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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Trip to Tsarskoe Selo

러시아 여제의 여름 궁전에 눈 내리던 날

러시아 대륙 서쪽 끝의 메트로폴리스,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에서 남쪽으로 25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도시에 여름 궁전이 있다.
제정 러시아의 황제들이 뜨거운 여름을 보내곤 했던 별장. 그들이 누렸던 사치와 호화스러움은 눈 속에 묻힌 채로도 굉장했다.
글 함희선 기자 사진 진하정 기자 취재협조 상트페테르부르크시 관광개발위원회

1 창밖으로 보이는 한겨울의 여름 궁전. 눈속에서도 반짝이는 에메랄드 빛이다. 
2 가로등 불너머로 예카테리나 여제의 파라다이스. 
3 4 단단히 무장하고 여행 온 사람들. 
5 공원의 푸시킨 동상. 여름 궁전이 있는 동네의 진짜 명칭은 러시아 대문호를 따라서 ‘푸시킨 시’다.

인생도 여행도 아이러니함의 연속인 것. 여름 궁전에 가던 날엔 눈이 그렇게도 펑펑 내렸다. 어차피 겨울이니까 당연한 일이겠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에 있는 겨울 궁전에 갈 때는 꽤나 화창했더랬다. 제정 러시아 시대의 황제들이 느끼던 그 방식으로의 여행은 절대 안 되지 싶었다.
뭐 날씨가 비슷하다고 한들, 겨울에 겨울 궁전가고 여름에 여름 궁전에 간다 한들, 내가 로마노프 왕조의 황실가족들이 여기 궁전에 살던 느낌
그대로를 상상해본다 한들, 손톱만큼도 비슷해질 일은 없지만 말이다.

예카테리나 여제의 여름 궁전

러시아 대륙 서쪽 끝의 메트로폴리스,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시내에서 남쪽으로 25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도시에 ‘여름 궁전’이라 불리는 천국이 하나 있다. 제정 러시아의 황제들이 뜨거운 여름을 보내곤 했던 별장. 피서를 위한 궁전이 있는 동네 이름 자체가 차르스코예 셀로Tsarskoe Selo다. 말 그대로 ‘차르의 마을’이라는 뜻. 여기서 차르Tsar는 당시 제정 러시아 황제를 부르는 명칭으로 그들은 도시에서 멀지 않은 교외로 나와 휴양을 즐기곤 했다.

여행자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심을 벗어나 차르스코예 셀로로 향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차르들의 여름 휴양지였던 예카테리나 궁전Catherine Palace을 보기 위해서.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던 제정 러시아 당시의 황제들이 얼마나 사치스러웠던 지, 혹은 긍정적으로 판단하자면 얼마나 문화와 예술에 집착했던지 당시에 유래한 모든 것들은 수고로움을 들여서라도 볼만한 가치가 있다. 눈이 펑펑 쏟아져 온 세상이 하얗게 덮였어도 굳이 여름 궁전을 찾아간 속뜻은 바로 그거다. 예카테리나 궁전은 어린 시절 만화책에서 공주님과 왕자님이 백마 타고 튀어나오던 순간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다소 비현실적인 방식으로 디테일하며 화려하다. 외벽의 컬러 역시 자극적인 에메랄드 블루인데다가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금색 치장들은 가짜 장난감처럼이나 번쩍거리며 호화스럽다. 하물며 눈에 폭 뒤덮인 궁전도 이러한데, 여름날 햇살아래 빛나는 자태는 어떠할 지 도저히 상상을 할 수가 없다.

바로크 양식의 절정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절정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는 예카테리나 궁전의 시작은 1717년 그녀가 직접 건축가 요한 프리드리히 브라운슈타인Johann Friedrich Braunstein에게 “내가 여름에 놀러갈 수 있는 궁전을 제대로 만들어보게.”하고 명령하면서부터다. 당시의 궁전은 지금 보는 것과 조금 달랐더랬다. 자기 엄마의 스타일이 지나치게 과하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한 예카테리나의 딸이자 여황제인 옐리자베타Elizabeth가 1733년 건축가 바르톨로메오 라스트렐리Bartolomeo Rastrelli에게 리모델링을 시켰기 때문이다. 궁전의 오래된 부분은 무너뜨리고 훨씬 더 거대하고 화려한 로코코 스타일로 재건축했다. 외벽 앞쪽을 꾸미고 있는 반짝거리는 금색의 스투코Stucco 장식과 지붕 위의 동상들에만 무려 100킬로그램이 넘는 진짜 금을 사용했다. “여제는 한번 세어보지도 않고 자신의 주머니에서 많은 돈을 꺼내어 궁전에 쏟아 부었다.”라는 루머가 사람들의 입에서 늘 오르락내리락 거릴 정도였다. 궁전 주변으로는 프랑스식 정원과 예카테리나 공원이 드넓게 펼쳐진다. 심지어는 페리를 타고 갈 수 있는 작은 섬까지 갖춘 큰 규모의 연못부터 파빌리온, 터키탕, 콘서트홀 등 여러 개의 건물들이 광활한 부지 안에 흩어져있다.

일단 외부에 실컷 감동한 뒤라면 다음은 본격적으로 내부를 영접할 차례다. 러시아의 황제들과 여황제들이 누렸던 사치가 절절하게 피부로 전해지는 공간들을 말이다. 귀중한 예술품 2만 여점도 여전히 남아있다. 금색 장식과 거울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무도회 열기에 참 좋았을 거대한 그레이트 홀부터 전형적인 바로크 스타일의 인테리어로 꾸며진 다이닝 룸, ‘아폴로의 승리’ 벽화가 그려져 있는 저녁 식사를 위한 포멀 다이닝 룸, 거기에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1세와 2세, 옐리자베타 여제 등 황실 가족의 초상화로 채워진 평방 100미터 포트레이트 룸까지 눈을 아프게 하는 사치와 화려함은 그 끝을 달린다. 황제의 프라이빗 스위트, 차이니즈 실크로 뒤덮인 드로잉 룸, 온통 초록색으로 장식한 또 다른 그린 다이닝 룸, 아시안 스타일의 차이니즈 블루 드로잉 룸, 골드 실크 위에 백조와 꿩의 자수를 놓은 성가대 룸 등 마치 방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인 것처럼이나 자극적이다. 대부분의 룸들은 건축가 라스트렐리Rastrelli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전에 디자인해 놓은 걸 표트르 대제와 그의 부인 예카테리나 1세가 가져와 리모델링한 것이다.

궁전의 하이라이트, 호박방

반박할 수 없는 예카테리나 궁전의 하이라이트는 호박방Amber Room이다. 러시아를 모르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모르고, 또 여름 궁전을 모른다 해도 ‘호박방’의 존재 자체는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바로크 예술의 최대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호박방은 1716년 표트르 1세가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에게 선물 받은 판넬을 예카테리나 궁전으로 옮겨와 건축가 라스트렐리가 벽에 붙이고 각종 보석으로 꾸민 방이다. 그런데, 이걸 감히 겨우 방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셀 수 없이 많은 호박, 마노와 벽옥으로 빼곡하게 채운 보석들의 모자이크는 예술작품에 가깝다.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오래 머물지도 못하겠다. 여기에 쓰인 보석들만 무려 6톤, 정교한 장식과 화려함은 불가사의 리스트에 올라갈 수준이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 지금의 호박방은 사실 완벽한 오리지널이 아니다. 각양각색의 호박으로 휘황찬란하게 꾸며져 있던 방은 전쟁 중 나치 독일의 표적이 되어 조각조각 분리되는 수모를 겪으며 약탈당했다. 더 놀라운 건 1941년까지도 독일 쾨니히스베르크Konigsberg의 성에 그대로 전시되어 있던 게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단다. 현재 우리가 여름 궁전에서 보는 호박방은 1979년부터 2003년까지 무려 20년의 시간과 1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복원한 것이다. 이제는 카메라로 사진 한 장 촬영하는 것조차 금지될 만큼 철저하게 보호 중이다. 최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들이 약탈한 문화재가 실린 황금 열차가 발견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모든 이목이 거기에 집중되어 있다. 예카테리나 궁전을 꾸미고 있던 호박들이 거기에 실려 있을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이 주장 중이다. 조만간 소식이 들려와 미스터리가 풀리고, 리얼 호박방을 다시 보러갈 수 있기를.

1 그레이트홀의 전경. 예카테리나 궁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볼룸이다. 물론 호박방이 훨씬더 사치스럽지만. 
2 기념품 숍의 러시아 인형. 
3 벽에 걸려있는 예카테리나 1세의 초상화. 
4 5 6 금빛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실내. 방마다 컨셉이 다양하다.

차르의 파라다이스, 겨울 궁전

도심에 위치한 겨울 궁전을 가보지 않고서 여름 궁전에 가는 건 사실 의미가 없다. 아니, 겨울 궁전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하는 불변의 첫
번째 이유다. 수도인 모스크바 다음으로 큰 러시아 제2의 도시, 표트르Peter 대제를 시작으로 차르라 불렸던 황제들이 러시아를 통치했던 당시
수도였기에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 곳곳에는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제정 러시아의 화려함이 여전히 흘러넘친다. 경제 침체에 허덕이는 속에서도 도시는 반짝반짝 빛이 난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습지 위에 단 하나의 목표, ‘유럽으로 향하는 창’을 가지고 표트르 1세가 세운 계획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당시 대국으로 우뚝 섰었다. 1917년 혁명이 일어나고 왕의 시대가 끝날 때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수도의 지위를 누리며 러시아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로, 또 위대한 문학가와 예술가를 탄생시킨 문화중심지의 역할을 해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찾는 여행자들의 99퍼센트는 드보르초바야 광장에서 시작한다. 목적은 단 하나, 겨울 궁전에 가기 위해서다. 18세기에 지어진 에메랄드빛의 우아한 바로크 스타일의 궁전. 제정 러시아가 막을 내릴 때까지 황제들이 겨울 동안 이곳에서 머물러 겨울 궁전이라 부른다. 1917년 혁명으로 강력했던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기 전까지 황실이 거주했던 궁전의 내부에는 주체할 수 없이 화려한 그들의 삶의 공간이 그대로 남아있다. 장식된 룸과 홀만 1천개 이상이고 더 놀라운 건 무려 300만여 점에 이르는 예술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거다. 현재는 세계 최대의 에르미따주Hermitage 미술관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이게 어느 정도인지 간단히 설명하자면, 한 작품에 1분씩 투자할 때 8년이 걸리는 수준이다. 이집트 미라부터 그리스 시대의 조각상, 거기에 르누아르, 고갱, 고흐, 렘브란트,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이 그야말로 차고 넘쳐난다. 예술작품을 향한 예카테리나의 2세의 열정인지 아니면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에 대적할만한 사치병이였던 지간에, 우리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행 중 하루 이틀을 몽땅 투자한다 해도 절대로 섭렵할 수 없는 작품들은 궁전과 큰 에르미따주, 작은 에르미따주, 새로운 에르미따주, 에르미따주 극장, 예비 보관소 등 총 6개의 건물로 이뤄진 박물관에 전시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전을 수십 번 들락날락 걸린다 해도 아쉽기만 하다. 도시를 3-4일정도로 여행하는 짧은 기간 동안 하루를 온전히 투자할 수 있다면 나름 박수칠만한 성과다. 에르미따주 미술관을 비롯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오른 피의 부활 사원과 이삭성당 등은 시내에 가까이 서로 붙어있어서 여행하기 쉬우니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는 이들이라면 교외로 나가 꼭 여름 궁전까지 함께 들려보길. 진짜 여름이 아니더라도 즐거운 데이 트립이 될 거다.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던 제정 러시아의 당시를 절절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은 여기만한 데가 없다.

1 표트르 대제의 방. 나중에 완성된 터라 실제로 그는 이곳에 머무르지 못했다더라. 
2 아름다운 겨울궁전의 전경. 
3 5 6 현재 겨울궁전은 에르미따주 미술관으로 사용되며, 셀 수도 없이 많은 소장품을 갖고 있다. 
4 미술관이지만 황실가족들이 머물던 흔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