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Ieper
Tragic and Historic Site, Ieper

비극의 역사의 현장, 이프르
각자 짐을 싸서 집을 나설 때는 모두들 나름대로의 여행 목적이 있을 터이다. 즐겁고 여유로운 것을 찾아가고자 했던 원래 목적과는 달리 때로는 힘들어질 때도 있고 예상치 않은 괴로운 일 그것보다 더 심하게는 불행한 일에 부닥칠 때도 있다. 우리 인생의 여정처럼 말이다. 혹은 처음부터 고생길 임을 알고 시작하거나 지금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안쓰럽고 애잔하고 그리고 슬픈 마음이 반드시 일 곳을 일부러 작정하고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 내가 갔던 벨지움 이프르(Ieper 영어 명으로는 Ypres 이프레스)가 바로 이런 경우이다. 
글과 사진 권석하 편집위원(영국인 재발견 저자)

메닌 게이트를 통해 보는 이프레스 시내.
벨지움 풍차.

1 군인묘지. 
2 군인 묘지 앞에 서있는 전투 군인 기념상. 
3 클로스 홀 실내 카페. 
4 센트 마틴 성당내 추모 촛불. 
5 이프레스 시내 각 곳에 산재한 추모비들. 
6 전쟁관련 포스터들. 
7 전쟁기념비.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무대였던 비극의 이프르
나는 사실 이런 역사적인 장소 특히 이렇게 비극적인 장소를 찾아 다니는 악취미(?)가 있다. 이런 곳에서 나는 여러 가지를 보고 배우고 느낀다. 여행은 반드시 즐겁고 여유롭고 즐겨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프르의 역사를 알고 나면 절대 가벼운 마음으로는 볼 수 없는 도시다. ‘플란더스의 개’라는 소설로 잘 알려진 벨지움 서부 플란더스Flanders 지방의 이프르는 도시 전체가 1차대전의 상흔으로 가득 찬 곳이다. 얼핏 보면 이프르는 유럽의 여느 도시처럼 잘 정돈된 건물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도시이다. 그러나 역사가 1000년이 넘는 이 도시 건물이 1차대전이 벌어지던 1914년과 1918년 사이 4년동안 독일군의 포격으로 완벽하게 파괴되었다가 다시 지어진 지 이제 100년도 안 된지는 얼핏 봐서는 잘 모른다. 그만큼 아주 진한 슬픔이 아름다움 뒤에 깊이 숨어 있는 도시이다. 이프르는 독일군이 프랑스를 쳐들어 가려면 이 도시를 반드시 거쳐가야 했기에 운명처럼 전쟁에 휘말렸다. 대국들의 중간에 끼인 소국의 전형적인 비극의 전형의 도시이다. 벨지움은 주변 강대국의 참으로 많은 침략을 받았다.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영국의 지배를 돌아 가면서 받았다. 심지어는 국경을 직접 마주 하지도 않은 오스트리아나 바다 건너의 스페인의 지배도 받았었다.
1차대전은 벨지움의 중립을 영국이 보장했는데도 불구하고 독일이 이를 깨고 벨지움을 관통해 프랑스를 치려고 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개입을 해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바로 그 유명한 서부전선이 바로 이프르 근처이다. 전쟁에 휩싸인 독일군 젊은이들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잘 묘사해 내어 80년대 초 세계를 반전무드로 몰아 넣은 EM레마크의 동명 소설을 영화 한 ‘서부전선 이상 없다(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1979년)’가 바로 이 이프르 근처를 배경으로 한 1차대전 영화이다. 1930년에 흑백으로도 만들어졌으나 1979년 칼라 작품의 영화의 주인공이 ‘월튼네 사람들(The Waltons 1971-1981)’에서 아들로 등장해 너무나 청순한 느낌의 존-보이 역할을 하던 리차드 토마스여서 더욱 애잔한 느낌을 주었던 영화였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더 유명하다. 모처럼 날씨도 좋고 전투도 없어서 한가하게 편지를 읽던 주인공이 마침 가을 바람을 타고 날아 온 나비를 잡으려 몸을 일으켰다가 저격병의 총 단 한방에 맞아 진흙탕에 쓰러진다. 그리고는 본부의 발표 전문인 ‘서부전선 이상 없다’와 함께 The End 가 내려 온다. 정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순간적인 일발과 함께 갑자기 영화가 끝이 나서 말을 잃을 정도였다. 원제는 ‘서부전선 이상 없다’가 아니라 ‘서부전선 모두 조용하다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였다. 아름다운 젊은이의 죽음은 그에게는 인생의 종말을 뜻하는 큰 일인데도 세상은 ‘조용하다’라고 본다는 비교도 너무나 참혹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치열한 공방, 엄청난 희생의 역사
이프르를 뺏기 위한 독일군의 공격으로 벌어진 5차례의 전투에서 무려 170만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이프르 전투에서 1915년 4월22일 독가스를 독일군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고 치명적인 클로라인, 머스타드 가스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1917년 가을부터이다. 특히 1917년 7월31일부터 11월6일 사이에 벌어진 3차 이프르 전투에서 양측에서 합계 50여만명이 전사 혹은 부상했다.  겨우 10킬로의 땅을 뺏기 위해 엄청난 인원이 희생된 것이다. 원래 독일군이 1914년 전쟁 초기에 이프르를 쉽게 무혈점령 했다가 거의 유명무실한 쿠폰을 주고 식량만 거의 뺏다시피 하고 다음 날 철수했다. 독일군으로서는 정말 두고두고 땅을 치는 회한의 실수를 한 셈이다. 독일로서는 프랑스 파리로 쳐들어 가고 해안과 항구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이프르가 가장 중요한 요충지였는데도 말이다. 향후 4년을 독일군은 집념으로 다시 뺏으려 이프르를 공격하지만 영국군은 25만 명의 전사자를 내면서도 1914년 10월부터 1918년 11월까지 이프르를 내주지 않아 1차대전의 운명을 여기서 결정 짓게 만들었다. 역사적으로도 영국군의 수비공성전의 명성은 유명하다. 한국전에서도 초기 영국군은 괴멸의 상황에서도 임진강에서 영웅적으로 북한군의 공격을 잘 막아 한국전의 승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영국군은 참전 규모에 비해 큰 3000여명의 사상자를 내서 한국전 참전 유엔군 중 미국 다음으로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독일군은 이프르 시내로 끊임없이 곡사포를 쏴 댔고 결과로 이프르 시내에는 제대로 서 있는 건물이 하나도 없었다. 전쟁 중 촬영한 항공사진을 보면 도시라기 보다는 거의 지진으로 완벽하게 파괴된 폐허의 모습과 같다. 독일군이 당시 사용했던 곡사포를 영국군은 빅 버사Big Bertha라고 불렀다. 아이러니 하게도 지금은 가장 여유로운 운동 도구인 골프채 유명 브랜드 이름이다. 그랬던 도시가 1920-30년 사이에 완벽하게 복구되었다. 전쟁의 상징으로 그대로 남겨 놓자는 영국의 주장을 물리치고, 벨지움은 전쟁을 딛고 일어나는 부활의 상징으로 가장 먼저 그리고 완벽하게 복구하자고 결정했다. 독일로부터의 전쟁 배상금으로 벨지움에서도 가장 먼저 도시 재건이 이루어진 도시이다. 가능하면 파괴 전과 똑 같이 짓는다는 센치맨탈한 이유로 도시 전체가 전전 모습으로 복구되었다. 특히 13세기에 지어진 이프르 중앙 광장을 독보적인 존재처럼 서 있는 클로스 홀(Cloth Hall 벨지움어로 Lackenhalle)와 1561년에 지어진 센트 마틴 성당은 거의 전과 같은 모양으로 지어졌다.

‘플란더스 들판에서의’ 박물관
클로스 홀은 중세 유럽에서 가장 큰 건물 중 하나였다. 종 49개를 가진 첨탑의 모습이 흡사 성당을 연상하게 하는 클로스 홀은 세로 120미터 폭 45미터로 중세 때는 의류제품 창고였다. 보통의 유럽 도시 중심은 항상 광장과 함께 주변에 보라는 듯이 성당과 시청 건물이 지어진다. 그런데 이프르는 그렇지 않다. 벨지움 도시의 중앙광장은 항상 ‘큰 시장Grote Markt’이라고 불린다. 도시는 생계가 달린 상업이 중심이어야 하지 정치나 종교가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벨지움인들 특유의 철학이 담긴 도시인 듯하다. 그래서 이프르에는 광장 중심에는 성당이 없고 시청 건물도 귀퉁이에 조그만 하게 있다. 물론 성당이 있지만 클로스 홀 뒤쪽에 있어서 광장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바로 이프르의 도시 성격을 말해주고 또 이프르 의류업의 파워를 말해준다. 사실 이프르만 이런 것이 아니다. 지금은 해변이 물러나 내륙 도시가 되어 버렸지만 한자동맹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유명했던 유럽의 중요한 무역항이었고 아름다운 도시 브루게도 같은 모양이다. 물론 수도 브뤼셀도 같다. 도시 중앙광장이 ‘큰 시장’이라고 불린다. 그래서 벨지움에서 도시 중앙을 찾아 가려면 지도에서 ‘Grote Markt’를 찍으면 거의 틀림없다. 브루게의 큰 시장의 첨탑의 종루를 가진 건물도 이프르처럼 성당이 아니고 의류창고였다. 이프르의 클로스 홀 일층은 지금은 타운 홀과 관광 안내소와 기념품 상회가 들어서 있다. 또 널찍하고 천정이 높은 카페는 정말 쾌적한 곳이다. 지친 발걸음을 쉬기에는 더 이상의 곳이 없다. 이층에는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이름이 아주 시적이다. ‘플란더스 들판에서의In Flanders Field ’ 박물관이다. 존 맥크래의 동명의 유명한 시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프르 근처 플란더스 들판에서 스러진 젊은 군인들을 기리는 슬픈 시인데 그 시의 이름을 따서 박물관 명을 지었다. 이렇게 이프르는 모든 것 하나가 다 1차대전의 비극과 연관이 있다.

1 이프레스 시내 타운홀 클로스 홀 이라고도 함. 
2 이프레스 시내 중앙 광장. 
3 전쟁관련 포스터들. 
4 이프레스 메닌 게이트 와 주변 건물.

의류제조로 유명했던 이프르
벨지움은 영국에서 수입된 양모로 옷감을 만들어 수출하거나 의류를 제작해서 국가를 유지했기에 역사적으로 영국과 가까울 수 밖에 없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이프르는 의류제조로 유명했다. 얼마나 유명했냐 하면, 영국 문학의 아버지라는 제프리 초서(1343-1400)의 ‘캔터버리 이야기’에서도 이프르의 명성이 거론될 정도이다.‘바스 혹은 그 근처에서 온 한 부인이 있었는데 슬프게도 두 귀가 멀어 전혀 듣지 못했는데 그녀는 옷을 만드는 소질이 얼마나 좋았는지 이프르나 심지어는 겡Gent에서 만든 옷보다 더 좋았다. 교구 전체에서 그녀 보다 옷을 더 잘 만드는 부인은 내 생전에는 본 적이 없다(There was a housewife come from Bath, or near, Who- sad to say- was deaf in either ear. At making cloth she had so great a bent. She bettered those of Ypres and even of Ghent. In all the parish there was no goodwife. Should offering make before her, on my life)’라고 그 옛날에 바다 건너 영국에까지 명성이 자자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래서였는지 지금으로부터 거의 800년 전인 1200년대에 이프르의 인구는 지금 (35,000명)보다 많은 4만 명의 도시였다. 당시로는 대단한 도시였던 셈이다. 앞에서 얘기한 브루게도 1400년대에는 20만명의 도시였는데 지금은 거의 반에 가까운 11만의 도시가 되었다. 1200년대 유럽 인구가 6800만명, 1400년대가 7,800만 이었는데 현재 유럽 인구가 7억4,000만명이라 거의 10배가 늘었는데 두 도시는 거의 같거나 반으로 줄어 들었으니 상대적으로 당시는 얼마나 큰 도시였는지 상상이 간다.

적군, 아군의 셀 수 없는 무덤
이제 이프르의 1차대전의 깊은 상처를 한번 더 파헤쳐 보자. 영불해협에 면한 유럽의 서부 바닷가를 여행하다 보면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것이 군인들의 공동묘지이다. 영국에서 건너가 제일 먼저 만나는 칼레 항구에서 왼쪽으로 차의 방향을 틀어 북으로 올라가다 보면 1차대전의 흔적과 마주치고, 오른쪽으로 돌려 남쪽으로 내려 가다 보면 노르만디 상륙작전으로 인한 2차대전의 상흔과 만나게 된다. 어느 쪽이든 정말 수도 없는 1, 2차대전 묘지들을 만나게 된다. 정말 하나의 군인묘지로부터 시작해서 다른 군인묘지, 그 묘지 하나 마다 적게는 수 천개 많게는 수만 개의 무덤무덤. 처음 그 무덤을 접했을 때는 정말 말을 잊을 정도였다. 과연 이 하나 하나에 한 인간의 삶이 끝났고 한 가족의 비극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을 하고는 정말 단어 그대로 망연자실 했었다. 어느 무덤 하나에도 가슴 찢어지는 사연이 없을 수 없는 꽃 같은 청년들이 묻힌 묘지 앞에서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묻힌 지 100년도 넘는 묘지 십자가 앞에 놓인 생화 다발은 누가 가져다 놓은 것인가? 영국군 묘지 옆에 독일군 묘지, 프랑스군 묘지 옆에 독일군 묘지. 서로 총을 겨눈 적군과 아군이 같이 묻힌 무덤 앞에 하얀 십자가와 비석이 나란히 줄을 맞춰서 끝도 없이 서 있는 모습은 보지 않고는 실감을 할 수가 없다. 상상을 해보라! 하얀 나무 십자가 5만여 개가 한 곳에 줄 서 있는 광경을 말이다! 적국인 랑게마르크 묘지에는 침략군 독일군 44,000 명이 묻혀있다. 전쟁이 끝나고도 고국으로 돌아 가지 못하고 적국에 묻힌 독일 청년들. 적군묘지를 그래도 곱고 깨끗하게 보살펴 깨끗하게 유지되게 허용하는 벨지움인들. 모두들 대단하지 않은가? 1차대전 중 서부전선에서 가장 최악의 전투였던 솜므 전투에서는 첫날 단 하루에만 영국군 57,470명이 사상 당했고 독일군도 비슷한 숫자의 희생이 있었으니 단 하루에 10여만명이 사상자가 생겼다. 끝도 없이 나타나는 것은 군인묘지뿐만이 아니다. 다시 한번 되뇌어 보자! 하나의 전쟁기념탑으로부터 또 다른 전쟁기념탑, 하나의 전쟁박물관으로부터 또 다른 전쟁박물관. 정말 비극의 흔적은 많아도 너무 많다. 보통 전투가 끝나면 양측은 휴식을 취하면서 동시에 전사자들의 주검을 거두어 인근에 묘지를 만들고 비문을 세운다. 그런데 얼마나 전투가 치열했으면 9만 여명의 전사자는 결코 주검을 찾을 수가 없었다. 끝도 없이 퍼부어진 포탄과 흙더미에 묻혀 있어서 수습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행방불명자를 기리는 메닌 게이트Menin Gate
그렇게 해서 전쟁이 끝났는데 행방불명의 군인이 너무 많이 생겼다. 이들을 위해 전쟁이 끝난 지 9년 후인 1927년 메닌 게이트Menin Gate가 세워졌다. 정식 명칭은 ‘행방불명자를 기리는 메닌 게이트The Menin Gate Memorial to the Missing’이다. 메닌 게이트는 영국군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프르 전투에서 영국군25만명이 죽었는데 그 중 10여만명은 시신을 못 찾아 무덤도 없다. 그 들 중 1917년 8월15일 전에 죽은 54,896명을 여기에 이름을 새겼고, 34,984명은 인근 타인코트 묘지 벽에 새겼다. 나중에라도 무덤이 밝혀지면 이름을 뺀다. 문이 세워진 위치도 의미심장하다. 이프르 시내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동원이 되면 군인들은 지금 문이 세워진 곳을 지나 전투를 하러 가서 영원히 돌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이를 개선문이자 거대한 무덤이라고 했다. 이제는 이 문에서 영원의 불Eternal Flame같은 행사가 열리고 있다. 자신들의 조국도 아니고 외국 도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무덤도 없는 군인들을 위해 이프르 시민들은 뭔가를 하자는 뜻에 따라 매일 저녁 8시 이 문에서 ‘마지막 임무Last Post’라는 트럼펫 연주가 열린다. 1928년 시작해서 지금까지 (2차 대전 중 독일군에게 다시 점령되었던 1940년 5월20일부터 1944년 9월6일까지 영국에서 행해졌던 때를 제외하고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때는 이 문을 통과해 시로 들어 오고 나가던 모든 차들이 서고 의례가 거행된다. 2015년 7월9일 30,000번의 연주를 기념해서 큰 행사가 열렸었다. 한 연주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의 하루 연주가 전사자 한 명 한 명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2610년까지 매일 밤 연주를 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들은 이렇게 자신들을 위해 희생된 사람들을 끝까지 잊지 않는다. 이 행사를 주관하는 이들 ‘마지막 임무 협회Last Post Association’는 독립, 자원봉사, 비영리 단체이다. 전세계에 800명의 회원이 있고 그들이 내는 연회비 40파운드와 이프르 기업인들의 기부 그리고 모금행사를 통해 의식을 계속하고 있다. 이프르 자원소방대원들이 네 명씩 돌아 가면서 트럼펫을 분다. ‘마지막 임무’ 곡은 원래 영국군이 하루 일과를 끝내는 저녁 시간에 연주되는 곡이다. 평소에도 군대 장례식, 추모식, 그리고 현충일 등에 많이 사용되어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곡이다. 여기서는 전사한 군인들에게 당신들은 임무를 다 마쳤으니 이제 편히 쉬라는 진혼곡의 의미로 연주된다. 보통 이 곡을 연주하고 1분간 묵념한 뒤 영국군의 아침 기상 트럼펫 연주 ‘첫 부름First Call:‘Reveille’을 연주하고 끝을 낸다. 이들은 이렇게 자신들을 위해 희생된 이들을 영원하게 기억하기 위해 행사를 계속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행방불명 되지 않았다. 그들은 여기 있다They are not missing, they are here’라고 말한다. 또 영국시인 로렌스 바이년은 ‘전사자에게 바치는 헌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늙어갈 수 밖에 없어도,
그들은 늙어가지 않을 것이고
나이가 그들을 지치게 할 수 없고
세월도 그들을 끝내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저녁에 지는 해와 아침에 뜨는 해처럼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They shall grow not old, as we that are left grow old:
Age shall not weary them, nor the years condemn.
At the going down of the sun and in the morning,
We will remember them.”

1 이프레스 시내. 
2 센트 마틴 성당. 
3 벨지움의 자신들의 선조들의 전투장을 바다 건너 견학 온 영국 학생들.


히틀러와의 악연?
이제 메닌 게이트와 히틀러에 얽힌 또 하나의 재미있으나 잘 안 알려진 일화를 소개하고 끝을 맺자. 1918년 프랑스 조그만 마을에서 참호에서 앞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던 영국군 사병 헨리 탠디 앞에 젊은 독일군이 나타났다. 탠디는 독일군이 부상 당했음을 보고 총을 내려 놓았다. 독일군은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시한 후 사라졌다. 그 독일군이 바로 아돌프 히틀러였다. 이 일화가 어떻게 세상에 알려졌는지 도 하나의 이야기 거리이다. 탠디는 이 전투에서의 용맹으로 영국 무공훈장 중 최고인 빅토리아 크로스를 받았고 병사로서 최고의 공훈을 세운 병사였기에 신문에 기사와 사진이 났다. 히틀러는 자신을 살려 준 영국군의 기사가 난 신문을 어떻게 구해 간직했다. 이 용맹스러운 병사들의 영웅담을 이탈리아 화가 포투니노 만타니아가 그림으로 그렸다. 메닌 게이트 앞에 있는 ‘메닌 교차로에서’라는 그림 제일 중간에 부상 당한 전우를 어깨에 매고 있는 주인공이 바로 탠디였다. 히틀러 측근인 오토 슈웬드 박사가 자신이 1차대전 중에 치료해준 영국인 친구로부터 받은 카드를 받았는데 거기에 이 그림이 인쇄되어 있었다. 카드를 보여주자 히틀러는 그 그림의 주인공이 바로 자신을 구해 준 탠디였음을 즉각 알아 차리고는 그림의 큰 프린트를 구해서 자신의 바바리아 버그호프 별장에 걸어 놓았다. 히틀러가 그림 인쇄물을 구해서 가지고 있었음은 히틀러 부관이 오토 슈웬드 박사에게 감사의 편지를 쓴 것이 공식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편지를 탠디의 소속 연대 박물관이 가지고 있다. 또 1923년 포르투니노 마타니아에게 이 전투를 주제로 그림을 주문했고 박물관 큐레이터가 그림의 사본이 히틀러의 별장에 걸려 있었음도 확인했다. 이런 사실은 영국 총리 네빌 챔벌린이 히틀러와 2차대전 전 1938년에 뮌헨 평화협상을 끝낸 뒤 별장에 초대 받았을 때 히틀러는 그림을 보여 주면서 챔벌린에게 탠디에게 감사를 전해 달라고 부탁해서 세상에 알려졌다.
‘저 사람이 나를 거의 죽일 뻔 했다. 나는 독일을 다시 볼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신의 뜻이 나를 우리들을 향한 잔혹하고 정확한 영국인들의 사격의 와중에서도 나를 살렸다’라고 하면서 말이다. 챔벌린은 런던으로 돌아오자 말자 탠디에게 전화해서 감사를 전했다.
탠디는 1940년 기자에게 ‘만일 내가 나중에 그가 그런 인간이 되어 수많은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는 내가 그를 죽이지 않고 살려준 것을 신에게 미안해 한다’라고 했다. ‘만일 다시 그런 일이 있으면 그를 쏠 것이냐’고 기자가 묻자 탠디는 주저하지 않고 ‘그래도 나는 부상병을 쏘지는 않는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