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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구분
[2013년 10월호] 대륙분류 : [유럽] 국가분류 : [프랑스] 도시분류 : [릴]
기사제목
[OUTFIELD] 신비롭고 경이로운 도시미학, 릴
Mysterious, Wonderful City Aesthetics, Lille
신비롭고 경이로운 도시미학, 릴
여행이 즐거움은 전혀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나는 놀라움 때문이다. 프랑스 북부 끝에 위치한 도시 릴은 내게 이런 놀라움을 준 도시다. 릴은 고흐의 마지막 안식처 오베르 수르 수아즈와 모네의 수련의 정원이 있는 지베르니를 가기 위해 유로스타를 탄 덕에 들리게 된 도시다. 3시간을 운전을 해서 가야 하는 첫 행선지 지베르니를 가기 전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들어 갔다가 도시의 아름다움에 발목이 잡혀 버렸다.
.jpg) 글과 사진 권석하 편집위원
릴이 어디지?
특히 구시가지 좁은 골목들 안에 즐비한 품격 높은 가게들과 들어 가서 반드시 점심을 먹고 가야 할 듯한 식당들 때문에 정말 어렵게 길가 주차공간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식사 후 나중에 찾은 드골광장이라 불리는 중앙 대광장은 정말 그 정도 일 줄은 생각도 못한 프랑스 어느 도시 보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노천카페로 가득 찬 대단한 광장이었다. 골목길의 아름다움에 끌려 점심만 먹고 가도 행복하겠다 했는데 거의 공짜 보너스 같은 광장까지 얻은 셈이었다. 유럽도시들은 도시 중앙광장 주변이 대개 주요 건물들이 위치하고 있어 반드시 찾기는 하지만 그래도 릴의 중앙광장 근처의 건축물들의 아름다움은 특별 났다. 특별히 알려진 유명한 관광자원을 가지지 않아 관광객들의 발길에서 벗어나 있는 릴은 그래서 알고 보면 묻혀진 보석이다. 프랑스 4번째 도시이면서도 인구 22만6천명에 도시근교를 다 합쳐도 100만이 겨우 넘는 릴은 한국에는 잘 안 알려진 도시이다. 런던에서 유로레일에 차를 싣고 도버해협 해저 터널을 달려 두 시간이면 도착하는 곳이 프랑스 릴인데도 잘 몰랐으니 말이다.
노천카페의 천국, 릴 중앙광장
우선 좁은 골목에 위치한 레스토랑과 카페 그리고 그 앞 보도에 위치한 노천카페부터 알고 가자. 대로 밖에 없는 한국의 도시들만 봐온 우리들에게는 프랑스 길거리 노천 카페의 운치는 유별나게 다가온다.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로맨틱 러브스토리 영화에서 아름다운 연인들이 카페에서 커피나 와인을 마시면서 사랑을 속삭이는 풍경은 정말 낭만적이다. 그러나 실제 파리를 가 보면 결코 노천 카페는 그렇게 영화에서 보듯이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가끔 한적한 골목길 근처의 카페는 그나마 오붓함이 있지만 시내 곳곳의 관광지 근처의 노천카페는 별로 추천 할 만 하지 않다. 차가 쌩쌩 달리는 큰 길가의 노천카페는 그렇게 위생적인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릴의 골목길 노천 카페는 추천 할만 하다. 차가 들어 가지 못하는 길도 많지만 차가 다닌다 해도 일방 통행이고 해서 서행을 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보행자와 함께 차가 다닌다 할 정도로 차와 사람이 섞여 있어 속도를 도저히 낼 수가 없다. 그래서 보도 안쪽의 노천 카페는 참 그럴 듯 하다. 더군다나 릴 중앙 광장은 차들의 접근이 완전히 금지된 보행자들 만의 구역이다. 해서 드골광장의 아름답고 웅장한 건물 앞의 카페들은 한껏 멋을 낼 수 노천 카페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주변의 아름다운 건축물들과 함께 지나가는 프랑스 여인들의 우아한 패션 감각을 즐기면서 보르도 와인을 한잔을 하다 보면 정말 프랑스에 왔음을 느낄 듯도 하다. 아니면 광장 주변 골목 고급 가게들을 둘러보다 지친 다리를 진한 프렌치 에소프레소를 즐기면서 쉬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이렇게 릴의 매력은 드골광장으로 들어 오는 좁은 골목길에 즐비한 가게 앞 노천 카페와 광장 안의 대형 카페가 다른 프랑스 대도시에서는 못 누리는 매력이다.
.jpg) 잊지 못할 프랑스 요리
그 다음이 이제 그냥 빈 배를 채운다는 요기 정도가 아니고 소위 말하는 왕들의 음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프랑스 요리를 제대로 즐길 차례이다. 무릇 식당이란 뭐니뭐니 해도 음식이 맛 있어야 한다. 그러나 프랑스에 와서 레스토랑에서 무슨 음식 걱정을 하겠는가? 내가 사는 영국의 요리가 워낙 시원찮아서 그런지 몰라도 프랑스 요리는 어디를 가서 먹어도 역시! 하는 감탄이 나온다. 요리 후진국 주민의 비굴한 과찬이 아니다. 심지어는 컨퍼런스 회의에서 단체로 나오는 프랑스 음식에도 잊지 못할 감탄을 한 적이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내가 프랑스 요리에 관해서는 아주 운이 좋았는지는 몰라도 깔레에서 먹었던 토끼 요리 빼고는 그 동안 수십 차례 건너와서 맛본 프랑스 요리는 나를 한번도 실망시켜 본적이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내가 릴에서 잊지 못할 늦은 프렌치 런치를 한 에스쿠르모아제거리의 길버트 식당도 실망을 시키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길버트 식당은 의자와 테이블과 그 위의 조명이 연극 무대의 소품 같았다. 고급 식당이라고 테이블과 의자가 반드시 한 벌로 짝이 맞아야 하고 모두 통일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음식을 내 오는 그릇도 모두 한 세트를 갖춰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서울을 가면 내가 자주 가던, 지금은 안타깝게도 문을 닫고 만, 광화문의 한 이층 카페의 찻잔은 다 짝이 맞지 않았었다.
정체 모를 한식당?
하나 둘씩 유럽의 중고가게나 벼룩시장에서 골라 모아 온 것들이다. 우리 모두가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있듯 그 잔들도 모두 말하지 않는 사연을 가지고 있는 듯 짝을 잃고 혼자서 손님을 맞았었다. 찻잔과 받침 접시가 색깔과 무늬가 다르고 내 잔과 내 벗이 마시는 잔이 달랐다. 그 뿐이 아니다. 카페 내에 있던 테이블과 의자도 각각 달랐다. 테이블 모양은 물론 한 테이블을 둘러싸고 있던 의자마저도 모두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전혀 카페 안이 혼잡스럽지 않았던 이유는 그 테이블 위에 얹힌 찻잔에 담긴 차가 그윽한 맛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 카페를 출입하는 사람들과 주인 아주머니도 그에 못지 않게 격조 높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손님들이 머물다 갈 식당이나 카페는 음식이 제일 중요하긴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실내의 모든 것들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 그 분위기를 살리는 것에는 테이블과 의자들도 한 몫을 한다. 길버트 식당의 의자와 테이블은 정말 잘 어울렸다. 식당에 관해 사족을 하나 붙이면 골목길을 가다가 한글 간판이 붙은 식당을 발견했다. ‘한궁’이라는 이름도 이상했지만 유리창에 붙은 메뉴하며 실내 모습은 절대 한국인이 하는 한식당이 아니었다. 조선족이 하는 한식당마저도 아닌 듯 했다. 말로만 듣던 외국인이 하는 한식당을 처음 본 셈이다. 음식 한류가 이제 제대로 속도를 내는 셈이라 좋아해야 할지 이건 아닌데 하면서 걱정을 해야 할지 모르는 광경이었다. .jpg) 릴의 명물 ‘벼룩시장(Braderie de Lille)’ 릴을 아는 사람들에게 릴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있다고 한다. 매년 9월 첫째 주말 시내 전체에서 열리는 릴의 자랑이자 명물인 벼룩시장(Braderie de Lille) 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날짜를 놓쳐 직접 볼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릴을 아는 사람들은 누구든 권했다. 만일 9월 초 경에 이쪽을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보아야 할 명물이다. 언젠가 한번 꼭 와 봐야겠다는 계획이 내 마음 속에 이미 들어 앉았다. 릴 벼룩시장은 다른 프랑스 도시나 심지어는 유럽에서 열리는 어느 벼룩시장과 비교해도 제일 큰 벼룩시장이다. 시내 큰길 작은 길 골목길 할 것 없이 시내의 공간이란 공간은 모두 벼룩시장으로 바뀐다. 벼룩시장이 열리는 시간 동안은 시내는 차량 통행이 완벽하게 금지된다. 무려 100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이 모두 10,000 개의 가게로 탈바꿈을 한다. 벼룩 시장이란 원래 별별 종류의 물건이 다 나온다. 집에서 쓰던 아이들 장난감을 비롯해 도저히 누가 사갈 것 같지 않은 쓰레기 같은 물건부터 제대로 된 몇 만유로 짜리 골동품까지 등장한다. 사람들은 정말 별것도 다 들고 나와 팔려고 나오고 또 별별 물건도 다 사가지고 간다. 벼룩시장이 열리는 동안 시내 식당은 물론 거리 음식포장마차까지 모두 ‘물 프리뜨(moules-frites)’ 즉, 홍합탕과 감자튀김을 판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사 먹었으면 식당 앞에는 버리지 않고 쌓아 놓은 홍합 빈 껍질이 산 같이 싸여 있어 그야말로 구경거리다. 자신들의 가게에서 그만큼 많은 홍합을 팔았다는 선전이고 동시에 맛이 있다는 자랑이기도 해서 주인들은 경쟁하듯이 쌓아 놓는다. 홍합이 맛이 있으면 얼마나 더 있겠는가 만은 그래도 사람들은 홍합 껍질이 많은 집으로 더 몰린다. 이틀 사이에 평균 500톤의 홍합이 소비된다고 한다.
.jpg) 토요일 오후 2시에 시작해서 일요일 아침 11시까지 밤새도록 여는 릴 벼룩 시장은 돌아 다니다 보면 사람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를 법 하다. 100만 명이 방문을 해서 밤새도록 돌아다니면서 보고 사고 즐긴다. 25만 명이 사는 도시에 4배의 사람들이 방문을 하니 얼마나 북새통일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시작은 12세기부터 인데, 성모승천 기념일 뒤 외국 상인들에게 며칠간 장사를 허용한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이렇게 큰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원래는 전업상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주로 장사를 했지만 이제는 전문상인들도 참여를 한다. 중세 때는 하인들이 다락방에 굴러 다니는 주인들이 안 입는 옷들이나 안 쓰는 집안 잡동사니들을 주인의 허락 하에 들고 나와 파는 전통으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제는 일반인들이 집에 있는 안 쓰는 물건을 들고 나오는 것을 비롯해 취미로 만든 수공예품, 인근 시골에서 생산하는 토산품, 전문적인 골동품 업자, 이 모든 사람들이 어우러져 늦은 여름 밤을 축제로 만들어 버린다. 만일 이런 대형 벼룩 시장을 한번 와 볼 계획이라면 내 경험으로 만든 벼룩시장 3대 주의 사항을 알려 드린다. 마음에 드나 값이 조금 비싸다 싶은 물건은 봐 놓았다가 끝날 때쯤 가서 흥정해서 사면 된다. 이미 팔려서 없어지는 위험을 감수하겠다면 의외로 싸게 살 수 있다. 그러나 죽어도 사고 싶은 물건은 그 자리에서 사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은 다른 사람 눈에도 잘 뜨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충고는 돌아 보고 나중에 오겠다는 마음을 먹었으면 그 장소를 반드시 잘 기억해야 한다. 번호를 적어 놓던지 주위의 중요한 설치물을 잘 봐 놓아야 나중에 막상 찾으러 할 때 못 찾아 발을 동동 구르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릴은 프랑스 인들에게는 프랑스 최고의 대통령 샤를르 드골 대통령으로도 기억된다. 영국은 대처가 권력에서 물러난 지도 23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늘이 남아 있듯이 프랑스에는 드골이 권좌에서 물러난 지도 반백 년이 다 되었는데도 아직 그의 후광은 남아 있다. 드골은 2차 대전 중 자유 프랑스군을 이끌어 영웅이 되었고 그 이후 정치에 몸담아 죽을 때까지 프랑스 정치의 중심에 섰었다. 특히 프랑스인들은 드골이 2차 대전 승리 이후 전쟁 중 독일에 부역한 역사 청산을 주도했고 미국 주도의 NATO군에서는 탈퇴하고 미국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해서 핵 보유를 관철시켜 자신들의 국격을 높였음을 높이 산다. 그래서 릴시는 릴의 아들 드골을 기려 중앙광장을 드골광장이라고 부른다.
릴에는 또 하나의 자랑이 있다. 릴 미술관이 바로 그것이다. 릴 미술관은 파리 루브르 다음으로 프랑스에서 큰 미술관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군이 교회, 수도원 등으로부터 뺏은 예술품을 중심으로 1809년 나폴레옹 1세의 칙령으로 시작되었다. 비록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품은 없어 세인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으나 거의 7,000평의 전시공간을 라파엘, 도나텔로, 반 다익, 렘브란트, 고야, 다비드, 들라크로아, 루벤스, 로당 등의 작품들이 메우고 있다. 소장한 알찬 미술품으로 보면 이 미술관 하나만 보려고도 릴을 방문해야 할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행선지 때문에 나는 밖에서만 보고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릴을 방문해야 할 이유가 벼룩 시장 말고도 또 하나 생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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