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ly on a Windy day
바람 부는 날에

카이트보딩을 처음 알게 됐을 때 욕심쟁이의 스포츠가 아닐까 생각했다. 예상이 맞았다. 그들은 욕심쟁이였다. 하늘을 날 수도 있고, 물살을 가를 수도 있으니 이보다 좋은 게 어디 있냐며 입을 모아 말했다. 그리고 그날, 기자는 한강에서 보았다. 윈드서핑을 타고 있는 사람들의 눈길이 하늘을 나는 카이트로 향하고 있던 것을. 인간은 정말 욕심쟁이인가보다.    

바람아 불어다오. 한강에 있는 카이트보딩 클럽을 취재하기로 결정하고 꼬박 2주를 기다렸다. 내내 화창했던 날씨가 갑자기 이상해졌기 때문이다. 약속을 잡자 비가 내렸고, 비가 그치자 바람이 불지 않았다. 자연현상에 이렇게 집중해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매일아침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바람을 확인하고 ‘음, 이정도 바람이면 되겠군.’ 뭐라도 아는 것처럼 굴었다. 바람은 1시 이후에나 불기 시작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지만, 기자는 이미 그때부터 카이트보딩에 중독된 것 같다. 마감을 넘긴 그때, 한강에서 연락이 왔다. ‘이번 일요일에 바람이 붑니다.’

기다림의 미학 일요일 오후 2시. 모처럼 맑게 갠 날씨에 한강은 나들이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근데, 어라? 강 위에는 윈드서핑만 한 가득, 카이트는 보이지 않는다. 불안한 마음에 클럽사무실로 달려가니 사장님은 식사 중, 회원들은 수다 중, 그중 몇몇은 취침중이다. 바람이 불지 않아 모두 때를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은 기자 혼자뿐, 다들 이상하리만큼 여유롭다. 무작정 바람을 기다리다가 클럽 회원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누군가의 한마디. “카이트보딩은 기다림의 미학이죠” 적당한 날씨를 기다려본 경험이 있는지라 그 말을 십분 이해하긴 했지만, 익스트림 스포츠의 마니아가 질주하는 스피드가 아닌 기다림의 미학을 즐긴다니 의외였다.
카이트보딩은 서핑마니아들이 파도 없이도 서핑을 할 수 없는 방법을 찾다 개발한 스포츠다. 그 역사는 20년이 채 되지 않았으며 한국에 들어온 지도 이제 겨우 10년. 동호인 역시 300여명으로 이름을 대면 누가누군지 다 알 정도란다. 카이트보딩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패러글라이딩 더하기 서핑보드. 패러글라이딩을 닮은 카이트(연)를 공중에 띄우고 줄로 연결해서 보드를 끌고 가는 방식이다.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은 오로지 카이트이기 때문에 바람은 이 스포츠를 즐기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회원들에게 카이트보딩에 관한 이모저모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웅성거린다. “바람이 온다. 다들 나갈 준비하자” 라이딩을 할 수 있는 최소 3m/s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때가 오후 4시였으니 2시간은 기다린 셈이다.  

바람과의 연애, 밀고 당기기 다들 바람을 기다리던 때와는 사뭇 달랐다. 땅에서도 이미 몸이 반쯤 뜬 것처럼 가볍게 걸어 다녔다. 실제로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이들도 있었으니, 마치 그녀를 만나러 가는 100미터 전의 모습이랄까. (그날 카이트보딩을 타는 사람들은 모두 남자였다.) 워터스타트를 하려면 적당한 바람이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카이트를 띄워줘야 하기 때문에 모두들 수트 위에 하니스(라이프자켓)를 입고 한 손에는 보드를, 다른 한 손에는 콘트롤바(조종장치)를 들고 차례를 기다렸다. 맨 처음, 클럽에서 제일 어린 친구가 라이딩에 나섰다. 잔디위에 펼쳐놓았던 카이트를 천천히 띄운 뒤 물에 풍덩 뛰어들었다. 휑하고 큰 바람이 부는 순간, 바람을 머금은 카이트가 하늘로 오르고 물속에 가라앉아있던 보드와 몸이 순식간에 물 위로 치솟는다. 콘트롤바를 몇 번 움직이니 이내 한강의 잔잔한 물살을 쏴아 가르며 질주한다. ‘기다린 보람’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 적절한 순간이었다. 강한 바람이 아니라서 비행에 가까운 큰 점프나 곡예는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꽤나 높이 점프를 하고 보드를 낀 다리를 뻗어 공중을 내달렸다. 보는 기자도 입을 다물 수 없을 만큼 짜릿한데 타는 사람은 오죽할까. 시간이 흐르자 카이트의 개수가 하나둘씩 늘어났다. 서울의 빌딩을 배경으로 하늘을 나는 카이트와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는 보드는 더운 날씨와 마감에 지친 머릿속을 달래주었다. 그런데, 가만 보자. 바람을 밀고 당기는 모습이 꼭 바람하고 연애하는 모양이다. 바람이 나쁘면 카이트가 방향을 잃기도 하고, 바람이 좋으면 하늘을 훨훨 날기도 하고. 바람의 상태에 따라 적절하게 밀고 당겨야 제대로 탈 수 있다. 카이트보딩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기술은 기다림과 밀고 당기기, 바로 연애의 기술인 것이다. 밀고 당기기에 성공하면 사랑을 얻고, 실패하면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무서운 중독, 추천하지 않는다 다들 하나같이 카이트보딩의 칭찬만 늘어놓을 뿐 한번 배워보라는 권유를 하지 않는다. 대부분 좋아하는 것을 남에게 추천하지 않던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중독성 때문에 추천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도 아주 무서운 중독성. 카이트보딩은 다른 스포츠와 다르게 마음만 먹으면 탈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다. 여유가 있어서 타려고 해도 바람이 없으면 탈 수가 없고, 타는 중에도 바람이 사라지면 그만두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카이트보딩을 시작하면 여기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의사의 직업을 가진 한 회원은 환자를 진료하는 중에도 창문이 바람에 흔들리면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한다. 결국 병원 문을 닫고 한강으로 달려오는 일이 다반사라고. 이런저런 이유로 풍경이니 맑은 물이니 따질 것 없이 바람만 불면 한강이 무조건 최고라고 말하는 사람들. 무서운 중독이라며 권유하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는 이미 귓전 밖인 듯하다. 기자는 오늘도 일기예보를 검색했다. 4m/s. ‘음, 이정도 바람이면 꽤 탈만하군.’ 무서운 중독의 시작이다.  

하이윈드 카이트보딩클럽
주소 서울시 광진구 자양동 제방 704 서울윈드서핑 연합회 29호
교육비 1일 3시간 15만원(기본 4일 코스 기준, 장비 렌탈요금 포함)
문의 02-455-6761 www.hiwin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