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ada O’hara Lake
보석을 찾아 요호국립공원으로      

새벽잠을 박차고 일어나 밖을 힐끔 보았다. 이곳 캘거리의 한여름 날씨는 못난 심술쟁이 같아서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날씨가 맑은 낮에 갑작스레 비가 오는가 하면, 우박이 내릴 때도 종종 있다. 배낭에 간식거리와 지도를 주섬주섬 챙겨 넣고, 곤히 잠들어 있는 집사람에게 입맞춤을 해주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캐나다가 숨겨 놓은 보석 중의 보석, 오하라호수를 가는 날이다.

들뜬 마음으로 어슴푸레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캐나다 대륙 횡단 고속도로를 달렸다. 1시간 정도 지나자 동녘의 하늘이 밝아 왔다. 어느새 캔모아라는 곳에 들어섰다. 로키 산맥 초입에 있는 작은 마을인 캔모아에는 크고 작은 호텔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가장 먼저 로키산맥의 준봉들이 눈에 들어왔다. 세자매봉에 비친 햇살은 서로 인사를 하는 것 같았고,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 양쪽에는 침엽수림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오하라 호수를 향해, 운 좋은 하루
고속도로 중간에 서 있는 아치형의 구름다리를 발견했다. 동물들을 보호하는 모습의 일면이다. 구름다리를 뒤로 하고 밴프 국립공원에 들어서자 매표소가 보였다. 입장료를 내고 국립공원 가이드북 한 권과 영수증을 받았다. 영수증은 운전석 앞 유리창에 부착하란다. ‘땡큐’라고 인사한 뒤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렸는데, 제한속도가 110킬로미터에서 90킬로미터로 바뀌어 있었다. 이것 역시 이곳에 사는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밴프 마을 입구와 세계 10대 절경 중 하나라는 루이스 호수의 레이크 마을을 지나 키킹호스 고개를 넘기 직전,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차를 세웠다. 아침공기는 무척 냉랭했다. 높은 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개울물은 주위의 나무들과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개울물의 색깔은 우유를 몇 방울 떨어트린 것처럼 보였다. 다시 차를 몰았다. 키킹호스 고개가 앨버타주와 BC주의 경계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차는 곧 고개 정상에 닿았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Lake O’hara’라고 쓰인, 이곳이 오하라 호수 입구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 그리 크지 않은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현재 시간은 아침 9시 10분.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금 후, 산 위에서 연한 갈색의 버스 한 대가 내려왔다. 이 버스는 오하라 롯지에서 묵을 사람들만을 태우기 위한 버스였는데, 버스 기사는 이미 오래 전에 예약을 한 사람들이라고 전했다. 나는 좀 더 기다려야 했다. 약 10분 뒤, 두 대의 버스가 내려왔다. 이 때 어디선가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나타나 서성대기 시작했다. 10시 30분 차를 타기 위해 예약한 사람들이었다. 한 쪽에서 공원 관리인이 와서 예약 체크를 하기 시작했다. 난 예약자가 아니어서 관리인에게 대기자 명단에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운 좋게도 첫 번째 명단에 오를 수 있었는데, 얼마를 기다렸을까, 드디어 관리인이 날 호출했다. 당신은 ‘럭키맨’이라며 왕복 버스비를 내란다. 기분 좋게 돈을 내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극히 제한된 인원에 합류되었다는 사실에 무척 기뻤다. 날씨도 좋았다. 관리인이 앞 버스에 타라고 했는데, 스쿨버스를 개조하여 운행하고 있었다. 난생 처음 타는 스쿨버스다. 버스가 산 속으로 들어섰다. 길 양쪽으로는 로키 산맥 특유의 침엽수림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버스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서서히 고도를 높였다. 나무들 사이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차창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오직 아침 햇살에 비친 나무의 검은 형체만이 지나가고 있었다. 25분 쯤 지났을까, 기사가 오하라 호수의 한 귀퉁이에 버스를 세웠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호숫가로 달려갔다. 아, 네가 오하라 호수란 말인가! 호수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호흡이 멈출 것만 같았다. 심호흡을 통해 겨우 마음의 평정을 찾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원시적인 자연을 만나다
해발 2.035미터에 펼쳐진 호수. 4개의 장군-Wiwaxy(2703미터), Mount Huber(3368m), Yukness Mountain(2847m), Mount Shaffer(2692m)- 이 지키고 있는 호수. 캐나다 국립공원에서 유일하게 제한된 인원만을 입장시키는 호수. 이런 호수를 만나려면 운이 좋아야한다. 하늘에 가장 가까이 있는 에콰도르의 낄로또아(2,918미터)와 고지대에 위치한 가장 넓은 페루의 티티카카 호수(3,800미터)도 가보았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호수는 처음이다. 전에 보았던 호수들이 남성미가 넘친다면, 이 호수에는 여성미가 서려있는 것 같다.
마음의 무거운 짐들을 모두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호수에 비춰지는 햇살은 마치 옥구슬을 한데 모아 놓은 듯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호수 위쪽을 보니 어마어마한 바위산들이 수억 년 전의 빙하를 이고 있었는데 빙하에서 녹은 물은 산 계곡 사이로 흘러들고 있었다. 오하라 호수에 이름을 붙이면 ‘빙하의 눈물 호수’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의 문명은 빙하가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호수에 비치는, 빙하를 인 바위산과 주위의 나무들은 마치 엽서에 나오는 그림 같았다. 아니, 직접 마주 대하니 더 아름다웠다. 주위에 펼쳐진 원시림과 이끼, 들풀과 들꽃들은 나를 원시시대로 데려다 논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게 했다. 아직 우리 인간의 발길이 미치지 못해 오염이 덜 된 까닭일까.
호수 건너편에는 나무 숲속에 가지런히 둥지를 틀고 있는 통나무집들이 보였다. 나보다 먼저 호수에 올라온 사람들이 묵을 오두막집이었다. 이 오두막집은 무조건 이틀 밤 이상 숙박해야 하는데 하루에 커플 당 500 달러가 넘는 돈을 받으니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이다. 호수 주변을 산책하면서 몇몇 사람들과 마주쳤는데,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캘거리에 사는 어떤 사람은 이곳에 25번이나 왔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모습은 달라도 생각하는 공통분모가 있음은 확실했다. 이 호수가 무척 좋다는 것을 억누를 수 없다는 감정 표출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와, 멋지다’라는 말을 무척 많이 했다. 아마도 그들은 세상 번뇌의 포로에서 해방되었으리라. 아니, 새로운 로키 에너지를 충전했으리라.

최고의 경치, 타카카우 폭포
오하라 호수 가까이에 있는 메리 호수로 발길을 돌렸다. 메리 호수는 마치 다소곳한 모습을 한 아낙네 같았다. 모진 풍파를 오랫동안 감내하며 오직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리네 어머니와 같다고 할까. 시간 관계상 여러 호수를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찾아간 곳은 타카카우 폭포. 키킹호스 고개를 넘자 우측으로 표지판이 있었는데 가는 길은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였다. 하지만 비탈진 언덕길 한 구간은 지나가기 무척 어려웠는데 승용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버스는 스위치백(한 번은 운전 방향, 다음은 반대 방향으로 번갈아가면서 오르내리는 방식) 운행을 했다. 차는 마침내 타카카우 폭포 가까이에 이르렀는데, 이곳이 타카카우 폭포라고 말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서 물이 쏟아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차를 주차하고 폭포 밑으로 접근을 시도했다. 이 폭포는 밸포어 산과 댈리 산, 닐스 산에 걸쳐 있는 대빙원의 빙하에서 녹은 엄청난 양의 물이 로키의 바위산과 만나 빚어내는 작품이다. 폭포 물은 왑타대빙원에서 흘러내리는 요호강과 합류하고 있었는데, 폭포 밑에서 올려다 본 경치는 정말로 장관이었다. 폭포 소리는 마치 천지가 진동하는 것 같았고, 물에서 나오는 시원한 냉기는 한낮의 땡볕에 달궈졌던 몸을 순식간에 식혀주기에 충분했다.
오늘 여행의 종착지는 에메랄드 호수다. 호수는 말 그대로 옥색을 띠고 있었는데, 건너편으로는 우뚝 솟아 있는 카나본산이 보였고, 침엽수림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호수 입구에 멋있게 지어놓은 통나무집과 아름다운 호수에서 카누를 즐기는 아름다운 연인들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무 그늘에 앉아 그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 에메랄드 호수를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해는 나와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었다. 해가 서쪽 하늘에서 로키 산맥에 걸렸을 때쯤, 6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유명 아이스크림 집에 들러 블루베리 아이스크림으로 오늘 하루를 마감했다. 오늘은 몸도 영혼도 즐거운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