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새로운 발견 - 월간 뚜르드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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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호]     대륙분류 : [아시아]     국가분류 : [대한민국]     도시분류 : [봉화,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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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IELD] 늦가을 주말 사용법


1NIGHT2DAY::BongHwa, YeongJu
 
Walking Holiday in BongHwa, YeongJu
늦가을 주말 사용법
 
조용히 자리를 지켜오며 강한 힘을 발하던 역사가 가을을 만나 새로워졌다. 그 어느 때보다 유혹적인 가을의 어느 주말. 두 다리를 통해 걷는 즐거움만으로도 마냥 행복해질 수 있었던 봉화, 영주에서의 꿈같은 휴일의 이야기다.
 
글 김수현 기자 사진 이재계 취재협조 봉화군청 www.bonghwa.go.kr 영주시청 www.yeongju.go.kr 데모스 www.demos.co.kr
 
 
마지막으로 제대로 걸어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는다. 별다른 운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체력이 좋다는 말을 자주 듣기도 했고 ‘한국사람에겐 밥심’이라는 생각으로 많이 먹되 운동이랑은 상당히 멀게 살아왔었다. 트래킹 역시 마찬가지. 솔직히 고백하자면 주말 오전에 등산을 떠나는 이들을 보며 쉬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휴일까지 몸을 혹사시키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고, 유행처럼 번지던 아웃도어 열풍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더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 어리석었다.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시간을 길 위를 거닐었던 어느 휴일을 통해 트래킹에 푹 빠지게 되었으니. 혹여라도 아직까지 걷는 즐거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이번 주말만큼은 이제 그만 이불 속에서 나와 주길. 이 좋은 날씨에 딱 어울릴만한 활동이 있다면 걷기요, 가기 좋을 만한 곳을 추천하니 경상북도 봉화와 영주다. 그저 스마트폰 위에서 손가락 움직이는 것만을 잘 보낸 휴일이라 생각한 것에 코웃음이라도 치듯이, 그곳은 ‘걷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만큼의 완벽한 자연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깊은 역사로 두 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게 만들었다.
 

주말에 만나는 봉화의 금강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며 작은 금강산이라 불리는 청량산에서의 트래킹을 결심하고 먼발치에서 산을 올려다보니 체력이 닿는 한 높이 올라가 자연경관을 한눈에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퇴계를 비롯하여 의상, 최치원, 김생 또한 수도한 명산이자 12봉우리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청량산은 고대에는 수산으로 칭해졌다가 조선 시대에 이르러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오래 전부터 산과 불교는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청량산 또한 예부터 불교의 흔적이 산 전체에 남아있었던지라 과거에는 봉우리의 명칭이 보살봉, 반야봉, 원효봉 등의 불교식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소小금강이라 불릴 만큼 수려한 봉우리들은 1544년 풍기 군수를 맡고 있던 주세붕에 의해 새로운 이름을 받았고, 퇴계이황은 중국 5대 명산 중 하나인 무이산 육육봉과 연관시켜 열두 개의 봉우리들을 일컬어 청량산 육육봉六六峯이라 칭했다. 특히 이황은 청량산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는데, 어릴 때부터 산기슭에서 글을 읽고 사색을 즐겼으며 말년에도 제자들을 가르치며 틈틈이 이곳을 찾았다고. 이후 그와 제자들의 흔적을 바탕으로 청량산은 유가의 산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산에 오르다보면 곳곳에서 불교와 유교의 흔적을 동시에 만날 수 있으며, 종교유적 이외에도 군사적 요새로 이용된 산성유적과 공민왕을 신으로 모시는 공민왕당 등이 자리하니 단연 봉화군의 으뜸 명소다.


오랜만에 출발하는 산행에 두 다리에 힘을 주고 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이거 만만치가 않다. 시계를 보니 시작지점인 입석에서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고작 삼십여 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미 입으로는 이미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마냥 가쁜 숨이 터져 나온다. 등에는 한줄기 땀이 척추를 타고 내려오는 탓에 잠시 걸음을 멈추려는 찰나, 어디에선가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바람을 따라 발걸음이 닿은 곳은 신라 문무왕 3년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된 청량사. 연화봉 기슭 한가운데 위치해있어 등산과 함께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에도, 템플스테이를 통해 자신만의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은 장소다. 더위를 식혀줄 약수를 한 바가지 마시고 신발 끈을 다시 동여맨 뒤 트래킹의 목표지점인 하늘다리로 향했다. 40여 분의 산행 끝에 드디어 도착한 하늘다리는 예상보다 길게 뻗어있었다. 해발 800미터 지점의 자란봉과 선학봉 사이를 잇는 국내에서 가장 길고 높은 곳에 있는 다리란다. 튼튼한 하늘다리의 정중앙에 있는 유리 위에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지금은 세월의 흔적으로 발아래를 내려다보기에는 다소 불투명해졌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이 그대로 느껴져 묘한 쾌감이 찌릿찌릿 전해져 온다. 다리를 다시 건너 선학정으로 내려오는 길, 시원한 폭포와 시냇물 소리와 함께 그간 묵었던 스트레스가 말끔히 씻겨 내려갔다는 사실은 두말하면 입 아프다.
 
 

죽령옛길로 이어지는 이천 년의 역사
숲에서 온몸으로 느낀 상쾌한 공기 덕분이었을까. 아무리 알람시계를 맞추어도 도통 일어날 줄을 몰랐던 여느 주말과 달리 눈이 번쩍 떠진다. 서울로 담아 가져가고 싶은 청량산의 기운을 뒤로하고 봉화를 떠나 영주시로 향했다. 5번 국도의 굽이굽이 길을 따라 올라가니 죽령주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백산국립공원의 위치한 죽령옛길의 또 다른 시작점이자 오늘의 내리막 트래킹 코스의 출발지점이다. 아직 이른 아침인지라 옅게 안개가 펼쳐져, 전날 봉화에서 보았던 풍경과는 또 다른 절경이 두 눈 가득 들어온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숲의 기운을 가득 담은 공기를 폐에 한가득 채웠다. 콧속이 뻥 뚫리는 맑음의 근원지는 소백산을 따라 나 있는 12개의 길 중 3자락에 속해 있는 죽령옛길. 2, 3 구간은 단양과, 1구간에 해당하는 죽령길은 영주시로 이어져 있다. 울창하게 펼쳐진 숲에 기대감을 안고 죽령마루를 시작으로 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리막길이지만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여유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초록은 피로를 풀어주는 색이라 하지 않았던가. 눈으로는 푸른색을 가득 담고, 귀로는 바람소리와 새의 노랫소리에 자연스럽게 복잡했던 마음에 어느새 평온이 내려앉았다. 분명 어제의 산행으로 인해 두 다리에 묵직함이 느껴질 법도 한데, 오히려 걸음은 리듬을 타고 평소보다 한층 더 가볍다.

지금이야 트래킹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문화생태탐방로지만, 사실 죽령 옛길은 오랜 역사를 지닌 의미 있는 장소다. 신라 아달라왕 5년부터 경북과 충북을 이어주던 길로 이용되었으며, 전략적 요충지로서 삼국시대 때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지역으로 영토 분쟁을 거쳤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에는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한 유생들과 상인들의 길로 이용되었고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까지는 영주에서 서울을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공간이었다고 하니 산길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짐작할 만하다. 무심결에 지나갈 만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흔한 돌담도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이 쉬어간 주막의 터였다. 비록 죽령터널과 고속도로가 생기며 길을 찾는 이들은 뜸해졌지만 백여 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과거와 현재를 고스란히 이어주는 길을 통해 멀게만 느껴졌던 역사의 간극이 줄어든 것처럼 느껴졌다.
조상들이 길들여 놓고, 영주시의 주민들에 의해 잘 정비된 길을 걷다 보면 울창한 수풀 외에도 제법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숲과 과수원 길을 지나 오른쪽으로는 철길, 위로는 고속도로가 있는 도로까지 1시간가량이 걸리는 내리막 트래킹은 소백산역(구 희방사역)까지 걷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그저 운동 삼아 빠르게 올라갔다 내려오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있었다. 천천히 익어가는 사과와 호두열매가 널따랗게 펼쳐진 과수원, 깊은 숲 속에서 내려오는 맑은 폭포, 활짝 핀 야생화까지. 어느 하나 무심코 지나치기에는 소중한, 소박하지만 그저 행복한 미소를 머금게 하는 자연이 언제나 곁에 있었다.
 
 
역사는 가을바람을 타고
안동 하회마을, 내앞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조선 후기 학자 이중환의 저서 택리지에서 3대 명당지라 꼽은 마을이 있으니, 바로 봉화군에 위치한 닭실마을이다. 주변은 동서남북으로 낮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주산에서 내려온 맥이 마을에 이르며 완만하고 들판이 평탄하여 북고남저의 이상적인 지형을 이루고 있다. 전형적인 명당이라 불리는 데에 절대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물이다. 산과 들판 앞에 개천의 물까지 흘러주니 고서에서도 삼남의 4대 길지라 전해 내려오는 사실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달실이라고도 불리는 특이한 마을이름의 유래는 지형에서 비롯된 것. 마을의 지세가 수탉과 암탉이 서로 마주보고 사랑을 나누며 알을 품고 있는 것과 비슷하며 이것은 자손들이 번성하고 재물이 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단다. 닭실마을이 다른 곳과 달리 특별한 이유는 지리적 이점 외에도 충재 권벌선생의 후손들이 500여 년간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온 터라는 점에 있다. 거북 모양의 바위 위에 세워졌고 당대 학자들이 방문하여 학문을 교류했던 장소인 청암정은 권벌선생의 유적지로 여름이면 푸른빛으로, 가을이면 화려한 단풍으로 물들며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앉아서 쉬기에는 실로 눈과 가슴에 담아두고 싶은 것이 넘쳐나는 곳인지라 충재 박물관과 청암정을 지나 쭉 뻗은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살랑이는 바람에 맞춰 함께 춤추는 들판을 친구 삼아, 길가에 핀 꽃과 담장을 가득 메우는 넝쿨을 연인 삼아서. 그늘 하나 없이 쨍 한 햇빛 아래에서도 기분 좋은 걸음은 또 한 번 멈출 줄을 모른다.
영주시에서 고즈넉한 분위기와 역사의 정취를 가득 담은 곳을 방문하고 싶다면 소수서원이 답이다. 고요함을 즐기며 걷기에도 물론 좋은 공간이지만 영주가 선비의 고장이자 민족교육의 산실이라 칭해지는 것에 크나큰 기여를 한 장소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대학으로 미국의 하버드보다 무려 93년이나 앞섰으며 배출한 인재가 무려 4천여 명에 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운동서원에서 비롯된 소수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이 풍기군수로 부임한 후 조정에 올린 상소를 통해 소수서원으로 사액되며 내부로도 외부로도 더욱 견고해졌다. 소수紹修는 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하라는 뜻. 그 의미처럼 이후 명종에게 현판을 받으며 책, 토지, 노비를 하사받았고 동방 성리학의 르네상스를 일으킨 공간으로 오랜 시간 자리했다. 조용하지만 기품 있는 선비의 고장인지라 서원 전체에 불어오는 바람에 힘이 느껴진다. 선비촌과 소수서원 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그 뒤를 따라가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다정히 소나무 숲을 걷고 있는 노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언제나 꿈꿔왔던 드라마틱한 휴가나, 지금껏 익숙하게 보내왔던 주말과는 달랐다. 그러나 가을바람과 함께 맞이한 봉화, 영주의 역사 앞에서 낯설었던 휴일은 무기력함이 아닌 활기로 가득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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