐다. 은근한 걱정을 떠안고 태안에 내려갔으나 거기에는 무지하고 무심한 시선을 나무라는 넓고 청명한 바다가 있었다. 그 바다에서 어린아이들이 참방참방 뛰어다녔고 넘어졌고 짠 물맛에 놀라고 또 까르르 자지러졌다. 낙조가 타오를 때까지 아이들은 지칠 줄 몰랐다. 그리고 나는 1년 반 만에 그 죽음의 바다가 살아날 줄 정말 몰랐다.

태안은 관광지다. 태안군청에 가격표시제를 신청한 숙박업소만 560여 군대, 총 8개의 행정구역 중 우리가 잘아는 태안읍이나 안면읍을 제외하고도 청포대가 있는 남면에만 400여 개의 숙박시설이 있다. 소규모 펜션은 허가 없이도 지을 수 있으니 통계자료 바깥 쪽에 있는 것까지 합치면 수는 배로 뛸 것이다.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고, 부드러운 갯벌과 개끗한 바닷물이 있어 사람들은 태안으로 향하는 길을 멀게 느끼지 않았다. 숙박업소의 수치는 아마도 그 결과물일 것이다.
2007년 12월. 이 관광지에 12,550리터의 기름이 쏟아졌고 40여 개나 되는 해수욕장이 심각한 수준으로 오염되었다. 향후 5년간 태안앞바다에서 잡힌 생선을 먹거나 자연산 조개를 캐는 일은 불가능할 거라는 말이 떠돌았다. 먹이사슬 가장 아래쪽에 있는 플랑크톤의 자생력도 사라졌다고 했다. 우려는 현실로 다가와 먼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도 기름 냄새가 나서 먹을 수 없었다. 그러나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이 바다에서 사람들은 해수욕을 하고 조개를 캔다. 믿기지 않는 정취를 확인하기 위해 청포대로 갔다. 연인들이 이끌어 안고 가족들이 손 붙잡는 바다, 누구나 기꺼이 뛰어든다는 신선한 바다가 여름을 채우고 있는 풍경으로.

우화가 꿈틀대는 용왕의 바다 청포대는 태안군 남면의 대표 해수욕장이다. 몽상포에서 청포대까지 5킬로미터 길이의 백사장은 서해에서도 아름다운 바닷길로 꼽힌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들을 선별하여 소개한 여행서 '길 위에서 놀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길 걷기, 저자 김화성)'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몽산포에서 청포대 해수욕장으로 이르는 모래밭은 길이가 5km가 넘는다. 축제 땐 10km 단축 마라톤대회가 펼쳐지는 곳이다. 청포대에서 몽산포를 바라보면 아득하다. 바닷물이 빠지는 오후엔 모래밭이 운동장처럼 넓다. 발바닥 감촉도 켜켜이 다르다. 바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모래가 몽글고, 바닥도 단단하다. 밖으로 나올수록 모래는 굵어지고, 발이 푹푹 빠진다.'
책에 묘사된 대로 청포대는 밀물 때는 굵은 모래알이 거친 바다의 면면을 보여주고, 썰물 때는 설탕 같이 고운 모래들로 관광객의 발바닥을 간질인다. 특히 썰물 때는 사방이 뚫려 최상의 놀이터가 된다. 이 때는 조심조심 걸어야 한다. '갯벌의 산소'라 불리는 방게들이 거의 5센티미터 간격으로 빼곡하게 들어 차 있기 때문이다. '야!'하고 소리 지르면 일제히 구멍 속으로 숨는 방게들로 인해 다시금 바다의 청정함은 재확인되었다.
청포대가 유명한 것은 백사장 때문만이 아니다. 조선 후기 우화소설인 '별주부전'의 무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청포대가 위치한 태안군 남면 원청리에는 자라가 토끼를 찾기 위해 발을 디딘 용새골, 토끼가 도망간 노루미재, 자라가 죽어 변했다는 자라바위 등 별주부전과 수궁가에 등장하는 지명들이 그대로 있다. 원청리 사람들은 이 점을 지역 홍보에 적극 활용하여 마을 이름을 별주부로 바꾸고 우화와 관련된 축제들을 진행해 오고 있다. 특히 8월에는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전통 어살문화 축제와 전통 소금 생산 방식인 화렴을 재현한 자염축제가 열려 더욱 가볼 만하다. 또한 매년 음력 정월이면 우화 속 용왕에게 다시는 병환이 찾아오지 않도록 마을의 특산물인 참취나물로 떡을 만들어 용왕제를 지내기도 한다. 용왕이 그 정성에 감복해서일까. 가구수 80채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은 여름마다 관광객들로 북적북적하다.

태안을 살리는 또 하나의 힘, 샌드비스타 마라톤 청포대에서 열리는 여러 이벤트 중 최대의 축제는 바로 '샌드비스타 마라톤' 이다. 에코원 선양과 태안군이 공동 주최하는 이 대회는 살아 숨쉬는 해변에서 맨발로 생태환경을 체험하고 서해안의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자 시작된 것. 올해 대회는 지난 7월 4일, 전국에서 3만 명이 모여든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참가자들은 왕복 8킬로미터의 넓은 해안을 맨발로 걷고 달리며 쾌청한 하늘과 시원한 바다가 주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완주도, 기록도 중요하지 않은 마라톤 대회에서 참가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그저 자연과 하나 되어 자기만의 기쁨을 찾아가는 것뿐이다. 코스 중간중간 어살 체험, 황토머드체험, 열기구 등 주최측이 준비한 갖가지 ㅇ벤트들은 가족 단위 참가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서산에서 온 한 주부는 "청포대 모래가 정말 곱고 바닷물고 개끗해서 놀랐다. 그리고 워낙 놀거리가 많아 달리기에 관심 없는 아이들에게도 참 좋은 대회인 것 같다"고 참가 소감을 전했다. 마라토너들도 즐겁기는 마찬가지다. 보는 이 없는 한산한 피니시 라인이지만 완주자들은 그들만의 기쁨에 젖어있었다. "바다 바람에 땀을 말리며 뛰는 기분은 해 보지 않고는 모를 것", "큰 일을 해낸 것처럼 뿌듯한 마음" 등 8킬로미터의 갯벌을 달린 그들의 소감은 한 없이 밝았다. 저녁이 되자 낙조를 즐기는 음악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선양 뮤직앙상블과 가수 서승희, 사토유키 등이 참여한 노을음악회가 서해의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펼쳐진 것. 따뜻한 저녁 바람에 옷을 말리며 느끼는 감미로운 음악은 관중 모두에게 여름 밤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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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ind Story
태안의 보양식, 박속낙지탕을 찾아가는 여정
당연한 말이지만 다 같은 바닷가마을이라고 다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은 아니다. 철마다 물마다 재료가 달라 토속음식도 참 동네마다 제각각이다. 다른 곳에 비해 충청도 지역은 유명한 먹거리가 부족한데 그나마 태안은 풍부한 해산물이 있어 기대를 했다. 특히 여름은 낙지가 많이 잡히는 철이라 태안 토속음식인 박속낙지탕을 찾아 보기로 했다. 보릿고개 시절 먹을 것이 없어 어촌에서 박 속과 갯벌의 낙지를 넣고 먹던 것이 70년대부터 숙취해소용으로 태안 전역에 널리 퍼졌다고 한다. 국수와 함께 먹어 밀국낙지라고도 불린다.
출발 전 현지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외지인들에게는 몽산포에 있는 음식점이 찾아가기 편할 거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몽산포에는 횟집만 즐비하고 낙지탕집은 보이지 않았다. 동네 주민에게 "밀국낙지 먹으려면 어디로 가야돼요?"라고 하니 "미국 날씨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쉽지 않은 여정이 될거라는 생각에 슈퍼로, 파출소로, 횟집으로 돌아다니다 다시 항구로 가 배 위에 모여 있던 어부들에게 재차 물은 결과 '박속낙지탕은 원북이 원조'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몽산포에서 북쪽으로 2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원북으로 이동했다. 잘 찾아왔다는 듯 마을 입구에 커다란 낙지 모양의 조형물이 서 있다. 1970년대에 처음으로 이 음식을 만들어 팔았다는 원조집으로 들어갔다. 30년이 넘도록 직접 육수를 만들고 낙지는 선별한다는 주인 조 씨는 끝내주는 낙지를 넣기 때문에 박속낙지탕이 여름철 최고의 보양식이라 했다. 박은 8월말에 한꺼번에 나박 썰기를 해 냉동보관 해 두고 쓰는데 얼렸다. 끊여도 쫄깃함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가격은 철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일인당 1만 원선이다.
원북박속낙지탕 041-672-4540/ 원풍식당 041-672-5057/ 원이식관 041-672-5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