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laken :: Jungfraujoch

Top of Europe, Jungfraujoch Rail Trip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요흐 기차 여행

인터라켄 여행자들이 사랑하는 융프라우요흐에 다녀왔다. 기차를 타고 적지 않은 시간을 이동하며 창문 너머의 풍경을 원 없이 감상하는 호사도 누렸다. 기차의 흔들림과 박자를 맞추는 듯, 가는 길 내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기다림 끝에 도착한 융프라우에서 유난히 의젓하고 황홀한 봉우리를 찾곤 한참이나 그 자리를 지켰다.
글 김수현 기자 사진 진하정 기자인터라켄 취재협조 호텔티라닷컴 02-2039-5285, www.hoteltira.com

1 맑은 날에만 개방한다는 스핑스 야외 전망대. 이곳에서 해발 4,107미터 높이의 묀히를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2 융프라우요흐로 가기 위해 클라이네 샤이덱에 정차했다. 며칠 사이에 눈이 많이 왔는지 발자국이 남겨지지 않은 곳으로 걸음을 옮기면 눈 사이로 발이 푹 빠진다. 이곳에서 2킬로미터 구간은 산악지역을 달린다. 
3 소문만 들었지 실제로 보니 더욱 신기했다. 해발 3,454미터 융프라우요흐역에 컵라면이라니. 뜨끈한 국물을 들이켜면 고산병이 잠잠해질 것 같았지만 다른 레스토랑을 방문하느라 아쉽게도 안녕. 
4 스핑스 전망대에서 보는 융프라우 봉우리. 스위스 알프스와 융프라우요흐 일대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봉우리이다. 
5 융프라우요흐의 고원지대에서는 만년설을 밟아볼 수 있다. 엄청난 바람이 분 탓에 잠시 발 도장만 찍고 돌아가려 하는데 언제 또 알프스의 만년설을 밟을 일이 있겠나 싶어 좀 더 서 있었다. 
6 빛과 소리가 있는 알파인 센세이션. 융프라우 철도의 역사와 공사 현장의 모습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사진 속 유리구 안은 융프라우 철도 지역의 모형이 있다. 무엇보다 실내라 따뜻하다. 
7 야외 전망대에서만 알프스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 대합실에서 나옴과 동시에 유리벽 너머로 하얀 세상을 마주한다.

기차가 출발을 알리며 덜커덕거리자 사람들은 창문에 볼을 맞댔다. 언제 이렇게 눈이 쌓였는지 눈치채기란 어려운 일이다. 눈이 녹고 산중이 초록색으로 물들면 겨울은 다 간 것이다. 그러나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로 가는 길은 다르다. 드문드문 봄 모양새를 드러내다가도 온통 겨울색으로 하얗게 채워진다. 금세 창밖에 서리가 낀다. 올라가면 인터라켄 시내보다 10도는 더 떨어진다는 말에 아침부터 갑갑할 정도로 챙겨 입은 게 벌써 진가를 발휘한다. 오전, 하얀 눈과 햇빛이 만난 겨울날의 융프라우 지역은 눈부시고 온화하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기차역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며 호텔에서 나왔다. 유럽의 지붕이라 불리는 융프라우요흐로 기차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는 수고쯤이야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인터라켄 동역에서 융프라우요흐역까지는 두 시간 반이 걸린다. 라우터브루넨Lauterbrunnen이나 그린델발트에서 한번, 클라이네 샤이덱역에서 또 한 번 환승까지 포함한 시간이다. 왕복이 다섯 시간이니 결코 가볍게 떠날 수만은 없는 거리. 게다가 고도의 날씨가 워낙 시시각각 바뀌기에 가는 도중에 흐려지는 일도 허다하다. 시간과 비용을 모두 감수하고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융프라우요흐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기차는 오른쪽으로 뱅겐Wengen과 쉴트호른Schilthorn을 한번 비춰주더니 금세 터널로 진입한다. 50분을 더 올라가는 동안 누군가는 먹먹한 귀를 뚫기 위해 침을 연거푸 삼키고 몇몇은 벌써부터 고산병 증세에 숨을 가삐 쉰다.

가까이하기엔 너무나도 먼 융프라우. 하지만 100여년도 전에 알프스를 산책하던 아돌프 구에르첼러Adolf Guyer-Zeller는 아래에서는 높이를 실감하기조차 어려운 지점에 톱니바퀴 철도를 잇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지금은 스위스 철도의 아버지라 불리지만, 당시 사람들의 눈에 구에르첼러는 그저 미치광이일 뿐이었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접근조차 불가능한 곳이기에 철도 공사는 애당초 계획된 7년보다 훨씬 늘어난 16년 동안 진행됐다. 안타깝게도 꿈을 현실에 구현한 구에르첼러는 공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뒀다. 그럼에도 공사는 계속 진행됐고, 1912년 8월 1일에 공식 운행을 시작한 철도는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클라이네 샤이덱역에서 융프라우요흐역으로 향하는 길은 총 12킬로미터에 이른다. 클라이네 샤이덱과 아이거 글래시어Eiger glacier역 사이 2킬로미터는 기차가 산악지역을 달리고, 나머지 10킬로미터는 석회암을 뚫고 만든 터널을 지난다. 터널 속에서도 아이거반트Eigerwand와 아이스메아Eigerwand 각각의 역에 한쪽 면을 일부 개방해 알프스의 경관을 맛보기로 감상할 수 있다. 한 남자의 철도를 향한 놀라운 상상과 집요함이 만난 곳, 그곳에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기차역인 융프라우요흐역이 있다.

융프라우요흐를 즐기는 방법

융프라우요흐역에 도착했다면 ‘Tour’ 표지판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해발 4,158미터의 융프라우Jungfrau봉우리와 그 주변을 완벽하게 둘러볼 수 있다. 이미 긴 기차 여행을 통해 인터라켄 지역을 감싼 봉우리들을 보고 알프스 어귀의 산악마을과 눈높이를 나란히 했지만 눈에 보이는 것 중 같은 장면은 없다. 특히 해발 3,571미터에 자리한 유럽 최고 높이의 전망대인 스핑스Sphinx 전망대에서는 360도 파노라마로 융프라우 지역을 조망할 수 있다. 하늘을 향해 솟은 아이거Eiger, 묀히Monch 그리고 융프라우로 이루어진 세 자매 봉우리는 이곳에서 유난히 잘 보인다. 맑은 날씨 덕분일까, 먼 봉우리와 호수들이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니다만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길이 23킬로미터, 두께 700미터에 이르며 알프스 산맥에서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록된 알레취빙하는 경이롭고 존엄해 보이기까지 한다. 셀 수 없는 시간이 흐르며 연약한 부분은 모조리 녹고 따뜻한 계절을 이겨낸 빙하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산증세 때문에 술에 취한 듯 몽롱하다가도 이따금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조금씩 제 컨디션을 찾아간다. 융프라우 철도 100주년 기념 공간인 알파인 센세이션Alpine Sensation, 얼음으로 가득한 얼음 궁전Eisplast, 만년설을 직접 걷는 고원지대Plateau 역시 융프라우에서 놓칠 수 없는 재미이다. 자연이 만든 것에는 똑같은 게 하나도 없다 했던가. 산봉우리의 뾰족한 직선과 부드러운 빙하의 곡선도 그렇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운 능선을 찾아 콜럼버스가 되어 융프라우요흐를 누비는 것이야말로 이곳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