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Essay :: Yunnan

잃어버린 지평선을 찾아 떠나는 운남성 여행
하늘을 무심코 가로지른 비행운을 볼 때마다 구름의 저 남쪽, <잃어버린 지평선>이란
소설 속 지상낙원이 있다는 중국 운남성을 꿈꾸어왔다.
글과 사진 박정연 에디팅 이소윤 기자

박정연 l 경기도 부천시 송내2동
새로운 것을 보고 놀라고 좋아하기보다는 낯선 상황에서 자기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움직일지가 더 궁금하기에 여행을 멈출 수 없다.

오래전부터 중국의 운남성雲南省과 샹그릴라香挌裏拉 여행을 계획했지만 그때마다 사스 조류독감 등 예기치 못한 복병들이 나타나 번번이 미루어지다가 드디어 기회가 왔다.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의 주인공 휴 콘웨이Hugh Conway는 비행기 불시착으로 샹그릴라라는 곳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만난 라마승들은 마흔 살을 넘기고부터는 노화가 멈추어 그 모습 그대로 몇 백 년을 산다고 했다. 나도 그즈음의 나이가 되어 불로불사를 갈망할 때쯤 그곳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시작은 황제 트레킹
운남성 리장에서 호도협을 지나 샹그릴라로 가는 길을 택했다. 호랑이가 단숨에 뛰어 건넜다는 호도협은 해발 5000미터가 넘는 합파설산과 옥룡설산 사이로 금사강이 흐르는 절경이다. 무릇 절경이란 인내를 감수한 자들에게만 비로소 그 한켠을 내어주는 법이건만, 호도협 트레킹은 숨이 거칠어지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어린 마부가 어서어서 노새를 타라며 등을 떠민다. 방울을 쩔렁쩔렁 흔들며 뒤를 계속 좇아오는 노새의 등에 못 이기는 척 올라탄다. 덕분에 힘들다고 소문난 28밴드 꼭대기까지 말 등에 타고 어깨를 흔들며 가는 동안 발밑에 보이는 한길 낭떠러지를 보며 가슴 졸이는 스릴 또한 ‘덤’이다. 그 옛날 60킬로그램이나 되는 보이차를 양쪽에 매달고 티베트의 높고 험한 설산을 넘던 노새의 후예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질척한 진흙탕도, 꽤 높아 보이는 돌부리도 훌쩍 넘어 산비탈을 오르는 마장술을 선보였다.

구름이 머무는 차마객잔
말에서 내려서도 산길을 두 시간쯤 걸어 도착한 차마객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예전에 노새를 이끌고 왔던 마방들이 묵던 그 시절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을 텐데 지금의 객잔은 뜨거운 샤워는 물론 육질이 쫄깃한 오골계 백숙에 따뜻한 전기장판까지 풀 서비스로 제공한다. 2000미터가 넘는 고도에 있는 객잔에서는 물도 제대로 안 나올 테니 세수나 좀 하고 잘 수 있으려나 했던 나에게는 이러한 대반전이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다. 이 정도 되면 우리나라 설악산 대피소가 오지 축에 낄 판이다.
새벽엔 천둥번개가 치더니 아침은 아주 상쾌해서 고산지대의 날씨가 얼마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지를 보여줬다. 15위안짜리 블랙커피를 주문해서 옥상에 올라가니 비는 부슬부슬 오지만 설산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어제 온 비로 수량이 불어났는지 하얀 물줄기가 산에서 흘러내려 객잔 옆 폭포도 더 기운차게 그 소리를 전달하고 있었다. 구름의 치마폭 사이로 힐끔힐끔 보이는 계단식 차밭과 노란 열매가 달린 호두나무들, 옥수수 밭 그리고 흑백과 청색의 그러데이션에 탄성을 지르며 관음증 환자처럼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서있었다.

산사태가 누군가에겐 기회가 된다?
차마객잔을 출발해서 중도협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산사태가 나서 길이 끊어졌단다. 밤새 내린 비로 일부 구간에 암석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복구 작업이 이루어지긴 하지만 차들은 통제되고 있어 가는 사람도 오는 사람도 한 사람씩 돌무더기를 오르고 내리며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구간을 운행해주는 승합차형 택시들은 이 틈을 타서 통제구간을 왕복하며 돈을 배로 벌고 있었다. 산사태가 누군가에겐 위기가 되고 누군가에겐 기회가 되는 순간이었다. 산사태로 차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샹그릴라에 도착했다. 해발고도 3000미터가 넘는 장족 자치구인 샹그릴라에 들어서자 주변 풍경은 넓은 초원과 검은 야크 떼로 바뀌고 계단을 오를 때엔 숨이 차기 시작했다. 고성 한복판은 꼬치구이가 내뿜는 연기로 가득하고 마니차를 돌리는 사람, 액세서리상, 과일 장수들이 오가는 한편에서는 할머니들이 직접 만든 플레인 요구르트를 팔고 있었다.

송찬림사에 올라
고산증 탓인지 아침부터 몸이 아주 천근만근이었다. 화장실을 밤새 들락거리느라 다크 서클이 얼굴 중간까지 내려온 느낌이었다. 아침식사로 흰죽과 만두, 칭크라는 식물로 만든 노란 빵을 약간씩 먹고 ‘작은 포탈라궁’이라고 불리는 송찬림사로 향했다.
멀리서도 잘 보이게 반짝이는 금빛 지붕을 얹은, 라마불교의 사찰인 송찬림사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관목 숲과 물웅덩이, 초원 그리고 멀리 사람들이 사는 곳이 보인다. 소설 속에 나오는 신비로운 아우라를 가진 라마승도, 황금을 캐는 푸른 달의 계곡도 있을 것 같지 않다. 다만 열심히 무언가를 갈구하며 온몸을 던져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 마니차를 쉴 새 없이 돌리는 사람과 바람에 날리는 룽다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송찬림사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고 5시간을 달려 유네스코 문화유산 도시인 리장에 도착했다. 북촌 한옥마을에서 보았던 기와지붕의 수십 배는 되어 보이는 기와지붕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그 사이에 작은 개천이 흐르고, 수양버들이 늘어져 있는 풍경 속에 사람이 빼곡하다. 해가 지고 불빛이 들어오면 여기저기서 춤과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은 더 빼곡해진다. 운남성 역시 13억이 넘는 인구가 사는 중국의 일부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게다.

저 사람들과 같은 걸로 주세요!
운남성은 큰 중국 대륙의 일부이며 26개의 소수민족이 사는 아주 컬러풀한 곳이다. 리장 고성의 상점들은 이것을 일깨우듯 다양한 민속품과 그 간의 여정에서 잠시 격조했던 벌레튀김까지 즐비하게 내놓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입맛을 돋우었던 건 ‘꾸어차오미센’이라는 국수였다. 옛날에 일하는 남편에게 식사를 내가던 아낙이 면이 붇지 않도록 면과 고명, 닭고기 육수를 따로따로 가져갔다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우리식의 따로국밥 같은 음식이었다.
여행에 앞서 4개월 이상 중국어를 공부했지만 원어민과 대화를 나누기엔 역부족이었다. 더욱이 중국요리는 그 재료와 조리방법을 오롯이 이름에 담고 있는 만큼 가는 곳마다 재료와 조리방법이 바뀌니 이름도 다르고 종류 또한 다양해서 주문하기가 아주 까다로웠다.
그래서 내가 내민 필살기는 “게이워 라이 껀타먼 이양더 차이.(저 사람들과 같은 걸로 주세요)”를 외워서 쓰는 것이었다. 소수민족의 음식을 한다는 식당에서 처음 보지만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있으면 무조건 이 문장을 외치는 것이다. 그 결과 생각보다 음식 값이 많이 나와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상대방이 알아듣고 갖다 줄 때엔 해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이게 최선입니까?
자기 집에 파랑새를 두고도 깨닫지 못해 다른 곳을 헤매는 게 우리 인간이듯 ‘불로불사’의 아름다운 그곳이 아니라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나를 위한 최선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최선이다. 나를 위해 따뜻한 밥을 마련해주는 누군가가 있고 내 자리가 있고, 언제라도 돌아오면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곳이 있어서 나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꿀 수 있다. 회전하는 추가 제아무리 맴을 돌다가도 정지하면 잡아줄 중심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