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Nanjing
Time Traveling Nanjing

남경 시간 여행

중국에서 가장 비옥한 땅을 가진 덕에 예부터 사람들로 가득했고 많은 문인이 스쳐 지나갔다.  화동지역에 위치한 강소성의 성도 남경은 중국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명소들이 자리한 곳이다. 숭고한 역사가 깃든 곳이자 중국 남부지방의 중요도시로 손꼽히는 남경을 탐방했다.
글과 사진 김수현 기자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 서울지국 www.visitchina.or.kr

국의 국부 손문을 만나다

거인족에게만 허락된 공간에 불시착한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마냥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곳은 중산릉中山陵이다. 한 사람의 묘를 짓기 위해 이렇게나 넓은 땅을 내준다니. 중국이 아니고서야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두 눈으로 보고 난 후에야 우스갯소리로나 말하던 이 나라의 남다른 스케일을 인정하게 됐다. 그러나 아무리 땅이 넓다고 한들 누구에게나 이런 공간이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 중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손문孫文이 잠든 곳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중국인 앞에서 중산릉을 그저 그런, 똑같은 유적지로 치부하는 건 큰일 날 소리다. 그들에겐 방문이라기보다 순례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곳이니 말이다. 중국과 타이완의 도로 몇 곳을 그의 호인 ‘중산中山’으로 명명한 것, 이 공간을 묘墓가 아닌 천자에게만 허락된 능陵이라는 한자로 표현하는 것을 보면 손문이 중국 역사 속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손문은 남경과 인연이 깊다. 청淸 왕조를 무너뜨리고 남경에 중화민국 임시정부를 뒀으며, 그의 유언에 따라 1929년, 6월 1일 이 도시에 안장됐다. 참배로까지 닿는 392개의 화강석 계단을 올라가면 손문이 제창한 삼민주의三民主義의 원칙인 ‘민족, 민생, 민권’을 새긴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제당 안에 입장한 중국인들은 그의 동상 앞에서 어느 때보다도 조용하고 엄숙하게 한 시대의 영웅을 기리고, 이 모습이 낯선 여행자는 3천 미터에 이르는 능원길 풍경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감탄한다.

주원장이 잠든 명효릉

중산릉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명효릉明孝陵이 있다. 명明 시대를 연 주원장朱元璋과 황후 마씨馬皇后의 묘로 과거에는 황후의 시호가 효孝자인 이유로 효릉이라고 불렀다. 중국 최대의 제왕릉 중 하나다운 웅장함, 여기에 고즈넉한 분위기가 더해져 세계문화유산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곳이다. 명나라 건국 초기부터 시작된 황릉 공사는 당시 황실의 경제를 흔들리게 했다고 전해지는데, 숲과 어우러진 예쁜 돌벽과 고풍 있는 건축양식을 들여다보니 자연스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토록 화려한 사후궁전에 주원장과
그를 따르던 관인 10명, 병사와 시종 46명이 묻힌 것은 완공 15년 후였다고 한다. 중국 역사에 위대한 인물이 안장되어있다는 점은 중산릉과 같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안타깝게도 주변 지역에서 일어난 몇 번의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는데, 오랜 시간을 들여 수
차례 복원을 시도한 끝에 명 시대의 고색창연함을 재연해냈다.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명효릉은 황제의 사후세계를 위한 고귀한 공간임과 동시에 오늘날 남경 시민들을 위한 사랑스러운 산책 장소다. 사계절 모두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특히 단풍이 빨갛게, 노랗게 물드는 가을의 풍경이 으뜸이다. 참배로를 지키는 조각상 사이를 걸을 때면 발을 떼는 속도가 느려지고 마음은 숙연해진다.

역사를 기억하는 대학살 기념관

30만 명. 중일전쟁이 한참이던 시기인 1937년 12월부터 약 6주
만에 목숨을 잃은 사람의 수다. 남경은 일본군에 의해 단 3일만에 점령당했고 중국군 포로와 일반인들은 무자비하게 살해당했다. 일본 정부는 희생된 사람이 몇만 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지만, 남경대학살 기념관南京大屠..念. 곳곳에 조각된
‘300,000’이라는 숫자는 중국 정부가 일본 측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 시기 남경의 슬픈 역사는 기념관을
둘러보는 모든 사람의 가슴을 울린다. 기념관은 수많은 유골이
발견된 공간 위에 세워졌다. 당시의 일본군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고 후세에 전하기 위한 장소로 이곳을 선택한 것이다. 전시관
끝자락에 있는 ‘12초 관’에서는 남경대학살로 인해 12초에 한 명이 희생된 전쟁의 참상을 강조한다. 물방울이 똑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희생자의 사진에 불빛이 들어오는 것을 보며 기념관을
나가는 순간까지 먹먹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남경의 어머니 강, 진회하 뱃놀이

예부터 남경은 우한, 충칭, 난창과 함께 화로도시라 불린다. 실제로 남경의 여름은 화로처럼 뜨거운 찜통더위가 이어진다. 이러한
까닭으로 여름철이면 진회하秦淮河의 물길을 따라 시원한 바람을
맞는 뱃놀이가 사랑받는다. 진화하의 밤은 낮보다 빛난다. 진회하
유람은 남경의 또 다른 명소 중 하나인 부자묘夫子와 대성전 앞에서 시작한다. ‘남경의 젖줄’이라는 애칭을 가진 강물을 따라가면 과거에 진회하 주변에서 풍류를 즐긴 선비의 모습과 진회팔염秦淮
八.으로 일컬어지는 아름답고 똑똑한 여인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배를 타고 수로를 돌며 더위를 식히는 것은 물론, 과거 시험이
이루어진 강남공원江南貢院, 고급 술집과 고즈넉한 건물을 구경하며 도시가 지닌 새로운 매력을 알게 된다.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 이렇게나 귀하게 느껴진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센강 유람선, 도나우강 유람선 등 유럽의 뱃놀이에선 느끼지 못했던
숭고함이 남경의 찬란한 역사를 말해주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