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Tip_Money Story ⑥

Hungary
유럽 속의 아시아, 헝가리를 만나다
화폐를 보면 그 나라의 흐름을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헝가리는 지배와 정복의 역사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탓에 지폐를 들여다봐도 도통 명확하게 정리가 되지 않는다. 유럽 속의 아시아라 불리는 동유럽의 작은 나라, 알면 알수록 더욱 궁금해지게 하는 신비한 힘을 지녔다.
글 김수현 기자

지리적으로는 유럽에 속해있지만 헝가리의 문화는 아시아권역의 것과 비슷한 점을 상당수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은 언어체계로 특히 동아시아와 매우 비슷한데, 유럽에서는 날짜표기를 일/월/년 방식으로 한다면 헝가리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년/월/일 방식을 사용한다. 또한 실제로 헝가리인들의 이름은 성이 먼저 오고 이름이 그 뒤에 온다. 유럽에 퍼져있는 방식에 따라 때때로 이름을 먼저, 성을 나중에 쓰기도 하지만 성 다음에 이름을 쓰는 방식이 아직 남아있다고. 그래서인지 시인 하이네는 ‘헝가리는 유럽 속의 아시아 나라’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1001년 이슈트반 1세가 통일을 이룬 헝가리는 계속적인 영토 정복을 통해 수세기에 걸쳐 국토를 확장했다. 지금은 대한민국과 비슷한 면적을 가지고 있지만 한때 유럽에서는 다른 주변국에게 문화와 예술을 전파할 만큼 영향력이 있었으며 특히 1458년부터 1490년까지는 중부 유럽의 강국으로 헝가리를 따라올 곳이 없었다. 그러나 1526년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에서 크게 패하며 기나긴 시간 동안 지배를 받게 되고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하에 서부와 북부, 동부로 분리되기도 했다. 19세기에 들어서는 민족운동이 활발해지며 독립을 향한 열의가 고조되기 시작했고, 그 열기가 정점에 달했을 때 독립전쟁이 일어났다. 그들은 자유를 되찾는 듯 했지만 이것도 잠시였다. 2차 대전 후 소련으로 강제 편입된 것. 하지만 동구권에 불어온 자유화 물결에 앞장선 결과 동유럽의 나라 중 가장 먼저 민주화를 실현하며 안정적인 사회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
헝가리는 EU 회원임에도 포린트Ft라는 독자적인 화폐 단위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동구권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된 이후에도 현재까지 쓰이는 유일한 통화. 장기적으로는 유로로 대체될 예정이지만 지폐의 앞면에는 초대 왕부터 르네상스 시기를 거쳐 근대까지 헝가리 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들이 그려져 있어 지나온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뒷면 또한 이들과 관련한 장소 및 삽화로 채워져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앞, 뒷면 모두를 주의 깊게 살펴보도록 하자.

현행권 화폐 -----------------------------------------------------------------------------------------------
500Ft 라코치 페렌츠 2세 Rákóczi Ferenc II / 사로스파타크 성
500포린트에 새겨진 라코치 페렌츠 2세는 독립운동 지도자다. 그는 빈의 합스부르크가의 지배에 대항하는 라코치 가문의 출신으로 보헤미아에 있는 예수회 대학에 다니며 헝가리로 돌아와 민족운동을 지도했다. 이후 스폐인 왕위계승 전쟁이 일어나자 농민반란 등으로 합스부르크가 세력을 몰아내는데 일조했지만 독립을 향한 노력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자 조국을 등지고 폴란드로 망명했다.

1,000Ft 마티야슈 1세 Mátyás Hunyadi / 비세그라드 성의 헤라클레스 분수
헝가리의 전성기로 말하자면 마티야슈 1세가 재위하던 때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수십 년에 걸친 봉건적 무정부 상태 이후 왕위에 올랐다. 언어와 고전, 근대 인문주의 사상 등에 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예술과 과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 재정, 군사, 사법 행정 이외에도 문화 발전에 힘썼다. 헝가리인들에게는 투르크의 점령과 합스부르크 가문의 억압으로 고통 받는 시대에 정신적인 지주로 통했다.

2,000Ft 베틀렌 가보르 Gábor Bethlen / 과학자들과 베틀렌 왕
헝가리의 지방이었던 트란실바니아의 군주. 그는 북부 명문 프로테스탄트 집안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부터 정치에 입문했다. 30년 전쟁에 참여한 이력이 있으며 투르크인을 헝가리와 유럽에서 내보내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과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이유 때문인지 뒷면에는 그가 과학자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5,000Ft 세체니 이슈트반 Szechenyi Istvan / 나기센크 세체니 생가
정치가이자 개혁자인 세체니 이슈트반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싸운 뒤 유럽을 여행하며 낙후된 조국에 비해 근대화된 영국과 프랑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후 그는 1년 동안의 수입금을 국립과학 아카데미 설립기금으로 내놓는 등 실질적인 국가 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화려했던 젊은 시절에 비해 그의 말년과 죽음은 비극적이었다. 부다페스트에 있는 ‘세체니 다리’는 그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10,000Ft 이슈트반 1세 István Ⅰ / 에츠테르곰 성 풍경
초대 왕이었던 이슈트반 1세는 국가의 건국자로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헝가리에 기독교를 전파하며 그 공으로 당시 교황이었던 그레고리오 7세로부터 사도왕이라는 작위를 얻게 된다. 이슈트반 성당은 초대 국왕인 이슈트반 1세를 기리고 건국 1천 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 실제로 그는 재위기간 종교와 관련한 활동이 많았다.

20,000Ft 데크 페렌츠 Deak Ferenc / 의회 광장
헝가리의 독립을 이끈 주역 중 한 명으로 형을 대신해 의회의 진출한 것을 계기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검열을 반대하는 논문을 발표하고 의회가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근대 역사의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정치적 폭력을 반대하였으며 이슈트반 세체니의 도움으로 부다페스트에서 정치를 이끌어나갔다. 20,000포린트 뒷면에 새겨진 의회 광장에는 그의 업적을 기려 제작된 흉상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