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Chicago

시카고 안에서 찾은 리얼 시카고

굳이 먼 길을 오지 않아도 세계 어디서든 이 도시의 다양성을 만날 수 있는 시대이다. 그러나 한 줄로 정리된 경기 결과를 보는 것, 같은 듯 다른 비슷한 음식을 먹는 것, 사진이나 모니터를 통해\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오리지널의 차이는 좁혀질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카고의 상징들을 시카고 안에서 만났다.
글 김수현 기자 사진 진하정 기자 취재협조 미국관광청 www.gousa.or.kr, 캐세이패시픽 www.cathaypacific.com

Sports, 스포츠, 그 시절 우리가 열광하던

곰곰이 생각했다. 시카고를 대표하는 첫 번째로 무엇을 꼽을지에 대해. 고민 끝에 선택한 스포츠이지만 과분하지는 않은 듯싶다. 농구부터 말해볼까. 1966년에 창단한 시카고 불스Chicago Bulls는 1990년대 마이클 조던과 스코티 피펜이 활약하며 당시 NBA에서 최고의 팀으로 꼽혔다. 야구도 빼놓을 수 없다. 시카고 컵스Chicago Cubs와 시카고 화이트 삭스Chicago White Sox는 여전히 메이저리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야구팀. 만일 미식축구에 관심 있다면 미국 미식축구 프로리그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시카고 베어스Chicago Bears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마이너리그까지 포함하면 두 손을 모두 동원해도 시카고 연고의 스포츠팀 숫자를 세기엔 역부족이다. 한 스포츠 뉴스에 따르면 시카고는 1993년, 2006년 그리고 2010년 세 번에 걸쳐 ‘최고의 스포츠 도시’로 선정된 바 있다.

스포츠를 잘 모르는 내게도 시카고 스포츠에 대한 첫인상은 꽤 강렬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들이 만든 가이드북에서 추천 여행지 1위를 차지한 것이 야구 경기장인 리글리 필드Wrigley Field였기 때문. 입장 바꿔, 서울에 사는 내가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되어 서울의 명소를 뽑는다면 순위권 안에 넣긴 하더라도 야구장에 1위를 내주진 않을 것 같다. 더군다나 아무리 스포츠가 유명한들 이렇게 볼거리가 많은 도시 안에서 1등 명소가 스포츠 경기장이라니. 순위에 연연하지 않으려 했지만 현지인이 추천한 장소이니 궁금해지는 게 당연지사. 하루 중 반나절을 과감히 리글리 필드에 투자하기로 결심하고 경기장이 위치한 북쪽으로 향했다.

개인적으로 시카고 리글리 필드에서 보는 야구는 내 생에 두 번째 직관이다. 좋아하는 구단이 생기면 다시 가리라 아껴둔 야구를 단순히 ‘로컬의 추천’이란 이유 하나로 리글리 필드에서 보기로 한 것이다. 구름이 비를 머금고 꿈틀대는 토요일 오후였지만 엄청난 인파가 경기장 주변에 포진하고 있었다. 1914년에 개장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야구장의 명성과 시카고 사람들의 찐한 야구 사랑이 경기 시작 전부터 온몸으로 느껴진다. 우연히 들은 이야기로는 리글리 필드를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시카고 컵스의 성적이 꽤 오랜 기간 저조하다가 최근 들어 연일 무패 행진을 이어가 더욱 많은 팬이 이곳에 모이고 있다나.

야구 시즌에는 가족, 아이, 친구, 연인 다양한 사람들이 경기를 즐기기 위해 리글리 필드로 모인다. 티켓 가격이 저렴하고 잘 보이기까지 한 자리는 늘 미리 매진, 스탠딩으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뭐니 뭐니 해도 직관의 매력은 다른 사람과 함께 경기를 즐길 수 있단 것이 아닐까. 야구 보는 것만큼 사람구경이 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만히 지켜본 바로, 사람들은 경기 중 컵스의 수비가 돌아오면 맥주와 핫도그를 사먹고 공수가바뀌면 음식에서 입을 떼고 경기에 초집중한다. 이날 필라델피아 필리스Philadelphia Phillies와 시카고 컵스의 경기 결과는 2-6, 승리는 컵스에게 돌아갔다. 경기장을 내려오며 컵스의 모자를 쓴 내게 몇몇이 아주 친근하게 말을 붙였다. 재밌게 봤는지 물어보는 스탭, 컵스의 로고가 그려진 스티커를 건네며 눈을 찡긋하는 할아버지 등. 경기가 졌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해프닝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관심은 언제나 대환영이다. CTA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이 친구가 되어 오늘 경기 결과 묻고 열띤 토론을 나누는 모습은 낯설지만 시골인심을 떠올릴 만큼 정겹다. 대화의 시작은 “Cubs Win!” 현지인처럼 보낸 시간이 여행자의 신분으로 보낸 날들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말이 이곳에서 비로소 실감난다.

1 3만 8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야구를 향한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시카고 사람들로 빈자리를 꽉 채운다. 
2 4 리글리 필드는 컵스의 홈구장인 까닭에 컵스 공격 때 분위기가 더 고조된다. 
3 시카고 사람들이 바라던 대로, Cubs Win.

Food, 음식도 시카고 스타일로

오래전, 보기만 하면 침이 고이는 사진 한 장을 메신저의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뒀었다. 무엇인지도, 어디에서 먹을 수 있는지도 모른 채. 빨간색 토마토소스 아래 거위털 이불보다 포근해 보이는 두껍고 하얀 치즈. 한참 뒤 정체를 알게 된 이 음식의 이름은 시카고 피자Chicago Pizza였다. 그 후 한국에도 시카고 피자 레스토랑이 있다는 걸 알게 됐지만, 언젠가 시카고에 가면 먹으리라 몇 년을 참았더랬다. 피자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막상 오니 피자만큼 유명한 게 핫도그다. 피자와 핫도그라는 지극히 미국다운 음식. 하지만 이들 앞에 ‘시카고’가 붙으면 완전히 새롭게 재탄생한다.

우리가 ‘시카고 피자’라 부르는 시카고 스타일 딥디쉬 피자는 누가, 언제 처음으로 만들었는지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스타일은 비슷하다. 빵 테두리는 일반 피자보다 두껍고 파이에 가까우며, 주재료인 치즈는 흘러넘칠 만큼 풍성히 넣는다. 움푹 팬 그릇에 굽다 보니 주문을 하고 30분 이상 기다려야 비로소 피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게 흠. 그러나 맛은 긴 대기시간을 감수할 만큼 황홀하다. 신기하게도 다음날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경우에도 어제 느낀 맛의 감동이 반감되지 않는다는 게 시카고 피자의 특징이다. 한국에 지점을 둔 우노UNO뿐만 아니라 지오다노스Giordano's, 루 말나티스Lou Malnati's Pizzeria의 딥디쉬 피자가 시카고 내에서도 유명하다.

피자에 홀딱 반해 핫도그를 지나치면 분명 후회하고 만다. 양귀비 씨를 뿌린 빵을 반으로 갈라 그 안에 겨자, 다진 양파, 세로로 길게 썬 피클, 토마토 슬라이스 등의 재료를 넣은 핫도그는 시카고의 명물 중 하나이니 말이다. 특히 다양한 소스가 들어가지만 케첩만큼은 제외하는 것이 시카고 핫도그의 중요한 레시피이다. 시카고 핫도그가 가장 어울리는 곳은 야구장. 여기에 맥주 한잔까지 곁들이면 그대도 시카고 사람들의 일상을 완벽한 경험한 셈이다. 다운타운에서 인기 있는 핫도그 전문점은 포틸로스Portillo's Hot Dogs이며 기본 핫도그 가격이 2.99달러로 저렴하다. 맛평가를 덧붙이자면 간식을 멀리하고 독하게 다이어트 중인 기자가 오후 9시 30분에 먼 길을 찾아갈 만큼 맛있다.

1 포틸로스 핫도그 매장. 점심이면 한 개의 핫도그를 위해 긴 줄을 서야한다.
하지만 점원들의 번개같은 스피드 덕분에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2 사진으로도 치즈의 두께가 충분히 느껴진다. 입안에 가득 넣으면 엄지 척은 자동반사. 
3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하기 좋은 시카고 핫도그. 밀크 쉐이크와 함께 곁들여 먹으면 충분히 배가 부르다. 
4 시카고 피자 전문점인 지오다노스의 인기는 대단하다. 피자가 나오는 동안 바에서 드링크를 마실 수 있다.

Art, 예술의 유혹, 아트 시카고

시카고 여행의 재미를 더하는 것은 필드 자연사박물관The Field Museum, 애들러 천문대Adler Planetarium, 시카고 과학 산업 박물관Museum of Science and Industry 등 다양한 주제의 박물관이다. 그중에서도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의 귀중한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시카고 미술관The Art Institute of Chicago만큼은 절대 빼놓을 수 없다. 드넓은 미국 땅 안에서 보스턴에 위치한 보스턴 미술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과 함께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곳. 시카고 미술관에 전시된 대규모 컬렉션은 인간이 손으로 무언가를 창조하기 시작한 5천 년 전의 유물부터 근현대 미술사의 한 획을 긋는 작품을 총망라한다. 가장 유명한 것은 인상파, 후기 인상파 화가들의 유명 작품과 초기 모더니즘을 반영한 그림들. 모네Claude Monet, 드가Edgar Degas, 쇠라Georges-Pierre Seurat와 같은 19세기 후반에 활발히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들도 상당수다. 이밖에도 시대와 지역 그리고 종류에 구애받지 않고 그림, 조각, 텍스타일, 장식 등을 최대한 다양하게 전시해두었기에 볼거리가 많다. 방대한 양 때문에 단 하루 동안 미술관 안에 모든 작품을 세세히 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미술관 안내서 맨 끝장에 소개된 주요 작품을 참고하자. 바쁜 마음에 지나치면 훗날 땅을 치고 후회할 예술품의 위치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워터타워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시카고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Chicago도 추천할 만하다. 나 역시 현대미술에 다가가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현대미술을 대하는 시선은 보통 난해하다 혹은 새롭다 두 가지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현대미술이라 부르는 것들이 수세기 후에는 하나의 기준과 양식으로 정의될지도 모르는 일. 그간 우리가 봐온 유명한 화가들의 새로운 기법이나 화풍이 당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했듯, 현대의 미술을 ‘현대미술’이라 칭한 것뿐이라 여긴다면 좀 더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특별전과 프로그램들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던 현대미술을 보는 눈을 키워준다. 쾌적한 박물관의 환경도 한몫을
하는데, 갤러리 스타일로 운영되는 개인 전시들은 의미를 부여하거나 숨은 의도를 찾지 않고도 예술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기회를 선사한다.

5 시카고 미술관에서 만난 <고흐의 방>. 3연작으로 나머지 두 개는 각각 파리 오르세 미술관과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6 조르주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오후>는 시카고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7 8 시카고 현대미술관에서는 상설전, 특별전 그리고 개인전을 볼 수 있다. 입장료는 12달러. 작품의 가짓수와 다양성을 생각하면 매우 낮은 가격이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