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Essay :: Australia
Brisbane & Gold Coast in Australia

퀸즈랜드의 두 얼굴, 브리즈번 & 골드코스트

때로 여행에 대한 애잔한 감정은 시간이 다소 흐른 다음에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여행 중에는 꿈꾸던 그곳에 와 있다는 흥분에 품어 왔던 애틋한 마음이 살짝 매몰되기도 하고, 여행 직후에는 다시 돌아온 일상과 짧은 환상 같았던 그곳의 기억이 맞물려 버거운 마음을 떨쳐내기 어렵다. 약간의 시간을 흘려보낸 나는 지금, 호주 퀸즈랜드에서 보냈던 1월의 며칠을 빠짐없이 되새겨 본다. 도심과 자연이 완벽한 하모니를 이뤘던 브리즈번, 바다를 좋아하지 않는 내게도 넉넉히 마음을 열어줬던 골드코스트. 두 곳의 기억이 가득 담긴 테이프를 넣고 재생 버튼에 살짝 손가락을 얹는다.
글과 사진 김다니엘 에디팅 이소윤 기자

김다니엘 l 서울시 구로구 오류동
군인들을 위한 잡지에서 일하는 에디터. 2년여의 남미 체류를 바탕으로 <남자를 미치게 하는 남미>라는 에세이를 발표한 바 있으며, 여행과
스포츠를 매개로 다수의 활동을 하고 있다.

골드코스트의 Q1 스카이포인트 전망대


브리즈번의 자연 풍경

자연 속의 대도시와 도시 속의 대자연, 브리즈번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3일. 자연스럽게 갈 곳과 가지 않을 곳(혹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을 구분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브리즈번은 브리즈번 강을 중심으로 남북이 나뉘어 지역이 형성되어 있다. 그 점이 서울과 닮았다. 남쪽인 사우스 뱅크 지역에는 분위기 좋은 바와 레스토랑, 고급스러운 전시회장, 콘서트홀 등이 눈에 띈다. 각기 다른 피부색을 가진 아이들이 한데 모여 헤엄치는 인공 해변 역시 아름다웠다.

‘강북’이나 ‘북브리즈번’으로 분류할 만한 곳들은 곁눈질할 시간도 없었지만, 사우스 뱅크와 퀸스트리트를 중심으로 2~3킬로미터 이내에 볼 만한 곳들, 즐길 만한 것들이 모여 있으니 크게 아쉽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일부 지역만을 둘러봤으나, 브리즈번의 자연친화적인 환경과 쾌적한 분위기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세계 각지의 메트로폴리탄을 방문해봤어도 이곳만큼 깨끗한 도시를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빌딩숲에 둘러싸여 있는 것은 여느 대도시와 다를 바 없었지만, 이곳의 공기는 조금도 다치지 않은 듯 상쾌했다.

1.브리즈번의 사우스 뱅크 2.코알라 3.캥거루들

브리즈번 내에서도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이 적지 않지만, 조금만 외곽으로 벗어나도 제대로 된 풍경화 여러 폭을 만날 수 있다. 수풀이 우거진 작은 마을, 피그 트리 포켓 외곽에 위치한 ‘론파인 코알라 보호구역Lone Pine Koala Sanctuary’이 대표적인 장소다. 130마리가 넘는 코알라가 살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코알라 서식 공원으로 브리즈번을 방문한 여행자라면 누구나 찾는 곳이다.

호주의 일부 지역에서는 코알라의 건강을 우려해 사람과의 접촉을 금한다고 하는데, 이곳에선 18달러(약 16,000원)만 내면 아기 코알라를 안고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촌스럽다고 빼지 말고 찰칵 한 번 하자! 성룡, 에릭 클랩튼, 머라이어 캐리 등의 세계적 스타들도 다
한 방씩 박고 갔다. 코알라뿐만 아니라 캥거루나 태즈매니아 데블 같은 호주의 상징적인 동물도 만날 수 있으니, 하늘 높이 뻗은 브리즈번 마천루에 지루함을 느낄 때 이곳을 찾기 바란다. 짧게나마 동심을 회복하는 기회가 될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황금빛 해변, 골드코스트

호주 퀸즈랜드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골드코스트 얘기에 열을 올렸다. 서퍼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골드코스트 비치에 꼭 가보라는 것. 남북으로 무려 60킬로미터에 달하는 장대한 해변, 그리고 그것과 맞닿은 푸른 바다를 온몸으로 느껴보라는 말이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나인데, 왜 주위 사람들이 골드코스트에 흥분하는 것일까 직접 확인하고 싶어졌다.

사실 물을 두려워하는 나는 바다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쿠바의 바라데로에서 캐리비안 해변을 거닐 때에도,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코파카바나와 이파네마의 모래를 밟았을 때도 별다른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사실 골드코스트라고 다를까 싶겠냐는 마음이 컸다. 그런 생각을 품고 가서였을까? 당도한 골드코스트의 모습이 특별히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그냥 큰 바다였다. 하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그곳엔 바다를 즐기지 않는 이들에게도 나눠줄 즐거움이 꽤 많이 준비되어 있었다.

근교에는 엄청난 규모의 테마파크들이 서로 자웅을 겨루듯 즐비해 있다. 다양한 워터파크, 영화를 테마로 하는 놀이공원, 대자연과 동물에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결합한 곳 등이 서로 다른 매력으로 여행자들을 유혹했다. 하지만 내가 골드코스트에서 하고 싶었던 것은 단 하나! 수륙양용버스보트를 타는 것이었다. 여행사 직원은 아이들이 즐기는 프로그램이라며 추천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오리처럼 뭍과 물 위를 횡행하는 아쿠아덕에 몸을 실었다. 기대만큼의 박진감은 없었다. 하지만 귀여운 호주 꼬마 일고여덟 명과 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

호주, 아시아 축구의 새로운 성지

스포츠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다 알 법한 얘기지만, 호주 제1의 스포츠는 축구가 아니다. 호주식 축구와 럭비, 테니스, 크리켓
등이 축구보다 훨씬 더 높거나 비교 우위의 인기를 점하고 있다. 2015 아시안컵이 호주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흥행에 대한 우려가
드는 것은 축구팬인 내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쓸데없는 기우에 불과했다. 호주의 프로축구인 A리그가 지속적인 발전을 이뤄가고 있고, 호주대표팀이 기대보다 훨씬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어서인지 일반 대중들이 축구에 갖는 관심이 상당히 커진 듯 보였다. 한국과 호주의 경기가 열리던 날, 이른 아침부터 한국대표팀의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브리즈번 이곳저곳을 여행하던 내게 가볍게 말을 건네며 관심을 보이는 사내들이 적지 않았다.

“우리가 한국 그냥 이겨!”, “한국 이번 대회에선 별로 세지 않은 것 같던데.” 정도의 어설픈 도발이 대부분이었지만, 축구에 대한 애정과 아시안컵에 대한 관심이 느껴져 축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기분이 좋았다. 한국과 호주의 조별 예선 경기에서는 약 4만 8천 명의 관중이 선코프 스타디움을 가득 메웠다. 호주 맥주 몇 잔을 들이키며 경기를 즐겼다. 우리가 1 대 0으로 승리했다. 여행 중 만난 스포츠 이벤트는 축제와도 같다.
그러한 축제는 응원하는 팀이 이기든, 지든 승부와 무관하게 즐길 수 있다. 2주 후 우리나라와 호주가 다시 만난 결승전의 결과는 안타까웠지만,
전체적으로 흠잡을 게 거의 없는 훌륭한 축제였다고 생각한다.

1. 골드코스트에서 즐기는 제트스키    2.아시안컵 

평화로운 도시에 한국전쟁의 슬픈 기억이

호주 브리즈번의 대표적 번화가 퀸스트리트에서 300~400미터 떨어진 센트럴역 부근엔 ‘안자크’라는 자그마한 광장이 있다. 직업적인 특성상 안자크가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ANZAC’는 호주-뉴질랜드 연합군(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이라는 뜻이다.
광장을 둘러보다 한 기념 조각상에서 걸음을 멈췄다. 한국전쟁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다. 호주와 뉴질랜드 두 국가는 6·25 전쟁에 수많은 병력을
파병한 혈맹, 우방국이었다.

호주의 참전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데, 깊이 곱씹어 본 적은 없었다. 그저 6·25 때 우리를 도왔던 나라들 중 하나라는 생각이 전부였다. 한국에 돌아와 호주의 6·25 참전사를 찾다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호주가 미국에 이어 한국전 참전을 결정한 두 번째 나라였다는
것이다. (결정은 두 번째, 실제 파병은 세 번째로 보는 자료도 있다.)

이곳 퀸즈랜드 브리즈번에서 땡볕 아래 망중한을 즐기다 혹한의 고지로 파병 나간 호주 군인들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초를
떠올려 본다. 물론 참전, 파병 같은 큰 일이 꼭 희생과 정의라는 가치 안에서만 성립되는 결정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가족을 등진 젊은
청년들이 낯설고, 머나먼 이국땅에서 피눈물 흘리며 전쟁에 임했다는 사실 만큼은 그 자체로 숭고하게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들 역시 대한민국의 평화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공헌한 바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귀여운 아기 코알라와 교감하며 동심을 회복하는 것도, 청연한 바닷바람을 느끼며 황금빛 모래사장을 걷는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것도, 시내의 좁다란 광장을 지나치며 숙연한 감정을 갖는 것도 모두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일 것이다. 나는 호주 퀸즈랜드에서 그런
선물들을 꽤 많이 챙겨왔다. 비단 협탁 위에 올려둔 캥거루 인형뿐만 아니라.



1.골드코스트 해변  2.아시안컵 거리풍경 3.브리즈번 안자크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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