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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Need Good Sneakers in Manhattan

운동화 신고 걸어요, 맨해튼

뉴욕을 향한 꿈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 맨해튼. 왜 서울에서는 지겹던 빌딩 숲이 그곳에서는 그토록 멋지게만 보였을까 여전히 의아하다. 허나 맨해튼의 진짜 멋은 그처럼 세련되고 그럴싸한 모습들 바로 곁의 편안한 낭만과 편리한 삶의 흔적들이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과 할랄 푸드 노점상이 한 블록에 자리해도 전혀 어색할 것 없는 도시. 그 속을 그저 걷고 걷다가 만난 모습들을 나열해보고 싶었다. 서로 그 활기가 조금씩 달랐던 낮과 밤의 두 가지 이야기로.
글 이소윤 기자 사진 진하정 기자 취재협조 에어비앤비 코리아 www.airbnb.co.kr, 유나이티드항공 www.united.com

1 센트럴 파크의 그레잇 론 소프트볼 필드. 
2 맨해튼 어디에나 있다. 할랄 푸드 노점상. 
3 길 표지판. 
4 좁은 도로와 매일 이어지는 교통체증에도 뉴요커들은 여전히 자전거를 애용한다. 
5 센트럴파크의 서쪽 울타리에서 보기 좋게 관람한 추수감사절의 메이시즈 퍼레이드. 
6 투브릿지 지역에서 찾은 작은 커피숍. 주말 오전의 평온함이 항상 피어나는 공간이다. 
7 유니온 스퀘어.

맨해튼의 낮

“맨해튼에서 필요한 거요? 괜찮은 스니커즈 한 켤레면 돼요.” 뉴욕에 깊이 빠져 있고 앞으로도 그 마음이 변치 않을 예정인 한 뉴요커는 맨해튼 탐방에 한껏 설렌 나에게 이토록 시크한 조언을 던져 주었다. 맨해튼은 무조건 걸어야 하는 도시이며, 많이 걸으면 걸을수록 더욱 빠져들게 될 거라는 이야기. 뉴욕에 매료된 이들이 탄생시킨 수많은 책과 사진, 정보가 넘쳐나지만, 그 무엇보다도 내가 느낀 뉴욕을 기억하고 싶다면 그저 걷는 것만한 처방이 없다. 일일이 나열하고, 세세히 기억해 기록할 수 없는 뉴욕만의 무언가가 길 위의 사람들과 공기, 불빛들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밤 숙소에 돌아와 신발을 벗을 때 끙 신음소리가 날 만큼 열심히 걸었다. 심지어 어떤 날은 자다가 뭉친 다리에 쥐가 난 적도 있다. 그렇게 대중없이 돌아다니며 내가 찾은 뉴욕, 맨해튼의 매력은 인간적인 푸근함이다. 뉴욕이 이토록 살기 좋은 도시였다니, 나에겐 의외의 반전이었다. 높은 월세에, 수많은 인구와 빼곡한 건물들로 매 순간 정신없고 치열할 것이라 상상해왔던 뉴요커들의 삶은 의외로 평온하고, 자유로우며, 따뜻해 보였다. 시끄럽고, 화려한 생활을 원하는 이와 고요하고, 개인적인 생활을 원하는 이 모두의 삶을 충족시킬 능력이 뉴욕에게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맨해튼에서 유심히 관찰한 결과, 뉴요커들에게 가장 사랑받고 있는 옷을 찾아냈다. 바로 후드티다. 여기에서 드러나 듯 많은 이들이 자신이 느끼는 편안함과 효율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이는 그들 생활의 배경이 되는 도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겉보기에 완벽한 고층 빌딩과 깔끔하게 뚫린 대로를 낀 번화가들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동네 사람들만 방문할 법한 미용실, 빵집, 세탁소, 마켓, 꽃집, 식당 등이 소소하고 알차게 거리를 장식하고 있다. 생활밀착형 소박함과 윤기 나는 세련됨이 만났을 때의 묘한 조화는 경복궁 기와지붕 사이로 반듯한 빌딩들이 빼꼼 보일 때와 비슷한 희열을 준다. 이미 그 자체로 멋진 환경 속에 무게 잡지 않고 그저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득하기에 더더욱 멋진 도시, 맨해튼을 찾았다.

8 맨해튼에서는 꽃을 함께 파는 마트들을 자주 찾을 수 있다. 
9 맨해튼을 걸으며 가장 자주할 일 중 하나, 횡단보도 건너기. 하지만 정작 뉴요커들은 신호를 잘 지키지 않는다. 
10 플랫아이언 빌딩의 위엄. 
11 삭스 피프스 애비뉴 백화점과 세인트 패트릭 성당의 자태가 화려한 5번가. 
12 공기조차 한적한 오전의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서 큐퍼휴잇 미술관을 찾았다.

1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2 조금만 주택가로 들어가면 보이는 소소한 가게들이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한다. 이곳은 크리스마스 트리 가게. 소나무 향이 상쾌하다. 
3 4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과 록펠러센터 정상에서 바라보는 뉴욕의 야경은 절대 놓쳐선 안 되는 밤의 절정이다. 
5 밤에도 여전히 바쁜 맨해튼을 책임지는 뉴욕 지하철. 
6 귀여운 동네 헤어 살롱

맨해튼의 밤

서울만큼 밤이 생기 넘치는 도시도 없다 자신해왔다. 하지만 맨해튼 밤의 화려함에 두 눈을 빼앗긴 이후로, 그 온갖 불빛들에 현혹된 정신을 다시 돌리기 어려웠다. 그 밤에 더 깊이 빠지기 위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타임스 스퀘어Times Square다. 밤의 화신이 있다면 그의 보금자리가 이곳이 아닐까 싶은 공간. 타임스 스퀘어의 눈부심은 역에서 내리자마자 내딛는 길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근을 둘러싸고 있는 키 큰 빌딩들과 그저 걷기만 해도 어지러운 수많은 인파와 상점의 흐름에 자연스레 몸이 실린다. 그 움직임을 따라 넘실대다 보면 어느새 뉴욕을 상징하는 세계의 교차로에 도달하게 된다. 브로드웨이와 7번가가 만나는 최중심의 자리에 100년도 전부터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한 사람과 돈의 흐름이 완성시킨 타임스 스퀘어의 모습을 만나는 것이다. 본래는 온갖 술집과 극장, 호텔에 밀집한 유흥가였던 음흉한 과거를 20세기 후반의 재개발 사업으로 청산한 이후 지금은 볼 것과 살 것이 넘쳐나는 도시 최대의 전시장이 되었다. 정작 그 가운데의 광장은 그리 크지 않지만 거기에 설치된 전망용 계단은 항상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사람들은 계단에 걸터앉아 멍하니 쉴 새 없이 바뀌는 전광판들과 인공조명에 시선을 빼앗긴다. 나는 그 멍한
관찰의 시간 동안 감탄을 비롯한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마치 주의력 결핍과 애정 결핍을 동시에 앓고 있는 누군가의 머릿속에 들어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서로 나만을 바라봐 달라는 전광판들이 일정한 규칙에 따라 시도 때도 없이 빛깔과 모습을 바꿔가며 자신을 뽐낸다. 그 정신없는 움직임들에 주의를 잃은 사람들 특히, 이를 보기 위해 자신의 터전에서 떠나온 여행자들은 두 눈에 놀라움을 가득 담은 채 마음이 붕 뜨기 마련이다. 설렘과 흥분, 산만함으로 주변을 관찰하고 사진 찍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도심 속 공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흥미로운 점은 정작 타임스 스퀘어를 벗어나 두세 블록만 걸어 나가도 이내 거리의 분위기가 차분해진다는 것이다. 겨우 가라앉기 시작하는 마음을 안고 다시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보면 만나는 맨해튼 미드타운 속의 웅장한 건물들이 새로운 밤의 옷을 갈아입고 누군가가 바라봐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24시간 운영되는 뉴욕의 지하철이 맨해튼에서의 매일 밤을 더욱 바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 걷다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생겨도 시간 걱정하며 참을 이유가 없다. 더불어 고요하게 맨해튼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과 탑 오브 더 록 전망대는 자정에 이르러서도 올라설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달콤한가.

7 뒤로 맨해튼 도심이 병풍처럼 펼쳐진 맨해튼 브릿지의 자태. 
8 10 타임스 스퀘어는 건물 구경과 거기에 빠진 사람 구경만으로도 한
시간이 후딱 가버리는 구간이다. 
9 플랫아이언빌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