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joy a Balmy Spring Day
경마장에서 만난 봄날의 행복

갖가지 만들기를 하며 아이들은 신이 나서 재잘거리고, 아빠, 엄마는 곁에서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 짓는다. 간간이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역동적인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고 이에 환호하는 이들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의 어느 주말, 경마공원에서는 그렇게 온 가족이 즐겁다.

완연한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벚꽃이 한창이던 4월 중순, 남도에서 올라오는 각종 축제 소식에 엉덩이가 들썩였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 달려가고 싶지만 주말 스케줄이 발목이 잡혀 옴짝달싹 못하고 안타까워하던 기자에게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으니, 바로 서울 근교 경마공원에서 열리는 ‘새봄맞이 대축제’ 소식이다. 혹시 아직도 경마공원 하면 사행성 가득한 경마의 부정적인 이미지만 떠올리는가? 그렇다면 지금부터 기자가 만나고 온 이곳의 다양한 즐거움과 봄의 향기를 만나보시라. 아이들의 보챔에 어디로 가야 할까 주말마다 나들이 장소를 선정하느라 머리를 싸매던 고민이 일순간에 사라질 테니 말이다.

온 가족, 경마장에서 놀자?! 2년 전쯤이었을 게다. 경마공원에 놀러 가자는 친구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고 “거긴 왜?”라고 되물었었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중 누군가도 가족을 위한 레저공간으로 경마공원을 소개하는 기자를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을 게 분명하다. 적당한 선을 지키지 못하고 지나치게 경마에 빠져든 이들로 인해 경마공원 하면 좋지 않은 그림이 먼저 그려지는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편리한 대중교통, 드넓은 장소, 다양한 즐길거리, 그리고 북적이지 않는 여유까지. 그날 기자가 만난 서울경마공원은 가족 나들이를 위한 ‘꽤 괜찮은’ 장소였고, 이미 도심 속 휴식과 레저공간으로 거듭난 지 오래다. 그리고 매년 봄이면 이곳에서 열리는 ‘새봄맞이 축제’는 교통체증을 감수하며 멀리 떠나지 않아도,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인파에 치이지 않아도 온 가족이 완연한 봄을 느끼며 봄 축제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올해의 ‘새봄맞이 축제’는 지난 4월 10일부터 18일까지, 매주 주말 4일간 열렸다. 지하철 4호선 경마공원 역에 내려 사람들의 뒤를 따라 공원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길 양쪽으로 만발한 왕벚나무가 우리를 반긴다. 1킬로미터 가까이 늘어선 벚나무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의 화려함이라니. 유난히 길었던 겨울의 추위는 어느새 까마득한 과거가 되어 버린다. 벚꽃 나무 아래를 걸으며 한참 봄기운에 취해 있는데, 어디선가 말발굽 소리에 들려온다. 가족, 연인을 태운 꽃마차가 달리는 소리다. 마차에 탄 사람들은 봄날의 정취를 만끽하느라 마냥 즐거운 모습이고, 이들을 향해 낯선 이들의 카메라 세례가 이어진다. 공원 안으로 들어서자 팬지, 튤립 등 화사한 봄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며 환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그 앞에 발길을 멈춘 이들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봄날의 여유가 한가득 따사로운 봄날 햇살의 상쾌함만큼이나 기분 좋은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봄맞이 축제장을 기웃거리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다.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의 훌라후프 대회가 열렸는데, 의욕 넘치는 꼬마들은 이곳에 다 모였는지 20여 명씩 몇 조를 나눠도 아이들의 훌라후프 도전은 멈출 줄 모른다. 아빠, 엄마는 경기에 나선 아이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혹시 중간에 훌라후프를 떨어뜨려 탈락해도 아이들은 그저 즐겁다. 훌라후프를 돌리는 도중 머리 위로 손을 올리고 박수를 쳐도, 오른쪽으로 돌아도, 한 발을 들어도, 그 작은 몸으로 자기 키 만한 훌라후프를 떨어뜨리지도 않고 어찌나 잘 돌리던지, 훌라후프 돌리기엔 영 재주가 없는 기자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다른 쪽에서는 바람개비 만들기, 벚꽃 열쇠고리 만들기, 천연비누 만들기, 패션페인팅 등 다양한 체험에 빠진 아이들이 저마다 자신의 솜씨를 뽐내기에 한창이다. 자기가 만든 비누가 빨리 마르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차근차근 동생에게 일러주며 바람개비를 만들고 있는 의좋은 자매도 보인다. 전통민속놀이 체험장도 아이들로 북적인다. 특히 투호(投壺)놀이에 열심이었는데, 알고 보니 10개의 화살 중에서 5개를 넣으면 선물을 준단다. 혹시나 하고 연습 삼아 화살을 던지고 있는데, 한 아이가 다가와 “아까 우리 아빠는 5개 넣어서 선물 받았는데….”라며 은근히 자랑한다. 5개는커녕 1개도 못 넣은 기자의 실력이 민망해서, 그 아이의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이 터진다.

말과의 교감이 주는 설렘 축제기간에만 즐길거리가 가득한 것이 아니다. 경마공원에서는 언제든 돗자리, 자전거, 인라인 스케이트 등을 무료로 대여할 수 있는데, 이는 다시 말하면 돗자리를 펴고 가족과 함께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잔디가, 아이들이 자전거와 인라인 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뜻. 또한, 여름에는 배 모양으로 된 페달을 돌리면서 물을 가르는 워터 바이크를 운영하며 각종 야생화와 다양한 모습의 토피어리 작품이 자리한 무지개 정원과 야생화 정원, 가족토피어리원 등 휴식을 위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4천 제곱미터 규모의 장미원에 피어난 총 64종, 7천여 본의 장미꽃도 볼거리. 상설체험관에서는 도예체험이나 비누 만들기 등의 체험이 준비되어 있다.
말이 있는 레저공간인 만큼 가까이서 말을 접할 기회도 주어진다. 특히 인기 있는 곳이 어린이 승마장인데, 잠깐이지만 직접 말을 타고 트랙을 도는 승마체험을 할 수 있어 부모님의 손을 잡은 아이들로 북적인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단순한, 잠깐의 체험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직접 말과 교감할 수 있는 설레는 경험인가보다. 긴장된 표정으로 말의 안장에 올랐던 아이들은 안장에서 내리면 누구 하나 빠짐없이 얼굴 가득 성취감을 안고서 엄마에게 달려가니 말이다. 이 밖에도 직접 먹이를 주고 말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말 전시장이 있으며 시뮬레이션을 통해 승마와 경마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관도 있다.

힘찬 질주, 짜릿한 승부의 순간 경마공원을 다양한 볼거리를 즐기다 보면 간간이 경마 경기가 벌어지는 광경이 펼쳐진다. 흙바람을 일으키며 정상을 향해 힘차게 질주하는 말과 기수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데, 경마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적당히 즐길 줄 안다면 경마공원은 더욱 즐거운 장이 된다. 경주는 보통 30분마다 한 번씩 있다. 총 12마리의 말 중 1등을 할 것 같은 말에 걸거나 1등부터 3등까지 차례로 거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배팅은 100원부터 가능하니, 일확천금을 노리고 무리하게 배팅하지 않는 이상, 적은 돈으로 박진감 넘치는 레저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배팅한 말이 1등으로 결승점을 통과하는 행운을 누린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한꺼번에 힘차게 내달리는 말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배팅한 말을 있는 힘껏 응원하다 보면 어느새 스트레스가 저만치 달아난다.
나들이라는 말은 어쩐지 봄이라는 계절과 가장 잘 어울린다. 따사로운 햇살이 야외에서 즐기기에 더 없이 행복하게 해주니 말이다. 언제부턴가 점점 짧아지고 있는 봄날씨가 아쉽지만 하다. 태양이 더 뜨거워지기 전, 주말을 이용해 가까운 경마공원으로 가족과 함께 소풍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지금이 바로, 단돈 8백 원으로 가족의 행복을 잡을 수 있는 기회이니 말이다.

서울경마공원
교통 지하철 4호선 서울경마공원 역 하차, 양재에서 매주 금~일요일, 영등포에서 매주 토, 일요일(6월 27일까지)에 셔틀버스 운행
입장시간 금요일 오전 10시 30분, 토,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입장료 경마일 8백 원, 비경마일 무료
문의 1566-3333 www.kr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