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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hiopia 1st City Addis Ababa

아디스아바바에서 뗀 걸음 다섯 보

나에게 에티오피아는 고요히 빛나는 까만 보석과도 같았다. 그 아름다움을 배운 이번 여정에서 첫 번째로 찾은 도시는 수도인 아디스아바바. 하지만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환상만으로 첫 발을 디딘 곳에서 내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내 안의 편견들이었다. 긴팔을 입을 만큼 서늘한 날씨에, 여느 대도시처럼 6차선 도로는 교통 체증에 시달리며, 도심 어디서나 공사장이 보이고, 말끔한 옷차림의 미남미녀들이 거리를 활보할 때마다 상상 속의 아프리카는 새로운 에티오피아의 이미지로 서서히 대체됐다. 또 그 편견들을 벗겨준 디스아바바의 5가지 모습은 한 번에 한 걸음씩 에티오피아와 나를 더 가깝게 만들었다. 다섯 걸음만 떼도 에티오피아의 진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엔 충분하다.
글과 사진 이소윤 기자

1 트리니티 대성당에서 만난 너그러운 인상의 사제. 
2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십자가. 비슷한 형태로 다양한 모양의 십자가가 존재한다. 
3 5 성당을 찾는 여인들은 흰 옷을 온몸에 걸친다. 혹은 흰 천으로라도 상체를 감싼다. 
4 신발과 소음을 벗고 들어선 트리니티 대성당 내부. 중앙 위로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그림이 보인다. 
6 트리니티 대성당 내부는 약 10개에 가까운 성경 속 장면들이 스테인드글라스도 그려져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여겨지는 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모습. 솔로몬이 시바를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에 방문했을 당시를 묘사하고 있다. 
7 8 중동과 유럽의 건축적 요소가 결합되어 있는 화려한 자태의 트리니티 대성당. 그 앞마당에는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의 조각상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흰 옷을 입는 사람들

교회로 향하는 여인들의 옷차림이 온통 백색이다. 신을 맞이하고 그 앞에서 자신의 소소한 기도를 올리기 위한 몸가짐으로 흰 옷을 몸에 두르는 것이 전통이란다. 흰 치마가 아니면 흰 천으로라도 머리와 상체를 감싸고 교회의 대문이나 땅바닥, 의미 있는 모든 곳에 입을 맞추는 사람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정교회, 일명 오소독스Orthodox를 향한 신실함으로 매일이 신성하다. 국민 중 절반 이상이 신봉하는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영향이 아디스아바바를 포함한 에티오피아 전역에서 진하게 풍겨 난다. 그래서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목에 십자가가 걸려 있는 모습에도 금세 익숙해진다. 정교회의 십자가는 가로 세로의 길이가 같은 모양을 띠는데, 그 크기와 장식이 무척 다채롭다.

아디스아바바의 트리니티Trinity 대성당에서라면 그 믿음의 진중함을 두 눈에 직접 담을 수 있다. 아랍과 서구권의 건축양식이 혼재되어 있는 트리니티 대성당은 입구를 장식하는 조각상들과 웅장한 규모부터가 묵직하다. 더불어 지상에서 잠시 벗어난 듯한 대성당 실내 역시 영험한
분위기가 자욱했다. 수염이 흰 구름처럼 자란 사제가 안내한 문 너머로 조용히 신발을 벗고 입장하니 자연스레 높은 곳을 향해 시선이 올랐다.
직사각형 구조의 성당 내부는 천장을 장식한 그림과 스테인드글라스로 화려한 벽들로 다채로운 빛깔을 머금고 있다. 그 안에서라면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시간이 멈춰줄 것만 같은 비범한 평온함이 흐른다. 안식일이 아닌 날에도 틈틈이 교회를 찾아 기도하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부드러운 발길이 얼마나 많이 스쳤을까. 에티오피아 역사와 함께 해온 믿음의 안식처에서 그 굳건한 미를 볼 줄 아는 마음부터 찾아 놓았다.

루시를 찾아라!

‘랜드 오브 오리진Land Of Origin’. 에티오피아를 묘사하는 흔한 문구 중 하나다. ‘시초의 땅’이라는 그 의미 속에는 흥미로운 사건이 담겨 있다. 에티오피아가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다는 건 알아도 최초의 인류가 살았던 땅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단서가 바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화석 중에서도 약 32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최초 인류의 화석 ‘루시Lucy’이다. 그 이름을 듣자마자 뤽 베송이 연출한 동명의 영화가 떠올랐다. 비범한 능력의 여주인공 이름을 루시로 지은 데에는 아마도 그만의 이유가 있었으리라. 허나 실제의 루시는 그만큼 강력한 신체와 능력을 지니지는 못했을 것이다. 1974년 요한슨 박사가 에티오피아의 하다드 사막에서 발견한 화석은 생전에 신장 120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키와 작은 용량의 뇌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금은 그 화석이 에티오피아 역사와 기원에 대한 이모저모를 한 번에 둘러보기 좋은 국립 박물관National Museum에 전시 중이다. 인류 진화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루시 화석뿐 아니라, 역시나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호모사피엔스 등의 화석들을 감상할 수 있기에 이 땅의 수백만 년 전 과거를 궁금하게 만든다.

1 최초의 인류 화석으로 알려진 루시의 화석. 이와 함께 에티오피아 땅에서 다수 발견된 초기 인류 화석들이 인간 진화의 역사를 실물로 증언하고 있다. 
2 이와 함께 에티오피아의 역사와 문화적 흔적을 전시 중인 국립박물관. 
3 4 6 손으로 넉넉히 인제라를 뜯어 곁들이는 음식을 감싸 입으로 넣는다. 인제라를 먹을 때면 모두가 옹기종기 한 상 앞에 둘러앉는 에티오피아 사람들. 누구나 넉넉한 인심으로 웃음 지으며 음식을 나눠 먹길 즐긴다. 
5 에티오피아의 주식인 곡물 테프를 발효하여 만들어지는 인제라. 덕분에 그 표면에는 숨구멍이 가득하다. 글루텐이 없으면서 비타민과 단백질 등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그 영향과 효능을 인정받고 있다.

인제라 위로 손에 손 모아

눈만 마주치면 모두 훠이훠이 손을 내젓는다. 저리 가라는 손짓이 아니라 이리 와 함께 들자는 뜻이다. 인제라Injera를 먹고 있을 때만큼은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인심이 세계 최고인 것만 같다. 이런 훈훈한 인제라 인심을 선물 받은 곳은 대부분 에티오피아의 공항들이었다. 아무리 작은 공항일지라도 간단한 허기와 갈증을 달랠 식당을 꼭 하나씩 갖는 에티오피아의 국내 공항들, 그곳에서 인기 아침 식사메뉴는 언제나 인제라다. 우리의 밥처럼 이들의 주식인 인제라는 팬케이크처럼 부드러운 반죽을 둥글고 넓게 익힌 모양이다. 이를 롤케이크처럼 돌돌 말아 놓기도, 또는 그 위에 곁들일 여러 요리들을 얹어 펼쳐 놓기도 한다. 인제라는 테프Teff라는 곡물 가루를 주로 만든 반죽에 이스트를 넣어 적절히 발효시킨 후 얇게 익혀 먹는 음식이다. 대체로 매 주말에 집에서 한 주간 먹을 인제라를 한꺼번에 만들어 놓는 편이라고 한다. 발효 시간이 길어질수록 인제라의 신맛이 강해지기 때문에 기호에 따라 이를 맞추는데, 평균 이틀 정도를 상온에서 보관하는 것이 적당하다. 덕분에 표면에는 뽕뽕 구멍이 나 있어 우리네 술빵을 잠시 떠올린다. 인제라는 커리, 채소나 고기볶음, 콩 요리 등을 반찬처럼 곁들여 손으로 먹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특별한 점은 바로 그 맛이다. 처음 손으로 인제라를 뜯어 먹었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한 신맛이 깜짝 놀랄 만큼 강하게 입 안을 때렸다. 폭신한 식감과 신맛의 생소한 조화를 처음 경험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신맛이 적당한 인제라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다른 음식들과의 맛 조화를 잘 조절해주어 물리지 않도록 돕는다. 특히나 우리가 한 솥 가득 끓인 국을 빙 둘러 나눠 먹듯, 인제라 역시 함께 먹을 인원수에 맞춰 크기를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너도나도 손길을 나누며 인제라를 찢고 음식을 감싸 입에 넣는다. 이를 구경할 때마다 공짜 인제라를 얻어먹을 수도 있으니 이 얼마나 훈훈한가. 먹고 마시는 일 앞에선 마음을 아끼지 않는 에티오피아의 인심이 참 부드럽다.

1 이 작고 예쁜 커피 잔 시니에 한 번 커피를 담으면 진한 향과 마음에 녹아 세 잔도 금세 비우게 된다. 
2 전통적인 분나 세레모니에서는 커피를 대접받을 사람들 앞으로 신성한 풀 케트마를 깐다.
3 4 6 커피를 대접할 사람이 방문하면 그때부터 숯불로 그린 빈을 볶고, 이를 토기 주전자 제네바에 담아 진하게 커피를 우려낸다. 
5 고로 우리가 흔히 즐기는 아메리카노보다 훨씬 진한 농도의 커피가 잔에 담기기 마련. 기호에 따라 여기에 설탕을 넉넉히 담아 즐긴다.

가장 진실한 커피 한 잔

에티오피아에선 커피를 ‘분나Buna’라 한다. 그리고 난 이전까지 이토록 정성 어린 분나 한 잔을 마셔 본 적이 없었다. 감동적인 커피를 맛보기 힘든 세상에 살고 있다 생각했지만, 에티오피아만큼은 여전히 영원한 커피의 낙원이었다. 에티오피아는 커피가 가장 먼저 탄생했고, 널리 사랑받은 땅이기에 커피에 관해서라면 배울 점이 많다. 모든 한 잔의 커피를 대하는 그들의 자세와 같은 것 말이다.
이는 단순히 에티오피아 내의 예가체프나 시다모 등 유명한 원두 산지를 방문하는 일과도 비할 수 없다. 곧 커피를 마실 내 앞에서 그 한 잔을 내리기 위한 모든 과정을 직접, 정성껏 선보이는 ‘커피 세레모니Coffee Ceremony’의 가치를 과연 그 무엇과 비교할까. 이 의식은 예부터 손님을 맞이하거나, 여럿이 커피로 시간을 공유할 때마다 한 쪽에서 조용히 열려 온 작은 축제다.

가장 먼저 커피를 만들 공간 주변으로 신선한 풀과 꽃을 흩뿌리며 준비를 시작한다. 풀과 꽃이 시야를 밝혀 커피 마시기 좋은 공간이 마련되면 이제 생두를 빻아 껍질을 벗길 차례다. 껍질을 깨고 연둣빛 생두가 나오면 이제 작은 숯불 화로에서 이를 볶는다. 점점 녹색이 짙은 갈색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작은 프라이팬 위에서 생중계된다. 세레모니를 준비하던 여인은 그 빛깔이 적당해 보이면 팬을 들어 손님들에게 갓 구운 원두 향을 퍼뜨린다. 모두가 원두 향에 취해갈 때면 절구에 이를 넣고 곱게 빻는다. 그 가루를 에티오피아의 전통적인 토기 주전자 ‘제베나’에 옮겨 물과 함께 끓이면 마무리다.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즉석에서 달여 낸 귀중한 커피를 ‘시니’라는 작은 잔에 따라 마시는 일. 시골에 사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누군가의 집이나 마을 오두막에 매일 모여 다함께 커피 세레모니의 시간을 갖는다. 도시민들에게 하루에 몇 번씩 사람들과 커피 마시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한 휴식이다. 물론 이는 단순히 커피만을 마시기 위한 의식이 아니다. 신성한 커피를 매개로, 이를 함께 마시는 사람들과 둥글게 앉아 마주보고 이야기 나누며 시간을 함께 보내는 데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랜 세월 커피를 음미해 온 나라, 에티오피아가 터득해놓은 방식이니 그 어떤 의심도 금물이다. 300원도 채 안 되는 2비르(ETB)로도 사람의 마음과 원두의 본질이 담긴 커피 한 잔을 소유할 수 있다니. 그 순간만큼은 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1 에티오피아 북부의 도시 랄리벨라에서 만난 그림 같은 소녀. 
2 랄리벨라에서는 남녀노소 수많은 단추로 옷을 장식한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3 도시 바하르다르에서 찾은 거대한 호수 타나. 그 위를 내달린 보트의 선장은 흥 넘치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4 랄리벨라 땅을 수놓은 황홀한 암석교회들에서 마주한 일가족. 청아한 흰 옷을 두른 그 이들이 카메라 앞에서 순수한 웃음을 보일 때 가슴이 얼마나 뛰었는지 모른다. 
5 6 아디스아바바 시내의 작은 이발소 풍경. 근처 과일가게 앞에 앉아 있던 청년이 카메라를 보자 울리지도 않은 전화로 귀여운 포즈를 취한다. 7 도시 악숨에서는 운 좋게 결혼식을 목격했다. 악기연주자들과 친구, 사진가 등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흥겹게 기념사진 촬영을 하던 모습들. 
8 공항에서 분나를 팔던 여인. 
9 랄리벨라에서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세터데이 마켓에서 당나귀를 파는 소년의 하얀 미소를 만났다.
10 공항의 작은 식당에서 만난 천사 같은 아이. 그 뽀얗고 아름다운 얼굴에 빠져 내 커피가 식어가는 줄도 몰랐다. 
11 랄리벨라 길거리에서 오순도순 수다를 떨고 있던 마을 청년들.

천사 같은 사람들

“곤조네쉬.” 가만히 서 있는 나에게 이 말을 하며 다가오는 이들이 이따금 있었다. 현지 친구가 알려준 그 말의 뜻은 ‘예쁘다’. 좋은 표현을 배웠으니 이제 반대로 그 말을 써먹었다. 길 가다 눈 마주친 여인과 소녀들에겐 ‘곤조네쉬’, 활기찬 청년들에겐 ‘곤조나흐’. 실제로 내 눈엔 여행 중 만난 모두가 반짝이는 눈빛과 완벽한 이목구비를 가진 천사들처럼 보였다. 에티오피아와 그 나라 사람들을 상징하는 4가지 단어가 있다. ‘Beautiful’과 ‘Black’, ‘Hospitality’, 그리고 ‘Warrior’다. 시바 여왕과 솔로몬 왕의 후손들인 만큼 검고 아름다운 육체를 지닌 것은 자명하고, 거기에 살가운 심성과 용맹함까지 갖춘 민족이다. 과거 6.25 전쟁의 16개국 참전병들 중 포로가 없었던 나라는 에티오피아가 유일하다고 한다. 포로가 되느니 죽음을 맞겠다는 에티오피아의 투사 정신 덕분이다. 그런 타고난 정신력을 담고 있어서인지 이곳 사람들의 눈은 한없이 반짝인다. 비록 관광객들이 자주 드나드는 지역 주민들은 사진 찍히는 일에 민감하기도, 무엇이든 얻고자 하기도 하지만 가만히 앉아 그 주변을 둘러보면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다. 간혹 생각했던 것보다 초라해 보이는 그들의 생활상에 마음이 수척해지는 때도 만날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모두 그 안에서 알맞은 행복을 찾아 살아가고 있다. 남에게 대가 없는 호의를 베풀지 못할 만큼 불행하지 않다. 아디스아바바의 한 작은 시장에서는 팍팍한 현실을 어두운 표정으로 입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슬퍼 반나절을 울고 말았지만, 나는 그 슬픔보다 더 큰 사랑을 얻어 왔다. 여동생과 어머니가 함께 사는 우리 집에서 함께 분나를 마시자는 18살 소년의 순수한 마음을 얻었고, 다시 돌아오면 더 멋진 에티오피아를 보여주겠다는 늠름한 친구의 성의도 받았다. 그 여운이 하도 가슴에 사무쳐 에티오피아를 떠나오던 비행기 안에서 혼자 조용히 울었더랬다. 지금도 여전히 저 하얄 만큼 까만, 보석 같은 눈빛들이 그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