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여행지를 표현함에 있어 낙원이라는 수식어는 투명한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고, 침대 위에는 장미꽃이, 식탁에는 중세시대 귀족이 누렸을법한 음식이 있는 곳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무지에서 비롯된 낙원에 대한 획일적인 상상은 루앙프라방과 방비엥이 보여준 진짜 낙원 앞에서 그대로 허물어졌다.

글과 사진 김수현 기자 취재협조 라오스항공 www.laoairlines.co.kr

과거 10년 전에는 황토와 먼지만으로 가득했던 땅이었으나, 현재는 힐링의 땅이라 불리며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할 나라’ 라오스.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 중 한곳으로,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에서는 도무지 여행객들이 이곳을 지구상 마지막에 남은 낙원이라 부르는 것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대한 자연과 하나가 되는 순간, 뜨거운 태양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여행자거리에서의 밤을 느끼는 순간, 전통을 보존하며 행복한 삶을 사는 다양한 민족을 만나는 순간에야 깨달았다. 내가 지금 서있는 루앙프라방과 방비엥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찾던 진정한 낙원이었다는 것을.

중국, 태국,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 사이에 있는 라오스의 지리적 위치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곳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다소 생경하다. 서울 중심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라오스인들에게는 국경을 넘어야지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바다. 그렇다고 물이 만들어내는 비경을 볼 수 없을 거라 속단하지 말자. 루앙프라방의 아름다운 하늘빛 폭포가 있는 꽝시 국립공원과 배낭여행객이 사랑하는 방비엥의 계림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루앙프라방에 도심에서 남쪽으로 20여분을 달리니 꽝시폭포가 있는 국립공원에 금세 도착했다. 입구는 일찌감치 폭포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내려와 허기를 채우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며, 노릇노릇 구워지는 생선 꼬치의 냄새를 맡고 있자니 점심을 먹은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배꼽시계가 도통 알람을 멈추지 않는다. 꽝시폭포로 가는 길은 쉬엄쉬엄 걷기 좋은 트래킹 코스. 울창한 숲에서의 삼림욕도 좋지만 꽝시 국립공원의 진짜배기 아름다움은 역시 올라가는 도중에 마주하는 층층이 푸른빛을 발하는 작은 폭포들이다. 감탄을 자아내는 물빛의 비밀은 다름 아닌 석회성분. 높은 나무가 우거진 숲에 산골짜기에서 내려온 폭포수가 고여 만들어진 에메랄드빛 공간에 몸을 맡긴 여행자들의 모습이 어찌나도 아름다워 보이는지, 수풀에 가려진 햇살이 가끔씩 물에 비쳐 빛을 발하는 순간 이곳은 마치 신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호수로 바뀐다. 비록 속옷과 수영복 차림, 흠뻑 젖어 주체할 수 없는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지만 오히려 주변 풍경과 잘 어우러져 유럽의 신들이 노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공원을 계속 올라가 거대한 폭포를 감상했다면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구경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 것. 내려오는 길에 신나게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을 따라 푸른 빛의 파라다이스에 몸을 풍덩 담그도록 하자. 언제 어디서라도 하늘빛의 물을 온몸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중국의 계림의 모습과 닮았다 하여 소계림이라 불리는 방비엥 지역. 메콩강의 지류인 쏭강 주변을 걷다보면 그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더 가까이에서 자연이 빚어낸 절경을 느껴보기 위해 툭툭이에 카약을 싣고 쏭강 상류로 이동했다. 방향을 잡아주는 가이드가 뒤에 탑승했다면 고요하고도 평화로운 물살에 맞춰 자연스럽게 강을 따라 흘러 내려가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이곳이 보여주는 자연에 노를 젓느라 바삐 움직이던 손이 스르르 멈춰 진다. 분명 쏭강 위를 떠다니는 카약에 몸을 맡기고 있었지만,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아름다운 산세와 강물에 나는 한순간에 구름을 타고 풍류를 즐기는 신선이 되었다. 지금껏 우리가 상상하던 무릉도원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여행자거리의 낮과 밤

따로 정해진 명칭이 아니지만 세계 각지를 여행하다보면 관광객들이 주로 모이는 여행자거리를 만날 수 있다. 특히나 루앙프라방은 오래된 건물이 세련된 호텔과 레스토랑으로 변화되어 건물과 여행객들만 따로 떨어트려놓고 본다면 이곳이 라오스인지 유럽 소도시의 번화가인지 판단이 어려울 정도. 여행자가 많이 다니기 때문에 이처럼 불리는지, 여행자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불리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도시를 관광하는 모든 여행자들이 반드시 한 번 이상은 이곳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 여행자거리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라오스에서 느끼기에 이국적인 분위기들로 발걸음을 붙잡는다. 선글라스가 없다면 실눈을 뜨고 봐야할 정도의 태양이 내리쬐는 오후.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매번 급하게 이동하며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여기저기서 물건을 팔기 위한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아닌 특유의 여유로움에 있다. 작게 열린 문틈 사이로 무더위 속 낯설게 느껴지는 에어컨 바람이 자연스럽게 호객행위를 한다. 이미 커피숍의 그늘이 진 테라스 자리는 여행객들로 빼곡했고, 어느 누구 하나 사진 찍기에 급급한 여행과는 저만치 동떨어져 있다. 마치 가까운 동네 산책을 나온듯한 차림과 편안함을 무장한 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하루의 주된 일정. 나 또한 라오스의 여유로움을 한껏 만끽하고자 여행객들이 가장 즐겨 찾는다는 조마 베이커리에 방문했다. 이미 햇빛을 피해 늦은 점심과 티타임을 즐기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아래 위층을 두리번거리며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타국의 언어를 노래 삼아 시간을 보내는 것이야 말로 루앙프라방의 참된 매력을 만나는 시간이니까.

여유로운 오후 시간을 보냈다면 저녁을 먹고 난 후부터는 여행자거리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날 차례다. 방비엥 거리의 밤은 마치 10년 지기 친구와도 같을 만큼 편안하고 아늑하다. 서울 한복판의 클럽에서나 나올 법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저녁 식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야식을 당기게 하는 음식 냄새로, 앉자마자 스르르 잠이 들 것만 같은 안락한 테이블과 의자로 끊임없이 여행객들을 유혹한다. 거리의 분위기에 젖어 한껏 자유를 만끽하게 되었을 즈음 바를 나와 길을 한 바퀴 더 돌았다. 프렌즈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시간을 죽이고 있는 파란 눈의 여행자과 눈인사를 나눈 후 편안한 소파에 기대 그들과 함께 한가로이 밤을 즐기는 것으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 짓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더욱 좋은 시간을 즐기다 보면 왜 라오스에 생활 여행자가 많은지 저절로 알 수 있게 된다. 방비엥 여행자거리 초입에서 만난 한 영국 아가씨. 현지인과 같은 차림으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것이 상당히 인상 깊어서일까. 말을 걸었더니 방비엥으로 여행을 왔다가 1년째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살고 있다고 했다. 아가씨의 대답에 감탄사를 연발했지만 그것은 놀라움의 표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여유로운 여행자거리에서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호텔로 귀가하는 툭툭이에 몸을 실었을 때에서야 그녀의 행복한 미소가 떠오르며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더라.

사전적 의미에 따르자면 마을이란 여럿이서 모여 사는 곳을 뜻한다. 그런데 혹시 주 뜻에 가려져 있지만 ‘이웃에 놀러가다’ 라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나는 이곳에서 여행하는 내내 마을이라는 단어의 첫 번째 뜻과 두 번째 뜻 모두를 아우르는 공간을 마주할 수 있었다. 각기 다른 특색을 가진 마을을 여러 곳 돌아다녔지만 각자의 삶을 스스로 영위하고 있다는 것에는 다를 바가 없었다. 차가 다니는 길 양 끝에 줄줄이 위치한 집에서는 작게나마 무언가를 판매하고 있다. 꼬릿한 냄새가 가득한 젓갈 마을 입구에 차를 세우자 역시나 아이들이 제일 먼저 반겨준다. 어머니는 저만치 떨어져 파리를 쫓고 있고 매여 있는 생선 젓갈 틈새로 보이는 방안에는 텔레비전 앞에 런닝 차림으로 누워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얼핏 보인다. 루앙프라방 근처에 있는 몽족 마을인 나우안에서도 마찬가지.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과 여행객을 향한 노래를 부르며 물건을 팔고 어머니는 무심한 표정으로 수공예품을 만드는 일에 집중한다.

여러 마을에서 보았지만 여성들이 시장과 거리 곳곳에서 장사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던 것은 아직까지 라오스의 많은 곳에서 모계 사상이 강해서다. 생활력이 강한 라오스의 여성들의 연애와 결혼은 과연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궁금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법 흥미로운 구석이 많았다. 보편적으로 일부일처제이지만 사극에서나 볼 수 있던 사랑방 마님이 존재한단다. 남성들은 두 번째 연애에 대해 보안(?)을 철저히 지키지만 결국에는 들키는 일이 다반사라는데, 이때 안주인께서는 새로운 여자를 대응하는 방법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첫 번째, 여자가 남편의 재산을 보고 만나는 경우라면 아침 드라마에서 나오는 시나리오와 같다. 돈을 쥐어주고 헤어짐을 요구하는 것. 두 번째로는 여자가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느껴진다면, 아내는 그 여자가 좋은 사람인지 샅샅이 판단한 뒤 인정을 받으면 옆집에서 함께 산다고 한다. 물론 일부 소수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겠지만 이렇게 각양각색의 문화와 삶이 모여 만들어진 삶의 터가 마을이다. 그리고 제 집을 드나들 듯 편안하게 이웃에 놀러가는 사람들. 심지어 현관문도 잠그지 않은 채 경계심 하나 없이 오는 이들을 반겨주니 순수한 마음을 지닌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유토피아적인 삶이 아닐는지. 코끼리 똥으로 종이를 만드는 한지 마을, 베틀로 라오스 전통 천을 짜는 파놈 마을, 라오라오 전통주를 만드는 반상하이 마을 등 루앙프라방과 방비엥 주변 전통을 보존하며 사랑하는 이들과 평화로운 하루를 살아가는 라오인들 덕에 오늘도 라오스는 행복을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