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er and Higher
정상을 향한 오름짓, 그 짜릿한 쾌감

몇 시간이 지난 지금도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내일이면 틀림없이 근육통을 호소하리라. 아주 잠깐의 체험에도 이럴진대, 저들은 어떻게 몇 시간씩 벽에 매달려 있는 걸까? 이유를 묻자 단순한 답이 돌아온다. 재미있어서, 성취감 때문에, 몸의 균형과 건강은 덤으로 얻을 수 있으니까. 스포츠 클라이밍의 매력은 도전하지 않는 자는 결코 느낄 수 없다.

높이가 12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인공암벽. 곳곳에 설치된 홀드(손으로 잡는 돌출물)를 맨손으로 잡고 스탠스(발로 딛는 돌출물)에 발을 과감히 옮기며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팔뚝에 근육은 힘을 받아 불끈 솟아오르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중간쯤 올라 무게중심을 옮기며 다시 한번 팔을 쭉 뻗다가 그만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아뿔싸. 온몸에 힘이 빠졌을 법도 한데 두 손을 툭툭 털더니 다시 벽에 매달린다. 오르려고 하는 몸짓은 인간의 본능이라더니 그는 본능에 충실한 걸까? 하지만, 이내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암벽을 오르는 까닭
“저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인내심 테스트 같기도 하고요. 며칠 동안 안되던 루트를 몇 번씩 도전해 정복했을 때의 그 기분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 그러지 말고 직접 해보시는 게 어떠세요?”
서울 성동구의 K2클라이밍휘트니스 센터의 실내 스포츠 클라이밍장에서 만난 40대 여성회원은 3년 전 우연히 지인을 따라 실외암벽등반을 했다가 그 매력에 푹 빠졌다고 고백하며 기자를 암벽 앞으로 이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동기는 다양하다. 북한산의 숨은 명소를 찾다가 시작한 사람도 있었고, 건강을 위해 운동 삼아 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힘들게 정상에 오를 땐 그만두고 싶지만 내려올 때의 짜릿함 때문에 스포츠 클라이밍을 외면할 수 없다는 이도 있었다.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루트에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과 새로운 길을 발견했을 때의 쾌감이 스포츠 클라이밍에 빠져드는 가장 큰 이유라고.
스포츠 클라이밍은 건물 내부와 외벽에 암벽을 만들어 놓고 파인 홈이나 홀드, 스탠스 등을 부착한 뒤 바위를 오르는 운동으로, 1940년 프랑스 산악 가이드에 의해 산악인들의 훈련용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988년 서울에 인공암벽이 설치되면서 도입되었는데, 자연 암벽등반에 비해 안전할 뿐 아니라 실내 인공암벽등반의 경우 날씨와 계절에 관계없이 즐길 수 있어 스릴 넘치는 익스트림 스포츠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날씬한 몸매와 강인한 체력을 원하십니까?
K2클라이밍휘트니스 센터에는 리드 클라이밍(Lead Climbing)과 볼더링(Bouldering)을 위한 두 개의 스포츠 클라이밍장이 마련되어 있다. 지상의 확보자가 로프로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등반자가 10미터 이상의 암벽을 오르는 것을 리드 클라이밍, 로프 없이 4미터 정도의 낮은 암벽을 오르는 것을 볼더링이라고 하는데, 리드 클라이밍의 경우는 최소 4개월 이상의 훈련이 필요하지만, 볼더링은 편안한 복장과 암벽화와 미끄럼 방지를 위한 초크, 초크백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
먼저 볼더링장에 들어서자 맨손으로 홀더를 잡고 성큼성큼 벽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벽에는 흰색,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등 다양한 색깔의 크고 작은 홀드가 붙어 있는데 이는 다양한 루트를 위한 것으로 실력에 따라 난이도를 조절하며 즐길 수 있다. 한 걸음 떨어져서 볼 때는 가뿐히 오르는 것 같아 한번 체험해 볼 요량으로 초보자 코스에 도전했다. 그런데 웬걸? 홀더를 잡고 막상 오르려고 하자 마치 수십 미터의 암벽을 오르는 처럼 두려움이 느껴지고 손가락 끝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바닥에 두께 30센티미터의 매트가 깔려 있어 떨어져도 안전하다지만 어쩔 수 없는 본능 때문인지, 떨어지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계속된다. 그렇게 전문가의 코치에 따라 오른발을 딛고 오른손을, 왼손을 이동한 후 왼발을 옮겨가자 잠깐인데도 손끝에서 발끝까지 모든 근육이 땅겨지는 느낌과 함께 온몸에 땀이 배어난다.
겉으로 보기에는 손가락과 팔심으로 버티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포츠 클라이밍은 손과 발을 기준으로 삼각형을 만들어 온몸의 관절과 근육을 골고루 사용해 원하는 방향으로 몸의 중심을 이동하는 운동이다. 그래서 스포츠 클라이밍을 하다 보면 쓰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게 돼 다이어트 효과는 물론 탄력 있는 몸매를 가꿀 수 있다고 한다(실제 스포츠 클라이밍장에는 살찐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또한 근력과 균형감각, 지구력, 순발력, 유연성 등을 고루 발달시켜 주고 숙제를 풀 듯 한 단계 한 단계 정복해가는 동안 빠른 판단력과 연산력도 기를 수 있다. 신체적인 향상도 물론이지만, 스포츠 클라이밍팀 이창현 팀장은 ‘집중력 향상’을 스포츠 클라이밍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다. 아무 생각 없이 등반에만 몰입하다 보면 집중력이 높아지고 스트레스도 풀리며, 그렇게 도전을 끝냈을 때의 성취감과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포츠 클라이밍, 그 매력적인 세계
앞서 말했듯이 리드 클라이밍은 지상에서 줄을 잡고 있는 확보자와 암벽을 오르는 등반자의 호흡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종목으로, 확보자를 믿지 않으면 암벽을 오를 수 없고, 또 내가 확보자가 되었을 때는 다른 사람의 안전이 내 손에 달렸기 때문에 사명감이 생겨 파트너쉽을 기르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리드 클라이밍을 하려면 암벽화와 초크, 초크백 외에도 로프와 카라비너(Carabiner, 등반 시 확보물과 볼트에 사용되며 로프를 통과시킬 수 있게 개폐구가 있는 금속고리), 확보기 등이 필요하다. 확보자는 확보기에 로프를 걸고 등반자의 모든 상황을 관리하며 추락에 대처하고, 등반자는 로프를 몸에 감고 중간 중간 걸려 있는 퀵드로우(Quick Draw, 두 개의 카라비너를 단단한 섬유로 연결한 장비)에 로프를 걸면서 차근차근 올라간다. 90도 각도의 수직벽에서 시작해 위로 올라갈수록 120도, 135도로 경사가 점차 심해지더니 마침내 높이 12미터, 180도 각도의 천장에 매달린 모습을 보자 절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온다.
도전정신을 갖고 스스로 정한 목표 달성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하는 스포츠 클라이밍. 맨손으로 벽을 오르는 그 짜릿한 스릴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성취감을 맛보고 싶다면 도전하라.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만물이 소생하는 대자연을 만끽하며 깎아지른 암벽을 오르는 더 큰 쾌감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