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Essay :: Europe
My First Backpacking

나의 첫 유럽 배낭여행

스물 셋의 나. 지극히 평범하게 대학을 다니고 있던 학생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내 주변의 동기들을 따라서 생각 없이 휴학을 한 것이 내 생애 가장 잘한 일이었던 것 같다. 휴학계를 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가장 예쁠 나이 스물 셋에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을 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향긋한 봄 냄새와 함께 창문을 보고 있었던 그때 큰 배낭을 메고 버스에 타는 외국인을 보았다. 순간 무언가가 문득 뇌리를 스쳤다. 그렇다, 배낭여행.
글과 사진 김정민 에디팅 이소윤 기자    

김정민 l 서울시 은평구 응암1동
평범한 대학생. 항상 마음속에 여행과 일상의 중간쯤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하루하루에  충실하려 노력한다. 아직은 꽃피지 못한 미생이지만 여행을 통해 찾은 의미로 완생을 꿈꾸는 슴넷 파란 청춘.

1st. 영국, 같은 여유로움

“30분 후면 런던에 도착하겠습니다”라는 기내 방송과 함께 눈을 떴다. 그리고 창문 밖으로 이국적인 영국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눈앞에 영국을 대표하는 빨간 2층 버스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제야 ‘드디어 내가 그토록 꿈꾸던 영국에 왔구나’ 실감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정말 그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기분 좋은 영국 기사 아저씨의 인사를 받으며 예약한 숙소로 향했다. 길가에 보이는 모든 외국 간판, 책에서만 보았던 건물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들이 꿈만 같았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말한다. 여행을 통해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자기가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이해의 큰 지름길이다. 이국적인 풍경과 함께 내가 처음으로 향했던 곳은 런던의 세인트 제임스 파크St.James' Park였다. 이곳은 인위적인 공원이 아닌 정말 자연이 숨 쉬는 공원이다. 자연스레 공원에 누워 오랜만의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 업무 중간에 나와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직장인들, 얘기할 것이 뭐가 그리 많은지 수다를 떨고 있는 젊은 남녀들. 심지어 평일 오후였는데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국에선 절대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그때 알았다. 이 사람들은 지금, 이곳을 충분히 사랑하며 하루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란 걸. 현재가 그들에겐 가장 큰 자산이란 걸.

2nd. 프랑스, 여자를 행복하게 하는 작은 동네

영국에서의 14일이라는 긴 일정을 마치고 나는 프랑스-스위스-스페인-포르투갈 순으로 여행을 이어갔다. 프랑스 파리Paris는 나에게 그다지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반면 다른 도시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와 콜마르Colmar는 다시 한번 가고 싶은 도시로 기억된다. 이 도시들은 얼마 전 유행했던 ‘꽃보다 할배’ 프로그램을 보고, 나도 여행 일정에 끼워 넣은 것인데 정말 아기자기하고 조용한 동네였다.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고 걷는 길 하나하나가 정말 예술이었다. 여자라면 한 번쯤 꼭 가봐야 할 곳이라 생각된다.

유럽이 좋은 이유는 각 나라가 붙어 있다는 점이다. 힘을 들이지 않고 버스에만 올라도 다른 도시와 나라로 떠날 수 있지 않은가. 스트라스부르에 머무는 동안 난 버스를 타고 독일의 국경 도시인 켈Kehl에 다녀왔다. 버스로 20분을 나섰는데 독일이라니. 무척 신기하면서도 부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짧게나마 독일에도 발도장을 찍고 스위스로 향했다.

프랑스 콜마르 입구의 예쁜 풍경.
빨간 2층 버스를 보고 첫 설렘을 느꼈다.
평화로운 세인트제임스 파크.

3rd. 스위스, 몸과 마음이 모두 쉬어가는 곳

소위 스위스Switzerland하면 아기자기한 도시와 깨끗한 풍경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실제로도 한 치의 오차 없이 딱 내가 상상한 그대로였다. 때묻지 않은 자연이 숨 쉬는 곳. 스위스의 풍경은 ‘정말 이런 곳이 존재했었나?’ 싶을 정도로 입이 벌어진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제일 가보고 싶어 했던 작은 마을 스피츠Spitz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기자기한 집과 느림을 추구하는 듯 조용한 마을에선, 쨍쨍 내리쬐는 햇빛 아래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부모들, 벌러덩 누워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미 영국에서 충격을 얻은 터라 아주 많이 놀랍지는 않았다. 단지, 저러한 생활이 일상이라는 사실이 부러워 씁쓸했다. 가만히 나도 잔디에 앉아 그들의 행복을 눈이라는 카메라에 가득 담았다. 후에 유람선을 타고 바다를 가로질러 스위스의 깨끗한 자연과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했다. 마음과 정신이 정화되는 그런
나라다. 유럽에서 오직 한 곳만 여행해야 한다면 난 스위스를 추천하고 싶다. 다른 장소들과의 비교를 위해 가끔 ‘나는 정말 그 도시에서 마음을 쉬었는가’를 고민하곤 하는데, 거기에 스위스는 가장 적격이었다. 마음과 몸이 힘든 자, 스위스행 표를 당장 끊어라.

4th. 스페인, 환대와 분위기의 나라

그렇게 스위스 일정을 마치고 스페인Spain으로 향했다. 스페인에서는 대표적인 세 도시인 바르셀로나Barcelona와 세비야Sevilla, 마드리드Madrid를 여행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는 세비야이다. 세비야를 잘 모르는 사람도 많겠지만, 나에겐 ‘영국의 런던’과 ‘스위스의 스피츠’ 다음으로 좋았던 도시다. 세비야는 우선 사람들이 정말 친절했다. 혼자 들어갔던 레스토랑에서는 환하게 웃는 웨이터에게 음식이 어떤지 질문을 받기도 했다. 별 것 아니지만, 낯선 타국에서 환대와 친절을 받는 일은 여행자 입장에서 매우 소중한 기억이다.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야경을 보러 숙소 앞 강가에 앉았다. 무지개 빛깔 노을이 지면서 하나둘 가로등이 켜지고, 분위기 좋은 세비야를 만끽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친구와 함께 걸으며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들, 강아지를 데리고 저녁 산책을 하는 사람들, 조깅하는 사람들 등등. 언제쯤 다시 이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을까. 그곳에 앉아서 많은 생각을 했다. 더 머물고 싶던 세비야를 끝으로 12일 동안의 스페인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 나라 포르투갈로 향했다.

5th. 포르투갈, 40일간의 유럽여행에 마침표를 찍다

포르투갈Portugal은 사실 일정에 넣을 생각이 없었지만, 대서양의 끝이라 불리는 호카Roca 곶을 보기 위해 선택한 나라다. 포르투갈은 처음 도착했을 때의 느낌이 솔직히 매우 신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포르투갈의 진짜 정취는 저녁이 되어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다. 골목골목마다 가로등의 빛과 함께 운치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거리 악사의 조용한 재즈 음악과 함께 레스토랑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들. 나도 그 분위기에 한몫하기 위해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40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나라인 만큼,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생각에 잠기고 싶었다. 생각이라는 건 별 것 없다. ‘한국에 가면 다시 일상이겠지?’, ‘언제쯤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나도 만약에 유럽에서 태어났더라면,’ 등등.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들이킨 마지막 날의 맥주 한 모금은 여전히 기억에 생생하다.

대학교 4학년인 지금, 내가 여행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현실이기에 힘든 상황이 오거나 한국이 싫어질 때면 나는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 순간은 유럽 여행 첫 날이었다. 런던의 공원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여유를 느끼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은 그날이다. 그들은 현재를 여행과 일상의 중간쯤에서 살고 있는 듯 했다. 여행은 말 그대로 여행이다. 몸을 힘들게 할 필요도 없고, 남에게 내가 아닌 나를 강요할 필요도 없는, 자유로운 세상에서 내가 나에게 주는 평화이다.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이라면 너무 꼼꼼하게 계획한 일정표와 스마트폰보다 ‘눈’이라는 카메라만 가지고 여행하길 바란다. 세상을 좀 더 생생하게 느끼기 위해서 말이다. 



스위스 베른 공원.
런던의 몬머스 커피숍.
세비야의 건물을 덮은 천으로 거리거리가 그윽해진다.

포르투갈에 간 이유인 대서양의 끝, 호카곶.
바르셀로나의 티비다보 놀이공원 관람차.
포르투갈의 지붕들은 하나같이 모두 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