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HIROSHIMA & YAMAGU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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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역사여행자를 따라가다

여행지 간에 궁합을 따져보자면 히로시마현과 야마구치현은 역사라는 주제에 관해서는 천생연분이다. 오랫동안 옆집에 살던 동네친구처럼 비슷한 듯 다른 두 개의 현에서 나란히 발견한 조선통신사의 발자취가 반갑다. 과거 역사여행자가 걸었을 그 길을 그대로 따라 걸었다.
글과 사진 차예리 기자 취재협조 일본관광청 일본정부관광국(JNTO)

HIROSHIMA

서일본에 나란히 위치한 히로시마현과 야마구치현은 함께 여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궁합을 자랑한다. 히로시마역에서 신야마구치역까지 JR 산요 신칸센으로 30분 정도면 도착하는 가까운 배낭여행 코스다. 두 개의 현은 닮아가는 친구처럼 비슷한 듯하지만 여행을 하면 할수록 서로 다른 매력을 찾아낼 수 있었다. 히로시마현과 야마구치현을 하나로 관통하는 테마는 역사. 예상치 못했던 작은 두 현에서 반가운 조선통신사의 오랜 흔적을 발견했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

히로시마현의 시모카마가리섬에 위치한 쇼토엔은 일본에서 유일하게 조선통신사 자료관을 간직한 곳이다.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 약 200년간 일본에 12번 파견되었다고 한다. 사절단은 300명에서 500명으로 구성되었고 서울에서 출발하여 동경까지 장장 2,000킬로미터에 이르는 여정으로 길게는 9개월까지 소요되었다. 이러한 조선통신사에게 카마가리섬은 세토내해를 통과할 때의 기항지로서 거칠 수밖에 없는 통로였다. 쇼토엔은 조선통신사자료관이 있는 구 아리카와 저택과 도자기 전시관으로 사용되는 구 요시다 저택, 서양 램프와 일본의 생활도구 등을 전시하는 구 요시다 저택, 복원된 카마가리지마 고반쇼 등 4개의 관으로 구성된다. 구 아리카와 저택에는 조선통신사선을 10분의 1로 축소한 선박모형과 삼사 인형, 이동경로를 나타낸 왕환도, 통신사에게 제공되었던 일본전통의 상차림 등의 기록이 남아있다. 특히 조선통신사가 방문했던 250년 전의 행렬을 디테일하게 재현해놓은 카마가리 혼진을 통해 그때의 떠들썩한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듯하다. 지금도 매년 10월 셋째 주 일요일이면 행렬을 재현하는 마을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쇼토엔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되며, 성인 800엔의 입장료가 있다.

1 쇼토엔 입구. 
2 10분의 1로 축소된 조선통신사선. 
3 이츠쿠시마 신사에서 바라본 오토리이. 
4 미야지마 곳곳에서 사슴이 출몰한다. 
5 소소한 단풍이 남아있는 미야지마의 풍경. 
6 이츠쿠시마 신사의 주황빛이 선명하다

미야지마 산책 한 바퀴

히로시마로 떠나기 전, 고심 끝에 써내려간 여행 리스트에서 당당히 1위에 올랐던 미야지마는 역시 예상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미야지마는 꼭 반나절 이상의 시간을 들여서 여유롭게 여행하길 추천한다. 미야지마의 중심을 이루는 이츠쿠시마 신사 이외에도 갈 곳, 할 것, 먹을 것이 너무도 많아서 신사와 그 주변만 후루룩보고 돌아가기에는 아쉬운 곳이다. 고즈넉한 자연을 간직한 모미지다니 공원과 오모토 공원, 소박한 옛 주택들이 늘어선 조용한 골목들을 천천히 걷다가 세토내해에서 갓 잡은 굴 구이와 모미지 만주를 먹으며 시끌벅적한 오모테산도 상점가를 구경하다보면 반나절로도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미야지마 역사민속자료관이나 수족관 관람을 추천한다. 미야지마의 전경을 감상하고 싶다면 로프웨이를 타고 가장 높은 산인 미센에 올라 시원한 바다를 눈에 담아도 좋다.

미야지마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츠쿠시마 신사까지 12분, 미야지마 로프웨이까지 25분이면 도착하는 페리를 이용해야한다. 페리에서 내려서 조금만 걷다보면 미야지마의 상징, 오토리이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높이 12미터의 오토리이는 조류의 변화에 따라 바닷물에 잠기는 높이가 시시각각 달라진다. 바다가 차오르면 해수면에 거울처럼 비춰진 잔상이 특별하고, 물이 빠지면 오토리이까지 걸어가 밑에서 올려다보는 모습이 웅장하다. 선명한 주황빛이 눈을 사로잡는 이츠쿠시마 신사는 593년에 창건되었고, 1168년에 다이라노 기요모리에 의해 재건축되었다. 바다 위에 세워져 마치 해수면에 떠있는 듯한 모습으로 1996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신사의 앞으로는 바다가, 뒤로는 산이 자리 잡고 있어 최고의 경관을 자랑한다.

YAMAGUCHI

조선통신사 최초의 일본 상륙지, 아카마 신궁

조선통신사의 두 번째 흔적은 야마구치현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아카마 신궁은 12세기에 8세의 어린 나이로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안토쿠 왕을 모시는 신사로 약 830년 전에 세워졌으며, 1965년에 재건축되었다. 조선통신사는 12번의 파견 중에서 11번을 이 곳에 방문했다고 한다. 아카마 신궁에서는 조선통신사가 남기고간 그림과 시 한편의 소중한 자료를 만날 수 있다. 그림은 화원 이성린이 배에서 시모노세키를 보고 그린 작품으로 원본은 한국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이 곳에서는 사본을 소장하고 있다. 시는 임수간 통신사가 안토쿠 왕을 생각하며 즉석에서 지었던 작품으로 ‘8세의 나이로 목숨을 잃은 안토쿠 일왕을 생각하니 슬프고, 석양을 바라보니 그때의 슬픔이 떠오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아카마 신궁의 앞에 위치한 아미다지 공원에는 ‘조선통신사 상륙 엄류지지’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조선통신사가 최초로 기항했던 곳을 기념하여 2001년 8월에 세워졌으며, 비문은 당시 한일의원연맹회장이었던 김종필 전국무총리의 친필로 작성되었다. 기념비 앞으로는 조선통신사의 배가 정박했던 흔적과 야마구치현과 히로시마현을 잇는 관문 대교의 전경이 펼쳐진다.

네 가지 얼굴의 긴타이교

야마구치현의 동부에 위치한 긴타이교는 독창적인 목조아치가 돋보이는 일본 3대 유명 다리 중에 하나다. 1673년에 창건되었지만 홍수에 의해 무너지고 다시 짓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2004년에 재건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굳어졌다. 길이 약 200미터, 폭 5미터의 다리는 못을
사용하지 않은 턱끼움 기법으로 완성되었다. 긴타이교는 사계절에 따라 다양한 풍경을 보여준다. 봄이면 강둑의 벚꽃이 만발하여 화려하고
여름이면 산은 초록빛을, 강은 푸른빛을 더한다. 가을이면 성산이 울긋불긋해지고 물결은 낙엽으로 덮이며, 겨울이면 다리와 산이 온통 하얀빛으로 변한다. 어둠이 내리면 일몰의 순간과 함께 조명이 비추어 어느 때보다도 로맨틱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긴타이교를 찾고자 마음먹었다면 일 년 중에서 여름을 추천한다. 여름에 놓치기 아까운 축제는 300년 전통의 우카이 고기잡이. 니시키 강에서 깨끗한 은어를 잡기위해 모은
사람들로 조용했던 긴타이교 일대가 북적거린다. 밤에는 성대한 불꽃놀이를 감상하자. 매년 8월의 첫째 주 토요일이면 다리를 배경으로 한
불꽃놀이가 펼쳐지니 단아한 기모노를 입고 특별한 추억을 남기는 것도 좋다.

1 아카마 신궁으로 들어서는 길. 

2 야마구치현과 히로시마현을 잇는 관문 대교. 
3 화원 이성린이 남긴 시모노세키의 풍경. 
4 긴타이교에 올라 바라보는 니시키강의 물줄기가 시원하다. 
5 다리와 이어지는 조용한 공원도 산책 한 바퀴. 
6 굽이치는 긴타이교의 아치. 7 아치의 굴곡을 느끼며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