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새로운 발견 - 뚜르드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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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9월호] 대륙분류 : [유럽] 국가분류 : [프랑스] 도시분류 : [아비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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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FIELD] 천국으로 가는 길, 아비뇽

The way to heaven, Avignon
천국으로 가는 길, 아비뇽

남부 프랑스(이하 남불)의 프로방스 지방을 유럽인 특히 북부 유럽인들은 천국 같은 곳으로 여긴다. 눈이 부시는 햇살은 물론이고 일년 내내 극한의 온도가 없는 쾌적한 날씨, 풍부한 농산품 특히 와인, 아름다운 자연으로 유럽인들이 프로방스를 언급할 때는 꿈을 꾸는 듯한 몽롱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프로방스에 별장을 사거나 아예 근거지를 옮겨 살기도 한다.
글과 사진 권석하 편집위원

예술가들을 끌어들이는 매력
연전에 영국인 작가 한 명이 프로방스에서의 생활을 쓴 책이 공전의 히트를 쳐서 영국 내에 프로방스 바람이 한참 불었었다. 천국으로 알려진 프로방스의 동화 속 마을 같은 시골에 장난감 같이 아름다운 돌집이 영국 집값의 1/3 밖에 안 했었다. 당시는 영국에 부동산 바람이 불어 하루가 다르게 집값이 오를 때였다. 생활비마저 풍부한 농산품으로 인해 반도 안 든다니 도시 생활에 지친 영국 여피들에게는 천국으로 비춰졌다. 정말 광풍 같은 프로방스 바람이 한 때 불었었다. 상당히 많은 영국인들이 거처를 옮겼고 아예 옮기지는 못해도 프로방스의 매력에 빠져 아직도 주말이면 도버에서 페리를 타고 건너 가는 영국인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당시 수상이었던 토니 블레어는 매년 여름 휴가를 프로방스로 갔었다. 사실 프로방스를 이상향으로 보는 것은 영국인이나 북부 유럽인뿐만이 아니다. 심지어는 파리지엔들에게 마저 파라다이스로 비쳐져 있다. 불과 6~7시간이면 닿는 남불 인데도 그들은 흐리고 우중충한 우울한 겨울이면 남불의 프로방스를 그렸다. 이렇게 해서 프랑스의 많은 화가들이 프로방스의 눈부신 태양아래서 작업을 했다. 아를르의 고호, 악상 프로방스의 세잔느, 프렌치 리비에라의 르노아르, 니스의 마티스 등이 프로방스를 중심으로 작품을 그린 화가들이다. 이렇게 프로방스의 매력은 자석처럼 화가들뿐만 아니라 작가들까지 끌어 들였다.

‘아비뇽의 처녀들’의 비밀
이렇게 지상의 천국 같은 프로방스 중앙에 아비뇽이 있다. 아비뇽 하면 제일 먼저 떠 오르는 것이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고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가톨릭 교황의 ‘아비뇽 유수(幽囚)’이다. 조금 세계적인 예술 행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유명한 ‘아비뇽 축제’를 연상할 수 있겠다. 아비뇽은 잘 알려져 있다면 잘 알려져 있고 안 알려져 있다면 잘 안 알려진 도시다. 굳이 찾아 가야 할 특별한 명승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비뇽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유명한 작가나 화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굳이 아비뇽과 관련이 있는 유명인을 찾는다면, 현대 음악의 성자라 불리는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이 태어난 곳이고,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드 밀이 죽고 묻혀있는 곳이라는 것이 겨우 찾아 낸 모두다. 이렇게 오래된 역사적인 도시가 이 정도로 유명인과 연관이 없기도 참 힘들다. 그렇다고 아비뇽을 프랑스의 특색 없는 지방 도시 중의 하나로 치부하기에는 아비뇽은 충분히 매력적인 남불의 도시이고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도시이다. 역사와 현대가 잘 조화된 프로방스 특유의 냄새가 물씬 나는 도시이다. 아비뇽의 이야기를 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로부터 한번 시작해보자. 사실 도시 아비뇽과 그림 아비뇽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그런데도 작품 이름에 아비뇽이 들어 가서 아비뇽은 달갑지 않은 오명도 썼지만 동시에 도시 이름을 알리는 데는 더 없는 덕을 보기도 했다. 현대미술 시작의 분기점으로 삼는 ‘아비용의 처녀들’은 사실 피카소가 아비뇽에 처음 오기 5년 전인 1907년 파리에서 그려졌다. 그 이름도 바르셀로나의 창녀촌이 있던 아비뇽가Carrer d'Avinyó 이름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그림에 나오는 여인들은 처녀가 아니고 창녀들이었다는 말이다. 피카소는 이 그림을 유화로 완성하기 전 수 백장의 스케치를 그리면서 준비를 했다. 그 스케치 중에는 여인 5명과 남자 2명 나오는 것이 있다. 스케치의 중앙을 차지한 남자는 긴 항해 끝에 지중해의 큰 항구 바르셀로나 유곽에 회포를 풀기 위해 들린 선원이다. 그를 둘러 싼 5명의 여인은 창녀들로, 선택을 받으려 시선을 모두 선원을 향하고 몸짓으로 온갖 교태를 부리고 있다. 최종 완성된 유화에는 남자 두 명은 빠져 있고 다섯 명의 여인들만 남아 있는데 스케치에서 보던 예사롭지 않던 유혹의 그 몸짓은 여전하다. 이 그림이 현대회화의 시작이라는 이유는 원근법에 전혀 구애 받지 않고 얼굴과 뒷등이 한 시선에서 같이 보이는 등 당시로는 획기적인 화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비뇽은 본의 아니게 현대 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와 끊을 수 없는 어의 없는 질긴 인연을 맺게 된다. 이런 우연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면 빛나는 햇살의 남불의 아비뇽을 연상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놓칠 수 없는 아비뇽의 축제
이제 아비뇽을 세계적으로 더욱 유명하게 만든 ‘아비뇽 축제’에 대해 얘기해 보자. 세계 공연축제 중에는 가장 유명한 축제가 바로 이 남불의 아비뇽 축제와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축제이다. 이 두 축제를 따라 올 다른 공연축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역사도 오래되고 알차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이 두 축제는 대립하지 않고 상존하기로 합의를 한 듯하다. 공연시기가 공교롭다. 두 축제 간의 간격을 절묘하게 둬서 아비뇽 축제 3주간(7월 5일~7월26일)이 끝난 지 딱 1주일 뒤인 8월2일~8월25일 사이에 에딘버러 페스티벌이 열린다. 아비뇽 축제에서는 정식 축제 공연 종목은 ‘인 페스티벌In Festival’이라고 부르고, 정식 공연이 아닌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부르는 프린지fringes 공연 즉 번외 공연을 ‘옾 페스티벌Off Festival’ 프랑스어로 ‘르옾le Off’이라 부른다. 사실은 에딘버러 페스티벌의 프린지 종목과 마찬가지로 아비뇽 축제에도 이 르옾 종목이 더 흥미롭고 다양하다. 워낙 아비뇽의 구 도시 내의 공연장 숫자가 적고 장소도 협소해 참가를 원하는 모든 공연 팀들이 요구하는 만큼 수용을 못하게 되었다. 해서 길거리는 물론 카페, 학교, 창고, 교회, 심지어는 주차장 건물 같은 곳에서 축제당국과는 관련 없는 자체적인 공연이 이루어진 것이다. 축제의 진짜 재미는 이런 번외공연이라는 말까지 있고 많은 사람들이 표 구하기 하늘의 별따기라는 정식공연을 포기하고 르옾만을 보기 위해 매년 7월이면 아비뇽으로 호텔 예약도 없이 표도 없이 몰려 든다. 번외공연을 저렴하게 보고 잠은 차에서 자거나 길거리에서 침낭 속에서 자면서 축제를 즐긴다. 7월의 남불 날씨는 이런 유랑관객들에게 아무런 문제를 주지 않는다. 번외공연을 하는 무명의 유랑공연단들의 작품이 이런 자체 공연에서 인기를 얻으면 다음 해에는 공식적으로 초대 받는 영광을 얻게 된다. 그런 꿈을 꾸면서 금년에도 1000여 개 각종 공연단이 아비뇽을 누볐다. 아비뇽 축제는 이렇게 세월을 지나면서 초기와는 달리 연극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공연도 더해져 더 흥미로운 세계인의 축제로 바뀌었다. 춤, 음악, 영화 같은 무대 예술과 함께 조각, 회화, 사진 전시회도 축제에 끼이게 되어 종합 예술 페스티벌로 발전했다.

도보 여행에 좋은 아비뇽
아비뇽 축제는 금년이 67회 축제인데 10만 명의 온 세계에서 온 관객들이 14만 장의 입장권으로 연극을 비롯한 각종 공연을 본다. 1947년에 연극 연출자 쟝 빌라르에 의해 아비뇽 교황궁전 앞 마당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지금도 가장 중요한 공연은 여기서 열린다. 공연이 열리는 동안 시내 중심가는 차량이 전혀 못 들어 간다. 하긴 평소에도 구도는 워낙 길이 좁고 일방통행이 많아 잘못 차를 가지고 들어 가면 도저히 길을 못 찾고 뱅글뱅글 돌기만 한다. 나만 해도 자동차로 시내를 관통해 보려고 들어 갔다 한참을 헤맨 적이 있다. 심지어는 내비게이션이 가르쳐 주는 대로 갔는데 길이 막혀 있었다. 길이 워낙 좁아 주차공간도 거의 없어 지리를 잘 모르는 외부 운전자들에게 텃세를 제대로 하는 도시이다. 그러나 도보로 관광을 하는 여행자들에게는 정말 좋은 곳이다. 걸어서 다 다닐 수 있는 크기의 도시다. 아주 큰 길이 있어 차가 쌩쌩 달리지도 않고 해서 공기도 좋고 도보로 천천히 둘러 보기에는 더 더욱 좋은 곳이 없다. 세계적인 관광지라 쇼핑의 천국이기도 하다. 별별 세계적인 명품 가게들이 리퍼블리끄가rue de la République에 있지만 여기까지 와서 어느 도시에나 있는 명품들을 살 일은 없다. 아비뇽은 프로방스 중심 도시라 주변에서 나는 농축산품은 너무 풍부해서 가볍게 여행해야 하는 나그네로서는 유혹을 견디기 정말 힘들다. 사서 가져 갈 수 있는 식품은 산양 젖으로 만든 유명한 세브르chevre 치즈 같은 유제품, 지방 산과 들에서 나는 염료로 물들인 각종 천으로 만든 섬유공예품 둥은 너무 많아 일일이 들 수도 없다. 특히 올리브 관련 제품들이 가장 추천 할 만하다. 그 중에도 비누는 필수 쇼핑 품목이다. 올리브 오일을 이용해서 프로방스 지방에 풍부한 라벤다, 로즈마리, 계피 오렌지 향 같은 허브향을 첨가한 비누는 정말 유혹 만점의 품목이다. 와인의 본향 프랑스답게 와인도 어느 지방 못지 않게 훌륭하다.

아비뇽을 돌아보자
이런 쇼핑가의 유혹을 뿌리치고 교황궁전을 향해 발길을 돌리면 중간에 항상 회전목마가 돌아 가는 르올로지라는 중앙 광장이 나온다. 그 광장 한 켠에는 호텔이라고 오해를 받는 그렇게 크지 않는 건물이 있다. ‘Hôtel de Ville’이라고 쓰여져 있으니 영어에 익숙한 나그네의 눈에는 호텔로 여겨 질 수 밖에 없다. 사실 이건 시청 건물이다. 시청건물 치고는 너무 아담해 그런 오해를 받을만하다. 고호가 마지막으로 숨을 거둔 여관 다락방이 있는 오베르 쉬르 오아즈의 중앙광장의 시청건물도 같은 명패를 달고 있어 순례자들의 오해를 받는다. 그래서 안내 지도에 시청이라고 나와 있는데 호텔이라는 단어가 있으니 시청을 호텔로 바꿨다는 기사가 한국 신문에 나온 것도 봤다. 이제 아비뇽 관광의 중심인 교황청을 둘러 볼 차례이다.교황청은 연간 65만 명 이 방문하는 프랑스10위권의 관광지이다. 원래 로마에 있어야 할 교황청이 아비뇽에 1309년~1377년까지 7대 교황에 걸쳐 자의가 아닌 타의로 위치했었다. 이 시대에 교황이 일종의 수인(囚人)생활을 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 13세기 말부터 유럽 전체에는 신권보다 왕권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프랑스 왕 필리프 4세는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를 납치하기 위해 ‘아나니 사건(1303)’을 일으키고 그 여파로 결국 교황은 프랑스 왕권 휘하로 들어 가게 된다. 클레멘스 5세 교황은 로마를 떠나 아비뇽에서 체제하게 된다. 그 이후 68년 간 아비뇽은 유럽 가톨릭의 중심이 된다. 그래서 유럽 역사에는 이와 관련해 아비뇽 이름이 많이 등장한다.

교황청은 궁이라기 보다는 성이라고 보일 만큼 튼튼하게 지어졌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들처럼 대개의 오래된 유럽 대학들이나 성당 건물들은 외부로부터 침공이나 도난에 대비하기 위해 요새처럼 지어졌다. 아비뇽의 교황청도 아예 처음부터 요새로 지어졌다. 그만큼 교회가 적이 많았다는 이유로도 볼 수 있지만 교회가 가지고 있던 금은보화로 만들어 진 십자가, 성상, 미사제기를 보호하기 위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후 등장한 교황들이 교황청은 베트로 성인의 무덤 위에 지어진 정통성의 교황청을 주장해서 로마로 옮겨가고 나서도 350년 간 아비뇽은 자신들의 정통성을 줄기차게 주장했다. 심지어는 교권분리schism라고 불리는, 교황이 두 명이 나중에는 세 명이 교황을 자처하는 미증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런 일련의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아비뇽은 유럽의 중심으로 계속 존재했고 동시에 발전하게 되었다. 클레멘트 6세에 의해 중건된 교황청 건물은 당시 유럽 각 곳에서 유행하던 여러 종류의 고딕 양식을 차용했다. 중세 유럽에서 가장 큰 고딕 건물인데 워낙 건물이 커서 교황청으로서의 최고의 역할을 했다. 한때 1000명의 교황청 직원들이 일을 해서 가톨릭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는데 큰 역할을 했다. 로마로 교황청이 떠난 이후 낙후되어 거의 폐허의 상태로까지 되기도 했다. 한 때는 군대 병영으로 사용될 정도였다. 바깥 보기의 웅장한 모습과 안의 모습은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 내부는 중세 건물답게 복도가 좁고 흡사 미로를 다니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이다. 워낙 약탈을 많이 당하고 관리부실로 남아 있는 물건들이 거의 없다. 심지어는 건물을 장식하던 조각품이나 벽화마저 사라져 거의 텅 비어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휑하다. 전시된 유물마저도 별 역사적 의미가 없는 것들뿐이다. 한때 유럽의 중심이라던 건물인데 너무 허망하다. 차라리 교황청 바로 옆의 아비뇽 성모성당이 훨씬 알차다. 아비뇽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한 성당 첨탑 위의 금빛 성모상은 그래서 아비뇽 어디를 가도 보인다. 성당 내부의 사제들의 제례복과 제기 등은 역사를 자랑하는 듯 화려하다.

좋은 기억을 주는 곳, 아비뇽
아비뇽의 옛 구도(舊都)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은 거의 완벽하게 남아있는 성벽으로 유럽에서도 아주 귀한 유적이다. 지금도 론강 가에서 들어 가는 원래부터 있던 아주 조금만 문이 남아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성벽 높이는 약 8미터이고 길이는 5키로이다. 시간을 내서 한번 돌아 보는 것도 권장 할 만하다. 아비뇽 관광 관련 자료를 보면 아비뇽 다리를 빠짐 없이 언급한다. 무려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에 물살이 빠르기로 유명한 그렇게 대규모의 석조 의 획기적인 디자인의 다리가 지어진 것이 대단한 일이다. 아비뇽 다리는 노래로도 프랑스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다. 필자가 거의 30년 전 유럽 대륙 여행을 처음 할 때 영국에서 차를 가지고 도버 해협을 건너 와서 도버에서 기차에 차를 실어서 도착 한 곳이 아비뇽이었다. 당시는 기차에 자동차를 싣고 침대 칸에 자고 아침에 일어 나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오토레일이라는 편리한 제도가 있었다. 프랑스의 거의 북쪽 도버에서 제일 남쪽 아비뇽까지 자는 사이에 도착 한 셈이었다. 그리고는 남불과 스위스를 거쳐 파리까지 여행했을 때 아비뇽은 처음 들렸던 곳이다. 당시 기억에도 아비뇽은 깨끗하고 세련된 도시였는데 이번에 다시 와서 봐도 그 느낌이 그대로 다시 살아 났다. 그 때 아비뇽에서 운전을 해서 프랑스에서 가장 큰 항구 마르세이유를 보기 위해 도착했는데 길을 잃고 지도를 찾던 중 난생 처음 날치기를 당했다.

알제리아인들이 사는 슬럼가로 잘못 들어 갔기 때문이다. 날씨가 더워서 창문을 열어 놓고 지도를 뒤적이고 있는 사이에 창문으로 몸을 들여 귀중품이 든 가방을 들고 튄 것이다. 마침 호신용으로 차에 실어 놓았던 골프채 하나를 검처럼 들고 날치기의 뒤를 쫓다가 놓치고는, 빈민가를 경찰차를 타고 찾아 다니는 등의 그 이후의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이다. 그리고는 오만정이 다 떨어져 그대로 마르세이유를 벗어났다. 이후 남불 못지 않게 악명 높은 이태리에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창문을 열고 긴장을 푼 것은 그나마 안전하다는 오스트리아로 들어서면서부터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마르세이유를 제대로 본 적이 한번도 없고 이번에도 들를 생각도 안 했다. 이렇게 나쁜 기억은 오래 가는 법이다. 프랑스 대혁명 시 지금의 프랑스 국가 라마르세이가 연유된 미항 마르세이유는 프랑스 아프리카 식민지와의 관문이라 북아프리카 이민족들이 많이 산다. 해서 결코 여행자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프랑스 도시 중 하나이다. 그것을 당시는 몰랐으니 누구를 원망할 방법도 없었다. 아비뇽에서는 좋은 기억이 있다. 길거리에 주차를 하고 보니 주차기에 넣을 동전이 없었다. 난감해 하는 모습을 본 프랑스 노부부가 적지 않은 동전을 주고 갔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선의를 받고 보니 감동이 상당히 오래 갔다. 영국에서 살면서 결코 겪어 보지 못한 선의였다. 프랑스인이라면 세련되었다는 느낌과 함께 깍쟁이라는 생각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는데 의외의 경험을 한 셈이다. 그렇게 해서 아비뇽은 좋은 기억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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