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Japan
Theme 1. Outdoor Activity

Chugoku Outdoor Outdoor Trip

걷기 혹은 두 바퀴로 달리기, 주고쿠 아웃도어 트립
머리보단 몸으로 여행할 것. 이번 일본행의 모토다. 일본 본섬의 최남단. 돗토리, 시마네, 히로시마, 오카야마, 야마구치의 다섯 개 현을 아우르는 주고쿠中.지방으로 떠났다. 푸른 숲과 바다를 기억에 새길 방법은 두 바퀴로 달리고, 두 다리로 걷기. 몸이 고될수록 행복했던 아웃도어 트립. 자전거로 바닷길을 70킬로미터나 달려서 순례자들의 땅 시코쿠를 밟았을 땐, 피로해야 할 몸이 거짓말처럼 가벼워졌다.
글 함희선 기자 사진 진하정 기자

등줄기를 따라 땀이 또르르 흘러내리고, 호흡이 가빠지지만 괜찮다. 어느 때보다 길었던 여름의 시간을 통과한 뒤로는 겁날 게 없어졌으므로. 오히려 이따금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그늘을 스칠 때의 희미한 서늘함에 감탄을 멈출 수 없다. 지금 나는 다이센산大山의 해발 850미터, 자전거 안장 위다. 페달을 구르지 않아도 혼자서 잘도 달리는, 양손에 쥔 브레이크만 쥐락펴락 잼잼놀이하면 그만인 다운힐 사이클링 중이다. 폭염이라고 웬만한 움직임도 허락하지 않았던, 지난여름 속에서 끌고 나온 육신에게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운동은 없을 거다.
일본의 서쪽, 우리의 동해를 끼고 있는 돗토리鳥取현 요나고米子시. 47개의 현중에서 가장 인구가 적다는 돗토리다. 얼마 전에 스타벅스가 딱 하나 오픈한 것이 요즘의 핫이슈인 그런 동네. 요나고행 비행기에선 빈자리 찾기가 더 쉬웠다. 탑승객은 단 38명. 한국인 승무원이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더랬다. “요나고에는 대체 뭐 하러 가세요?” 차로 50분이면 후지산을 꼭 닮은 일본의 4대 명산 다이센산에 오를 수 있다고 귀띔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알쏭달쏭한 표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일본 여행의 첫 행선지는 그런 곳이었다.

청량한 숲의 향기를 만끽하는 법

안타깝다. 안개에 둘러싸인 탓에 후지산을 닮았다는 다이센산의 대단한 자태를 볼 수 없는 일. 비를 뿌리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말이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처럼 차멀미에 시달리는 것을 보아하니 산세가 꽤 깊은 듯하다. 1,709미터. 주고쿠 中.지방에서 가장 높은 산. 눈으로 뽀얗게 뒤덮이는 11월부터 4월까지는 스키어들의 차지이지만, 지금은 등산과 사이클링을 즐기기에 완벽한 타이밍이다. 1300년 전, 소와 말을 끌고 걸어 다녔다는 다이센 옛길을 자전거로 구불구불 돌며 위에서 아래로 내달렸다. 초급자부터 상급자까지 즐길 수 있는 3가지 다운힐 사이클링 코스 중 하나인 B코스의 일부를 골라서. 저멀리 요나고 시에 있는 활처럼 생긴 해변 유미가하마弓ヶ浜가 시선의 끝에 머물 만큼 아주 높이에서 말이다. 자전거의 속도감에 너도밤나무와 참나무로 빽빽한 청량한 숲의 향기가 콧속을 뻥 뚫어 놓는다. 미세먼지 가득했던 서울의 기억까지홀라당 벗겨간다. 끊임없는 내리막길. 페달을 밟는 다리는 하나 안아프고, 보통 자전거길이라면 너덜너덜해졌어야 할 엉덩이는 보송보송 그대로 다. 안장 위에 다소곳이 앉아있을 뿐인데, 다이센산을 온통 휘젓고 다니니 등산과 다를 바 없는 일. 물 좋다는 산이라 귀찮게 물통을 챙기는 대신 계곡의 말간 물을 손바닥 가득 채워 목마름까지 달래니 더없이 좋다. 그동안 산이란 그저 두발로 꾹꾹 밟아서 보는 것이라 여겼더랬다. 자전거 바퀴만 굴릴 줄 안다 면 다이센산에선 다운힐 사이클링이 진리다.

1 초보자에게도 어렵지 않은 코스. 계속 내리막길이라 집중만 하면, 편하고 신나게 산을 둘러볼 수 있다. 
2 다이센산 다운힐 사이클링을 함께 했던 일본인 찰리상. 그는 시간이 날때마다 다이센산을 달린다.

물살을 거슬러 오르다

“여름이면 샤워 클라이밍으로 인기가 좋죠.” 자전거 선두에서 달리던 찰리상의 한마디를 잊지 않고 다음날 아침 또다시 다이센산에 올랐다. 우리나라에서 계곡 트레킹이라 불리고 있는, 다소 낯설지만 다이센산에선 핫한 액티비티. 샤워 클라이밍이 뭔지도 모르면서 가이드를 따라 계곡물에 풍덩 몸을 던졌다. 앗, 얼음물이다! 입술이 덜덜 떨리더니 금세 새파랗게 질려버린다. 한여름 날씨에도 수온이 14-15도. 샤워 클라이밍이 8월 말부터 9월 말까지만 할 수 있는 꽤귀한 스포츠인 이유다. 3킬로미터 남짓 이어지는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거친 계곡물을 정면으로 맞서며 상류로 거슬러 올랐다. 크고 작은 바위를 손으로 짚고 기면서, 폭포를 넘었다. 뭐랄까. 이건 마치 딱 냉동고에서 샤워하는 격이다.
한순간도 움직이지 않으면 얼어버릴 지경. 살기 위해선 쉼 없이 팔다리 근육을 써야했다.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의 다이센산에서 하는 샤워 클라이밍의 매력이란 물길을 헤쳐 나가는 쏠쏠한 재미다. 물의 흐름을 파악하는일, 허벅지를 강타하는 세찬 물살과 싸워 이기는 묘미도. 오장육부와 뇌속까지 찌릿하게 만드는 냉기에 지난 폭염 속에 뛰어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하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 돈다.
산을 떠나 요나고시로 다시 향했다. 유미가하마의 둥근 해변이 한눈에 들어찬다. 그 곁의 잔잔한 바다는 해수욕으로 유명하다. 스노클링과 카누를 즐기기에도 훌륭하고. 해변을 따라 죽 이어지는 카이케皆生 온천가의 료칸에 짐을 풀고, 다이센산에서 얻은 (솔직히 하나도 힘들지 않았던) 피로를 바닷바람 불어오는 노천탕에 담가 녹이기로 했다. 나트륨과 칼슘 등 미네랄이 풍부한 온천수. 카이케에서 목욕을 하면 피부병과 각종 부인병에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피부미용에도 탁월하다. 경치 감상을 땀 흘리며 달리고 기어오르면서 했더니, 왠지 이틀 만에 살도 빠지고 예뻐진 기분이다. 이정도 수준의 액티비티라면 신선놀음이다. 비행기에서 만났던 승무원을 또 볼일이 있으려나. 추천하면 딱 좋은 요나고 여행코스이니 말이다.

1 계곡의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오르고 있다. 다이센산에서 요즘 여름에 인기있는 샤워클라이밍. 
2 요 나고시에서는 카누도 제법 사랑받는다. 아름다운 유미가하마에서 카누에 올라타면 잔잔한 파도 위에서, 다이센산을 바라보면서 카누잉을 즐길 수 있다. 

3 오니노시타부루이의 산책길을 돕는 카리스마의 고양이, 타마짱. 신기하게도 입구까지 함께 걷는다. 
4 전설에 따르면 타마공주가 상어를 쫓기 위해 돌을 마구 던져놓았다는, 오니노시타부루이 골짜기의 풍경. 
5 비오는 숲속에서 도토리를 주우면서 걷는 재미. 일본에선 도토리를 동글이라 부른다. 참 귀엽다.

다이센산에서 땀 흘린 후 들리면 좋은 맥줏집
Bierhof Gambarius 이토록 외진 곳에서 상상할 수 없는 세련된 분위기의 수제 맥주 양조장. 물은 당연히 물 좋은 다이센산의 것이고, 밀과 호프까지 직접 생산해 맥주를 빚고 있다. 1997년 오픈한 이래 이와타상이 만든 맥주들은 세계 대회에서 여러차례 수상해왔다. 20종류의 맥주 중에서도 월드 비어 어워드에서 1등을 수상한 바이젠은 꼭 마셔보자. 레스토랑도 함께 운영 중이다. 감바리우스의 맥주들은 로컬 와규 스테이크, 소시지 메뉴와 찰떡궁합.
주소 1740-30 Maruyama, Hoki-cho, Saihaku-gun, Tottori
문의 +81-859-39-8033, g-beer.jp/gambarius 

상어를 쫓아낸 공주 이야기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 숲. 우비 바스락대는 소리만이 스산한 가운데 고양이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났다. 이름은 타마짱. 산길 입구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아흔넷의 할머니가 3년째 키우고 있는 고양이다. 어디선가 나타나 발걸음에 끼어드니 목에 달아놓은 빨간 리본이 아니었더라면 호랑이라도 마주친 것처럼 놀라자빠졌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눈빛은 매서워도 산책로까지 안전하게 이끄는 열혈 도우미. 타마짱은 계곡 위 45미터 높이에서 흔들거리는 다리 앞까지 함께 걷더니 제 할 일은 끝났다는 듯 무심하게 돌아서갔다. 마치 거짓말처럼 그렇게.

고양이의 깜짝 안내를 받은 곳은 시마네島根현에서도 두메산골인 오쿠이즈모 .出雲에 위치한 오니노시타부루이鬼の舌震다. 사실 오쿠이즈모는 일본 오지중에서도 한참 오지다. 타타라たたら라고 불리는 용광로를 사용하는 전통방식의 철강 산업이 최근 일본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일본인들에게도 겨우 이름이 익숙해지는 중인 시골. 오니노시타부루이는 그런 시골 마을에서 트레킹으로 이름난 2킬로미터 남짓한 깊은 골짜기다. 두메산골일지라도 일부러 찾아올만큼 멋진 풍경 속에 걷기 좋은 곳. 물가에 난 자연 그대로의 산책로도, 휠체어로 다닐 수 있게 잘 만들어놓은 평평한 나무 데크 길도 뒷짐 지고 2시간이면 흐뭇하게 걸을 수 있다. 타마짱이 데려다준 160미터 길이의 아찔한 흔들다리를 건너면 장대한 광경이 펼쳐진다. 공기놀이 2단도 못 배운 꼬마가 허공에 대고 뿌렸나. 거대한 암석들이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모양새다. 전혀 자연스럽지 않
다. 한 번에 휙- 흩뿌린 것처럼. 그게 참 신기해서 같은 바윗돌들이 2시간이나 똑같이 이어지는 데도 눈을 쉽사리 뗄 수가 없다. “맞아요. 전설 속에서 타마 공주가 던진 돌들이에요. 그녀를 좋아하는 상어가 바다에서부터 쫓아왔는데, 오지 말라고 던진 바위들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거랍니다.” 아까 그 고양이! 타마짱! 표정이나 하는 짓이 범상치 않다 했더니, 어쩌면 전설 속의 공주가 환생한 거 아닐까. 기이한 바위 구경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나무 뒤에 숨겨진 타마 공주의 작은 신사 앞을 지날 때 두 손을 살짝 모아 인사하기를 잊지 않았다.

1 천년의 세월을 살아온 히로시마 삼나무의 아름다운 모습. 이끼긴 모습이 더욱 더 신비한 분위기를 만든다. 
2 산책길 위에 있는 세 개의 쿠마노 신사에서 소원을 비는 중. 꼭 모든 신사에서 소원을 빌어야 한다고.
34 산책하기 좋은 포근하고 아름다운 삼나무 숲.

한 가지 소원, 세 번 빌기

주고쿠 지방의 자연을 누비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면 주저 없이 쿠마 노신사熊野神社로 향하던 산길을 꼽겠다. 고개를 한참이나 뒤로 꺾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천년 묵은 삼나무들의 푸근함에 기대어 걷던 일. 비온 뒤의 짙어진 나무 냄새와 더 선명해진 초록빛 이끼들이 꿈처럼 신비했던 산행이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태양의 줄기들이 어깨 위로 따스하게 내려앉았고, 나는 <이웃집 토토로>의 4살짜리 메이가 되어 삼나무 기둥 뒤에서 요정이 나타날거라 믿으며 유난히도 천천히 걸음을 뗐다. 히로시마.島현의 북동쪽 쇼바라庄原시에 자리하고 있는 히바야마산比婆山. 부드러운 산릉과 울창한 숲으로 매년 13만 명의 등산객이 찾는다. 아주마야마, 센쓰산, 도고산, 타이샤큐쿄 등 1,100미터 남짓한 7개의 봉우리가 모여 시마네현과 히로시마현을 넘나들며 히바야마 연봉을 이루고 있다. 1,264미터 높이의 히바야마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는 여럿이다. 그중 쿠마노신사를 지나가는 길위엔 히로시마현에서 최고로 꼽는 50그루의 거대한 삼나무 중 27그루가 웅장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참으로 기이한 풍광이다. 가장 큰 삼나무 주변엔 누군가의 소중한 염원이 담긴 돌과 곱게 접은 종이들이 겹겹이 쌓여있다. “쿠마노 신사는 일본 건 신화 속 여신을 모시고 있어요. 713년에 창건된 크고 작은 3개의 사원이 삼나무 숲 속에 그림처럼 숨겨져 있는데, 한 군데도 빠뜨리지 않고 세 신사에 기도를 올리면 소원이 이뤄진답니다.” 함께 걷던 공원관리소장의 말에 귀가 쫑긋해진다. 압도적인 규모의 삼나무 숲에 경건해져서는 여신에게 기도해 보기로 했다. 우선 끈이 달려있는 종을 쳐서 신에게 내가 왔음을 알리고, 두 번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다시 두 번 박수를 크게 치고, 조용히 소원을 빌었다. 그렇게 세 개의 신사에서 세 번을 반복. 그녀가 잘 들었을라나. 숲의 청초한 기운에 젖고 싶다면 혼자서 쿠마노신사를 찾아보길 권한다. 트레킹 코스에는 이정표 하나 없지만, 공원관리센터에서 출발하기만 하면 여신이 절로 길 위로 이끌 테니 안심하길. 쿠마노신사부터 히바야마 정상까지는 5.5킬로미터다. 부지런히 걸으면 3시간 30분 만에 오를 수 있다. 나라면 덩치 큰 삼나무들을 빙빙 돌며 여신의 곁에 머물기를 택할 테지만 말이다. 정상을 마다할 정도로, 떠나기 싫은 예쁜 숲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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