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새로운 발견 - 월간 뚜르드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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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호]     대륙분류 : [유럽]     국가분류 : [그리스]     도시분류 : [델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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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델피, 메테오라 1박 2일의 가록

56 tourdemonde.com December 2016 57
2 Days Trip in
Delphi&Meteora

델피, 메테오라 1박 2일의 가록

직접 보아도 믿기지 않는 풍경이 있단 것을 알았다. 사진과 영상으로 숱하게 보던 그 장면들을 처음 실제로 마주한순 간, 어떤 말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리스의 델피와 메테오라. 두 곳을 여행한 이틀의 시간을 이곳에 기록한다.
글 김수현 기자 사진 진하정 기자 문의 호텔티라닷컴 02-2039-5285, www.hoteltira.com
Greece :: Delphi&Meteora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하늘에 드리운 회색 구름이 비를 숨겨두고 있었던 게 확실했다. 늦은 저녁, 호텔 체크인과 동시에 비가 쏟아졌다. 다음날 오전부터 진행될 이틀간의 델피Delphi와 메테오라Meteora 투어에 차질이 생기진 않을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새벽 내내 비가 내렸다. 그리
고 아침, 놀랍게도 전날 비가 온 게 맞나 의심 갈 정도로 화창한 하늘이 반기고 있었다. 혹여나 비구름이 옮겨가진 않았을까, 호텔 직원에게 델피와 메테오라 날씨를 물었다. “운이 좋네요. 딱 오늘과 내일 오후까지는 두 곳 다 맑거든요. 물론 날씨가 흐리더라도 당신이 받을 감동의 크기
는 똑같을 테지만요.” 퍼즐 맞추듯 대중교통의 출발, 도착시각을 잘 조합하거나, 차량을 렌트하거나 또는 투어에 참여하거나. 아테네에서 출발해 델피와 메테오라를 둘러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가이드북에 할애된 고작 몇 페이지가 두 곳에 대한 지식의 전부였던 나는 여러 방법 중 가이드와 함께하는 1박 2일 투어를 선택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때론 머릿속을 빼곡히 채운 지식과 풍경의 만남보다 두 눈에 들어온 광경 그 자체가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산토리니를 둘러싼 에게 해의 푸른빛과 전망 좋은 하얀 리조트들 사이에서 칼데라의 생성 원인과 같은 지리학적 해설이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게 좋은 예다. 하지만 델피와 메테오라 앞에선 산토리니에서와 같은 여행법은 순위에서 밀린다. 어릴 적 만화와 책으로 접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시 찾아보고 싶어졌다. 가이드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단순히 창문 너머 풍경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가는 길마다 신화 속 배경인 이 땅의 신비로운 이야기들이었다.
 
세상의 중심 그리고 신탁소로서의 델피

아크로폴리스 다음으로 그리스에서 가장 의미 있는 고고학 지역인 델피. 델피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수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델피는 그리스인들이 세상의 중심이라 여겼던 곳이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Zeus가 독수리 두 마리를 각각 동쪽과 서쪽으로 날렸는데, 이 새들이 지구를 돌아 지금의 델피에서 만났다고 한다. 제우스는 두 독수리가 부리를 맞댄 정확한 지점에 옴파로스Omphalos 돌을 두어 세계의 중심이 이곳이라 표시했다. 또한 델피는 신의 예언, 즉 신탁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신성한 장소였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유독 신탁에 관한 에피소드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그만큼 그리스 사람들은 신탁을 중요시 생각했다. 공적으로 중대한 결정을 앞둔 경우뿐만 아니라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일에서까지도 신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다. 드넓은 그리스 땅에 신탁소가 하나일 리는 없다. 하지만 여러 신탁소 가운데에서
도 세상의 중심이라 불리는 델피의 신통력은 특히 유명했다. 신화에 델피가 자주 등장하는 건 이러한 이유에서다. 델피에는 예언의 신인 아폴론Apollon의 신탁을 받기 위한 신탁소가 건설됐다. 신탁은 아폴론 신전 안에서 여사제인 피티아Pythia를 통해 이루어졌고, 질문자는 다소 포괄인 내용의 예언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비추어 해석했다. 신화에 회의적인 시선을 내비치는 사람들 또한 신비하다고 여기는 곳이 델피다. 그리스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취임 후 델피 유적지를 방문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정치 인생이 짧을 거라는 미신이 있다고. 그리스인들이 신의 조언을 받은 뒤 위안을 얻었던 것과 비슷하게, 여행자들은 델피 안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마음의 평안을 찾는 시간을 갖는다. 수천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델피는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현재의 삶을 더욱 충실하게 살도록 만드는 공간임이 분명하다.

델피 성역의 시간을 찾아서
정확한 설립 시기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델피 성역은 그리스 시대부터 꽤 오랫동안 온전한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몇 번의 전쟁과 복원을 거듭하다 결국 381년 로마의 테오도시우스 1세Theodosius I에 의해 파괴되고 말았다. 성역 위에서 멈춰있던 다시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약 1천 500년 뒤다. 19세기 말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버려진 성역을 발견했으며 1987년 델피 고고 유적지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고고학자들의 발견 이후 많은 부분을 복원했다지만, 성역에서 볼 수 있는 건 그리스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돌덩이들이다. 델피의 옛 영광의 기록들은 델피 고고학 박물관Delphi Archaeological Museum에 자리한다. 결국 성역 안에서 수천년 전의 과거를 그려보는 건 순전히 우리의 몫으로 남겨진 셈이다. 옴파로스 돌, 아테네의 보물창고를 지나 이제는 기둥과 터로만 남아 있는 아폴론 신전까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본다. 한두 갈래 길이 전체로 이어지는 델피 유적지 탐방 중에는 헤맬 일이 없다. 가장 끝에는 경기장이 있다. 투어 일행중 몇몇은 15분을 더 걸어 경기장에 닿았지만, 극장이 훤히 모습을 드러낸 언 덕에서 걸음을 멈춘 이들도 적지 않았다. 돌에 잠시 기대 걸어온 길을 내려다 보니 여행자들과 신탁의 조언을 구하고자 하나둘 모이는 그리스인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했다.
그리스인들과 나와 그리고 델피를 방문한 여행자의 공통점을 찾자면 우리는 모두 성스러운 장소에서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거다. 그것이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지나지 않을지라도 절대 평범하거나 가벼운 것은 아니다. 필요한 건 우리가 무엇이 진실이고 허구인지를 구별하는 눈이 아닌 받아들임 그 자체다. 신화는 신화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물론 있다. 그러나 아주 오래전 그리스 사람들이 델피의 땅 위에 성역을 만들었고 이곳에 찾아와 불안한 앞날에 위안을 얻어갔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일 것이다.


1 델피 아폴론 성역의 전경. 이곳에서 신탁이 이루어졌고 피티아 제전이 열렸다. 피티아 제전은 오늘날로 이야기하자면 체육경기와 문화행사가 혼합된 큰 이벤트였다. 
2 당장 공연을 해도 괜찮을 정도로 잘 보존된 고대 그리스의 극장. 기원전 4세기에 지어졌으며 약 5천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다. 극장 뒤편을 메운 산 풍경과 함께 보는 공연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3 “너 자신을 알라” 그리스의 대표적인 격언이자 소크라테스가 인용하여 더욱 유명한 이 문 1 장은 델피의 아폴론 신전에 새겨져 있었다는데, 지금은 볼 수 없다.

테르모필레를 거쳐 칼람바카로
오후쯤 델피를 떠난 차는 산을 넘어 좁은 평원 근처에서 속도를 늦췄다. 그리스 역사 속 기원전 480년에 일어난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인 테르모필레 전투 Battle of Thermopylae의 그 장소, 테르모필레Thermopylae에서 차가 멈춰 섰다. 나와 비슷한 또래라면 영화 <300>을 먼저 떠올릴 테다.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특성상 오락적 성격이 강했고 영화 속 페르시아인들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지극히 유럽인들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봤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결론적으론 테르모필레 전투를 많은 이들에게 알린 영화다. 테살리아Thessaly 평원에서 아테네로 들어가는 좁은 길이었던 이곳에 옛 스파르타의 왕이었던 레오니 다스 1세Leonidas I가 길목을 지키고 있다. 과거에는 스파르타의 300명의 용사 앞에 섰다면, 지금은 오가는 여행자와 함께 옛 전투 장소가 내려다보이는 길위에 늠름한 자세의 동상으로 자리하고 있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황제
Xerxes I가 수백만에 달하는 군대를 동원해 이 땅에 침입하며 레오니다스 왕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일화는 유명하다. “와서 가져가라Μολων λαβε” 동상의 아래 새겨진 문자는 레오니다스의 대답일 뿐만 아니라 죽음도 불사한 전투를 택한 용맹한 스파르타 전사들의 메시지였을 것이다. 투어 중 잠깐 지나가는 길목임에도 역사 속 한 장소에 와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사람들은 쉬지 않고 카메라로 오늘의 모습을 기록했다. 테르모필레를 마지막으로 첫날의 일정이 끝났다. 이튿날 일찍 메테오라로 가기 위해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칼람바카Kalambaka 마을에 여장을 풀었다. 잠시 머물러가는 단체 여행객들로 가득 찬 호텔과 식당 안은 오늘의 여행을 되새기며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로 요란스러웠다. 호텔을 빼곤 불빛 하나 없었기 때문에 잠들기엔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딱히 뭔가 볼 것도 할 것도 없었다. 덕분에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해방된 여유로운 밤.

수도원과 수도사들의 삶
아테네 중심에서 출발해 메테오라 당일 여행을 하려면 뛰어난 체력과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왕복만 넉넉잡아 9시간. 이동에 필요한 긴 시간 때문에 투어를 이용하지 사람들도 전날 칼람바카 마을에 도착해 1박을 한 뒤 아침 일찍 메테오라로 향한다. 그런데도 당일로라도 메테오라를 가겠냐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당연히 예스다. 이른 아침, 안개가 걷히고 창문 밖으로 암벽과 수도원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우뚝 선 암벽, 이 큰 암벽에 전문가와 아마추어가 점만큼 작게 매달려 있는 것은 평범한 풍경이다. 메테오라에서 본 모든 것을 통틀어 가장 놀라운 사실은 암벽 끝자락에 수도원이 들어섰다는 거다. ‘공중에 떠 있는’ 이라는 뜻의 메테오라.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지구의 창조 물과 그 위에 사람의 손이 만든 수도원은 자연 그리고 인간에 대한 경외심마저 느끼게 한다.
그리스의 국교이자 그리스인의 97퍼센트가 믿는 그리스 정교. 본래 메테오라 지역은 11세기부터 그리스 정교를 믿는 수도사들이 살던 조용한 곳이었다. 그러나 오토만의 통치 시기에 이르자 무법자들이 이곳까지 밀려들어 왔다. 수도사들은 이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을 물색했고 마침내 높은 암벽을 오르기로 결심한다. 사다리, 바구니, 도르래 등을 동원해 꼭대기에 수도원을 세우고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이 때문인지 오토만 지배 기간에도 수도원은 그리스 문화와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종교뿐만 아니라 예술도 꽃을 피웠다. 단순히 수도원의 기능으로만 국한한 것이 아닌 까닭에 철학가, 시인, 화가와 사상가도 메테오라의 수도원 안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암벽 위에서 수도사들은 끊임없이 선과 악, 회개와 기도를 거쳐 영원한 기쁨과 도덕적 자유를 얻고자 했다. 그들은 하루에 해야 할 행동을 크게 세 번으로 나누어 했다. 기도하기, 일하기, 공부하고 쉬기. 그들의 기도는 주로 저녁 시간, 교회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기도 후 수도사들은 나무를 조각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교부문자와 비잔틴 음악을 공부하는데 시간을 썼다. 보통 성의로 되는 일들이 아니다. 반복되는 수행을 통해 그들은 내면의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고 금욕적인 생활을 유지했다. 오늘날에는 메테오라 지역에 총 6개의 수도원이 남아있으며 수도사들의 삶에는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1 사람들을 보며 고대인들이 먼 길을 찾아온 이유를 생각해봤다. 지금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을 것이며, 아마 절대자의 조언을 구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찾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2 수도원 입장과 동시에 지켜야 할 사항은 정숙 또 정숙. 2박 2일간 친절하던 가이드도 예배당 안에선 매서운 표정으로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을 흘겨봤다. 
3 수도사들의 하루는 일반인은 흉내 내지 못할 만큼 엄격하다. 그러나 카메라를 향한 그의 미소는 한없이 인자했다.

메테오라 여행이 내게 남긴 것
딱 잘라 말해 하루 동안 메테오라의 모든 수도원을 둘러보는 계획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수도원들은 일주일 중 하루 내지 삼 일까지 돌아가며 문을 닫는데, 이 요일이 각각 다르므로 전체 수도원이 여는 타이밍 맞추기가 쉽지 않다. 또한 운이 좋아 모든 수도원이 문을 연 날 메테오라를 방문했더라도 하나의 수도원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지기 때문에 쫓기듯 다니기 십상이다. 그러니 아침 일찍 출발한 여행자라도 두 개 또는 세 개 수도원으로 만족하기를. 적어도 수도원 내부와 메테오라의 풍경 감상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싶다면 말이다. 어느 수도원에 갈지는 휴관 요일과 주어진 시간 그리고 기후 등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택하면 된다. 이날 우리가 향한 곳은 발람 수도원Varlaam
Monastery과 루사누 수도원Roussanou Monastery이다. 1350년 발람Varlaam이라는 수도사가 처음으로 작은 예배당을 지은 발람 수도원은 약 200년 후인 1517년, 폐허가 된 공간 위에 새로운 건물을 올리며 지금의 형태를 이루었다. 발람 수도원 산책은 높이가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1922년에 계단을 만들었지만 과거 암벽 밑에서 물건을 오르고 내렸던 끈과 네트가 매달린 도르래가 아직 남아 있다. 계단을 모두 올라가면 왼쪽에는 탁 트인 전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으며 오른쪽에는 예배당이 자리한
다. 발람 수도원은 여섯 개의 수도원 중 아름답기로 1, 2위를 다투는데, 그 이유중 하나가 멀리서 보이는 수도원의 풍경뿐만 아니라 예배당의 화려함 때문이다. 촬영이 금지된 까닭에 머릿속에만 기록했음에도 쿠폴라 안쪽을 가득 메운 성화와 16세기 중반에 그려진 신비로운 프레스코화는 지금도 생생하다. 루사누 수도원은 발람과 달리 정확한 설립 시기에 대한 사료를 찾기 힘들다.
1380년에 건축됐을 거란 추측과 함께 1545년 오래된 폐허 위에 교회를 복원하고 확장했다는 기록 정도만 남아있다. 산속 내리막길을 3분 정도 걸으면 금세 수도원 앞이다. 규모가 작은 수녀원이지만 볼거리는 많은 편. 특히 벽면의 성화와 전망대에서 보는 메테오라의 전경이 아름답다. 수도원을 보는 방법이나 이렇다 할 순서는 없다. 일행 중에는 예배당 안보다 테라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꽤 많았다. 루사누 역시 메테오라 수도원과 마찬가지로 예배당 안에서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으며 여자라면 무릎을 가리는 스커트를 입어야 한다. 다른 유적지에선 살을 노출하지 않으면 긴 바지도 상관없는 경우가 많았 는데, 메테오라에선 예외 없이 발목까지 오는 스커트 신세다. 칼람바카 마을에 위치한 레스토랑 메테오라Restaurant Meteora에서 따뜻한 가정식 점심을 먹는 것으로 투어가 끝이 났다. 아테네로 돌아가는 길, 투어 버스 안에서 빵빵 터지는 와이파이를 연결해 친구들에게 1박 2일간의 여행 사진을 몇 장 보냈다. “이게 그리스라고? 그리스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그들은 다음 텍스트에서 의외의 풍경에 놀랐고, 더 그리스에 가보고 싶어진단 말을 덧붙였다. 확실히 델피와 메테오라에는 내가 멋대로 씌운 산토리니적인 그리스의 이미지는 없었다. 나는 가이드의 설명을 따라 돌 위에서 수천 년 전 사람들이 진짜라 믿었던 것을, 놀라운 그림들 앞에서 수백 년 전 수도사들의 삶을 마음속에 그렸다. 그리고 이따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가슴 깊은 곳에서 부터 차오르는 것을 경험했다. 어쩌면 훗날 바다보다 더 진하게 남을 그리스는 이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지나가며 본 초원, 올리브 나무, 암벽, 신전과 터 그리고 놀라운 신화 속 풍경과 창대한 역사의 순간과 같은 것.

 

1 스테파노스 수도원과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풍경. 수도원이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지 감이 오려나. 
2 발람수도원의 내부. 예배당으로 들어가기 전 이 공간에서 가이드의 긴 설명이 이어졌다. 밖에서 볼 땐 몰랐지만, 내부로 들어오니 수도원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3 루사누 수도원에서 바라본 발람 수도원.
4 맛있는 가정식이 있는 메테오라 레스토랑. 고기나 생선의 메인 메뉴를 선택하면 이렇게 직접 그릇에 퍼준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선택은 와인 소스를 끼얹은 양고기. 맛은 매우 훌륭했다. 
5 루사누 수도 원으로 올라가는 길. 곧 보일 수도원과 두 눈에 들어올 메테오라 풍경 앞에서 심장이 두근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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