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서울로 빈티지 여행을 떠나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인 J씨는 얼마 전 뉴욕 브루클린에 사는 친구 집에 머물며 빈티지의 매력에 푹 빠졌다. 낡은 건물을 개조한 친구의 집에는 오래된 가구와 현대적인 소품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길거리에는 빈티지 옷과 액세서리를 매치한 사람들이 개성을 뽐내며 걸어 다니고 있었다. 특히 우연히 들른 빈티지 숍에서 유난히 작은 발을 가진 J씨에게 딱 맞는 부츠를 발견했을 때의 희열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 후 한국에 돌아온 J씨는 서울에서 빈티지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세월에 의해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된, 서울에만 존재하는, 단 하나의 아이템을 찾아서.

10:00AM 세상에 하나뿐인 가구, 에이치포엠
주로 집에서 일러스트 작업을 많이 하는 J씨는 원목으로 만든 빈티지 테이블과 책장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하남에 있는 에이치포엠을 찾았다. 에이치포엠은 에코 리사이클(Eco-recycle)이라는 컨셉으로 세계 각국에서 산 빈티지 가구, 소품들과 함께 말레이시아 등의 해안가에 있는 마을의 주택 외장으로 사용되던 목재를 가공해, 자체 디자인한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이다. 얼마 전에 들른 삼청동 한 카페의 빈티지 인테리어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 물어물어 알게 된 이곳은 인터넷으로도 제품 구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빈티지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물건이고, 그만큼 자신의 것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J씨는 눈으로 직접 보고 구매하고 싶었다.
일러스트레이터답게 원하는 스타일을 직접 그려간 J씨는 우선 사무실에서 상담을 받고, 알맞은 제품이 있다는 소식에 신이나 옆에 있는 창고로 갔다. 어두침침한 창고 안에는 테이블을 비롯해 쇼 케이스, 캐비넷, 의자 등 빈티지 가구부터 문짝과 창문 프레임까지 수많은 물건으로 빼곡히 차 있었다. 천천히 살펴보던 J씨는 자기 방의 올리브색 벽과 너무나 잘 어울 것 같은 테이블을 발견했다. 팔꿈치가 많이 닿았는지 모서리 부분이 자연스럽게 바랜 것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또 고풍스러운 느낌의 화이트 빈티지 문짝을 발견했지만 3미터가 훨씬 넘어 방에 설치할 곳이 마땅치 않겠다고 생각했다. 빈티지 제품은 아무리 예뻐도 자기에게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선택된 제품은 더욱 값지다. 비록 자신이 데려갈 수는 없지만, 하루빨리 문짝이 좋은 주인을 만나길 바라는 오지랖 넓은 J씨다. 결국, J씨는 테이블과 스페인의 어느 마을에서 꽤 유명하다는 화가가 그린 유화 병을 구입했다. 책장은 다음에 구입하기로 했다. 월 초나 월 말에 한 번 에이치포엠의 홈페이지에 새로운 물건 입고공지가 뜬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언젠가는 마음에 꼭 드는 책장을 구입하리라 생각하는 J씨다.

홈페이지 www.h-poem.com
전화번호 02-400-2071

1:00PM 빈티지와 한국 전통미의 공존, 카페 에밀‘s
아침부터 하남까지 다녀온 J씨는 금방 허기가 졌다.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쉬고 싶었다. 그런 J씨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곳이 하나 있었다. 바로 부암동에 있는, 부부가 운영하는 갤러리 카페 에밀‘s(Emil's). 이곳은 부부가 이태원과 경기도 일대에서 발품을 팔아 모은 빈티지 소품들로 가득한 카페이다. 하지만, J씨가 이 카페를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카페 안에 빈티지와 한국 전통의 미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 카페 내부에 다양한 도자기들이 진열되어 있고 따뜻한 음료나 식사를 주문하면 실제로 도자기 잔과 그릇에 음식이 담겨 나온다. 이 도자기들은 부부의 지인이 직접 만드는 것으로 일반 그릇에 음식을 담을 때보다 보기에 좋고 맛의 깊이도 더해준다.
카페 1층(에밀‘s husband)에서는 남편이 커피를 만들고 2층(에밀’s 밥상)에서는 부인이 음식을 만든다. J씨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허브향기가 가득한,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2층 테라스. 이날도 J씨는 그곳에 앉아 식사를 마친 후, 카푸치노를 마시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지붕 위의 고양이’를 들었다.
몇 개월 전 J씨가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 1층에 예쁜 서랍장이 눈에 띄어 문을 열었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서랍장이 아니라 전기 없이 사용하는 빈티지 냉장고라 안에 와인이 들어 있었기 때문. 이렇듯 카페 안에 있는 모든 가구와 소품들은 단순한 인테리어용이 아니라 직접 쓸 수 있는 제품들이다. 마음에 들면 카페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구매 가능하다.
부부는 일부러 사용 가능한 물건들만 카페에 놓는다고 한다. 이것은 손때가 저절로 묻어 멋스러움이 더해질 때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함이라고. J씨는 빈티지를 제조하는 멋진 카페라고 생각하며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카페를 운영하며 에밀‘s의 부부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위치 부암동 주민 센터 바로 왼쪽 골목
영업시간 11:00~23:00 (첫째, 셋째 주 월요일 휴무)
전화번호 02-391-0596

3:00PM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 광장시장 구제 상가
브루클린의 친구 집에서 머물면서 J씨는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비콘스클로젯(Beacon's Closet)을 비롯해 다양한 빈티지 숍들을 돌아다녔다. 전 세계에서 공수된 다양한 의상과 소품 중 자신에게 딱 맞는 물건을 발견했을 때는 마치 흙속의 진주를 찾은 것처럼 기뻐했던 J씨다. 그 당시 구입했던 빈티지 소품들을 적절하게 믹스매치하며 요즘 들어 센스 있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J씨는 얼마 전 한국의 빈티지 매니아들이 종로 5가 광장시장에 있는 수입 구제 시장을 즐겨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층과 3층에 넓게 자리한 구제시장은 상가마다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들여온 빈티지 제품들로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와 체형이 비슷한 일본제품이 가장 사랑받는다. 보통 2주에 한 번 신상품이 들어오고 단골은 주인이 전화해서 입고된 것을 알려주기도 하기 때문에 빈티지를 좋아하는 매니아라면 정기적으로 광장시장을 찾게 된다고.
광장시장에 도착한 J씨는 구제시장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며 빈티지 특유의 냄새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대하며 상가에 들어섰는데 벌써 문을 닫은 가게들이 눈에 띄었다. 광장 시장의 영업시간은 오후 6시까지지만 가게에 따라 일찍 닫는 곳도 있는 것 같았다. 다음부터는 좀 더 일찍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둘러보던 J씨는 마음에 드는 원피스를 하나 발견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너무 클 것 같았다. 일단 구입을 하고 수선해서 입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원피스 가격은 만 원인데 여기저기 손댈 곳이 많아 수선비가 더 나올 것 같아 구매하지 않았다. 다음 가게로 이동한 J씨는 쾌재를 불렀다. 길이를 약간만 수선하면 자신에게 딱 맞을 것 같은 꽃무늬 원피스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결국, J씨는 꽃무늬 원피스와 하마터면 못 보고 지나칠 뻔 했던 초록색과 겨자색이 섞인 실크 스카프(겹겹이 쌓인 스카프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던)를 구입했다. 광장시장의 물건들은 도매라 그런지 일반 빈티지 숍에 비해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아 예쁜 물건을 못 보고 그냥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그래서 더 자세히 보게 되고 그만큼 자신에게 맞는 물건을 발견했을 때 마치 보물을 찾은 것처럼 더 기쁜 것 같다고 생각한 J씨다.

위치 종로 5가역 8번 출구, 을지로 4가역 4번 출구
영업시간 9:00~18:00 (일요일 휴무)
전화번호 02-2269-8778 (종로광장상인총연합회)

6:00PM  50년대 방식 그대로, 빈티지 자전거, 미카지
J씨가 마지막으로 들른 장소는 일명 빈티지 자전거로 불리는 비치크루저 전문점 미카지(Micargi). 비치크루저는 원래 미 서부 해안의 서퍼들이 모래 위에서 즐겨 타던 기종으로 서핑보드를 실을 수 있도록 튼튼하게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모래 위에서 유유자적 천천히 타다 보니 공기저항에 구애를 받지 않아 안장 폭이 넓고 손잡이가 길다. 50년대 방식 그대로 페달을 뒤로 돌리면서 제동을 거는 코스터브레이크(Coaster Brake, 페달 브레이크)를 차용하고, 기어가 없어 외관이 심플하고 깔끔하다. 그래서 디자인 자전거로 불리기도 한다.
J씨는 어느 날 문득, 동네에 잘 정비된 자전거 도로를 보면서 가끔 저녁에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기회에 빈티지 자전거를 구입하기로 마음먹은 J씨는 집 근처에 있는 미카지 대리점으로 갔다. 미리 전화로 예약해서인지 젊은 주인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대리점 내에 전시된 자전거를 둘러보며 J씨는 마음에 드는 제품 2가지를 발견했다. 바로 핑크색과 갈색 비치 크루저다. 둘 중 한참을 고민하던 J씨는 결국 갈색으로 결정했다. 가끔 세미 정장을 입기도 하는 J씨에게 부담 없이 어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바퀴의 휠이 촘촘해 잘 휠 것 같지 않은 견고함도 의사 결정에 한몫했다. 주인은 직접 자전거를 조립해주고 매장 바로 앞에 있는 자전거 도로에서 직접 타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처음에는 페달 식 브레이크가 불편했지만, 차츰 적응이 되었고 나중에는 오히려 손으로 조작하는 일반 브레이크보다 편리하다고 생각한 J씨다.
비치크루저는 오랜 역사를 가진 자전거지만 아직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2007년에 처음 생겼을 정도이다. 현재 매니아 층 위주로 형성되어 있지만 최근 자전거 타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비치크루저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가격은 33만 원에서 88만 원 사이. 수입제품이기 때문에 A/S에 대해 고민하던 J씨는 기본적으로 튼튼해 잘 망가지지 않고 구조가 심플해 고치기가 쉬우며, 신촌 밀리오레에 A/S 센터가 있다는 말을 듣고 바로 자전거를 구입했다. 여름날 저녁, 집 앞 자전거 도로에서 빈티지 자전거를 타고 시원하게 달릴 생각을 하며 미소 짓는 J씨다.
 
위치 이수역 4번 출구
홈페이지 www.micargi.kr (미카지), cafe.naver.com/beachcruiser (비치크루저 코리아)
전화번호 02-3476-3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