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Essay :: Laos

사바이디, 라오스!
세상이 궁금해서 스물 둘 처음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던 이후로 틈틈이 다녀 어느덧 아홉 번째인 나의 해외여행. 이번 여행은 어디든 좋으니 무조건 혼자 가자고 처음부터 마음을 먹었다. 혼자 가기에 좋은 곳을 염두에 두고 선택한 이번 여행의 목적지 라오스.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열흘을 보낸 라오스는 지금껏 내가 가본 여행지 중 최고였다. 일상에 찌들어 문득 라오스를 추억하게 되는 어느 밤, 여행기를 쓰며 그 달콤한 추억을 되새겨 본다.  글과 사진 유미주 에디팅 이소윤 기자

유미주 l 대구시 남구 대명동
반바지에 플립플롭을 신고 이국의 낯선 거리를 거니는 
내 모습을 수백 가지 내 모습 중 가장 사랑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어서 자꾸만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안녕, 라오스!
낯선 나라에서 홀로 지내는 열흘은 과연 어떨까 설레는 마음을 안고 여행 첫째 날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이번 여행의 진짜 목적지인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으로 가는 국내선을 타기 전까지 비엔티안Vientiane의 시가지를 둘러본다. 낯선 나라와 첫 대면을 할 때, 피해갈 수 없는 탐색전. 적인지 동지인지 제대로 파악하기 전에는 경계심을 거둘 수 없다. 이방인에게 괜히 건네는 저 미소와 곁눈질의 진짜 의미가 환대인지, 호기심인지, 아니면 먹잇감을 노리는 사냥꾼의 그것인지. 환전을 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현지인에게 길을 물으면서 몇 시간 만에 일찍 나버린 결론, 첫 인상 좋다, 이 나라! 나는 경계심을 풀고 완전히 라오스에 무장해제 당해버렸다.

시간이 멈추는 곳, 루앙프라방
국내선을 타고 한 시간을 날아 도착한 라오스 제 2의 도시 루앙프라방.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에서 나는 닷새를 머물렀다. 최근에 한국 배낭여행객들 사이에서도 인기 여행지로 급부상하고 있지만 라오스는 여전히 일반 사람들에게는 낯선 나라이다. 그래서 라오스로 여행을 간다고 하면 어리둥절한 표정과 함께 ‘라오스가 어디냐’부터 ‘어떤 곳이냐,’ ‘거기 뭐 볼 게 있느냐’는 질문이 심심찮게 돌아왔다. 다녀온 후에도 여전히 그 질문에 답을 하기는 어렵지만 도리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곳, 딱히 할 것이 없어서 더 좋은 곳이 바로 루앙프라방이었다. ‘시간이 멈추는 곳’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루앙프라방에서의 닷새는 아주 천천히 흘러갔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매일 따뜻한 햇볕이 잘 드는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느린 아침식사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루앙프라방에서의 첫 이틀은 남칸 강 건너편의 리조트에 묵으면서 완벽한 휴식을 취했다. 급하게 가야할 곳도, 해야 할 일도 없이 여유롭게 책장을 넘기며 강변의 경치를 즐겼던 리조트의 아침 시간은 지금도 바쁜 일상 중 문득 문득 가장 자주 떠오르는 장면이다. 오후에는 느릿느릿 숙소를 나와 현지인들이 사는 마을을 기웃거리며 라오스 사람들의 소박한 삶을 엿보았고, 남칸 강변을 산책하거나 푸시Phou Si 언덕에 올라 일몰을 바라보았다. 해가 지고 나면 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아 저녁을 먹고 살 것도 없는 나이트마켓을 산책 삼아 거닐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루앙프라방에 머무는 동안 세 번이나 찾아가 두세 시간씩 늘어져 있었던 카페 겸 바 ‘유토피아’는 나를 포함한 배낭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이었다. 남칸 강변의 테라스 소파에 누워 책을 읽으며 오후의 뙤약볕을 피하거나 라오비어 한 병을 손에 들고 별 총총한 밤하늘을 보기에도 그만이었다.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좋은 ‘유토피아’는 이름처럼 배낭여행객들의 이상향이었다.

천의 얼굴, 루앙프라방
루앙프라방에서 꼭 보아야 할 명소를 하나만 꼽자면 단연 꽝시Kuang Si 폭포일 것이다. 에메랄드 물빛의 폭포가 주변 열대우림과 어우러져
정말 그림 같은 풍광을 연출한다. 가벼운 하이킹으로 열대우림을 지나 폭포의 시작 지점까지 올랐다가 내려와 서서히 땀이 날 때쯤 천연 에메랄드빛 수영장으로 풍덩 뛰어들면 더위가 싹 달아난다. 사실 산 속에서 내려오는 폭포수라 발만 담그고 있어도 금세 추워지지만 이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가 되려면 꼭 온몸을 에메랄드 물빛에 담가보아야 한다.

이 밖에도 루앙프라방에는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콘셉트의 여행자들을 다 만족시키는 다채로운 매력이 있다. 메콩 강변의 여행자 거리에는 배낭여행자들이 주로 묵는 호스텔과 게스트하우스가 즐비하다. 1박에 5달러짜리 저렴한 도미토리 룸부터 30달러면 깔끔하게 혼자 묵을 수 있는 프라이빗 룸까지 다양해 취향과 예산에 따라 골라잡으면 된다. 남칸 강변을 따라서는 1박에 7~80달러 수준의 부티크 리조트부터 3~400달러를 호가하는 5성급 럭셔리 호텔들도 있다. 이들 중에는 세계 호텔 인테리어 디자인 상을 수상하는 등 이력이 대단한 호텔들도 많다. 음식으로 치자면 1달러면 훌륭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로컬 국수집부터 프랑스인 셰프가 직접 요리하는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까지 종류도 가격대도 다양한 음식점이 즐비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루앙프라방에는 국적도 연령도 다양한 여행자들이 모여든다. 동남아 어디를 가도 그렇듯 동서양의 젊은 배낭여행객들은 물론이고, 유럽의 은퇴한 노부부들도 많으며, 우리나라의 중년 여행자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다녀와서 알고 보니 이곳은 또한 배우 지성과 이보영의 신혼여행지이기도 했단다. 배낭여행자들의 메카, 은퇴한 노부부들의 여유 있는 휴양지, 로맨틱한 신혼여행지까지 루앙프라방은 정말 다양한 매력을 지닌 도시이다.

지루할 틈 없는 레저의 도시, 방비엥
루앙프라방에서 꿈같은 닷새를 보내고 방비엥Vang Vieng으로 향하는 버스. 대략 7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여행이다. 라오스는 우리나라처럼 산이 많은 지형인데다 개발이 덜 되어 포장된 도로가 거의 없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흙먼지 날리며 7시간 동안 달리는 여정이라 조금이라도 멀미에 약한 사람은 멀미약이 필수다. 과정이야 험난해도 내 한 몸 무사히 빠져나오면 더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되고 마는 게 여행인 것 같다. 몸도 가방도 굽이굽이 산 넘어 무사히 방비엥에 도착! 1박에 5달러짜리 방갈로에 짐을 풀고 2달러에 커다란 바게트 샌드위치와 시원한 파인애플 생과일주스를 받아들었다. 동남아 여행지 중에서는 물가가 꽤 비싼 축에 드는 루앙프라방을 벗어나니 저렴한 물가에 마음이 더욱 푸근해진다.

방비엥에서의 3박 4일은 지루할 틈 없이 신나게 흘러갔다. 방비엥 여행은 주로 레포츠 활동 위주로 이루어진다. 시내는 규모도 작고 볼거리가
없는데다가 낮에는 햇볕이 강하고 뜨거워서 외곽으로 나가 물놀이를 하거나 소규모 레포츠 투어에 참가한다. 첫날은 동굴 튜빙과 쏭강 카약킹을 즐겼다. 건기라 유속이 느린 편이어서 스릴을 맛보기는 힘들었지만 대신 카약에 몸을 싣고 강을 병풍처럼 둘러싼 방비엥의 독특한 산세를 구경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둘째 날에는 와이어에 몸을 맡긴 채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며 숲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짚라인을 즐겼다.

다음 날은 툭툭을 타고 흙먼지 나는 시골길을 사십 분 가량 달려 블루 라군Blue Lagoon을 보러 갔다. 루앙프라방의 꽝시 폭포에서 물놀이는 충분히 즐겼던지라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늦은 오후에나 출발했는데 금방 해질 무렵이 되어 몸만 겨우 적셔 보고 나와야 했다. 수심이 5미터가 넘는 곳도 있다는 블루 라군은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맑고 이름처럼 푸른 물이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큰 나무에 사다리를 설치해 타고 올라 옆으로 뻗은 가지에서 뛰어내리는 2단 천연 다이빙대는 수영을 못하는 바람에 즐기지를 못했다. 겁 없이 첨벙 첨벙 뛰어내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꼭 수영을 배워 다시 오리라 다짐한다. 라오스에 다시 와야 할 이유가 점점 많아진다.

내가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
‘내가 여행을 참 많이 사랑하는 구나’를 다시금 느끼게 해 준 여행이었다. 어느 정도 여행을 하다 보면 ‘그래, 이 정도면 됐다’ 싶은 순간이 올 줄 알았는데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여행 욕심이 생기는 것 같다. 내가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늘 답을 구하고 싶었다. 출근 안하고 매일 매일이 휴일인 것도 좋고, 매 끼니 맛있는 음식으로 호강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여행하는 내 모습을 사랑해서가 아닐까. ‘사랑은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하고 있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여행 그 자체보다 여행자로서의 내 모습을 사랑해서 자꾸 떠나게 되는 게 아닐까. 올 겨울 휴가에는 어디에서 사랑하는 ‘나’와 마주할지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