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erta :: Nature The Golden Age of Dinosaurs in Alberta

앨버타에서 공룡 황금기를 발굴하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지구의 공룡 시대에 대한 환상을 가장 많이 심어준 건 아마도 영화 ‘쥬라기 공원’ 시리즈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공룡들은 쥬라기 이후인 백악기에 태어나 지구를 점령했다. 그 백악기가 유독 화려했던 아메리카 대륙 내에서도 캐나다의 앨버타는 으뜸으로 친다. 유네스코도 인정한 공룡의 땅에서 그 발자취를 따라 힘차게 활보해보자.
글 이소윤 기자 사진 진하정 기자 취재협조 캐나다관광청 www.kr-keepexploring.canada.travel, 한진관광 www.kaltour.com

공룡주립공원 Dinosaur Provincial Park

공룡주립공원에 다다르기 전, 척박한 땅 배드랜드 전망대를 먼저 찾았다. 공룡주립공원을 포함한 배드랜드 인근의 땅들은 그랜드 캐니언과 비슷한 모습으로 발아래에 화려한 협곡들을 수놓고 있다. ‘배드’라는 이름만큼이나 척박해 보이는 땅이지만 사실 이만한 ‘굿’ 랜드도 없다. 배드랜드는 현재와는 달리 울창하고 습한 바닷가의 밀림 지대였다가 빙하기 때의 빙하에 깎여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이로부터 약 19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이와 비슷한 지형이지만, 그 지하가 워낙에 비범해 유네스코에까지 등재된 땅이 있다. 공룡들의 황금기로 알려진 백악기, 당시 공룡들의 흔적이 파도 파도 끝도 없이 발견되는 공룡주립공원이다.

1 백악기 시절, 본래 강이 흐르고 있던 이 지역은 이제 물이 쓰다듬던 강바닥만이 남아 있다. 대부분 사암으로 이뤄진 공원 내 땅은 모래
때문에 미끄러지기 쉬우니 편한 신발은 필수. 
2 공룡주립공원으로 향하던 길, 잠시 먼저 들른 배드랜드 전망대의 풍경이다. 사람들이 이곳을 작은 그랜드 캐니언이라 부르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3 하이킹 도중 가이드가 설명을 위해 버팔로의 뼈 화석을 건넸다. 하지만 이는 아직 완전한 화석화가 이뤄지지 못한 것. 미처 다 돌이 되지 못한 뼈들이 그 속에서 부서져 흔들면 모래주머니 같은 소리가 난다. 
4 센트로사우루스 하이크를 신청하면 이 버스를 타고 일반 관광객은 출입하지 못하는 보호구역으로 들어간다. 이 버스에서 내려 하이킹을 시작하는 순간, 걷는 나를 감싸는 모든 자연은 내가 보호해줘야 하는 대상이다. 
5 공룡주립공원에 마련된 작은 박물관에서 공룡의 죽음과 화석에 대한 인상적인 그림을 발견했다.

척박한 자연이 말해주는 울창한 역사

“지금 주변에서 물이 보이시나요?” 풀풀 모래만 날리는 이 척박한 땅 위에서 가이드 에이미는 이 질문을 가장 먼저 던졌다. 다들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자 그녀가 당당히 꺼내 든 사진에는 아메리카 대륙의 중간을 바다가 떡하니 가르고 있다. “이게 바로 백악기의 아메리카 대륙입니다.” 지금은 공기 중 습도조차 7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 공룡주립공원이지만, 그 당시에는 바다의 곁에서 강이 흐르고 밀림이 우거진 밀림 지대였단다. 하지만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외계의 것만 같은 울퉁불퉁 돌기둥들이 솟아 있을 뿐, 밀림과 강이었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에 대한 증거들은 그녀의 가방 속에 전부 들어 있었다. 주립공원 내에서 발견된 나무와 나뭇잎 화석, 솔방울, 동물의 배설물 화석 등을 줄줄이 내어놓는다. 직접 손에 들어서 그 무게감을 느끼기 전까지는 돌인지도 모를 만큼 생생한 모양의 화석들이 “우리가 바로 이 땅에 살았었다고!”라며 소리치는 것 같았다. 자연의 과거는 땅의 표면이 아닌 그 속의 무언가가 설명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환기된다. 더불어 공원 속에서 내가 밟고 서 있는 이 땅은 대부분 모래가 뭉친 사암과 점토가 굳은 이판암 등으로 이뤄져 있는데, 모래와 점토 또한 물과 항상 공존하는 존재가 아닌가. 공룡주립공원의 자연은 이처럼 말을 대신한 많은 경로로 자신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 공원은 잘 알지 못하면 무심코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사실들을 너무 많이 품고 있다. 처음 밟는 공룡의 땅에서 나는 그 어떤 이야기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가이드 투어에 참여했다. ‘선셋 투어’나 ‘탐험가의 버스 투어’, ‘화석 사파리’와 같은 공원의 가이드 투어들 중에 내가 선택한 것은 ‘센트로사우루스 하이크Centrosaurus Hike’. 이는 공룡주립공원에서 여태까지 발굴된 800개 이상의 화석 가운데 가장 유명한 발견에 속하는 센트로사우루스 무리의 화석이 묻힌 장소를 향해 걷는 그룹 투어이다. 왕복 약 3시간이 소요되는 짧지 않은 코스이기에 그 가운데에서 공원에 관한 많은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중 특히 즐거웠던 내용은 공룡의 사체가 화석이 되는 조건이다. 가이드는 투어 일원 몇 명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공룡이 됐다고 상상하며 바닥에 누워 낮잠을 자라고 지시했다. 그들이 거친 모래 위에서 명연기를 펼치는 그 광경은 모두를 키득거리게 만들었다. 이때 에이미는 공룡들이 이렇게 강가에 누워 있을 때 강이 범람하면 사체가 물에 잠기며 지압을 받게 되고 그제야 화석이 되기 좋은 조건이 갖춰진다고 설명했다. 즉, 모든 공룡의 사체가 화석이 되지는 않는다. 80~90퍼센트의 돌과 미네랄 등의 여러 성분으로 이뤄진 화석이 되기 위해선 사체 주변에 반드시 물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본래 강바닥이었던 이 공원의 과거는 공룡들의 화석화에 가장 유리한 장소였던 셈이다. 그 모든 조건을 갖춘 이후에 약 만 년을 땅에 묻혀 있어야만 완전한 화석으로 탈바꿈된다.

센트로사우루스의 침실을 향해 걷다

가이드 에이미의 설명을 부지런히 들으며 한 시간쯤 걸었을까. 우리 그룹 앞에 드디어 목적지인 센트로사우루스 본 베드Born Bed가 나타났다. 센트로사우루스의 뼈가 보일 만큼 땅을 파놓은 본 베드는 평소엔 묵직한 돌 덮개로 가려 놓는다. 에이미가 이를 활짝 열자, 땅에 이리저리 박힌 센트로사우루스의 뼈들이 보인다. 센트로사우루스는 크기 5~6미터에 마치 목도리 도마뱀의 프릴과도 같은 둥근 뼈가 머리 주변을 두르며, 두 눈 아래 큰 뿔이 하나 솟은 초식 공룡이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던 공룡인 만큼 이곳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다는 점도 특별하다. 무려 300마리에 달하는 센트로사우루스들의 화석이 본 베드 인근의 땅 전반에 묻혀 있다. 대략적으로 캐나다 풋볼 경기장 두 개를 합친 넓이의 면적에 말이다. 그래서 모든 일행이 주변에서 자신만의 화석을 찾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만약 돌인지 화석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면 손가락에 침을 발라 이를 꾹 눌러봐야 한다. 화석에는 뼈 속의 구멍들까지도 세세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이럴 경우 손가락 끝에 화석이 살짝 달라붙는다. 두 눈에 힘을 바짝 주고 본 베드에서 뒤를 돌아보는 순간, 허무하게도 바로 눈앞의 땅에서 무더기로 묻혀 있는 뼈 잔해들을 발견했다. 몸을 웅크리고 찬찬히 관찰하는데, 사방으로 흩어졌던 그룹 일행이 여기저기에서 화석 잔해들을 들고 나타난다. 초등학생, 어른 할 것 없이.

땅 위의 작은 자갈조차 허투루 봐선 안 되는 공룡 공원의 실체는 가히 상상 이상이었다. 일일이 다 발굴을 하기에는 묻혀 있는 양이 너무 많아서 웬만한 화석은 무작정 건드리지 않는다는 땅이다. 그 모든 흔적들은 무려 7천 만년 전의 지구를 보여 주고 있다. 얼마 전 ‘레갈리케라톱스’라고 이름 지은 신종 공룡이 발견된 곳도 바로 공룡주립공원. 지금은 사라진 생명들을 꾸준히 상기시켜 주는 땅 위를 직접 걸을 수 있다니, 매 순간이 신기하더라. 첫 인상은 콘크리트 가루 같은 회색 모래만 버석거리는 땅이었을지라도, 사실은 가장 충만한 생명의 냄새를 풍기는 앨버타의 보물이다.

1 2 드디어 만난 센트로사우루스 본 베드. 이곳은 단 한 마리가 아닌 약 300마리의 센트로사우루스들이 묻혀 있는 무덤이기에 사진 속에 보이는 모든 땅이 화석들을 품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3 앨버타의 사막에서 자주 보이는 프리클리 페어 선인장. 
4 6 가이드의 설명은 이 땅의 현재와 과거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지루할 틈 없는 가이드 에이미의 말이라면 모두가 순종했다. 
5 그런데 본 베드 속 화석이 센트로사우루스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을까. 정답은 사진 속에 있다. ‘옥시피탈 컨데일’이라 명명한 이 뼈는 센트로사우루스 한 마리에서 딱 하나만 나오는 머리와 목 사이의 둥근 뼈이다. 
7 인근에서는 이런 화석들이 바닥에 박혀 있는 모습을 금방 찾을 수 있다. 모양이 이미 대놓고 화석이지만 혹시 궁금하다면 손가락에 침을 발라 꾹 눌러보라.

로얄 티렐 박물관 Royal Tyrrell Museum

공룡주립공원을 걸으며 생각했다. 어디서든 줄줄이 나오는 이곳의 화석들은 과연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 답이 바로 로얄 티렐 박물관이다.
매년 주기적으로 공룡주립공원을 찾는 로얄 티렐 발굴팀은 항상 그 땅을 주시하고 있다. 물론 공원을 포함한 배드랜드에만 오롯이 집중하는
박물관은 아니다. 공룡주립공원의 화석들을 중심으로, 캐나다 내 어디에서든 매력적인 공룡 화석이 발견됐다면 이는 곧 로얄 티렐의 전시품이 될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갖는다. 여태까지 알아 온 박물관의 개념을 뛰어 넘는, 환상적인 컬렉션의 로얄 티렐 박물관으로 입장해보자.

1 나에겐 최고의 전시관이었던 ‘Lords Of The Lands’의 티라노사우루스. 머리부터 발톱 끝까지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복원되어 있다. 
2 앨버타사우루스가 반기는 박물관 입구. 
3 일명 ‘블랙 뷰티’라 불리는 이 티라노사우루스는 어떠한 화학작용으로 화석화가 되는 과정에서 검정으로 색이 입혀졌다. 
4 처음 앨버타사우루스 화석을 배드랜드에서 발견한 J.B.티렐. 
5 앨버타사우루스의 모습이 실감나게 재현되어 있다.
6 복원을 위한 연구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방문객들을 위해 이렇게 전시관 안에서 직접 작업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화석은 채집품이 아닌 하나의 작품이다

“이곳은 거의 매년 6년 째 찾고 있는데 전혀 질리지가 않아요.” 공룡 박물관으로서는 가히 세계 최고라는 로얄 티렐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가이드 다케시가 조용히 한 마디를 뱉는다. 평소 얌전한 성격의 그가 굳이 입을 떼 이리 칭찬하는 곳이라니. ‘도대체 어느 정도 길래?’라는
궁금증이 점점 커진다. 여행 당시는 여름 성수기철이었으니, 혹시 모를 인파를 피하기 위해 이른 아침 박물관에 들어섰다. 그 입구부터가
비장하다. 공룡의 땅 앨버타에서 화석 발굴의 첫 장을 연 공룡 ‘앨버타사우루스’의 모형이 모두를 반겼다. 티켓을 끊고 전시장으로 첫 발을
들이자마자 가장 처음 보게 되는 공룡 역시 앨버타사우루스다. 앨버타에서 최초로 발견된 공룡 화석이었던 이 공룡은 묻혀 있던 곳의 지명대로 이름 지어졌다. 앨버타사우루스를 시작으로 백악기로의 작은 모험이 이어진다.

로얄 티렐은 여태껏 경험한 박물관들과는 차원이 다를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될 수도 있다는 각오도 마쳤다. 하지만 나 스스로 혼자 했던 그 모든 예상과 각오들은 실제 박물관 속에서 모두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이전의 생각들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모든 전시물에 푹 빠져 버린 이유다. 그 시작은 스토리가 가득한 박물관의 25주년 기념 전시관에서부터이다. 겨우 몇 개월 전에 전시관에 어온 이 신입 화석들 중에는 한 소년이 아빠와 강으로 낚시를 갔다가, 강가에서 웬 바퀴 자국이 새겨진 바위를 발견했는데 이것이 공룡 화석의 척추 부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박물관에 알리면서 지금의 전시가 가능하게 된 것도 있었다. 이미 10만 점이 넘게 고생물의 여러 표본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매년 새로운 것을 물색하고 전시하는 박물관이 로얄 티렐이다. 마치 갈 때마다 새로운 놀이기구가 추가되어 있는 놀이공원처럼.
전시관 ‘Lord of the Land’에서는 공룡의 골격 표본에 대한 경건한 아름다움마저 느꼈다. 박물관에서도 인정받는 표본들만을 엄선해놓은
공간이었는데, 각각의 화석들을 우아한 액자틀로 장식하고, 보물을 대하듯 단아한 조명으로 밝혀 놓자 그 감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화석화된
뼈만을 모아 놓아도 이토록 역동적이고 아름다운데, 살아 있을 당시의 에너지는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태고의 자연으로 타임슬립

로얄 티렐 박물관은 공룡 이외의 고생물 화석들도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다. 나무와 같은 식물부터 해양 생물과 해조류, 포유류, 곤충 등 그 범위도 방대하다. 즉 이곳은 공룡들만의 시대가 아닌 지구 전체가 속했던 태고의 자연을 당시의 유기체들을 통해 보여주는 셈이다. 박물관임과 동시에 화석 연구소로서 현재에 그치지 않고 항상 더 새롭고 다양한 지구 생명체들의 모습을 물색하고 있다. ‘티라노사우루스’가 얼마나 클 지,
‘트리케라톱스’의 뿔은 얼마나 뾰족할 지와 같은 단순한 호기심만을 풀어 주는 장소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조금도 아는 바가 없어 상상도 차마 못해보았던 1억 년 전의 지구 생태계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을 나에게 단박에 쏟아 준 것만 같다. 죽은 생명들조차 예술화해 버리는 로얄 티렐 앞에서 사실 어른, 아이가 어디 있겠나. 하루 종일 그 안에서 화석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설명을 읽으며 태고의 자연을
그리고 또 그리고 싶다.

1 넓은 규모의 규모의 ‘다이너소어 홀’은 공룡 화석 감상의 화룡점정이다. 
2 11 람베오사우루스 화석. 
3 가장 아름다운 포즈로 죽은 오르니토미무스. 
4 그 높이만 3미터에 달하는 카마라사우루스의 다리. 
5 고생대 나뭇잎의 흔적. 
6 백악기에 살던 포유류 타이타노이데이데의 화석. 북극곰과 비슷한 외모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7 마치 우아한 보석처럼 골격을 전시해놓은 전시관. 
8 에오트리케라톱스의 머리. 
9 고생대 말에 살았던 디메트로돈. 
10 바다나리류의 해양생물. 고생대 이후 대부분 멸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