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Essay :: Switzerland

3 Days in Switzerland

깨알 같은 스위스 3일 여행기

20대의 마지막 여행을 함께 하고 싶었던 우리는 잠깐 동안 자연이 주는 평화를 간직한 땅 스위스를 밟았다. 프랑스로 향하는 길, 유럽의 지붕이라는 스위스에 먼저 들르기로 약속한 것이다. 이 대륙에 다시 또 오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글과 사진 전희원, 성정경 에디팅 이소윤 기자

전희원, 성정경 l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올해 29살을 맞은 우리는 20대 초반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만났다. 처음 만날 당시 친하게 지냈던 프랑스 친구 토모를 따라, 둘이 사회인이 된 후 처음 떠난 휴가지는 프랑스 파리로 당첨. 그렇게 셋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과거의 서울을 추억하며 파리 땅에 닿기 전,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다. 잠깐 사이 깊이 정든 스위스다.

루체른의 카펠교. 수면과 가까워 안정감과 운치를 더한다.

우리가 반한 의외의 도시, 취리히

지난해 이맘때쯤, 우리가 취리히Zurich에 도착했을 때는 밤 9시가 넘은 토요일이었다. 밤늦게까지 노천카페에서 주말을 불태우는 사람들과 잔잔한 리마트 강의 야경이 유럽의 분위기를 일깨우고 있었다. 다음날, 한적한 일요일의 취리히는 정말 화창했다. 일요일이라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반나절만 머무를 예정이었기에 욕심 없이 느긋하게 둘러보았다. 완연한 이방인인 주제에 취리히 주민인 것 같은 기분을 마음껏 누릴 수 있음이 좋아 우리는 금세 취리히에 반했다.

취리히에서 가고자 했던 곳은 ‘그로스뮌스터Grossmunster 대성당’, ‘슈프링글리Sprungli’, ‘홀리카우Holy Cow’였다. 허나 막상 굳게 닫힌 그로스뮌스터 대성당 문을 열자니 장엄한 미사가 진행 중일 것 같아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대성당을 지나 리마트 강변을 따라 걸으며 광활하게 펼쳐진 취리히 호수를 감상했다. 호수 곁의 선착장과 시민의 쉼터인 공원들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빗대어 생각해 보면 개천 사이즈의 리마트 강은 ‘강’이라 부르고 바다 같은 취리히 호수는 ‘호수’로 부른다는 것이 참 낯설다. 대성당 반대쪽으로 강을 따라 오르다 보면 취리히의 명품거리 ‘반호프 스트라세’가 나온다. 관광객과 쇼핑 나온 사람들이 늘 넘쳐난다는 곳인데 일요일이라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이 유명하고 한적한 길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곳이 바로 슈프링글리. 18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초콜릿 브랜드 슈프링글리의 반호프 지점은 디저트류와 간단한 브런치를 판매한다. 타르트의 신세계라는 행복을 만끽한 후, 이제 마지막 목적지 홀리카우로 향했다. 홀리카우는 스위스산 식재료만으로 요리하는 수제 버거 전문점이다. 매우 건강한 햄버거일 것만 같은 기대감과, 스위스 내에서도 취리히, 제네바, 로잔에만 지점이 있다 하여 꼭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슈프링글리에 다녀온 직후라 홀리카우의 수제 버거는 포장으로 대체. 참, 홀리카우에서는 햄버거 ‘세트’ 개념을 ‘메뉴’라고 부르기에 잠시 헤맬 수 있다.

한 앵글에 담기 힘든 취리히 호수..
취리히의 쇼핑 거리, 반호프 스트라세..
그로스뮌스터 대성당.

아찔한 패러글라이딩의 추억, 루체른

그렇게 홀리카우 버거를 사 들고 루체른Luzern으로 향했다. 취리히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루체른도 날씨가 좋아 붕 뜬 마음을 가라앉힐 길이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재빨리 루체른역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예약했다. 스위스 날씨가 변덕스럽다고 하기에 루체른이든 인터라켄이든 날씨가 좋으면 가리지 말고 패러글라이딩부터 하자고 진작에 약속했기 때문이다.

루체른 시내에서 40분쯤 달려 도착한 니더바우엔Niederbauen에서 우리는 태어나 처음으로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했다. 하늘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소리를 도저히 안 지를 수 없는 그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정말, 정말 행복했다. 하지만 시간을 너무 잡아먹은 패러글라이딩 덕분에 루체른 시내를 구경 할 시간은 1시간 반뿐이었다. 루체른에서는 ‘카펠교Kapellbrucke’, ‘무제크 성벽Museggmauer’, ‘빈사의 사자상’을 빠르게 둘러보기로 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다리라는 카펠교는 정말 예쁘게 장식돼 있어서 걷는 모든 곳이 포토 스팟이었다. 수면과 가깝게 세워진 덕분에 고개를 돌리면 노천카페의 시민들과 눈이 마주쳐서 마치 물 위를 걷는 기분과도 같았다. 선선한 저녁이 다가오니 반짝거리는 물빛이 참 예뻐서 잠깐 시간을 잊고 여유를 즐겼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무제크 성벽을 찾아가는 길, 루체른 중앙역이나 카펠교 근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반해 성벽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한적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말 그대로 고요하게 모습을 드러낸 무제크 성벽. 우리는 길을 잘못 들어 성벽에 오르지 못했지만, 시간상 다시 되돌아갈 수 없어 너무 안타까웠다.

무제크 성벽을 지나 빈사의 사자상으로 가는 길, 얽힌 스토리가 아름답고 처연하여 꼭 한 번 보고 싶었던 곳이다. 그리고 스위스 여행에서 가장 큰 감명을 받았다. 멀리서 사자를 처음 보았을 때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조각상은 생각보다 컸고 무척 장엄했으며, 환한 한여름의 루체른에서 그늘진 장소의 서늘함이 주는 처연한 분위기가 조각상의 쓸쓸한 느낌을 더욱 극대화했다. 예상치 못한 감동에 우리는 한동안 그 앞에 망연히 앉아 조각상이 주는 고독함을 온전히 마주했다. ‘빈사의 사자상’이라는 이름이 정말이지 딱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다. 그렇게 빠듯한 시내투어를 마치고 기차에 올라탔다. 오늘의 종착지인 인터라켄까지는 기차로 2시간. 우리는 인터라켄으로 가는 저녁 기차에서야 아침에 샀던 홀리카우 햄버거를 꺼내 들었다. 다 식었어도 꿀맛이던 소박한 저녁식사가 휴가의 첫날을 응원해주는 듯했다.

스위스 여행의 꽃, 인터라켄

다음 날 ‘융프라우요흐Jungfrau’에 오르기 위해 일찌감치 서둘렀다. 인터라켄 동역에서 그린델발트Grindelwald를 거쳐 클라이네 샤이덱Kleine
Scheidegg에서 산악열차로 환승했다. 융프라우요흐에 올라갈 때는 보통 라우터브루넨Lauterbrunnen을 거쳐 올라가 그린델발트로 내려온다고 하는데, 우리는 사람이 적을 더 것 같아 반대로 그린델발트에서 오르기 시작했다. 본래는 그린델발트에서 무료 산악 플라이어를 타기로 했지만 하필 그날 풍속이 강해 플라이어만 운행이 정지된 상태였다. ‘우리가 더 여유롭게 스위스 여행을 할 수 있었다면 인터라켄 대신 그린델발트나 라우터브루넨에 숙소를 잡고, 하이킹도 하고 플라이어도 탈 텐데’ 싶은 아쉬운 마음뿐이다. 대신 아기자기한 작은 마을들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산악열차로 갈아타 융프라우요흐에 도착하니 바로 매점이 보였다. 그 유명하다는 융프라우 정상에서 먹는 신라면을 우리도 안 먹어볼 수 없었다. 그런데 왠지 한국에서 파는 것보다 양도 많고 건더기도 큰 것 같은 느낌이다. 정말이지 맛있게 먹었다.

인터라켄에서 융프라우요흐로 올라가는 방법은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막상 정상에서는 이정표를 따라가기만 하면 쉽게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밖으로 나가면 온통 산과 눈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사람들이 소소한 스노우 액티비티를 즐기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눈으로 소꿉장난하는 풍경처럼 보였다. 고개를 들면 눈안개 속에서 눈구름이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그 모습이 마치 어디선가 본 것 같다가도 그저 몽롱하고 신비해서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파리로 떠나는 날 아침, 오전에는 여유롭게 ‘브리엔츠Brienz 호수’를 둘러보기로 했다. 인터라켄을 둘러싼 브리엔츠 호수와 튠 호수는 모두 각각의 매력이 있는데 인터라켄 동역에서 브리엔츠 호수 유람선을 탈 수 있어서 우리는 가까운 곳을 택했다. 날씨가 좌우한다는 스위스 여행. 우리는 머무는 내내 좋은 날씨를 만끽했다. 환한 햇살을 반사시키는 호수의 비취색은 ‘예쁘다’, ’여유롭다’를 넘어 ‘평화롭다’는 감정까지 느끼게 했다.

스위스에서의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파리로 넘어가는 길, 카메라에 담은 수백 장의 순간들이 우리가 이곳에 있었음을 증명해주었다. 우리는 학생 때 각자 첫 유럽 여행을 마치고 언젠가 다시 이 땅을 밟으리라 다짐했었고, 20대가 가기 전에 함께 그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또 언젠가 다시 이곳에 오리라는 걸 안다. 그래서 짧았던 이 시간이 조금은 덜 아쉽다.



루체른 시내가 멋지게 내려다보인다는 무제크 성벽.
루체른 역사를 보여주는 카펠교 천장의 그림들.
루체른에서 즐긴 패러글라이딩.
융프라우요흐 정상의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