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Essay :: Cuba
My Cuban Diary

나의 쿠바 다이어리

쿠바에서 스마트폰은 시계 그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 책도 노트북도 없었다. 때문에 사진 찍고 일기 쓰는 일에 집중했는데, 그 결과 여행의 모든 순간이 기록되었다. 여전히 사진 속 장소의 이름은 모른다. 쿠바 혁명가의 삶도, 쿠바의 역사도 잘 모른다. 그럼에도 할 말이 많다.
이전 여행에서 난 그렇게 공부를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정된 시간과 예산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해 정보를 모으고 또 모았다. 여행지에서도 사전 정보 수집은 필수였다. 숙소를 떠나기 전, 맛집을 검색하고 목적지까지 가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았다. 결과는 좋았다. 효율적인 시간 활용이 가능했고, 계획한 곳을 모두 둘러보았다. 미리 짜놓은 각본 안에서 나는 신나게 춤을 췄다. 그랬던 내가 각본 없는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쿠바. 왜 그랬냐고? 간단하다. 시간이 없었다.
글과 사진 이영주 에디팅 이소윤 기자

이영주 l 서울시 관악구 청룡동
낯선 땅에선 ‘지금 이 순간’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살아야 하니까. 지금 뭐할지, 내일은 몇 시에 일어나 아침으로 무엇을 먹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매 순간 당장 처리해야 할 과제가 놓여 있다. 익숙한 조국 땅에서도 같은 고민 중이다. 사는 건 전쟁이니까.

말레콘 해변으로 가는 길.

‘비행기 표와 숙소는 예약했으니 일정은 가서 짜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쿠바에 도착하고 엄청난 후회를 했다. 부유한 나라도 아니고, 사회주의 국가에서 무선 인터넷 와이파이 연결을 바라다니. 유선 인터넷 검색도 어려운 곳인데, 참 어리석었다. 몰라도 너무 모르고 갔다. 스페인어가 공용어인 줄도 몰랐다. 지도를 설명하기 위해 진땀 뺀 기억이 생생하다. 수도 아바나Havana 여행 첫날, 뭐라도 알아야 돌아다니는데, 숙소 까사Casa의 주인은 영어를 못했고 여행정보센터가 어디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지도를 구하겠다는 일념 아래 무작정 나선 길. 다행히 영어로 인사해 오는 쿠바 청년을 만나, 도움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청년 지도Map라는 영단어를 몰랐다. 손짓 발짓 끝에 청년이 내뱉은 말, ‘마파Mapa!’. 그렇게 ‘Mapa’는 내가 아는 유일한 스페인어가 되었다.

로컬 피자 가게 피제리아.
엘 포탈의 치즈 샌드위치.
아바나의 알록달록한 거리.

사복 경찰과 대면했지 말입니다
“안녕, 너희 어디서 왔니? 뭐해? 도와줄까?” “안녕, 우린 한국에서 왔어. 지도를 사려고 하는데, 어디서 파는지 아니?” 쿠바 청년이 빠른 걸음으로 안내한 곳은 슈퍼마켓이었다. 무언가를 산다고 하니, 무작정 큰 슈퍼마켓으로 데려온 것이다.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지도는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정보는 얻었다. 현지인이 추천하는 럼Rum! 럼은 당밀이나 사탕수수의 즙을 발효시켜 증류한 술로 쿠바의 특산품 중 하나다. 그는 유명 럼 브랜드 ‘아바나클럽Havana Club’ 중에서도 노란색 라벨에 숫자 3이 쓰인 것을 추천했다. 허나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지도였다. 슈퍼마켓을 나와서야 친구와 나의 목적을 알아차린 쿠바 청년은 말레콘 해안에 위치한 큰 호텔로 안내했다. 호텔 2층 기념품 가게, 마침내 3쿡CUC의 쿠바 지도가 내 손에 쥐어졌다. 쿠바는 관광객(쿡, CUC)과 현지인이 쓰는 통화(쿱, CUP)가 다른데, 그 가격 차이가 무려 25배다. 관광객은 현지인 통화도 쓸 수 있었지만, 아바나에서 쿱CUP이 손에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도를 사고 나니, 쿠바 청년은 술 한잔하자며 앞장섰다. 뒤따라 나선 길에서 사건은 발생했다. 어느 집 시베리안 허스키 두 마리에게 향했던 시선을 돌리는 순간, 오토바이 한 대와 두 명의 남자가 쿠바 청년을 둘러싸고 있던 것이다. 영어를 못하던 그들이 내게 보여준 건 경찰증이었다. 사복인데!? 사복 경찰이란 사실은 놀란 눈을 더 크게 만들었다. 친절한 쿠바 청년. 붙잡힌 연유를 설명해줬다. 까사 운영이나 택시 운전 등 관광업과 관련된 자격증이 없으면 외국인, 정확히는 자본주의 국가의 시민과 말하는 게 불법이라고. 그는 괜찮다는 말을 남긴 채 경찰과 함께 유유히 사라졌다.

어쩌다 맛본 쿠바 샌드위치
여행기를 쓰면서 스페인어 하나를 더 배웠다. ‘말레콘Malecon’, 아바나에서 매일 걷던 해안가 이름이다. 생각난다. 따사로운 햇살과 짙푸른 바다, 제방을 넘어서려는 듯 부딪히고 부딪히던 파도 소리가. 아 그랬구나, 그 곳 이름이 ‘방파제’구나. 뚜르드몽드 이 기자가 ‘인생은 바다와 가까울수록 재미지다’고 했었지. 우린 낮에도 밤에도 비 내리는 날에도 말레콘을 찾았고, 5일 연속 찍었던 발자국의 수만큼 그 곳에서 추억을 쌓았다.
맛의 추억도 말레콘과 가까운 곳에 머물러 있다. 말레콘 동쪽 끝에서 쿠바에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을 마주한 것이다. 아무것도 없던 도보에 간판 대신 서너 개의 테이블을 놓음으로써 ‘여기 레스토랑임’을 드러냈던 곳, 엘 포탈El Portal. 베스트 메뉴는 치즈 샌드위치. 아바나 여행 이튿날 마주친 ‘엄지 척’ 샌드위치를 잊을 수 없어 3번이나 그 곳을 찾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곳의 샌드위치는 첫날 딱 한 번밖에 맛보지 못했다. 두 번째 방문에는 다른 메뉴를 시켰고, 마지막 방문에는 주방장과 재료가 없어 돌아서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망감은 크지 않았다. 먹지 못한 샌드위치 대신 찾아간 로컬 피자 가게, ‘피제리아Pizzeria’ 이게 또 대박이었다. 말레콘 해안으로 가는 어느 골목에서 빨갛고 노란 피자가게를 지나쳤었다. 어찌나 인상 깊던지 샌드위치 주문에 실패한 뒤 바로 그곳으로 직행했다.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가격표도 현지인 통화로 매겨져 있었다. 피자 1개에 1쿡을 지불했다. 이렇게 저렴할 수가! 그런데 맛은 5쿡 내고 먹었던 피자보다 맛있었다. 파스타도 맛있었는데 면이 우동 면과 비슷했다. 아참 한국에서 쿠바 샌드위치가 유명하다고. 하하하 쿠바 다녀와서 그 얘기를 들었다. 유명한 줄 알았으면 좀 더 적극적으로 먹어볼 걸. 뭐 그래도 맛있는 샌드위치 못 먹은 거 아니니 그걸로 됐다.

양파 껍질 같은 매력의 올드 아바나
아바나에 갔으면 올드 아바나Old Havana를 가야한다. 숙소에서 동쪽으로 가면 올드 아바나 지역이 나온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디를 어떻게 구경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다 시간당 10쿡으로 올드 아바나 투어를 할 수 있다는 자전거 택시기사를 만났다. 자전거 택시는 바퀴가 세 개였고, 차양이 있는 보조좌석에 두 명이 앉을 수 있었다. 햇볕을 피할 겸 탑승했다. 기사는 짧은 영어로 건축물 등을 설명하며 천천히 이동했다. 오비스뽀OBISPO 거리에선 자전거가 들어갈 수 없다며 구경하고 오라고 했다. 사람 많고 기념품가게가 즐비한 거리에서, 인상 깊은 건 약국 정도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투어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많은 가이드투어가 그렇듯, 기사는 손님을 데려오면 수수료를 주는 레스토랑으로, 기념품을 살 수 있는 곳으로 자꾸만 안내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올드 아바나와의 첫 만남은 겉핥기로 끝이 났다.
이틀 후 오비스뽀 거리를 다시 찾았다. 우체국에 들러 엽서를 부치고, 기념품을 사려고 둘러봤다. 형형색색의 수공예품이 눈길을 끌었지만, 고른 것은 없었다. 가판의 물건보다 파스텔 톤 건물이 늘어선 골목 구경이 더 재밌었다. 오비스뽀 거리를 나오니 다양한 카페들이 펼쳐지고, 조금 더 걸어가니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이 나왔다. 중고 책을 파는 노점상들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한국인을 보았다. “한국인이다!” 나도 모르게 감탄을 했다. 정말 반가웠다. 아바나 여행 4일 동안 한국인은커녕 아시아인을 마주한 적이 없었기에. 
아바나 여행 마지막 날, 올드 아바나를 다시 한 번 가기로 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마지막 날의 올드 아바나가 뿜어낸 매력을 잊을 수 없다. 버디베어Buddy Bears 전시회가 열리는 광장,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쿠바 영웅이 된 체 게바라의 벽화 등을 발견한 것이다. 특히 체 게바라 벽화가 기억에 남는다. 골목골목을 지나다 우연히 발견한 그 벽화는 쿠바 곳곳에 그려진 체 게바라 모습 중 으뜸이었다.

몰라서 즐거웠고 없어서 여유롭던
쿠바를 다녀온 건 1년 전의 일이다. 1년이 지난 이야기를 꺼낸 건, 최근 쿠바 뉴스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의 이야기가 이제 다시 만날 수 없는, 미국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직전의 쿠바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꽤 흘렀어도 생생히 그려지는 에피소드를 풀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내게 쿠바는 ‘여유롭게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던’ 나라로 기억된다. 아, 그리고 이제 난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을 선호하게 되었다.

비 오는 아바나.
아르마스 광장.
형형색색의 쿠바 수공예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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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실 곳
이소윤 기자(soyun.lee@tourd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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