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Essay :: Spain

스페인으로 청춘 여행

이제 얼마 후 달걀 한판인 나이가 된다. 좀 더 특별한 서른 살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에 서점에 들러 자기계발서 코너를 기웃거려 보지만 쉽게 눈에 들어오는 책이 없었다. 그러다 발견한 하야마 아미리의 소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작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이야기 속에서 마음에 와 닿는 문구들을 만났다. ‘꿈을 가로막는 것은 시련이 아니라 안정이다’, ‘해보기 전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리고 사람은 뭐든지 할 수 있다’와 같은. 현재의 안정된 일상을 깨고 무언가에 도전한다면, 조금의 변화만으로도 그 어떤 새로운 경험이 가능하다는 마음에 확신이 생겼다. 이를 위해 서른 즈음에 떠나는 지금의 여행이 설레기만 하다.
글과 사진 노윤지  에디팅 이소윤 기자

노윤지 l 서울시 마포구 서강로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 이 말을 늘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캡틴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했던 이 대사. 나중에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 항상 감사하며 열심히 살고 싶다.

파라도르 테라스에서 바라본 톨레도 전경.

Ep 1.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 세고비아

스페인 일정을 짜면서 마드리드의 세고비아Segovia를 가장 기대했다. 왜냐하면 월트 디즈니 ‘백설공주’에 나오는 성의 모티브인 세고비아 ‘알카사르 Alcazar’가 있기 때문이다. 항상 동화책에서만 봐 오던 아름다운 성을 직접 볼 수 있으니 공주 시리즈 동화를 좋아하는 이에겐 필수 코스가 아닐까 싶다. 세고비아는 마드리드에서 버스로 1시간 정도 걸린다. 마을로 들어서니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세고비아 수도교Segovia Aqueduct’를 보고 입이 떡 벌 어졌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완벽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어 놀라울 따름이었다. 특히 아직까지도 수도교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수도교 옆쪽 계단으로 천천히 올라가며 세고비아의 전경과 함께 수도교의 위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상에서 벗어난 기분을 즐기며 세고비아를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작은 도시라 반나절 정도 돌아보기에는 적당한 듯하다. 천천히 거닐다 보니 ‘대성당계의 귀부인’으로 불리는 ‘세고비아 대성당SegoviaCathedral’을 마주하였다. 유럽 건축 양식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도 세고비아 대성당의 섬세하고 우아한 분위기에 매료됐다. 그래서인지 귀부인이라는 수식어가 참 잘 맞는 듯하다. 점점 세고비아의 매력에 빠져들 때쯤 백설공주의 성 ‘알카사르’가 보였다. 정말 말 그대로 만화 속에서 보았던 성의 모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바쁜 일상생활에서 잊고 살았던 동심의 세계가 느껴져 잠시나마 동화 속에서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소녀 감성을 느끼며 세고비아의 추억을 담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Ep 2. 고풍스러운 중세 도시를 거닐 수 있는 톨레도

마드리드 이틀째 날, 스페인 중세 시대를 엿볼 수 있는 톨레도Toledo로 향했다. 사실 스페인의 주요 도시에 볼거리도 많지만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주로 근교를 많이 돌아보려고 준비를 했다. 이미 이곳은 지성, 이보영 부부의 신혼여행지로 많이 알려져 한국인들을 자주 마주치기도 했다. ‘나도 언젠간 신혼여행으로 다시 오리라’ 기분 좋은 꿈을 안고 먼저 톨레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파라도르 호텔Parador de Toledo’로 향했다. 파라도르 호텔은 귀족이나 왕족들이 사용하던 별장 혹은 집을 개조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민박집 아주머니께서 무조건 이곳에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전경을 감상하라고 말씀하셨다. 역시 아주머니의 말씀대로 1층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탁 트인 톨레도 전체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정말 소설 속 대사처럼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역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문화 유산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유럽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지평선을 자주 볼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알카사르 타워에서 바라본 세르비아.
마치 궁전과도 같은 세고비아 대성당.
로마인의 지혜가 돋보이는 수도교.
톨레도와 바깥 세상을 연결하는 알칸타라 다리. 
검은 성모상 오른손의 구슬을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설이 있다.
아찔한 절벽 아래 위치하고 있는 몬세라트 수도원. 
 

Ep 3. 소원을 들어주는 검은 성모 마리아가 있는 몬세라트

스페인의 열차 렌페Renfe를 이용해서 바르셀로나Barcelona로 이동했다. 2시간 30분 정도 걸려 도착한 바르셀로나는 마드리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듣던 대로 ‘가우디Gaudi의 도시’라 불릴 만큼 바르셀로나에서는 가우디의 건축물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중 유명한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는 근교의 산 ‘몬세라트Montserrat’에서 영감을 받아 건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차로 1시간 정도 달리다 보니 차창 밖으로 보이는 웅장한 바위산에 시선이 머물렀다. 멀리서도 그 웅장함과 경건함이 왠지 모르게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또한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수도원과 성당 그 자체만으로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되는 곳이다. 죽기 전에 봐야 할 절경 중 하나라고 불릴 만큼 몬세라트는 압도적인 자연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몬세라트를 찾은 관광객이 꼭 들리게 되는 곳이 ‘검은 성모 마리아상La Moreneta’이다. 한 손에 들고 있는 묵주에 손을 얹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인지 다들 이 검은 성모 마리아상을 보려고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줄을 서서 여러 가지 소원들을 정리하며 기다렸다. 처음에는 뒤에 긴 줄이 늘어서 있어 긴장한 탓에 제대로 소원을 말하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사람이 줄어든 틈에 다시 찾아가
소원을 빌었다. 이번에는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말하고 나니 왠지 모를 뿌듯함이… 나처럼 두 번씩 온 사람이 있을까?^^

Ep 4. 지로나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다

바르셀로나에서 5일째, 여유롭게 바르셀로나 시내를 더 둘러볼지 가까운 근교로 나갈지 고민하고 있던 중 스페인의 베니스, 피렌체라 불리는 곳이 있다고 하여 그곳으로 이동했다. 예전의 이탈리아 여행이 너무 인상에 남아 스페인에서도 느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바르셀로나에서 40분 정도 걸려 도착한 지로나Girona는 너무나 조용한 도시였다. 이번 여행의 마무리를 하기에는 아주 좋은 장소인 것 같았다. 특히 이곳은 30~40분 걸을 수 있는 성벽길이 있어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걷기에 좋은 것 같다. 성벽길 자체가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어 마을 전체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다. 성벽을 걸으며 밑으로 내려다 보이는 아기자기한 집들을 보고 있으면 ‘스페인의 피렌체’라는 수식어가 이해가 된다. 첫 유럽여행을 나선 20대 초반은 유명한 건축물을 하나라도 더 보고 오겠다는 성급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서른을 앞둔 지금의 나는 하나를 보더라
도 여유를 가지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볼 수 있도록 마음 깊숙이 담아두는 차분 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여행을 마치며 안정적인 것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나에게 숨 고르는 방법을 가르쳐 준 여행이다. 또한 서른이라는 나이는 내가 쌓아온 열정과 경험의 무게가 비로소 희망이 되어 빛날 수 있는 시기라 생각하기로 했다. 이번 스페인 여행 자체가 나에게 열정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여행을 통해서 삶이 크게 달라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잠시나마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하야마 아미리 작가의 ‘해보기 전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리고 사람은 뭐든지 할 수 있다’라는 말처럼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을 걷어내기로 했다. 정말 해보기 전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여행을 떠난 자체가 나 스스로에게 열정을 부여한 것 같다. 서른이 되더라도
도전에 두려워하지 않으며 열정을 갖고 살아가야겠다.

스페인의 피렌체라고도 불리는 지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