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Rubens
A Gay Life Force of a Highly-gifted Artist, Rubens

화려한 생활력의 천재화가, 루벤스

루벤스 하우스에 대해 당시 안트베르펜 시의 한 고위관리는 ‘루벤스 하우스는 지나는 사람이 깜짝 놀랄 정도이다’라고 평했다.
1600년대의 개인 집은 정말 허술하기가 그지 없었다. 그런데 벨지움 안트베르펜에 있는 루벤스 하우스는 지금은 기준으로 봐도 대저택이다.
집의 위치도 범상치 않다. 루벤스 하우스에서 백 발자국도 안 나오면 바로 안트베르펜의 주요 쇼핑상가가 있다. 그만큼 안트베르펜의 중심이라는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의 집이 이 정도면 도대체 페터르 파울 루벤스(1577-1640)의 부는 얼마나 되었을까?
글과 사진 권석하 편집위원(영국인 재발견 저자)

루벤스 자화상.

루벤스의 비밀통로

정말 놀라울 정도였음이 분명하다. 주인이 죽은 지 375년 된 집이 이렇게  남아 있는 것을 보는 기분은 비현실이거나 초현실이다. 루벤스는 이 집을  그의 나이 33세에 샀다. 그런 뒤 자신이 직접 설계해서 증개축 했다. 바로 크 스타일의 이 집에서는 왠지 이탈리아 냄새가 난다. 북유럽 날씨에 별로 필요 없는 발코니를 비롯해서 정면 모습은 로마의 어느 주택가 골목에서 볼 수 있는 집처럼 보인다. 이유가 있다. 루벤스는 23살의 나이로 당시로는 모든 면에서 최선진국이던 로마로 미술 수학을 떠났다. 그리고 8년 뒤 안트베르펜으로 돌아 올 때는 루벤스는 이미 젊은 대가가 되어 돌아 왔다. 이 집을 지을 때는 아직도 이탈리아의 기억이 채 사라지지도 않았을 때이니 당연히 로마의 추억을 생각하면서 증개축을 했으리라는 것을 추측하는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듯하다. 놀라운 점은 로마에서 돌아 온지 고작 2년 만에 루벤스는 이런 대단한 집을 지을 만큼의 부를 쌓을 정도로 짧은 시간 내에 유명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서 루벤스는 지금 집안을 가득 채운 가구와 함께 다른 화가들의 그림도 많이 사서 모았다. 지금 루벤스 하우스에 있는 그림들 모두가 루벤스의 그림은 아니다. 특히 집으로 들어서서 이층으로 올라가 돌아가면서 보는 그림들은 루벤스의 그림이 아닌 루벤스가 사서 모은 그림들이다. 그래서 루벤스를 화가뿐만 아니라 외교관과 함께 미술품 수집가라고도 부른다. 이층 방을 돌아 다니다가 보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방이 나온다. 잘못하면 여기서 그냥 돌아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지금부터가 진짜다. 벽에 붙은 조그만 문을 통해 아트스튜디오 건물로 넘어가야 한다. 이상하게도 그 문은 잘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건물 두 개를 붙여서 만들었다는 설명을 못 보면 비밀 통로를 만들었나 할 정도다.

온전히 대가의 작품인가?

그 문을 열고 아트스튜디오 건물로 넘어가면 이층 방 검은 벽에 붙은 그림들이 비로소 루벤스의 그림들이다. 루벤스가 그린 자화상, 첫째 부인 이사벨라 브란트 그림부터 37살 차이의 두 번째 부인 엘렌 푸르망의 그림 그리고 딸의 그림들이 차례로 나온다. 특히 맏딸 클라라의 그림은 지금 봐도 섬찟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특히 쏘아 보는 눈동자는 정말 진짜 눈동자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이 작품은 그림에서 애정이 묻어나는 것으로 보아 루벤스가 분명 직접 그렸으리라고 장담한다. 그리고는 이 방을 내려 가면 바로 루벤스 제자들과 조수들이 루벤스를 도와 루벤스의 그림을 그렸던 아트스튜디오로 내려 간다. 루벤스의 인기는 너무 높아 유럽 전체에서 주문이 쇄도해 그림을 도저히 혼자서 다 그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공방을 열어 제자와 조수들과 분업을 했다. 이런 일은 당시는 물론 지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특히 조각이나 공예 같은 힘든 작업이 있어야 하는 작품은 작가가 스케치를 해서 외부 전문 공방이나 제자들과 같이 운영하는 자신의 작업실에 보내어 일단 기초 작업을 하게한다. 나중에 마무리 단계에 가면 물론 작가가 마감을 하지만 특히 조각 공예 같은 작품은 대다수가 제자들이나 혹은 공방의 기술자들이 한다. 사실 옛날 화가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 많은 작품을 완성 했겠는가? 대개 대가 본인은 채색 스케치를 조그만 하게 그려 놓으면 제자들이 큰 화폭에 옮겨 그렸다. 그리고 나면 루벤스는 비로소 붓을 들고 얼굴이나 중요한 부분을 마감했다. 루벤스의 대부분의 그림들은 이 스튜디오에서 그려졌다. 무려 2,500점이 여기서 그려졌다고 한다.

분업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대인들에게 대가가 그림을 조수 혹은 제자들에게 맡겼다고 하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고 하겠지만 당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시는 회화가 예술이 아니고 수공예품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 때는 화가는 일종의 기능직업인이었지 지금처럼 존경을 받는 예술가가 아니었다. 그래서 공방에서 분업을 하듯 그림도 그렇게 그렸다. 제자들이나 조수는 모두 전문이 있었다. 동물, 풍경, 정물 등 그림의 각 부분별로 전문이 있었다. 심지어는 손, 눈동자, 입술 담당까지 말이다. 대가들이 주로 하는 일은 마지막 마감이거나 그도 아니면 그냥 감독만 하고 지시만 했다. 그래서 대가들 작품 설명에 보면 ‘스쿨school ’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 그림들이 있다. 이는 바로 분명하게 대가가 전혀 손을 안 된 경우의 그림을 이르는 경우이거나 혹은 제자 중 누군가가 그렸는데 누군지 이름을 모르는 경우다. 그래서 기록이 잘 남아 있는 대가의 경우는 대가가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다 그린 그림, 제자들이 그리고 대가가 일부를 작업한 그림, 전혀 대가가 손을 안 대고 대가의 감독하에 완전히 제자들이 그린 그림으로 갈린다. 그러나 대가의 공방의 이름으로 나오는 이 세 종류의 그림 모두를 우리는 지금 대가의 그림이라고 한다. 별로 이상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입고 쓰고 있는 수많은 유명 디자이너 명품들은 심지어 디자이너들이 그런 물건이 존재하는 지도 모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거기에 비해 위에서 얘기한 대가들의 그림들은 그래도 최악의 경우라도 대가의 눈길을 한 번은 받아 본 것들이 아닌가? 물론 정말 대가가 그림을 직접 다 그리길 원한다면 물론 가능했었지만 그런 경우는 보통 그림의 수십 배를 내야 했다. 물론 그런 경우의 그림은 엄청난 다작을 한 대가의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1 아들과 함께한 구벤스 자화상. 2 루벤스의 장녀 클라라 세레나 루벤스.

기능직이었던 화가

루벤스는 워낙 인기가 좋아 유럽 궁정에 자주 불려 다녔는데 영국까지 초대되어 작품을 그렸다. 영국 런던의 가장 중심가에 화이트 홀 스트리트라는 길이 있다. 이 길에 정부기관과 함께 영국 총리관저 다우닝가 10번지도 골목길에 있다. 그런 거리가 화이트 홀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가 되는 화이트 홀이 바로 이 거리에 있다. 영국에서 유일하게 공화정의 역사를 만든 시민전쟁의 영웅 올리버 크롬웰에게 사형을 당한 영국왕 찰스 1세가 바로 이 홀을 지었다. 그런데 그 홀 천장의 화려한 그림을 루벤스가 그렸다. 그 그림을 그리고 찰스 1세로부터 루벤스가 기사 작위를 받았다. 또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1629년 미술 석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이렇게 루벤스는 돌아다니면서 화가 일도 하고 동시에 외교관 역할도 했다. 렘브란트의 40개의 자화상에 비해 루벤스는 오로지 4개의 자화상만 그렸다. 렘브란트는 화가 모습의 자신을 많이 그린 것에 비해 루벤스의 자화상은 모두 상당한 지위에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칼을 차고 있어 권위를 살리기도 하지만 표정도 아주 근엄하고 아주 엄숙하다. 기사작위를 받고 외교관 역할도 하고 왕들과 상대를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유럽 화가 중에서 루벤스만큼 화려하게 화가 생활을 한 화가도 드물다. 당시 화가들의 사회적 지위는 엄청나게 낮았다.

당시 미술계는 기능시장

당시는 미술시장이 지금처럼 공급자와 구매자의 힘이 엇비슷하지도 않았다. 그림은 주문에 의해서 그려지는 것이지 화가가 그림을 그려 놓고 화랑을 통해 파는 식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림을 주문하는 구매자는 한정되어 있었다. 소위 말하는 권력자들이었다. 왕, 귀족, 교회가 전부였다. 화가는 이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 주어야 했다. 그렇게 해야 그림 대금을 받을 수 있었고 다음 주문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 그림들에는 항상 규칙이 있다. 예를 들면 성화를 그릴 때는 비둘기는 성령을 상징하고 성모나 예수 같은 주요인물의 옷은 푸른 물감으로 그려야 했다. 이유는 푸른 물감은 제일 귀한 인물에게만 사용해야 할 정도로 비싸고 귀했다. 이 물감은 아프카니스탄에서만 나왔기 때문이다. 아프카니스탄과 유럽 사이에 무슨 전쟁이라도 벌어지면 염료 공급이 끊겨 그때 그린 그림들은 푸른색이 없다.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 광물질을 갈아서 만든 울트라마린이라는 염료가 바로 그것이다. 아주 훌륭한 깊은 청색을 내는 물감이라 사용하려고 해도 아주 비싸서 아무나 쓸 수가 없
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인물의 옷에만 썼다. 다른 예를 들면 여인의 발치에 개가 한 마리 배치되어 있으면 그것은 애완견일 수도 있지만 그를 통해 자신은 남편에서 순종하는 아내다 라는 표현이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주문자들이 원하고 그림을 보는 그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야 했다. 이렇게 당시 미술 시장은 구매자 시장이었던 것이다.

통치수단의 하나였던 초상화

미술의 장르는 가르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프랑스 예술원의 기준에 의하면 초상화가 가장 고급 장르이고 그 다음이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해 놓는 역사화나 기록화이디. 그 다음이 풍경화인데 앞의 두 장르의 배경에 들어 간다. 예를 들면 세상에서 하나의 그림만 고르라면 제일 먼저 나와야 할 그림이라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의 뒷배경은 풍경화이다. 아주 기기괴괴한 모습의 산의 원경이다. 그런데 그런 모습의 산들은 유럽에 없다. 비슷한 모습을 찾는 다면 중국에 있을 뿐이다. 그런 모습의 산 배경이 당시 유행이었다. 마지막 장르가 바로 정물화이다. 가장 저급한 장르라고 구분을 하는데 인물화나 기록화의 정말 한 귀퉁이를 장식하는 역할만 한다. 인물화가 제일 고급 장르가 된 이유는 미술의 발생 목적과 관련이 있다. 인물화는 당시 권력자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물건이었다. 자신의 모습을 그려서 역사에 남겨야 할 이유도 있었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림의 신비한 힘을 믿었다. 그래서 통치를 위해서 중요한 장소에 자신의 그림을 가져다 놓으면 굳이 권력자가 직접 가지 않아도 자신의 힘이 미친다고 믿었다. 예를 들면 변방을 지키는 자신의 부하 귀족의 집 거실에 왕의 그림이 걸려 있으면 그 앞에서는 그 귀족은 반역을 도모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통치자들은 자신의 초상화를 일종의 기록을 위해서도 그려서 남긴다고도 생각했지만 통치수단으로도 그려서 전국에 보내야 했다. 거기다가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얼굴을 남겨 놓으려 하는 욕망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다. 요즘 셀카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래서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초상화를 가지 길 원했다. 그래서 초상화로부터 제일 처음 회화가 시작된 것이다. 또 종교는 이런 그림의 신비로운 힘을 이용하기 위해 성화를 주문했다. 교회에서 당시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읽을 신자들도 많지 않았지만 워낙 필사본 성경이 비싸서 성경을 아무나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성경이야기를 신자들에게 가르치기가 쉽지 않았다. 이때 등장한 것이 스테인드글라스와 성화이다. 교회 내에 성경에 나오는 그림을 그려서 놓고 신자들에게 보여주면 성경을 이해하게 하고 하느님이나 예수님의 이야기를 가르친 것이다. 당시의 신자들은 요즘처럼 인쇄매체나 영상매체를 통해 성모님이나 예수님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막연하게 머리 속으로만 그리고 이해를 했다. 어느 날 교회에 그림이 걸렸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을 받고 돌아 가시는 모습이다. 말로만 평생 들어서 머리 속으로 상상만 했는데 막상 눈 앞에 그런 광경이 펼쳐진 것이 아닌가? 얼마나 큰 감동을 당시의 신자들이 받았을 것인지는 평생 동안 수도 없이 그런 그림을 보아 온 우리 같은 현대인은 도저히 이해를 못한다. 이렇게 해서 초상화가 제일 고귀한 장르가 된 것이다.

1 2 3 7 루벤스 하우스 전시화. 4 루벤스가 제자들과 같이 그림을 그리던 그림공방. 5 루벤스 하우스 2층 전시실.
6 루벤스 하우스 메인 홀 입구 입구 오른쪽 벽에 루벤스 자화상이 보인다. 8 루벤스 하우스 실내. 9 이사벨라 브란트 루벤스의 첫째부인.

생계수단의 족쇄

그 다음이 기록화이다. 역사에는 수많은 사건이 있다. 왕들로서는 자신의 화려한 대관식을 남기고 싶어 하고 자신이 어렵게 이긴 전투에 대한 자랑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 장면을 사진이 없으니 남길 수가 없어 화가들로 하여금 그리게 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기록화이다. 그 다음의 장르는 위에 얘기했듯이 인물화와 기록화의 뒷배경으로 등장했다가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하나의 장르로 독립한 풍경화이고 가장 저급한 쟝르가 풍경화 보다 못한 정물화이다.

이렇게 해서 권력자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야 먹고 살 수 있는 화가들은 권력자들로부터 자유스러울 수가 없었다. 눈치를 봐야 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식의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었다. 주문이 있어야 그림을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굶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구매자들의 구미나 수준에 맞이 않으면 외면 당하고 주문이 끊기고 말았다. 루벤스는 그런 사정을 잘 알아 구매자들의 구미에 맞는 그림을 잘도 그려 바쳤다. 그러나 동 시대의 화가 렘브란트는 시민경비대원들로부터 자신들을 집단으로 그려 달라는 주문을 받고 자기 실력을 모두 동원해 새로운 방식으로 나중에 잘못 알려진 ‘야경’이라는 명작을 혼신을 다해 그렸다. 빛이 들어 오고 나가는 법칙을 모두 무시한다거나 대원의 얼굴을 다 나타내지 않고 어둠에 가려져 일부만 나오게 한다 던지 하는 식으로 당시 유행과는 동떨어지게 그렸다. 자신의 얼굴이 단체 증명사진처럼 나와야 좋아할 수준의 사람들에게 이상한 그림을 그려서 준 것이다 결국 렘브란트는 그림 값도 못 받고 세상에는 악평이 퍼져 주문이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튤립 투기에 가담해서 전 재산을 날리는 등으로 해서 말년에는 고생을 하다가 죽었다.

산업혁명이 준 예술가의 권리

이런 주문자 위주의 그림 시장에서 갑과 을이 바뀌게 되는 계기는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으로 부를 축적하게 된 소상공인을 비롯한 쁘띠 부르주아라고 불리던 소자본가들도 그림을 하나씩 가지고 싶어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이 좋아하는 유행의 중심에 선 화가는 귀해져서 수요가 공급을 많이 넘어서게 되어버렸다. 슬슬 미술시장 권력의 축이 구매자 중심에서 판매자 즉 화가 중심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으면 공급가 힘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렇게 해서 인기 화가들은 굳이 구매자의 사전 주문이 아닌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도 그림이 팔림을 알게 되었다. 또 구매자가 정해 놓은 이상한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그림을 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림이 워낙 귀하다 보니 화가가 좋아서 그린 그림도 그려만 놓으면 구매자를 골라서 팔 수 있게 되면서부터 미술시장의 갑과 을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물론 아직도 대다수의 무명화가들은 아직도 그런 신세를 못 면하고 있지만 일단 이제는 공급자와 수요자의 권력이 묘하게 팽팽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예술지상주의도 뿌리를 내린 지 역사가 얼마 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유럽의 미술관

유럽 여행을 와서 미술관에 가면 인상파 이전의 그림들 때문에 지겹고 재미가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유는 유럽 미술관을 채우고 있는 대가의 그림들이 위에서 얘기한 초상화거나 기록화이기 때문이다. 그 나라의 역사를 모르니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이 누군지 모르고 기록화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림이 재미 있을 리 없다. 그냥 아름다운 경치를 그려 놓은 인상파는 그냥 보고만 있으면 되는데 초상화나 기록화는 그림의 배경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루하기가 짝이 없다. 또 미술관에 수도 없이 등장하는 성화는 성경에 정통하지 않으니 이해가 어렵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알면 무릎을 칠 정도로 재미있는데 그것을 모르니 재미없을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다. 유럽 그림들에는 그리스나 로마 신화와 관련된 그림들이 많다. 이런 신화의 얘기를 모르면 그림이 재미가 없다. 한국화를 보면서 신선이 무엇 하는 사람인지 모른다거나 김홍도의 그림을 보면서 기생이 무엇 하는 사람이지 모르는 것과 동일한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유럽에 여행 오는 친지들에게 여행 오기 전 반드시 성경, 그리스 신화, 유럽 통사의 책 세 권은 읽고 오라고 권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정말 대단한 말이다.

꼭 읽고 와야 할 세 권의 책

현지 가이드를 쓰면 제일 좋지만 주머니가 한정되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독학으로 감상을 할 수 밖에 없는데 그 기본이 이 세 권의 책이다. 여기다가 서양화를 읽는 방법 책 한 권을 더 읽으면 더 좋다. ‘무슨 여행을 공부하러 가느냐 그냥 머리 식히러 가는데’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렇게 일생의 한 번 올 여행이라면 제대로 보고 가는 것이 그냥 돌아 가고 나서 사진만 남는 여행 보다는 낫지 않는가? 물론 그 사진마저도 어디서 찍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 경우를 많이 겪어 보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내가 얘기한대로 한 번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터이다. 그래도 별 다를 바 없더라 하면 할 말이 없다.

루벤스 하우스 안 마당.  루벤스 하우스 식당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