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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ntries Such as a Hidden Gem, Kazakhstan

숨겨진 보석, 카자흐스탄

중앙아시아의 경제대국이자 엄청난 지하자원의 보고인 카자흐스탄은 여행지로 알려진 게 별로 없다. 그래서 더 신비스럽기만 하다. 남한 면적의 27배가 되는 엄청난 규모의 대지 위에 과연 어떤 모습들이 숨어 있을까? 그러한 궁금증에 중앙아시아의 국제적 관문인 알마티로 날아들어가 서로 상반되는 모습을 지닌 이 나라의 명소 차린 협곡과 콜세이 호수를 방문해보았다.
글과 사진 김후영(여행작가)

원시적 풍광을 보여주는 차린 협곡의 파노라믹 .

1 20세기초 차르 시대의 대표적인 교회건축물인 젠코프 성당. 
2 판필로프 공원 내에 놓인 2차대전 전승자 추모비. 
3 독특한 목조건축물인 민속악기 박물관. 
4 구형 러시아제 자동차가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
5 굽이치듯 흐르는 것 같은 차린 협곡의 계곡길. 
6 사야카트 버스 터미널 인근에서 바라본 알마티 중앙 모스크의 모습.

생애 두번째 중앙아시아 여행. 지난 2011년에 동유럽의 발칸반도에서부터 시작하여 터키, 코카서스, 이란을 거쳐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다시 중앙아시아를 찾았다. 중앙아시아는 늘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양떼가 뛰노는 푸른 초목이 있고 순박한 인심을 지닌 사람들이 사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역사, 문화적으로는 실크로드의 본고장이기에 베일에 가려져 있는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는 곳이다. 이번 여행의 첫 방문지는 카자흐스탄이었다. 사실 카자흐스탄이란 나라에 대해 별로 아는 지식이 없었다.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 그리 인기 많은 여행지는 아니다.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우즈베키스탄의 역사적 고도나 타지키스탄의 파미르 고원, 키르기스스탄의 호수 지역을 선호한다.
그래서 많은 여행자들이 카자흐스탄을 건너 뛰거나 이웃 국가의 비자를 받기 위해 알마티에 며칠간 머문 뒤 이 나라를 떠난다. 나 역시 카자흐스탄에 대한 여행정보를 찾기란 그리 수월치 않았다. 하지만 면적이 270만 평방 킬로미터로 우리나라(남한 기준)의 27배에 이른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광대한 땅에 얼마나 많은 비경들이 숨어 있을까란 생각을 해보았다. (카자흐스탄은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큰 면적을 지닌 나라이다.) 소수의 러시아인들과 융합된 카자흐족의 문화적 매력도 궁금했다. 하지만 시간적 여유로 이번 여행에서는 이 나라의 국제적 관문인 알마티와 그 주변의 차린 협곡, 콜세이 호수 지역만 방문하기로 했다.

알마티에서 아코디언으로 아리랑 연주를 듣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아스타나 항공의 비행기는 거의 7시간 만에 알마티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상공에서 내려다본 알마티는 인구 140만 명의 대도시답게 수많은 건물과 가옥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일반 대도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몇 년 전 한국여행자들에게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였기에 입국심사는 매우 간단했다. 이민국을 빠져 나와 환전을 한 뒤 공항을 걸어 나와 인근 버스정류소에 갔다. 한여름이라 태양이 무척 강렬했다. 해발 850미터의 고지에 놓인 도시라 하지만 여름철 한낮의 열기는 우리네 도시와 다를 바가 없었다. 공항에는 택시가 줄지어 있었다. 하지만 공항에서 타는 택시는 일반적으로 비싸기에 공항에서 나와 공항 주변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하고자 했다. 앞서 가던 젊은 청년들에게 영어로 길을 물으니 친절히 답해주었다. 시내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니 생각보다 한참을 달렸다. 한참 후 내린 곳은 알마티의 심장부인 사야카트 버스터미널 주변이었다. 이곳에 창을 든 용맹스러운 전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고 그 뒤로 황금 돔의 모양이 인상적인 알마티 중앙 모스크가 한눈에 들어왔다. 숙소를 찾아가기 전 시내를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짐은 작은 배낭 하나가 전부였기에 배낭을 메고 시내를 활보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시내 중심에 자리한 판필로프 공원이었다. 공원 안에 위치한 젠코프 성당은 황금색 첨탑이 인상적인 건물로 1904년에 만들어진 건물이다. 러시아 차르 시대에 세워진 건물인데, 겉보기와는 달리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현재 알마티에는 차르 시대에 세워진 건물이 몇 안되기에 이 성당은 건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물이다. (1911년 이 도시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하여 당시의 수많은 건물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판필로프 공원 안에는 늦은 오후 산책을 즐기려는 시민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했다. 마차와 조랑말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한 쪽에서는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며 비둘기 몰이를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공원 한 켠에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노인이 있었는데, 내가 근처를 지나가자 그 노인은 나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보았다. 한국에서 왔다라고 하자. 즉석에서 <아리랑>을 아코디언 연주로 들려주었다. 카자흐스탄 땅에서 듣는 아리랑 연주는 새로운 감회를 불러일으켰다.

공원 안에는 기념비도 있었는데, 전승기념비처럼 총, 칼을 든 군인들의 모습을 입체감 있는 부조물로 만들어 놓은 모습이었다. 2차세계대전 중 1941년 러시아 땅에서 독일 나치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카자흐스탄의 무명 용사를 위해 세운 추모비라고 한다. 그 옆에는 꺼지지 않는 불이 있었는데, 불 앞에 누군가 헌화를 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추모비 옆에 놓인 소비에트 시절의 향취를 담은 것 같은 군사 역사 박물관은 건축학적으로 50-60년대 소비에트 연방 시절의 건축미를 담고 있었다. 그 옆에 놓인 인상적인 목조건축물인 민속악기 박물관은 나무로 만든 하프와 같은 독특한 악기를 전시하고 있는 공간으로 특이한 건축물의 오라를 풍겼다. 판필로프 공원을 빠져나오는 데 또 다른 입구 옆에 놓인 무시무시한 현대식 지대공 곡사포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 위에 올라가 사진 포즈를 취하는 어린 소녀들의 모습도 엿 볼 수 있었다. 옛 소련시절의 군사력을 떠올리게 하는 무시무시한 병기도 순진한 소녀들의 미소 앞에서는 무용지물과 같은 존재 같았다.

황량한 대지 위에 놓인 조물주의 예술적 솜씨. 차린 협곡

다음날 아침 나는 차린 협곡을 방문하기 위해 알마티의 버스정류장을 방문했다. 케겐Kegen이란 곳으로 향하는 버스를 탑승한 뒤 차린 협곡으로 들어가는 교차로에서 내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케겐으로 가는 차편이 없었다. 낭패가 아닌가 싶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케겐행 차량을 묻자 사람들은 합승택시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승용차 두어 대가 서 있는 곳으로 가니 운전수로 보이는 남성들이 몇몇 모여있었다. 케겐으로 가는 차량이 맞냐고 물어보니 맞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아직 손님이 없어 차량이 승객들로 가득 찰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제한된 일정으로 인해 마냥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하며 기다릴 수는 없었다. 운전수에게 차린 협곡까지 태워다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어느 정도의 요금을 제시했다. 그리 큰 액수가 아니었기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운전수와의 대화는 미리 휴대폰에 다운로드를 받은 카자흐 언어 번역기 앱과 영어-카자흐 언어 전자사전 앱을 이용했다. 알마티 시내를 조금 벗어나니 눈 덮인 설산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도시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운전수에게 부탁하여 널찍한 들판에 차를 잠시 세우고 자일리스키 알라타우 산맥 주변의 설경을 감상하였다. 차린 협곡에 도착하기 전 칠릭chilik이라는 작은 타운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오래된 구닥다리 러시아제 승용차인 모스코비치나 볼가와 같은 차량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동네였다. 커튼 사이로 밝은 햇살이 스며 들어오는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했다. 현지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야채와 고기가 들어간 수프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나 역시 만두를 시켜 허기를 달랬다.
칠릭은 작은 마켓타운으로 이곳의 작은 시장은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유용한 장터로 활용되는 동네였다. 거리에는 우리네 통닭과 비슷한 로스팅 치킨과 같은 먹거리를 팔고 있었다. 양파, 오이, 토마토와 같은 야채는 물론 사과, 바나나, 체리, 수박 등 먹음직스러운 과일도 볼 수 있었다. 딱딱하게 구운 둥근 빵은 이 지역의 주식인가보다. 옹색해 보이는 가판대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갓 구운 빵을 여러 개 사가지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차린 협곡으로 가는 길은 인적 드문 벌판에 험준한 산들이 이어진 풍경을 자아냈다. 황량하기 그지없기에 오히려 이국적이었다. 키 작은 잡목이나 잡초들로 무성한 바위산의 모습은 흡사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 풍경과 비슷해 보였다. 차린 협곡에 다다르자 키릴문자로 쓰여진 커다란 안내판이 보였다. 차량의 출입을 통제하는 검문소와 비슷한 곳에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협곡 안으로 들어갔다. 그랜드 캐넌의 일부를 가져다 놓은 듯한 신비로운 협곡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졌다. 중앙아시아의 인기 있는 관광명소에 비하면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 외국방문객은 내가 유일했다. 열 명도 채 안 되는 몇몇 방문객들이 있었지만 모두 현지인이었다. 차를 잠시 세우고 나 홀로 길을 따라 협곡을 감상하였다. 어디선가 바람이 들려주는 휘파람 소리가 나는 듯했다. 협곡 아래로 내려가보고 싶었지만 내려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협곡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사람들을 발견하였지만 그 길은 매우 험한 오르막길이어서 그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갈 자신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협곡 위에 놓인 길을 따라 기암괴석군 주변까지 걸어가보았다.
막막한 길을 걷자니 두려움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그 어느 곳에서도 작은 생명체 하나 살 것 같지 않은 땅이었다. 하지만 곧 안도의 마음을 느꼈던 것은 마술 같은 조각가의 예리한 솜씨로 빚어낸 듯한 기암괴석군의 자태를 보고 나서이다.
기암괴석은 조각박물관에 놓인 그 어떤 예술작품보다 더 기묘해 보였다. 이런 곳에 이처럼 멋진 예술품이 숨겨져 있다니 참으로 놀라웠다. 한참을 감상하다 이번에는 벼랑 같은 곳에 서 보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할 정도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특별히 고소공포증도 없는 데 말이다. 그래도 이곳에서 바라보는 협곡 아래 길과 주변 풍광은 가히 일품이었다. 마치 굽이치듯 협곡길이 춤을 추고 있는 듯했다. 그 위로 바위들이 노려보듯 협곡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 예전에는 이곳에 물길이 있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물길이 말랐을 것이다.
오늘날 이곳에 그대로 물길이 남아있다면 어떤 풍광을 자아낼까?

눈이 시린 콜세이 호수에서 온정이 담긴 닭다리를 먹다

차린협곡 방문을 마치고 이번에는 콜세이 호수Kolsay lake로 향했다. 콜세이 호수는 차린 협곡으로부터 남서쪽에 자리해 있었다. 내친 김에 운전수에게 콜세이 호수까지 방문하자고 제안을 했다. 비용은 추가로 더 지불하기로 했다. 운전수는 쿨하게 제안을 받아들였다. 카자흐스탄의 작은 스위스로 불리는 지역이라기에 어떤 풍광을 숨겨놓고 있을까 내심 기대가 되었다. 지도상으로 얼마 안 되는 거리였으나 운전사는 비포장도로인 지름길을 택하지 않고 포장도로인 우회도로를 선택하였다. 이로 인해 콜세이 호수까지 가는 길은 예상보다 소요시간이 더
걸렸다. 알마티에서 도로를 따라 약 3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콜세이 호수의 주변은 푸른 초목이 가득한 산세가 돋보였다. 길을 가다가 문뜩 차창 너머로 하얀 백마를 타고 가는 소년들의 모습이 보였다. 소년 두 명이 하나의 말 안장 위에 앉아 초목을 거닐고 있었다. 멀리서 차창너머로 카메라를 들이대자 말 탄 소년들은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아이들의 미소에 마음이 푸근해졌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풍경은 스위스의 알프스 산자락에서나 볼법한 침엽수림이 이곳에서도 곧게 뻗어 숲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이다. 건조하고 황량한 차린 협곡의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중동의 열사의 땅을 방문한 뒤 곧장 날아와 유럽의 알프스지대를 방문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산 아래 들판에는 하얀
천막으로 꾸며진 유르트도 보였다. 현지인들의 집으로 사용되는 것인지 아니면 방문객들의 여가를 위해 사용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잠시 후 콜세이 호수의 모습이 어렴풋이 드러나자 ‘우아’하는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신비의 비경을 간직한 콜세이 호수의 자태는 마치 숨어있는 진주처럼 영롱했다. 아쉬웠다면 날씨가 다소 흐렸다는 점. 맑은 날씨였다면 푸른 하늘 아래, 에머랄드빛 물색을 자랑하는 호수의 멋진 풍광을 기대해 보아도 좋았을 텐데. 호수 주변에는 목재로 만들어진 가옥들이 여러 채 모여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네 펜션과 비슷한 숙박업소들이었다. 호수는 차를 타고 올라온 비탈길보다 낮은 고도에 위치해 있었기에 호숫가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했다. 호숫가 옆에는 호숫가의 숲을 따라 호수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숲길이 놓여있었다. 숲길에서 보는 호수의 그림은 어떨까 기대를 하며 그 길을 따라
걸었다. 눈 앞에 놓인 시퍼런 물 앞에 눈이 어질어질할 정도로 눈이 시렸다. 보기만 해도 시원함과 청량감이 느껴졌다. 날씨도 흐리고 물도 차가워 물속에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따뜻한 날씨였다면 아마도 주저 없이 옷을 벗고 뛰어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물색은 맑고 투명했다. 방문객은 거의 없었지만 호숫가 군데군데 피크닉을 위한 일종의 쉘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바비큐를 위한 간단한 편의시설도 놓여있었다. 숲길을 따라 다시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걸었다. 그러다 호숫가에 놓인 나무 데크 위에서 낚시를 하는 여성과 그 일행의 모습을 발견했다. 두 명의 여성이 번갈아 가며 낚시를 하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여자 낚시꾼을 보기란 흔치 않은 법이다. 게다가 깊은 산골짜기에 놓인 호수에서의 낚시라니. 바다가 없는 이 나라에서 민물낚시만큼은 이곳 사람들에게 신비로운 액티비티일 게 분명하다. 또한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이 콜세이 호수야말로 자연이 허락한 천혜의 놀이터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호숫가의 선착장에는 아이들이 정박된 보트 위에서 징검다리를 건너듯 요트 사이를 뛰며 노닐고 있었다. 근처 쉘터에서 향긋한 그릴 냄새가 나 다가갔더니 이곳으로 피크닉을 온 현지인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카작족 현지인이 아닌 러시아계 현지인이었다.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빠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은 바비큐 그릴 위에서 닭다리를 굽고 있었다. 아이들의 엄마는 쉘터 안에 놓인 테이블에 마실 것과 샐러드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내가 다가가 사진 촬영을 요구하자 반갑게 맞이해주며 마침 식사를 하려던 참인데 함께 식사를 하자고 제안해주었다.
솔직히 아까부터 향긋한 내음을 피우던 닭다리의 바비큐 맛은 한번 맛보고 싶었다. 남성이 건네준 닭다리 바비큐를 한 입 무니 육즙의 진한 풍미가 그대로 전달되었다. 이렇게 맛있는 바비큐 닭다리의 맛은 난생 처음이었다. 닭다리 하나에 이곳 사람들의 온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남성은 나에게 보드카처럼 보이는 술 한잔도 권했다. 살짝 입술만 대고 잔을 내려놓았다. 잔을 비웠다가는 거침없이 계속 술을 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계속 내 모습을 쳐다보았다. 사실 이 나라에는 나와 생김새가 비슷한 카자흐족들이 대부분인데 그들 눈에는 내 생김새가 이곳 현지인들과 꽤 다른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이들이 마치 외계인 쳐다보듯 나를 빤히 쳐다보진 않았을 것이다.

1 초록이 무성한 자태를 지닌 콜세이 호수. 
2 콜세이 호수의 파노라믹 뷰. 
3 콜세이 호수에서 만난 러시아계 현지인 가족. 
4 콜세이 호수에 놓인 유목민 천막인 유르트. 방문객들을 위해 숙소로 제공된다. 
5 화려한 색감의 유르트 내부.

변방에서 만난 케이팝의 위력

호수 방문을 마치고 차량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량 옆에 놓인 특이한 모양의 미니버스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앞 좌석에 꽤 많은 젊은이들이 타고 있었다. 운전수는 남성이었지만 앞자리에 빼곡히 앉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젊은 여성들이었다. 보아하니 미모가 상당했다. 혹시 모델이 아닐까? 메이크업한 모양새나 옷 입은 모습이 도회지적인 모습을 물씬 풍겼다. 사진 한 장을 요청하자 차 안에 탄 여성들은 가식 없는 순수의 미소로 응대해 주었다. 도시적 미를 지닌 여성들이었지만 미소만큼은 시골소녀처럼 순박했다. 호수를 떠나기 전 호숫가 언덕 위에 놓인 유르트를 찾아갔다. 예전에 중국의 신장-위구르 지역을 여행했을 때 보았던 유르트와 흡사했다. 주인 어른들은 모두 어디 가고 나이 어린
소녀 둘 만이 유르트를 지키고 있었다. 하얀 천막으로 뒤덮인 유르트 안을 들여다보았다. 겉과는 달리 내부는 오색찬란한 색감과 화려한 문양으로 수놓아진 천으로 꾸며져 있었다. 바닥에는 질감이 좋아 보이는 양탄자가 놓여있었다. 꽤 아늑해 보였다. 예전에 몽골의 테를지 국립공원에서 유르트 체험을 해본 적이 있었지만 이곳과는 또 다른 형태의 유르트였기에 이런 곳이라면 하룻밤쯤 머물다 가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테를지에서의 별밤처럼 이곳에서도 양동이로 부어대는 것처럼 별이 쏟아지는 밤을 기대해도 좋을 듯싶었다.

다시 길을 달렸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대지 위에 풀을 뜯고 있는 양떼의 모습이 군데군데에서 보였다. 목자는 말을 타고 양떼와 같이 푸른 초원을 이동하고 있었다. 점잖아 보이는 양치기 목자의 이마에는 주름이 깊게 패어있었다. 몇 년 동안 이곳에서 말과 양과 동거동락을 했을까? 아니, 수십 년이겠지. 목자의 이마에 그어진 주름만큼이나 양떼의 노릿한 털 색깔도 더욱 진해 보였다. 케겐이란 곳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다음날 국경을 넘어 키르기스스탄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국경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케겐의 숙소는 운전수가 안내해준 게스트하우스로 정했다. 방은 비좁았지만 나름대로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시설을 갖춘 곳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게스트하우스 옆에 붙어있는 간이형 식당을 찾아갔다. 식당이라 하기에 좀 우스꽝스러웠던 것은 내부에 80년대 나이트클럽에서나 볼 수 있었던 조명기가 천장에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디제이들이 사용할 법한 음향기기도 놓여있었다. 아마도 가라오케로도 사용되는 곳 같았다. 재미있었던 사실은 이 곳 여주인의 14세살짜리 딸이 케이팝(K-Pop) 팬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걸그룹 티아라의 팬이어서 유튜브를 통해 티아라의 다양한 뮤직비디오를 시청하고 있었다. 급기야 그 소녀는 마이크를 붙잡고 티아라의 대표곡 두 곡을 즉석에서 불러주었다. 물론 춤도 곁들여서 말이다. 케이팝의 위력을 카자흐스탄의 이름없는 시골 동네에 와서 느낄 줄이야. 훗날 키르기즈스탄의 수도 비슈켁의 중심가를 거닐다 지나가던 여학생들에게 길을 묻자 ‘안녕하세요’라고 또박또박 발음하는 K-pop 소녀팬을 다시 만나기도 했다. 중앙아시아에서의 한류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에필로그

중앙아시아의 관문인 알마티를 시작으로 인근의 차린 협곡과 콜세이 호수를 둘러본 카자흐스탄의 일정은 짧았다. 하지만 그동안 몰랐던 이 나라의 다양한 자연경관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카자흐스탄은 엄청나게 큰 면적을 지닌 나라이기에 이번에는 알마티에서 키르기스스탄 국경 가는 길 사이의 몇몇 명소만 둘러보았지만 조만간 다음 여행에서는 좀 더 다양한 지역을 둘러볼 예정이다. 확실히 여행은 책이나 미디어로 접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카자흐스탄이 그랬다. 여행자들에게 별로 관심 없는 동네이지만 직접 눈으로 본 이곳의 자연 비경은 눈부셨다. 차린 협곡의 원시적 풍광도 마음을 취하게 했고 콜세이 호수의 차디찬 풍경도 먼 곳을 달려오느라 과열된 내 머릿속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곳곳에서 느꼈던 현지인들의 살가운 온정이었다. 바비큐 닭다리 한 조각을 건네주는 현지인들의 미소를 보며 온정을 느꼈다. 유르트 숙소를 안내해주던 소녀들의 미소 속에서, 차 안에 타고 있던 미녀들의 미소 속에서, 주름이 깊게 패인 목자의 미소 속에서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었다. 역시 사람의 마음을 따스하게 적시는 것은 가식 없는 순수의 미소라는 것을. 이곳 카자흐스탄에 와서 새삼 온정 어린 사람들의 미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1 콜세이 호수에서 만난 미모의 현지 여성들. 
2 콜세이 호수에서 케겐으로 가는 길에 만난 양치기 목자. 
3 양과 소를 몰고 가는 현지인 목자들의 모습. 
4 케겐의 식당에 엄마와 함께 일하는 14세 소녀가 음악에 맞춰 케이팝 노래와 춤을 선보이고 있다.

Travel Info

1. 가는 길
중앙아시아 최대 항공회사인 에어아스타나Air Astana는 금년인 2016년 스카이트랙스 월드 에어라인 어워드에서 중앙아시아와 인도 지역의 최고 항공사로 선정되었다. 인천-알마티를 오가는 보잉 767기의 비즈니스석의 경우 격조 높은 다이닝 풀코스 메뉴가 제공되며 풀 플랫 베드와 15인치 모니터가 놓여 있다. 모스크바, 페테르부르크, 이스탄불, 키예프 등 러시아, 터키, 동유럽 등지로도 취항하는 에어아스타나는 인천-알마티, 인천-아스타나(카자흐스탄의 수도) 구간을 각각 주3회, 주 1회씩 직항 운항한다.
문의 에어아스타나 서울사무소 02-3788-0170. 한국어 웹사이트 www.airastana.com/kor/ko-KR

2. 현지교통
공항에서 알마티 시내까지 가려면 택시를 타는 게 편리하다. 공항 인근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탈 경우 교통이 불편하다. 알마티 시내에는 전철이 운행된다. 차린 협곡을 가려면 시내에 위치한 사야카트 버스 터미널에서 합승택시를 대절하여 가는 게 가장 편리하다. (요금은 왕복 미화50-60달러 정도) 콜세이 호수까지 포함하려면 아침 일찍 출발하여 밤늦게 돌아와야 한다.

3. 추천 숙소
Apart Comfort Almaty
아파트 형태의 숙소로 나 홀로 여행하는 여행자에게 편리하다. 베이직하지만 기본적인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부킹닷컴을 통해 예약할 수 있으며 객실료는 더블룸 기준으로 미화 25달러 정도이다.
Dimal Hostel Almaty
다른 배낭여행자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도미토리 베드로 이루어져 있다. 객실료는 미화 9-10달러이며, 부킹닷컴을 통해 예약가능하다. 알마티의 지하철 Abay역 남쪽에 위치한다.

4. 환전
카자흐스탄의 화폐단위는 텡게Tenge이며, 100텡게는 한화로 약319원이다.(금년 현재)알마티 시내에는 환전소가 곳곳에 있다. 현지에서의 환전은 공항 환전소와 시내의 일반 환전소와 환율이 비슷하다.

5. 비자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의 경우 관광 목적으로 비자 없이 30일 동안 체류할 수 있다. (6개월내 최대 2회까지 가능하다)

6. 여행시기
카자흐스탄은 연중 내내 어느 때 방문해도 좋다. 일반적으로 5월부터 9월까지가 여행하기 좋은 시기이며 산에서의 트레킹을 원한다면 7-8월이 가장 좋은 시기이다. 겨울철 방문할 경우 따뜻한 방한복은 필수이다.

7. 주의사항
알마티는 치안상 안전한 도시이지만 밤거리를 홀로 다니는 것은 위험할 수 있기에 택시를 타는 게 안전하다. 위급한 경우 알마티 주재 한국대사관에 연락을 취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