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보석의 땅, 요르단

요르단이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이집트 여행을 준비하면서이다. 요르단행 티켓과 이집트행 티켓의 가격이 비슷하다는 것과, 요르단과 이집트는배를 통해 이동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인 페트라도 볼 겸 그렇게 요르단을 여행지로 점찍었다. 알아보기 시작한 요르단에는 의외로 많은 관광지들이 숨어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인에게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땅이라는 점이 나를 요르단으로 이끌었다.
글과 사진 황현정 에디팅 이소윤 기자  

황현정 l 부산시 진구 당감동
잠이 부족하고, 잘 씻지 못해도 틀에 맞춰진 여행보다는 무대책 여행이 좋다. 언젠간 전 세계를 여행해 보겠노라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평범한 대한민국 여자 사람이다.

암만은 암만해도 무서워

여행자들 사이에서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Amman은 암만해도 볼게 없는 곳으로 유명하다. 도착과 동시에 이제부터 고생 시작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호텔이라고 적혀 들어간 곳은 최악이었다. 손님은 우리 밖에 없었으며 하얀색 벽지는 때가 묻어 회색이 되어 있고, 화장실에도 문이 없었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친구와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짐을 풀고 밖으로 나가니 날씨는 흐리고, 좁은 길 위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 있다. 아랍에미리트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중동 사람들의 표정과 날씨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오후 5시도 채 되지 않아 지는 해 때문에 왠지 모르게 스산한 거리를 피해 이내 숙소로 돌아왔다. ‘내가 과연 이곳을 좋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유럽이 아닌 중동에서 본 로마 유적

다음 날 암만에서 버스를 타고 잠시 제라시Jerash라는 도시를 방문하기로 했다. 제라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로마 유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아직도 발굴이 진행 중이다.버스 정류소에서 대책 없이 “제라시 제라시”를 외쳐 댔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철창 속 유적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입구를 찾았다. 어렵게 찾은 입구로 들어가는 길에는 피리 장수에게서 대나무 피리를 하나 샀다. 여행지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것에 대한 낭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알 수 없는 시끄러운 소리만 울려 퍼졌다.

유적지 안에서 만난 노란색 옷을 입은 가이드가 이곳저곳을 소개해주었다. 우리는 감탄사를 남발하며 신기해했지만 유료 가이드를 쓰겠냐는 제안은 돈이 없는 관계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어떤 건물인지도 모르는 유적지 앞에서 사진만큼은 열심히 찍어 댔다. 가이드북은 가방 안 기념품의 포장지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제일 높은 신전에 올라가 보니 푸른 들판과 유적들의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아직 20퍼센트 밖에 발굴이 진행되지 않았음에도 로마시대의 위엄과 찬란함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아무런 지식과 설명 없이 봐도 감탄만이 나오는 엄청난 장소였다. 과연 완벽하게 복원이 완료되었을 때의 모습은 어떨지 기대된다.

경이로운 페트라

우리는 암만을 떠나 와디무사Wadi Musa로 이동했다. 와디무사는 세계 7대 불가사의인 페트라Petra가 있는 도시이다. 같은 숙소에서 만난 이들은 페트라가 워낙 넓기 때문에 아침 일찍 가는 것을 권했다. 얼마 전 입장료가 올라 페트라 2일 입장권을 14만 원에 구매했다.

페트라 입구를 지나치자 엄청난 협곡이 펼쳐진다. 손 닿을 거리에 수로가 있고, 눈과 바람에 마모된 베두인의 조각들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시간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협곡을 보고 따라 걸으며 수없이 감탄했다. 페트라에서 가장 유명한 신전 알카즈네Al Khazneh에 도착하기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길을 따라 걸으면서 ‘혹시 알카즈네가 협곡 사이로 보인다면 눈물이 흘러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긴 협곡을 지나 드디어 나타난 알카즈네. 생각보다 감동은 덜했지만 엄청난 크기와 웅장함으로 무장하고 있는 곳이다. 인도의 타지마할과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따라 계속해서 구경을 했다. 걸을 수 없을 정도의 바람이 불었다. 잠시 쉬고 있는데 페트라에서 사는 아이들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예쁜 돌을 선물로 주고 나의 스카프로 베두인식의 모자를 만들어 주었다. 이상한 뿌리 식물도 주었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고맙다고 했다.

알데이르Al Deir 수도원까지 가기 위해서는 가파른 길을 하염없이 올라가야 한다. 금방 체력이 방전되어 버려서 당나귀를 타기로 했다. 당나귀가 힘이 든지 자꾸 미끄러진다. 바로 옆이 낭떠러지라 무섭기도
하고, 왠지 동물 학대를 하는 것 같아 중간부터는 내려서 걸어갔다. 정상에 거의 도착했을 쯤 알데이르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곳의
모래 바람이 너무 심해 숨도 못 쉴 정도였다. 바람 때문에 눈도 뜨지
못하는 친구에게 사진 각도를 맞춰 주고 버튼만 눌러 달라고 했다. 정상에서 본 페트라는 기대 이상이었고, 멀리 보이는 손톱만한 알데이르와 풍경, 하늘 모든 것이 놀라웠다. 이곳보다 멋진 곳은 찾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 필력으로 다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이다. 알데이르의 풍경은 현실 세계가 아니었고, 나는 그곳에 있었다. 비싼 입장료도 절로 용서가 된다. 혹시나 이곳에 다시 올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이상의 돈을 지불해서라도 다시 찾을 것이다.

붉은 색깔의 모래사막이 있을까?

아침부터 비가 조금씩 내려 예정된 와디럼Wadi Rum 붉은 사막 투어가 살짝 걱정되었다. 하지만 별 탈 없이 출발한 투어 차를 타고 와디무사Wadi Musa 위쪽 도로로 가니 눈이 쌓여 있었다. 중동과 눈이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붉은 사막투어에는 정부가 지정한 곳에서 하는 투어와 개인적으로 가는 투어가 있는데 우리는 개인적으로 가는 투어를 선택했다. 배, 버섯 모양을 한 신비로운 모양의 돌들이 사막 중간중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붉은 사막을 가는 길에는 과거 이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남긴 그림들이 돌에 여전히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시간 속을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점심시간이 되어 잠시 차를 세워 두고 메마른 나뭇가지에 불을 지펴 닭을 구워 먹었다. 이곳에서 검은 잿가루를 입에 묻혀가며 치킨을 먹는 내 모습이 웃겼다. 여행을 오기 전 와디럼 투어 사진을 몇 장 봤었는데, 여기는 사진 속 그곳과는 다른 장소였다. 때로는 들판 같은 곳이 나왔고 때로는 사하라 사막 같은 곳이 나오기도 했다. 사람이 살지 않을 것만 같은 이곳에서 천막을 치고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붉은색 모래로 뒤덮인 사막이 나왔다. 수년 간 바람에 부딪힌 기괴한 모양의 바위들과 적색의 모래사막은 외계 행성에 온 것만 같은 착각을 주기에 충분했다.

낯설음과 편견을 지우는 여행

요르단을 다녀왔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오지여행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여행 전에 들렀던 병원의 담당 의사 선생님이 컴퓨터에
나를 ‘오지여행가’로 입력해두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전부 중동이라는 이름이 주는 낯설음과 편견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약 요르단에 직접 가게 된다면 당신은 숨은 진주를 발견한 기분이 들 것이다. 이곳에서 보냈던 23살의 짧은 시간들이 나에게는 아직까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너무 식상한 말인가? 그럼 더 이상 다른 사람의 글만 읽지 말고 떠나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