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Essay :: Russia

Russia's Trans Siberian Railway
새로운 발견,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열차

학교에 덜컥 휴학계를 내고 내 생애 처음으로 홀로 여행을 떠났던 3월. 그 후 여행의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또 다시 비행기 티켓을 끊은 나, 이번엔 모두가 하는 여행이 아닌 특별한 새로운 여행을 찾아 낯선 땅 러시아로 발길을 옮긴다. 차갑고 익숙하지 않은 그곳에서 나와 7년 지기 친구는 함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지구의 4분의1을 도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올라탔다. 덕분에 얻은 건 열차 안에서 만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또 그들과 나눴던 수많은 이야기들이다. 또 달리는 열차 안에서 보이는 풍경은 언제는 가을이었다가, 다른 지역에선 눈이 펑펑 오는 겨울의 모습이 되기도 한다. 잠을 자다 문득 눈을 뜨면 빨갛게 해가 뜨는 멋진 그림이 나오기도, 깜깜한 밤이 되어 수많은 별들이 쏟아지기도 한다. 열차를 타고 달리며 감상했던 10월의 러시아 그림에 너무나도 큰 행복을 얻어 왔다.

글과 사진 김예지 에디팅 이소윤 기자
김예지 l 경기도 안양시 동안로
여행의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매번 떠나는 계획을 세워 놓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성바실리성당과 크레물.

시베리아 횡단열차. 정차역에서 본 눈 덮인 매점.

Step 1. 대장정의 시작, 블라디보스토크

쌀쌀한 아침,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역에서 그 시작을 알렸다. 시간이 되면 각 칸마다 차장이 나와서 승객들의 여권과 표를 확인한다. 우리 칸 차장님이 제일 늦게 나온 터에 다들 앞에서 대기중이였다. 이제 막 잠에서 깬 듯한 동네 아저씨 느낌의 차장님. 까치머리에 셔츠 사이로 보이는 볼록한 배가 더 푸근하고 친근한 인상을 준다. 열차는 1등석, 2등석, 3등석으로 나뉘어 있고 우리가 탄 열차는 제일 좋은 001번 열차의 3등석이다. 3등석은 6인실이지만 그냥 한 칸을 다 같이 쓰는 오픈된 형식으로 되어 있다. 처음이라 그런지 아직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열차는 정시에 출발했다. 먼저 3일간 이르쿠츠크Irkutsk까지 함께 달릴 이번 열차, 아직은 낯설기만 한 이 공간에 얼른 적응되길 바랐다.

Step 2. 어색한 듯 친근했던 첫 만남

열차 안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되어 가고 있었다. 각 열차칸 맨 앞에는 100도가 넘는 뜨거운 물이 항상 준비되어 있어서 배고플 땐 언제든 음식을 해먹을 수 있다. 그래서 열차가 정차한 역의 매점이나 노점상에서 산 음식과 우리가 챙겨간 한국 음식들을 번갈아가며 주로 먹었다. 정차 시간이 보통 10분은 넘어야 내려서 산책하고, 구경도 할 수 있으니 홈페이지에서 정차 시간표를 미리 프린트하거나 열차 안에 붙어 있는 시간을 잘 확인해서 내려야 한다. 열차의 1등석을 지나 제일 앞쪽 칸에는 레스토랑이 있다. 음식들의 가격이 싼 편은 아니지만 한 번쯤 분위기 있는 열차 안 식당에서 현지인이 해주는 러시아 음식을 맛보는 사치를 부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기차가 달릴 때는 음악을 듣다가 책도 보고, 피곤하면 자고, 일어났을 땐 바깥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기도 하고, 처음으로 함께 멀리 떠나온 7년 지기 친구와 이야기보따리를 풀기도 했다. 거기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제일 먼저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 주신 할머니 두 분 덕분에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첫인상이 그리 무섭지 않게 다가왔다. 그들 외에도 볼 때마다 책을 읽으시던 할아버지와 멀티탭을 가지고 있던 우리 칸 능력자 할아버지, 우리에게 러시아어를 직접 가르쳐 주고 끝까지 가는 길을 지켜봐 주신 노부부도 잊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칸에 처음으로 찾아온 러시아 꼬마도 있었다. 우리만 보면 부끄러워하던 아이의 모습이 귀여웠다. 비록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종이접기를 통해 짧은 시간 조금이나마 친해질 수 있었다. 처음 탄 시베리아 001번 열차에서 만난 고마운 모든 사람들에게 이 시간이 좋은 기억으로 간직되었으면 좋겠다.

열차 앞 노점상의 풍경.
시베리아 횡단열차 2등석 쿠페.

Step 3. 최고의 힐링, 이르쿠츠크

열차를 타고 달린지 4일째 되던 날, 우리는 바이칼 호수Baikal Lake가 있는 그 곳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이른 새벽에 도착해 밖은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웠고, 우리는 3일간 씻지 못한 상태여서 제일 먼저 역 안의 호스텔을 찾아 씻고 짐을 정리한 후에야 밖으로 나왔다. 원래 이르쿠츠크에 멈춘 이유가 바이칼 호수를 보기 위해서인데, 알고 보니 이르쿠츠크역에서 바이칼호를 보려면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가야했고, 이는 총 왕복 6시간이 드는 여정이었다. 오후에 열차를 다시 타야 하는 우리에겐 그만한 여유가 없었기에 아쉽지만 과감히 호수를 포기하고 이르쿠츠크 시내를 관광하기로 했다. 꼭 무언가를 봐야 한다는 압박감이 사라지고 나니 길거리의 차들과 산책하는 사람들, 낚시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며 우리만의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여유롭게 러시아 이르쿠츠크만의 매력을 느꼈다. 이르쿠츠크 여행은 바이칼의 아쉬움도 있지만 우리는 시내를 구경하며 그보다 더 큰 힐링을 얻을 수 있었기에 더욱 의미 있었다. 이제 횡단열차의 종착역인 모스크바를 향해 다시 출발한다.

Step 4. 이제는 익숙해진 생활, 그리고 또 다른 만남

시베리아 횡단의 두 번째 005번 열차 2등석. 2등석은 4인실이고 방문을 잠글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확실히 침대가 넓었고 허리를 펼 수 없었던 3등석 2층 자리와는 달리 굉장히 넓은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처음엔 방으로 되어 있어서 냄새가 다소 자극적인 한국 음식을 해 먹기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엔 냄새에 쓰이는 신경보다 우리의 허기가 우선이었기에 가져온 음식들을 열심히 먹었다.

이번 칸의 여자 차장님은 포스가 남다른 인물이었다. 강렬한 카리스마 뒤에 따뜻한 마음까지 가득한. 그 덕분에 아마 우리 칸이 제일 안전하고 깨끗하지 않았나 싶다. 이번 열차에서도 마찬가지로 정말 좋은 사람들만 만나서 이제는 그 누구를 만나도 두려움이 없을 것만 같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챙겨준 정이 많은 할아버지, 이런저런 질문을 쏟아낸 오빠, 처음 맡은 한국 음식 냄새에 힘들어하던 주황이 삼촌, 외모와 달리 장난기가 넘치던 미녀 러시안 언니 등 모두가 러시아에 대한 편견들을 사라지게 해준 고마운 분들이다. 다만 옆방의 세 살배기 덕분에 러시아 꼬마에 대한 두려움은 조금 생겼다. 그 아이의 힘과 체력은 지칠 줄을 몰랐고, 보는 내내 놀라웠다. 열차가 종착역에 가까워질수록 정들었던 내 집을 떠나는 것 같아 아쉬움만이 한가득하다.

Step 5. 새로운 시작을 위한 마침표

7일간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다. 드디어 종착역 모스크바Moskva에 도착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열차 안에서의 생활이 끝났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지구의 4분의1을 돌아왔다. 내 자신이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운 순간, 아쉬움과 후련한 마음이 교차했다. 정들었던 열차와 이별을 하고 모스크바의 중심 붉은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붉은 광장으로 가는 길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책에서만 봐왔던 크레물을 지나 성바실리대성당이 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땐 ‘내가 진짜 러시아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설렘의 순간, 날씨는 우리를 반기지 않는 건지 날이 곧 비가 쏟아질 것처럼 어두웠다. 그래서인지 성바실리대성당의 모습은 이야기보다 더 슬퍼 보였다. 성당의 왼편 굼Gum 백화점은 빛이 들어와 환하고 웅장한 모습이었지만 그마저도 앞에 공사가 진행중이여서 한눈에 다 볼 수 없었다. 러시아를 방문한 시기는 10월, 생각보다 아쉬움이 컸던 모스크바의 첫인상이었다.

Step 6. 가까이 더 가까이

어제 모스크바의 첫인상을 만회하기 위해 이곳을 더 가까이 느끼기 위해 이즈말롭스키 시장으로 이동했다. 시장 입구에서부터 쭉 늘어진 상점들은 우리를 설레게 만들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부터 러시아의 대표 기념품 마트료시카Матрёшка, 도자기 공예품, 샤프카까지 구경거리가 다양했다. 그리고 한쪽 골목에선 러시아의 대표 음식 샤슬릭을 팔고 있고, 구경하는 우리에게 상인들이 ‘양, 돼지 꼬치’를 서툴게 한국어로 말도 한다. 꼬치는 다양한 종류로 팔고 있어서 먹고 싶은 것을 고르면 구워서 가져다주는 식이다. 서비스도 푸짐해 둘이 배불리 먹고도 남았다.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고 양손 무겁게 시장에서 나왔다. 역시 여행 중에 재밌는 현지인들의 생활을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곳 중 제일은 시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굼백화점.
이르쿠츠크역.

열차에서 보는 러시아 일출.
이즈말롭스키 시장 샤슬릭 거리.
시장에서 파는 양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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