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en to the Wind
오토 캠핑 족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과거 인디언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말을 타고 달리며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현재 인디언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정신만큼은 누군가를 통해 여전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달라진게 있다면 그 누군가는 말 대신 캠핑카를 타고 달린다는 것.   

이날 가평으로 가는 길은 유난히 멀었다. 연일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던 봄 날, 유난히 따뜻했던 주말의 햇살이 수많은 인파를 교외로 인도했기 때문. 서울에서 1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를 배가 걸려 도착하니 기운이 쭉 빠진다. 엉거주춤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기분 좋은 바람이 파란 하늘을 훑고 지나간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 그렇게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오토캠핑의 하루를 시작했다.

잘 생긴 호수와 잠자는 토끼 지난 5월, 가평 자라 섬에서 2박3일 동안 부엉이 패밀리 오토캠핑 대회가 열렸다. 이번 행사에는 전국 오토캠핑 동호인 4백 가족 2천여 명이 인디언이라는 주제로 다양하게 준비된 프로그램에 참여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의 인디언 인사말 ‘미타쿠예 오야신’을 메인 프로그램으로 낮 동안 인디언 식 이름 짓기, 페이스 페인팅, 인디언 패션쇼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그 중에서도 페이스 페인팅이 가장 인기다. 목을 길게 빼고 빤짝이는 눈으로 순서를 기다리는 꼬마가 귀여워 다가가 이름을 물어보니 잘 생긴 호수라고 대답한다. 순간 당황해 사 차원 꼬마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 옆에 있던 친구가 자기는 잠자는 토끼라고 얼른 대답한다. 얼굴이 마시멜로우 인형을 닮아 별명쯤으로 생각했는데 좀 전에 인디언 식 이름 짓기 행사에서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알고 보니 본인의 인디언 이름을 말해주면 그에 어울리는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고 있었던 것. 잘생긴 호수와 잠자는 토끼라... 곱씹을수록 괜찮은 이름이다.

자연과 치유의 콘서트 선선한 바람이부는 저녁이 되자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은 캠핑 족이 자라 섬에 와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을 피해 텐트 안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레져 등 어디선가 취미를 즐기던 사람들이 저녁이 되자 캠핑장으로 돌아와 삼삼오오 야외에 모여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 그때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자연의 소리로 만들었다는 인디언 전통 음악. 듣는 동안 슬픔을 정화 시켜주고 기쁨을 느끼게 해준다는 이 음악은 마치 바람소리 같았다.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선율을 타고 한 두 명씩 캠핑장에 있는 야외무대로 모여들었다. 그렇게 이번 캠핑의 하이라이트인 자연과 치유의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인디언 문화 밴드 아파치의 공연을 시작으로 신이 인간에게 준 악기인 목소리를 이용해 별의 별 소리를 다 내는 아카펠라 그룹 보이쳐의 공연까지. 그렇게 2시간여 동안 캠핑장의 저녁은 아름다운 선율을 실어 나르는 바람소리로 분주했다. 과연 이 음악을 들은 사람들은 치유를 받았을까? 캠핑장의 축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우리는 한 가족, 낙오자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아보지만 각자의 기호가 달라 의견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저 주말에는 집에서 뒹굴 거리며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최고라고 말하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역시 휴일에는 레져 활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지런한 가족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각자 취미를 즐기기 위해 필요한 장비들을 차에 차곡차곡 싣고 (친구와 놀고 싶다면 친구를 차에 실으면 된다) 오토캠핑 떠나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이렇게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이유는 이번 여행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오토캠핑을 즐기는 가족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음악이나 라디오를 틀어놓고 해먹에 누워 낮잠을 자는 엄마, 야구던지기를 하는 아빠와 아들, 강아지와 산책하는 할머니,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며 단어 맞추기를 하는 가족, 대형 스크린을 가져와 영화를 보는 가족 등. 불가능한 것 빼고 원하는 것은 모두 할 수 있어 보였다. 또, 저녁에는 다같이 모여 지글지글 고기를 구워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토캠핑의 가장 큰 장점은 야외에 집을 하나 짓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갓난 아기부터 몸이 불편한 노부모까지 모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즉, 낙오자 없이 가족이 다 함께 떠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자 꼬마아이가 요술공주가 그려진 예쁜 자전거를 타고 돌돌 굴러 가는 것을 보니 문득 오토 캠핑을 즐기는 부모를 둔 아이는 축복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요즘같이 자연 속에서 뛰어 놀 기회를 박탈당한 채 도심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더 없이 좋은 경험이기 때문이다. 또, 늘 바쁘던 엄마 아빠와 함께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보내는 캠핑 시간은 어린 시절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이웃을 위한 뜨거운 불씨 하나 저녁에 텐트 사이를 걷다가 문득 의문이 생겼다. 왜 아무도 쬐지 않는 불을 화로에 피워 놓았을까. 전등이 켜있는걸 보니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기 위한 용도는 아닌 것 같고… 그렇게 우두커니 서있는데 텐트 주인이 마음을 읽었는지 다가와 말을 건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추울 때 와서 불을 쬐라고 항상 켜놓는 거라고 한다. 덧붙여 회원 중에 한 명은 매 번 캠핑을 떠날 때 마다 2미터짜리 대형 스크린에 영화를 상영하고, 또 다른 회원은 직접 커피를 내려 이웃 캠퍼들에게 나눠 준다고. 이것은 캠핑장의 룰 같은 개념이 아니라 자신이 원해서 스스로 자처하는 이웃을 위한 암묵적인 배려라고 한다. 이로써 낮에 보았던, 낙천적으로 방치되어있던 텐트(모두 나가고 텅 빈,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에 대한 궁금증까지 한꺼번에 해결되었다. 오토 캠핑 족의 기본 정신은 이웃에 대한 배려와 넉넉한 인심이었다. 그렇게 활활 타오르는 불을 쬐며 들어와서 같이 식사 하라고 말하는 텐트 주인의 권유를 기분 좋게 거절하며, 가슴 한 켠이 따듯해 지는 걸 느꼈다. 

오토캠핑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 솔직히 말하건데 오토캠핑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는 단지 텐트와 취사도구 따위를 차에 싣고 야외로 나가 하루 밤 보내는 것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요즘은 오토캠핑을 즐기는 방법이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한 곳에 베이스 캠프를 마련하고 자연 속에서 마음껏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이 기본자세. 그런데 그 마음껏의 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낚시, 등산, 하이킹은 기본이요 카누, 카약, 다이빙까지. 산 따라 강 따라 제각각 무한대이다. 이 날은 자라 섬을 끼고 흐르는 북한강에서 유유히 카누를 즐기고 있는 오토 카누 족을 만날 수 있었다. 새벽에 물안개를 헤치며 강을 따라 유유히 흐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는 낭만적인 말을 들으면서도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큰 카누를 어떻게 가지고 다닐까? 정답은 자동차 뒤에 화물칸을 연결해 운반하는 것이란다. 그렇다면 카누를 하기 위한 오토캠핑이냐고 묻자 그 반대라고 한다. 카누는 일시적인 취미일 뿐이라고. 카누가 질리면 또 다른 취미를 찾으면 되지만 오토캠핑은 변함없이 계속된다고. 즉, 카누가 한 여름에 비를 몰고 오는 마파람이라면 오토캠핑은 사계절 내내 이른 아침 동쪽에서 불어오는 샛바람인 것이다.

자라섬 오토 캠핑장
캠핑개장시간
하절기(4~10월) 오전 9:00 ~ 오후 10:00
동절기(11~3월) 오전 9:00 ~ 오후 9:00
주소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 산7번지
문의 031-580-2700 www.jarasum.gp.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