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Weimar
Classical Weimar in Thuringen

바이마르, 괴테가 58년의 삶을 바친 도시

독일의 중앙부, 튀링겐 주의 4번째 도시 바이마르는 괴테를 비롯해 당시의 내로라하는 작가, 철학가, 작곡가, 화가 등 수많은 문화예술가들이 사랑했던 도시다.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감각 없는 보통 사람에게도 영감을 불어넣는 바이마르. 200년 전 괴테가 걸었을 그 거리를 걸으며 교감을 꿈꿨다.
글과 사진 함희선 기자 취재협조 독일관광청 한국사무소 www.germany.travel/kr

1 바이마르 국립극장의 건너편. 그저 건물 앞에 놓인 단 하나의 벤치일 뿐인데, 얼마나 아름답고 감성 넘치던지. 알록달록하게 예쁜 창틀, 거기에 늘어진 나무 그림자, 나무통에 심어진 가로수, 대충 놓인 자전거, 벤치 위에 앉아있는 스타일리쉬한 커플까지. 바이마르는 여러모로 느낌 있다. 
2 바이마르 공국의 대공이었던 카를 아우구스투스의 동상. 어머니였던 안나 아밀리아의 교육을 잘 받고 자라 지혜롭게 나라를 다스렸다. 
3 도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마르크트 광장. 르네상스 스타일의 멋진 건축물들이 광장을 벽처럼 둘러싸고 있다.

여행은 하나의 물음에서 시작한다. 괴테는 왜 이 도시를 사랑했는가. 바이마르Weimar. 1775년부터 1832년까지 괴테가 무려 58년의 삶을 그렸던 곳. 그런데 그리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인구 6만 5천의 작은 도시 바이마르를 사랑한 건, 독일 문학의 최고봉으로 여겨지는 괴테뿐만이 아니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극작가 실러, 작곡가 리스트, 철학가 니체, 화가 루카스, 시인 빌란트 등 셀 수 없이 많은 문화 예술계의 유명인들이 자석에 끌리듯 이 도시에 찾아들었다.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고도 당연하게,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의 바이마르는 독일 정신문화의 중심지이자 고전주의의 메카로 번성했다. 당시의 똑똑하고 감각 있는 사람들이란 사람들은 죄다 모두 여기로 모여들었던 그 시절. 대체 어떤 도시이기에 그들의 마음을 훔치고 이성을 마비시켰던 걸까.

독일 정신문화의 황금기

튀링겐Thuringen 주의 주도 에르푸르트Erfurt를 과감하게 건너뛰고 동쪽으로 15킬로미터, 동화책 배경그림 같은 구릉지 사이를 달려서 바이마르로 향했다. 여느 유럽의 소도시와 다르지 않은 작고 예쁜 첫인상. 그러나 그저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만이 도시의 전부가 아니었다. 나는 뛰어난 예술가도 아니요 똑똑한 지성인도 아닌 보통사람에 불과하지만, 단번에 무언가를 느꼈다. “종이와 물감이 있었으면 당장이라도 붓을 들고
싶은 기분인데요, 만약 내게 펜이 있다면 글을 썼을 것 같습니다.” 남들은 코웃음 칠 얘기일지라도 내 안에선 어설픈 영감이 들끓었다. 발달된 인문학이나 수준 높은 철학, 예술은 비록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이지만, 왠지 모를 특별한 기운이 강력하게 손을 뻗쳤다. 괴테가 왜 58년의 세월을 이 도시에 바쳤는지 살짝 동감되는 묘한 기분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예전에도 여행 중에 이런 순간을 맞이했더랬다. 예술로 온 몸을 칭칭 휘감은 고상한 분위기에 ‘여기라면 나도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거창한 꿈을 꾸었던 이탈리아의 피렌체Firenze. 사실 피렌체와 바이마르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진실로 인문학과 예술을 이해하고, 재능 있는 이들을 후원했던 계몽된 사상의 귀족들이 존재했다는 것. 피렌체에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메디치Medici 가문이 있었다면, 바이마르에는 안나 아밀리아Anna Amalia 공작부인과 그의 아들 카를 아우구스트Carl August가 있었다. 스토리를 짧게 말하자면 이렇다. 16살에 결혼해 소공국 바이마르의 왕비가 되었던 아밀리아가 아들 둘을 낳자마자 남편이 죽고 말았으며, 장남 아우구스투스가 성년이 되어 즉위할 때까지 훌륭하게 가르치기 위해서 독일의 두뇌들을 바이마르로 불러들였다는 것. 특히 괴테보다 8살 어렸던 아우구스트 대공은 평생을 괴테와 일하고, 친구처럼 지내며 바이마르를 함께 다스렸다고 알려져 있다. 아들을 잘 키우고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고자 했던 어머니의 마음, 문학과 음악을 지극히 아끼던 여성의 감성이 만나 바이마르의 정신문화에 황금기를 가져왔던 것이다.

올바른 바이마르 감상법

바이마르를 걷는 일은 그 자체가 영광스럽다. 거리 어디에도 허투루 지어진 건축물이 없고, 작은 스토리라도 깃들여져 있지 않은 장소가 없어서다. 고전주의 시대의 뛰어난 문화적 번영이 도시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있으며, 볼거리가 집중되어 있는 도심은 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자 전용거리가 대부분이기에 천천히 산책하며 둘러보기 좋다. 게다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알맞은 사이즈는 여행자를 재촉하지 않는다. 다만, 그저 작고 예쁜 도시의 겉모습만 스쳐 지나가면 바이마르를 여행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할 뿐. 안나 아밀리아 대공비가 남긴 문화 예술에 대한 열정과 괴테의 흔적들을 하나씩 짚어봐야 이 도시가 주는 대단한 영감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이마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화유산들이 ‘고전주의 바이마르Klassisches Weimar’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리스트에 올라 있으므로. 역시 그중의 첫 번째는 괴테가 만년에 40년을 거주했던 괴테의 집이며, 괴테와 긴밀하게 창조적인 관계를 맺었던 작가 실러의 집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외에도 시티 캐슬, 태후의 궁전, 안나 아밀리아의 도서관, 왕자 묘소와 기념 묘지, 헤르더의 집과 교회, 로만하우스와 괴테의 정원이 있는 일름 강변의 공원, 벨베데레 성, 티푸르트 성, 에터스부르크 성, 빌란트 저택 등이 있다.

모든 유럽의 도시 여행이 그렇듯 출발은 광장에서 하는 게 좋다. 아담한 크기의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신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3층짜리 시청사Rathaus다. 전면에 발코니가 있고 가운데 종탑이 높게 솟아있는 것이 특징으로 그 안에 마이센Meissen에서 공수해온 작은 도자기 종 35개가 오전 1시, 오후 12시와 3시, 5시에 맑은 소리를 울려 매일의 시간을 전한다. 광장 한가운데 서서 빙 둘러보면 벽처럼 공간을 감싸고 있는 건물들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안타깝게도 전쟁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무너진 다음, 복원작업을 통해 재건된 탓에 예전보다 못하다는 평을 듣지만 르네상스 스타일의 건물들은 여전히 감탄을 자아낸다.

도시 속 괴테 찾기

마르크트 광장에서 북쪽으로 5분만 걸으면 이내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도시의 하이라이트가 등장한다. 바로 괴테 하우스Geothe House다. 생가는 아니고, 1782년부터 1832년 사망 전까지 거주했던 주택이다. 현재는 바로크 양식의 2층 건물 3채가 이어져 있는 거대한 박물관으로 약 40개의 방에 서재와 침실을 비롯해 그가 그린 그림 2천여 점과 직접 수집한 광물이며 도자기와 조각 등 5만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6,500권의 책이 보관된 도서관이 있으며, 1819년 집필한 <서동시집>의 육필원고, <파우스트>와 <시와 진실>의 복사본 등을 소장하고 있다. 잠깐 괴테에 대해 언급하자면, 그는 독일 문학의 최고봉을 상징하는 인물로 시인이자 극작가, 또 정치가이자 과학자였다.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난 괴테는 문학과 예술을 가까이 접하며 자란 문학 신동으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결국 문학의 길로 들어서서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면서 20대에 유명작가 반열에 올라섰다. 그리고 1775년, 바이마르로 이주해 군주 카를 아우구스트의 신임을 한 몸에 받으며 국정의 일에 참여하면서 국가를 키우는 데 힘썼다. 바이마르 공국의 유능한 관료였던 괴테였으나 끓어오르는 창작의 욕구를 주체하지 못해 이 도시에 머무는 58년의 세월 동안 대표작인 <파우스트>를 비롯해 방대한 양의 시와 소설, 희곡과 산문을 남겼다.

괴테를 떠올릴 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독일 문학의 거장이 하나 있다. 1794년부터 괴테는 실러Schiller와의 교류를 통해 작가로서 발전을 거듭했는데, 둘의 우정은 5년 뒤 실러까지 바이마르로 불러들이게 했다. 괴테와 실러는 독려하는 관계로 때로는 서로의 작품을 비평하면서 함께 성장해나갔다. 두 사나이의 우정이 얼마나 각별했던지 괴테가 25년간 감독으로 일했던 바이마르 국립극장 앞에는 괴테와 실러가 함께 서있는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죽어서도 구시가지 남쪽의 영묘 안에 나란히 묻혔다.
1799년 바이마르로 이주해 온 뒤 줄곧 거주했던 실러 하우스Schiller House도 괴테 하우스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실러는 여기서 희곡 <군도>와 3부작의 역사극 <발렌슈타인>을 완성했다.



1 마르크트 광장에 있는 신고딕 양식의 시청사 건물. 
2 바이마르에선 제멋대로 입고, 행동하는 사람들도 멋져 보인다. 
3 국립극장 앞에 세워져 있는 괴테와 실러 동상. 둘은 서로 독려하고 비평하는 관계로 오랜 우정을 나누었다. 
4 독일이 낳은 또 하나의 대문호 실러의 집. 절친한 친구였던 괴테의 집도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5 이 도시에는 아이스크림 먹으며 산책하는 이들이 유난히 많다. 
6 마차 너머로 왼쪽에 보이는 웅장한 집이 바로 괴테 하우스. 약 40개의 방으로 이뤄져 있다.

아름다운 바이마르의 시간들

책 읽기를 죽어도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안나 아밀리아 대공비의 도서관Anna Amalia Library에 앉혀 놓으면 평생의 취미가 달라질 거다. 한순간도 손에서 책을 놓고 싶지 않을 만큼 감동적으로 아름다운 책방이 아닐 수 없으니. 괴테와 실러, 헤르더, 빌란트 등 당대의 대단한 작가, 음악가, 철학가들을 바이마르로 데려와 바이마르를 독일 고전주의의 메카로 만들었던 안나 아밀리아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천국. 바이마르 성의 일부로 초록성이라고 불리는 건물의 로코코 홀은 18-19세기에 역점을 둔 연구 중심의 도서관으로 백만 권의 장서를 보관하고 있다. 루터가 번역한 <성서>의 1535년 초판을 비롯해 세기의 판본으로 불리는 1854년 판 괴테의 <파우스트> 등 수많은 귀중본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영화 속 세트장처럼 인테리어가 곱고 품격 있다.

아밀리아의 도서관 문밖으로 나서서 공원 쪽을 바라보면 화려하진 않지만, 그래도 궁전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챌 수 있는 바이마르 슈타트 슐로스 궁전Weimar Stadtschloss이 보인다. 중세시대에 건설된 후 여러 번의 재건과 증축을 걸쳐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데, 이곳 내부의 예배당에서 바흐Bach가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로 10년 동안 일했다고 전해진다. 무려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연주하는 예배당에 다니는 일이라니, 아마도 성경 말씀보다 그의 오르간 연주에 가슴이 더욱 벅차올랐을 테다. 바이마르를 사랑했던 음악가 중에는 리스트Liszt도 있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그는 바이마르 궁정 극장의 지휘자로 44편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다. 그가 살았던 집은 마리엔 거리 위에서 찾을 수 있으며, 바그너,
브람스, 스메타나 등 대단한 이들이 찾아왔었던 리스트의 거처는 현재 피아노, 악보, 선물 등을 전시한 박물관으로 운영된다. 또한 1872년 그의
이름을 따라서 지은 프란츠 리스트 음악대학이 설립되어 오늘도 튀링겐 주 유일의 음악대학으로서 전 세계 음악 학도들이 수학하고 있다.

바우하우스의 고향

“아, 바이마르!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도시에 대한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이 이렇다. 아마도 바이마르 헌법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독일인들은 1919년 바이마르에서 새 헌법을 제정해 독일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 ‘바이마르 공화국’을 탄생시켰었다. 비록 1933년 나치에 의해 붕괴되었지만, 역사상 민주주의의 가장 이상적인 헌법으로 평가받는 것이 바로 바이마르 헌법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아마 디자인이나 건축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이라면 바우하우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바우하우스Bauhaus는 1919년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가 바이마르에 설립한 조형학교로 1933년 나치가 강제로 폐교시키기까지 예술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베를린 출신의 그로피우스는 ‘미래의 새로운 건축을 위해서 조각, 회화와 같은 순수미술과 더불어 공예의 응용미술이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기본 사상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공방에서 가구와 도자기, 그래픽 디자인과 순수미술 작품, 그리고 실험 주택 등을 생산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파울 클레Paul Klee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가 마이스터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만큼 당시 바우하우스의 위상은 대단했다. 비록 급진적이고 국제적인 활동이라 나치의 눈 밖에 나서 폐쇄된 후, 그 이념이 미국으로 건너가 꽃을 피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지만, 현대에서의 디자인과 건축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바이마르에는 4천 명의 재학생이 예술과 공학 분야에서 공부하고 있는 바우하우스 대학교Bauhaus Universitat와 바우하우스 출신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바우하우스 박물관Bauhaus Museum이 남아있어서 당시의 혁신적이었던 바우하우스를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



1 슈타트 슐로스 궁전. 이곳 예배당에서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10년 동안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했다. 
2 바우하우스 대학교의 로비. 나선형 계단 옆으로 로댕의 조각상이 있다. 
3 5 아름다운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안나 아밀리아 대공비의 도서관. 연구 가치가 높은 18-19세기의 주요한 장서들을 소장하고 있다. 
4 바우하우스 대학교에 여전히 남아있는, 초대 학장이었던 발터 그로피우스의 방. 정확한 큐브의 제한 속에 디자인 된 건축구조와 가구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6 바우하우스 박물관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