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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ing, Way to meet Parisian's Daily Life

파리 낭만 도보여행

내가 꿈꾸는 파리여행은 이렇다. 정오가 되기 전 달콤한 쇼콜라 쇼를 마시며 느지막이 잠에서 깬다. 간단한 브런치와 디저트로 배를 채운 뒤 조용한 미술관에 앉아 작품 자체에 빠져들어 본다. 오후에는 시장으로 걸음을 옮겨 저녁준비에 필요한 식재료를 산다. 주말 아침이면 인정 넘치는 벼룩시장에서 뜻밖의 수확을 노린다. 도보여행의 낭만을 버리지 않았다면 이는 파리 안에서 현실이 된다.
글과 사진 김수현 기자    취재협조 프랑스관광청 kr.rendezvousenfrance.com,
에어프랑스 www.airfrance.co.kr, 파리 관광 안내사무소 www.parisinfo.com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파리에서만큼은 두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여행자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후회 없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는 얼마 전 파리를 다녀온 기자의 생생한 경험담이다. 물론 짧은 시간 많은 것을 보기 위해서는 버스, 메트로, 자전거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충분히 허락된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도보로 불과 몇 분 거리에도 메트로역이 촘촘히 들어서 있지만 도시 여행에 제대로 심취하기 위해서는 가끔은 편안함보다 느림과 불편함을 가까이 두는 것이 좋다.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풍성해지는 파리여행에는 내 위치가 어디인지만 파악할 지도 한 장이면 충분하다. 도심 속을 산책하며 고풍스러운 저택에도 기웃거려보고 남녀노소 길게 줄 서 있는 카페 앞에 슬쩍 다리를 걸쳐보고. 주말이면 사람 냄새나는 골동품 시장에서 아침을 보내는 일까지,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 속을 유람해보는 거다. 그래서 파리는 걸어서 여행해야 한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파리지앵 같은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싶다면 속도를 더 늦출 필요가 있다.

1 자크마르 앙드레 미술관의 내부. 17세기 프랑스 스타일을 반영한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2 오랑주리에 전시된 르누아르의 작품들. 
3 오랑주리 미술관은 튈르리 정원 남쪽에 있다. 
4 자크마르 앙드레 미술관은 매번 다양한 테마로 기획전을 연다. 
5 모네의 작품을 보고 싶다면 오랑주리로.

파리 시내로 예술 산책을 떠나요

대다수 사람의 파리여행처럼 나의 첫 파리에도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이 있었다. ‘파리까지 와서 취미도 아닌 미술 감상을 꼭 해야 하나?’ 예술에 조예는 없지만 들은 것은 있었기에 짧은 일정에도 이 두 곳을 뺄 수는 없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수 천점의 고상하고 화려한 작품들 앞에서 쏙 들어갔지만 말이다. 이날 이후 나는 “파리에서 예술작품 하나 감상하지 않고는 진짜 파리를 반의반도 만나지 못한 것”이라 말하고 다녔더랬다. 미술관을 섭렵할 마음을 먹고 나니 뮤지엄 패스가 절실했다. 가난한 여행자의 신분으로는 비싼 가격이었지만 세계적인 명화와 조각들을 마음껏 볼 수 있단 생각에 기꺼이 거금을 투자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 탓에 조용한 감상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파리를 방문하는 많은 이들의 생각이 이와 비슷하니 언제나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은 인파로 붐빌 수밖에 없다. 특히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앞에서는 감동보다 백화점 세일 기간을 먼저 떠올렸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조용한 공간에서 오로지 예술 작품만을 탐하고 싶다면 앞서 이야기한 두 미술관보다 좋은 곳이 있다. 미술관 특유의 분위기에 한껏 취하고 싶은 이들에게 오랑주리 미술관Musee
de l'Orangerie은 더없이 완벽한 목적지다. 튈르리 정원 끝자락에 위치한 미술관은 6년 동안의 대대적인 공사를 끝내고 대중을 향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튈르리 궁전의 일부였던 이 건물은 과거에 오렌지 나무를 보호하는 온실로 사용됐다. 오랑주리라는 이름이 뜻하는 그대로 오렌지 정원이었던 셈이다. 오랑주리가 미술관으로서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은 1921년. 이후 여러 차례의 리노베이션을 거쳐 지금의 형태로 거듭났다. 미술관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작품은 두 개의 타원형 방에 자리한 모네의 수련 연작이다. 건축가 카메유 르페브르는 모네의 뜻을 이어받아 수련 연작을 위한 완벽한 자연채광 공간을 마련했다. 빛을 그린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을 이런 특별한 곳에서 볼 수 있음은 분명 엄청난 행운이다. 수련과 연못을 담은 작품은 모네가 바라던 대로 시시각각 변하는 햇볕의 각도와 양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해 뜰 무렵의 수련 4점, 해 질 무렵 4점을 두 전시실에 나눠 걸어두었으며 비교적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기에 실제로 연못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는 모네의 작품 외에도 세잔, 르누아르, 마티스, 모딜리아니 그리고 마리 로랑생의 그림도 만날 수 있다. 틈틈이 열리는 기획전 때문에 관광객 외에도 예술을 사랑하는 파리지앵의 행복한 발걸음이 끊일 줄을 모른다.

고풍스러운 건물이 줄지어 있는 오스만 거리. 이곳에는 오랑주리 못지않은 사랑스러운 미술관이 숨어있다. 자크마르 앙드레 미술관Musee Jacquemart-Andre은 에두아르 앙드레와 넬리 자크마르의 개인소유 저택을 개조한 곳으로 부부가 살아생전 모은 예술작품, 소품 및 가구를 전시했다. 미술관 입구처럼 보이지 않기에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매표소를 지나 저택 안쪽으로 들어가면 프랑스 유명 전통 건축가의 손길이 닿은 로맨틱한 건물과 사랑에 빠지게 될 테다. 1875년에 완공된 이 저택을 미술관 겸 박물관으로 사용하게 된 사연 뒤에는 부부의 예술작품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19세기, 금융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에두아르 앙드레는 미술작품에 관심이 많았고 당시 유명세를 떨친 여류화가 넬리 자크마르과 백년가약을 맺는다. 부부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그만두고 세계 여행을 떠난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미술품을 발견하고 수집하는 삶을 아주 오랫동안 이어나간다. 두 사람은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프라고나르, 다비드, 부셰 등 프랑스 작가의 작품을 비롯해 매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르네상스 시대 미술 작품을 하나둘씩 사들인다. 금실 좋은 부부의 꿈같은 동행은 에두아르의 이른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자크마르는 남편이 떠나고서도 20년 가까이 혼자 전 세계를 여행하며 계속적으로 컬렉션을 수집했다. 그녀는 죽기 직전, 남편의 유언에 따라 프랑스 학사원에 그들이 모은 소장품과 저택을 증여한다. 프랑스 학사원은 이들의 마음을 받아들여 부부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개관했다. 자크마르 앙드레 미술관은 1913년 오픈 이래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개인 소장품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화려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내부는 크게 다섯 파트로 나뉘는데, 각 공간에 따라 인테리어에 큰 차이를 보인다. 공통점이 있다면 호화로운 장식 덕에 주거공간이었다는 것을 믿기 힘들다는 점. 귀중한 물건을 보유한 웅장한 규모의 궁전과도 한 번쯤 견주어볼 만하다. 2층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 저택의 핵심인 이탈리아 갤러리가 나온다. 매년 미술품 수집을 위해 이탈리아를 방문한 부부였지만 취향은 확연히 달랐다. 그래서 피렌체 갤러리와 베네치안 갤러리에 아내와 남편의 컬렉션을 분리해 전시했다. 박물관 어디서든 사진 촬영이 가능하지만, 이 두 곳에서만큼은 작품 훼손을 막기 위해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자크마르 앙드레 미술관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박물관의 온 기분과 동시에 화려한 저택에 초대받은 기분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1층 카페에 앉아 달콤한 쇼트케이크를 맛보면 부부의 시간을 초월한 극진한 환대에 감사한 마음마저 느끼게 된다.

 1 8 그냥 지나치기 힘든 초콜릿의 달콤한 유혹. 
2 생제르망 데 프레의 파사쥬 안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르 프로코프를 비롯해 유서 깊은 레스토랑을 만날 수 있다. 
3 메종 조르주 라흐니콜에서 판매하는 마카롱. 
4 5 시장구경은 언제나 톡톡 튀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파리의 시장들도 마찬가지이다. 
6 초콜릿 명장 미쉘 클리젤의 아들이자 디망쉬의 대표이다. 초콜릿 가게 옆 레스토랑에서는 쉐프의 특별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7 19세기 유명 예술가와 문학가들의 쉼터가 되어준 카페 뒤 마고.

걸어서 만나는 맛있는 파리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프랑스는 미식의 천국’이라 말하지만 개인적으로 프렌치식 정찬이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훌륭한 디저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유명 제과점 이름을 떠올려보면 파리가 들어가 있는 것이 두 개이고 아예 프랑스어로 이름을 읽는 곳도 있으니 이만하면 ‘디저트의 천국’이라는 애칭을 붙여도 좋지 않을까. 프랑스 디저트의 인기가 한국에 상륙한 지는 오래됐다. 예전에는 사진을 보며 눈으로 혀에 닿을 맛을 상상해야 했다면 이제는 알록달록한 마카롱을 어디에서든 맛볼 수 있다. 그럼에도 본고장의 맛과 풍미를 빼다 박은 듯 똑같이 가져오기란 힘들다. 그래서 음식으로 파리를 추억하기 위해서는 풍성한 요리로 배를 채운 뒤 눈과 입이 행복한 디저트를 빼놓아서는 안 된다.

파리를 거닐며 유명 마카롱, 초콜릿샵들을 기웃거리는 것만큼 디저트 애호가들에게 행복한 순간이 또 있을까. 그러나 이제 막 파리의 달콤한 유혹에 살짝 발을 들여놓은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슨 브랜드의 초콜릿이 내 입맛에 잘 맞는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전문가이드가 함께하는 고메투어, 초콜릿 투어를 참여하면 파리 시내를 산책하며 다양한 맛을 음미할 수 있다. 디저트와 오래된 레스토랑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와 역사는 덤이다. 보통 3시간 이내 코스가 대부분이라 짧은 시간이 허락된 이들에게는 더욱 효율적이다. 라 뒤레밖에 모르는 디저트 초심자의 선택지가 파리의 옛 골목들로 확대되는 것이다. 같은 마카롱이라도 색과 맛뿐만 아니라 가게 철학도 제각각인데, 단 하나의 브랜드로만 전체를 단정 짓는 건 다른 것은 몰라도 프랑스 디저트에겐 실례다. 이 투어를 떠나기 전, 꼭 필요한 준비물이 있다. 달짝지근함으로 가득한 입안을 한 번씩 헹궈줄 물과 울퉁불퉁한 옛길을 걸을 때도 불편함이 없는 꼭 맞는 신발. 가이드가 전하는 흥미로운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혀에 모든 감각을 집중시킬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달콤한 디저트 가게 외에도 파리지앵의 일상에 걸쳐진 카페와 시장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느 지역을 가나 식문화와 로컬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1등 장소는 시장이다. 언뜻 보면 모두 세련된 듯한 파리 안에도 훈훈한 분위기의 활기 넘치는 재래시장이 있다. 한 곳에 크게 자리하기보단 요일에 따라 일주일에 두번 정도 여는 곳이 많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장 안에서 신선함의 상징은 보기 좋게 포장된 것이 아니라 재료로 사용할 수 있게 최소한의 손질만 가한 것이다. 마음의 준비 없이 구경한 정육점에서는 털만 쏙쏙 뽑힌 닭과 오리 때문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재료는 가격이 높다. 비싼 게 무조건 좋다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매우 정직한 편이다. 과일가게에서 제법 값이 나가는 포도를 속는 셈 치고 먹어보았는데 단번에 가격을 수긍할 수 있었다. 규모가 작더라도 신선한 재료가 있는 시장이라면 프랑스 사람들의 재료 선별 솜씨를 보기엔 충분하다.

마카롱과 초콜릿의 화려한 진화

파리를 대표하는 디저트는 역시 파스텔톤의 마카롱macaron이다. 아몬드 파우더, 설탕, 달걀흰자 거품으로 구성된 이 과자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만들어야 하기에 요리연구가 사이에서도 까다로운 디저트로 손꼽힌다. 마카롱의 역사는 8세기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시작됐다. 프랑스에 처음 전해진 건 16세기, 피렌체의 카트린 드 메디치 공주가 프랑스로 시집오며 데려온 요리사로부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쁜 색깔의 마카롱은 파리식 마카롱. 파리를 제외하고 다른 지역의 마카롱은 평범한 버터쿠키같은 모양이다. 초기에는 동그랗고 매끈한 표면인 코크만을 구워 먹는 과자였지만, 마카롱의 전체적인 맛을 결정짓는 부드러운 크림, 필링을 곁들이며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신했다. 제과업계의 피카소라 불리는 피에르 에르메Pierre Herme는 이 필링에 다양한 맛을 첨가해 색다른 마카롱을 선보인다. 특히 피에르 에르메 초콜릿샵의 장미향 마카롱은 입안에 꽃잎을 한줌 넣은 듯한 향과 맛으로 가장 인기 있다.

마카롱만큼 파리지앵에게 사랑받는 디저트는 초콜릿이다. 고급 커피숍에서는 따끈한 에스프레소와 작은 초콜릿을 함께 내놓기도 한다. 현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고체형태는 산업혁명 이후에 만들어진 레시피이고, 처음 유럽에 전해진 초콜릿은 액체였다고 한다. 그저 초콜릿 향이 조금 나는 핫초코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무려 고형 초콜릿을 그대로 녹인 진하고 걸쭉한 음료였으니 말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를 쇼콜라 쇼chocolat chaud라 부른다. 17세기에는 궁중과 귀족을 중심으로, 18세기에는 프랑스 전반에 초콜릿 수요가 증가했는데, 당시 예술작품에서도 이들의 초콜릿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그림 속 가족모임이나 옷을 잘 차려입은 신사숙녀들 사이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은색 주전자가 바로 쇼콜라 쇼다. 이 맛을 재현한 앙젤리나Angelina의 앞은 매번 긴 줄의 향연이 펼쳐진다. 생크림과 곁들여 마시면 입안이 흐물흐물 녹아내릴 정도의
단맛을 체험할 수 있다. 단 앙젤리나의 대표메뉴인 몽블랑과 함께 맛보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둘 다 너무 달기 때문에 맛을 제대로 느끼기 힘들다.

고형 초콜릿의 진한 풍미는 미쉘 클리젤Michel Cluizel에서 만날 수 있다. 매장 안, 벽을 따라 흐르는 초콜릿 폭포에 슬쩍 혀를 대고 싶어진다면 그대는 진정한 초콜릿 마니아다. 이들의 초콜릿 사랑을 채워줄 미쉘 클리젤은 초콜릿을 만드는 과정만큼이나 재료선정에도 신중을 기한다. 최고의 퀄리티를 선보이기 위해 독점 계약한 7개의 농장에서 카카오 빈을 공급받고 있으며 훌륭한 품질을 인정한 전 세계 6천여 개의 제과점이 이곳에서 만든 원료를 사용한다. 파리 골목에는 언급한 유명 브랜드 외에도 초콜릿, 과자 명장들의 샵이 자리한다. 그중에서도 미쉘 클리젤의 아들이 운영하는 엉 디망쉬 아 파리스Un Dimanche A paris는 생제르망 데 프레 안에서 서서히 유명세를 타는 초콜릿 가게이다. 매운 고추맛, 와사비 맛 등 달콤함 외에도 독특함을 초콜릿에 담았으니 시도해보는 것도 좋겠다. 단 음식엔 눈길조차 주지 않던 이들의 침샘마저 무자비하게 자극하는 디저트 천국 파리. 녹는 것이 아쉬워 천천히 음미한 초콜릿, 다디단 필링과 촉촉한 코크의 마카롱을 떠올릴 때마다 언젠가는 파리에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게 된다.

투어 문의
미팅 더 프렌치 +33-1-42-51-19-80, www.meetingthefrench.com
라 루트 데 구르메 +33-6-62-41-24-63, www.laroutedesgourmets.fr

비 오는 날도 활기찬 방브 벼룩시장의 풍경. 머리가 하얗게 센 이들은 이곳에서 추억을 산다.

주말을 여는 인정 넘치는 벼룩시장

토요일 아침. 평소라면 늦잠으로 가득 채웠을 시간이지만 누가 깨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아무리 피곤해도 여행지에서의 일분일초는 소중한 법. 파리에서 보내는 시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심 끝에 메트로 노선도를 펼쳐 들고 주말 오전을 알차게 보낼 방법을 찾는다. 동묘앞, 광장시장 두 개만이 머릿속 벼룩시장의 전부였던 내게,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파리의 벼룩시장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과 그의 약혼녀 이네즈가 걷던 파리 북부 생투앙 벼룩시장Marche aux Puces de Saint-Ouen, 1유로에서 3유로 남짓으로 꽤 입을만한 옷을 건질 수 있는 파리 동쪽의 몽트뢰유 벼룩시장Marche aux Puces de Montreuil 그리고 도심에서 가까운 남쪽의 방브 벼룩시장
Marche aux Puces de la Porte de Vanves. 많은 이들이 파리의 3대 벼룩시장이라 일컫는 이 특별한 장소 중 가장 짧은 시간을 들여 갈 수 있는 방브 벼룩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13호선 방브 역Porte de Vanves에 도착해 계단을 올라가니 예기치 못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장날은 맞는데 비가 온다. 그냥 돌아가는 것이 아쉬워 골목 입구라도 구경하려는데 웬걸, 가판대 위로 투명한 천막을 쳐놓고 손님맞이에 정신없는 가게들을 포착했다. 방브 벼룩시장은 주말 오전 7시 이후부터 날씨에 상관없이 약 380개의 상점이 문을 연다. 직선 도로를 따라 들어선 가게에서는 오랜 시간 여러 사람들의 손을 탄 가구, 아르데코 스타일의 멋스러운 오브젝트, 철제부품, 전등, 테이블보, 은식기, 낡은 옷, 장신구 등 일일이 종류를 나열하기 힘들 만큼의 다양한 물건을 만날 수 있다. 시장의 느낌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생투앙에 비하면 저렴하고, 몽트뢰유보다는 좀 더 앤틱한 느낌이 드는 물건이 많달까. 골동품의 의미가 방브 벼룩시장에선 살아 숨 쉬고 있다.

화려한 명품 백화점에 익숙한 여행객의 시선으론 이곳의 물건은 품질을 기대하기 힘든 것은 물론이거니와 버리려고 내놓은 것인지, 무슨 용도에 쓰는 것인지 경계가 모호한 것들이 많다. 그러나 수많은 가판대를 유심히 눈여겨보는 이에겐 분명 득템의 기회가 찾아온다. 벼룩시장의 재미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나. 지갑을 열게 할 물건을 찾지 못했더라도 사랑스러운 골동품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그만이다. 분명 과거에는 하이엔드라 칭해졌을 것들이 허름한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있는 모습은 흘러간 시간을 곱씹게 한다. 일요일 오후보다는 토요일 오전에 가야 쓸 만한 소품을 건질 확률이 높다. 가끔 터무니없는 가격표를 붙여놓고 ‘살 테면 사봐’라는 식의 물건도 있지만, 대부분이 적정한 가격보다 약간 높은
수준. 그러나 흥정의 재미를 빠트리고서야 벼룩시장을 잘 구경했다 말할 수 없다. 사실 이곳의 판매자들은 바겐세일급의 가격을 제공하진 않는다. 하지만 입가에 미소를 띠고 아는 프랑스어를 총동원하는 노력을 곁들인다면 합리적인 금액을 낙찰받을 수 있다. 동남아시아 여행에서 써먹었던 것처럼 절반 가격으로 뚝 자르고 협상을 시작하는 건 절대 불가능. 대부분의 아이템은 실제로 그들이 소중히 사용했던 것이고 누군가가 이 물건을 소중히 아껴줬으면 하는 마음을 가격표에 담았기 때문에 너무 심한 흥정은 무례하게 보일 수 있다. 과연 누군가 살까 싶은 것도 어떤 이들에게는 오랜 세월 찾고 있던 물건이거나 둘도 없는 기념품일 테니 말이다. 많은 사람이 시장 안에서 추억을 찾는 동안 나도 발견했다.
세련된 모습 뒤에 정감이 넘치는 파리사람들, 지나온 시간과 손때 묻은 물건의 소중한 가치를.

위치
13호선 Porte de Vanves에 하차, 2번 출구로 나와 직진 후 Marche
aux Puces 팻말을 따라 좌회전

영업시간
Marc Sangnier길 시장 토, 일 7:00~13:00
Georges Lafenestre길 시장 토, 일 7:00~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