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Essay :: Myanmar

‘참 나’를 찾아 떠난 첫 배낭여행

2주간 미얀마 배낭여행을 마치고 여행기를 쓰는 지금, 미얀마에 대한 그리움, 여행이 끝났다는 허망함과 여행에서 받은 에너지들로 가슴이 벅차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난해에 실시된 미얀마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 민주주의 민족동맹이 대승을 거뒀다는뉴스를 접하면서 미얀마라는 나라에 관심이 생겼다.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군부가 상하원 의석의 25퍼센트를 가져가는 신기한 나라. 전 국민 대다수가 불교를 믿어 나라 전체에 세워진 거대한 황금빛 불교 사원들과, 시간이 멈춘 곳이라는 응아빨리 해변의 아름다운 사진들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지난여름 캐리어를 끌고 한 달 간 혼자 영국과 베트남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배낭을 메고 ‘배낭’여행을 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더욱 기대가 되었다. 늘 여행을 가기 전 여행의 목적을 써보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20대, 누나, 장녀, 한국인, 3년차 직장인, 여성 등에 가려진 진짜 나, ‘참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글과 사진 임선희 에디팅 이소윤 기자

임선희 l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여행할 때는, 언어로 설명하기 힘든 순간이 있다. 미얀마 양곤 쉐다곤 파고다에서, 작열하는 태양 아래 무릎 꿇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겐 그랬다. 성공하게 해달라고 빌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왔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따뜻한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밍글라바(안녕하세요)! 황금빛 도시 양곤에서 만난 따뜻한 사람들

쉐다곤 파고다Shwedagon Pagoda는 미얀마의 영혼이다. 100미터에 이르는 온갖 보석들로 장식된 황금 탑 주변으로 64개의 작은 불탑들이 모여 있는 웅장한 불교 사원. 젊은이들은 데이트하러, 노인들은 뜨거운 태양을 피해 낮잠을 즐기러, 가족이 같이 기도하러 오는 미얀마 사람들의 일상인 곳이다. 황금 탑을 중심으로 출생 요일을 의미하는 부처상이 있는데, 나는 금요일에 태어나서 금요일 부처상에 물을 뿌리고, 부처가 보이는 바닥에 꿇어앉아 세 번 기도를 올렸다. 해가 뜨겁게 내리쬐는 한낮에 사람들이 바닥에 꿇어앉아 눈을 감고 진지하게 기도를 올리는 모습은 울컥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내가 찾는 ‘참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직업에서 성공한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내가 나눌 수 있는 것이 돈일 수 있고, 기술일 수 있고, 작은 미소일 수도 있다. 내가 행복하고 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를. 그렇지만 나에게서 미움보다는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욱 많기를. 그리고 개인적인 소원을 두세 개 더 빌었다.

이후에도 세 번 더 쉐다곤 파고다를 방문하여 기도를 올렸다. 미얀마 사람들이 타인에게 따뜻한 이유는, 매일 자신과 타인을 위해 기도를 해서가 아닐까. 미얀마 사람들은 사원에서 기도를 드릴 때 ‘인야’라고 여러 번 외치는데, ‘인야’의 뜻은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하다’는 뜻이다. 겉으로 쿨한 척하며 강해보이는 사람이 아닌, 타인에게 따뜻하고 부드럽고 내면이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쉐다곤 파고다의 중앙 황금탑.
기도하는 여성.
껄로 트레킹 풍경 .

수억 개의 별이 쏟아지던 1박 2일 껄로 트레킹

양곤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껄로Kalaw에 도착했다. 여행자들이 껄로에 오는 이유는 하나, 인레 호수로 가는 트레킹을 하기 위해서이다. 1박 2일 트레킹에 숙박비, 식비, 가이드비, 보트 탑승 비용을 모두 포함해 고작 4만 원이다. 18살 여대생 우마가 가이드로 이끄는 우리 팀 멤버는 총 7명. 독일에서 온 친구 엘레나와 캐롤라인, 칠레에서 온 커플 캐롤리나와 안드레아스, 그리고 혼자 여행 온 세 명, 나와 스페인 사람인 다니, 루치오이다.

하루에 보통 18킬로미터 정도를 걷는데, 청명한 하늘과 산들바람 아래 형형색색의 밭과 숲을 지나 평탄한 흙길을 걸으니 힘들기는커녕 즐거움이 가득하다. 한 고산 마을에서 자게 되었는데, 숙소 안은 너무나 추웠다. 음식이 소화가 되지 않았는지 새벽에 화장실도 여러 번 갔다. 하지만 소화 불량으로 잠을 설친 그 날 밤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물도 부족하여 샤워를 하지 않는다는 이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태양에너지로 가동되는 손바닥만한 백열등 하나 걸어놓은 것이 전력의 전부이다. 덕분에 도시에서 살면서 일생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별빛달빛을 이 날 처음 보았다. 저녁 7시인데 이미 칠흑같이 어두운 밤, 옆집에서는 한 미얀마 남성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수억 개의 별들. 길바닥에 누워 별빛이 쏟아지는 것을 온몸으로 받았다. 초승달이 한낮의 햇빛처럼 눈이 부셔 똑바로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달빛이 이렇게 밝고 강렬했나? 배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꾸륵꾸륵 거렸어도, 셀 수 없이 수많은 별이 까만 하늘을 가득 덮어 하얗게 빛나던 풍광은 잊을 수 없다. 단언컨대 미얀마에서 내가 본 최고의 풍경이었다. 옆에 누가 있었다면 덥석 손을 잡으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을 거다. 언젠가, 쏟아져 내리는 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길바닥 텐트 안에서 자보고 싶다.

바간, ‘미얀마 존스’ 영화의 주인공 되기

단언컨대 모든 미얀마 가이드북의 표지는 바간Bagan이라 말할 수 있다. 바간은 미얀마 최초의 왕국이 위치했던 곳이다. 11~13세기 지어진 3~4천여 개의 불교 사원이 펼쳐진 드넓은 수풀 속을 전기 자전거로 달리며 ‘인디아나 존스’, 아니 ‘미얀마 존스’ 영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곳. 부푼 꿈을 안고 인레 호수에서 출발한 바간행 야간버스에서 막 내렸을 때, 숙소를 정하지도 못한 나는 귀찮게 달라붙는 택시 기사아저씨들 사이에서 인상을 찡그리며 서 있었다. 그 때 버스를 같이 탄 스웨덴 청년 안드레와 영국 청년 샘이 말을 걸어왔다. 우리 셋 다 혼자 여행 왔으며, 숙소를 구하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걸 계기로 우리는 내내 같이 다니게 되었다. 새벽 세 시, 숙소도 구하지 않은 채 전기자전거를 빌려 쉐산도 파야Shwesandaw Paya로 일출을 보러간 것부터 시작하여 자정 넘게까지 술을 마시며 그들과 함께한 바간에서는 매일 24시간이 시끌벅적했다.

나는 샘이 운전하는 전기자전거 뒤에 타고 편하게 바간 유적지를 구경했다. 광활하고 평탄한 밀림을 달리며 수천 개의 불탑을 구경하는 재미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사원은 맨발로 돌아다녀야 했는데, 흙과 오래된 타일이 발에 닿는 감촉이 너무나 좋았다. 각 사원마다 각기 다른 불상들의 표정과 몸짓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사원에 올라 일몰을 볼 때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보면, 조르바가 기분이 너무 좋아서 벌떡 일어나 자유롭게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나도 일몰의 아름다운 광경에 흠뻑 빠져서,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음악의 즐거움에 취해 비록 조르바처럼 벌떡 일어나 추진 못했지만 발과 손을 까딱거리며 앉아서 리듬을 탔다. 아아! 내가 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로웠다면 벌떡 일어나 춤을 췄을 텐데! 한국에 돌아가면 춤을 배워서, 다시 이곳에 올 땐 춤을 맘껏 추리라!

응아빨리 해변, 아름다운 바다는 모두 나의 것

바간에서 서양 친구들과 함께한 4일 내내 왁자지껄 수다 떨며 즐거움도 컸지만 정신이 없었다. 여행에서 본 것들과 나의 삶을 돌아보며 혼자 사색할 시간이 필요할 때쯤 방문한 마지막 여행지 응아빨리Ngapali 해변은 최적의 장소였다. 국내선 왕복 티켓이나 이틀 숙박비 모두 배낭여행자에겐 어마어마한 액수였지만, 햇살이 하얗게 부서지는 아름다운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 숙소의 야외 레스토랑을 보자마자 오길 잘했다는 행복에 휩싸였다. 한낮에는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또 지는 해를 바라보며 바다 속을 누볐다. 선베드에 앉아 열대 과일 주스를 홀짝거리며 졸릴 땐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책을 읽었다. 성수기인데도 사람이 많지 않아 수영할 때는 바다가 온통 내 차지였다. 시간이 멈춘 이곳에서 여행을 조용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마지막 밤 응아빨리 해변의 일몰은 더욱 아름다웠다. 모든 인간이 죽기 때문에 삶이 더욱 찬란한 것처럼, 여행자인 나는 곧 떠나기 때문에 이곳이 더욱 애틋하고 아름답다.

다시 돌아간 양곤

서울로 돌아가기 전, 양곤Yangon에서 한나절 머물 시간이 있었다. 쉐다곤  파고다에 다시 올라 마지막으로 감사 기도를 올렸다.
“지금 내가 가진 것 중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나눌 수 있게 해주세요. 그게 작은 미소이든 무엇이든지요. ‘참 나’는 나누며 행복하고 건강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정확히 꼬집어 설명할 수 없지만, 지금 내가 몸으로 느끼는 이 가슴 벅참이 아닐까요. 이제 곧 한국으로 떠납니다. 떠나기 때문에 여기 있는 이 순간이 더욱 아름답고 소중하고 행복해요. 떠남, 죽음을 인정하는 순간 삶이 따라온다는 말 이제 알겠어요. 쩨주띤바대(감사합니다)!”

이 여행기를 마친 지금, 미얀마의 따사로운 햇살과 사람들의 정겨운 미소, 모든 추억들이 너무나 그립다. 해외여행을 꽤 많이 해봤지만 이렇게 그리운 적은 처음이다.

바간의 뽀빠산에서 데이마, 미케일라와 함께.
쉐산도 파야에서 바라본 일출.
바간 왕조 최고의 걸작으로 불리는 아난다 파야 사원.
응아빨리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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